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제목 욥기강해8 회복의 하나님을 만나다 
본문 욥기 42:10-17 (구약 804) 
날짜 2017-06-25 
설교자 전용표 목사 

 

 얼마 전 기사에 보니까 대구에서 바나나가 열렸다고 합니다. 대구가 그만큼 덥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구를 대프리카’(frica)라고 부른다나요? 기왕이면 망고도 열리고 두리안도 열렸으면 좋겠네요. 열대지방은 과일이 풍성합니다. 열대지방 과일은 먹으면 맛을 표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달다, 안 달다그것으로 끝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같은 사계절 지방 과일은 맛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새콤달콤하다’ ‘떫다’ ‘새그럽다’ ‘시원달짝하다이스라엘 석류는 달기만 한데 우리나라 석류는 새콤달콤합니다. 빛깔도 열대지방 과일은 빛깔이라는 게 특별히 없습니다만 우리나라 과일은 빛깔이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사과, , , 참외, 밤 같은 것 보세요. 완전 보석입니다. 왜 그렇게 다양한 맛이 나고 다양한 빛깔이 납니까? 계절 때문입니다. 과일이 익으려면 따스한 봄날도 보내야 하고 비바람 치는 날과 모든 것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불볕더위와 찜통 같은 무더위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찬바람도 이겨야 합니다. 일교차가 클수록 더 맛있는 과일이 됩니다.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갖가지 맛이 어우러진 오묘한 맛의 결정체(結晶體)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익어가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나날이 찬란해져 가는 것입니다(고후4:16). 익어가려면 겪어야할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찬란해지려면 거쳐야할 관문이 많습니다.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욥기를 여러 번 읽은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이번에 설교를 통해 욥기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욥기가 무엇을 말씀하는 성경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핵심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욥기의 주제는 사람이 아닙니다. 흔히 욥을 주인공이라 여기는데, 욥기의 주인공은 욥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어떤 하나님이냐? 무한한 자유(自由)를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마음대로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욥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탕을 주시든, 씀바귀를 주시든 순응(順應)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하시는 일이 소화되지 않아 넋두리도 하고 항의도 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유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럴지라도 결론은 하나님 자유다, 이 말입니다. 그 자유에 길들여져라, 이 말입니다. 그렇게 볼 때 어린아이의 믿음이 아니라 굉장히 성숙한 믿음을 주시는 책이 욥기성경입니다. 그렇게 가면 무르익습니다.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12~14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니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2~14)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回復)시켜 주신 기록입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재산입니다. 재산을 두 배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도 채워주셨습니다. 아들 일곱에 딸 셋, 도합 열 명을 고스란히 다시 채워주셨습니다. 대개 아들들 이름이 딸들 이름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욥의 경우는 딸들의 이름만 소개되고 아들들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여미마는 비둘기라는 뜻이고, 긋시아는 육계향, 향기라는 뜻이고, 게렌합북은 눈화장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회복이라고 하면 물질적인 면을 먼저 생각합니다. 욥기를 보면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재산을 갑절로 채워주신 것을 회복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욥기를 깊이 공부하기 전에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상처가 회복입니다

 

 

 

 

 

 

 그런데 한 청년의 질문을 받고는 회복에 관한 새로운 통찰(洞察)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이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욥이 나중에 재산을 두 배로 얻고 자식도 다시 열을 얻었지만, 그 전에 열 명의 자녀가 죽었잖아요? 다시 자식 열 명이 생겼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회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참 일리 있는 질문입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자식 열 죽는 그 아픔을 겪었는데, 나중에 자식 열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과연 회복이라 할 수 있을까?’ 묵상을 해봤습니다. 결론은 회복이 맞다였습니다. 자식 열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였을 때 욥은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열 명의 자식을 가슴에 묻었을 것입니다. 상처가 아물었는가 싶은데 또 눈물이 나고 또 가슴이 칼에 빈 듯 아픕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어 따지기도 하고,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몸부림도 칩니다. 상처가 터지고 아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조금씩 무뎌져 갔을 겁니다.

 사실 회복은 이러한 과정(過程)입니다. 그 과정이 곧 회복입니다. 흔적도 없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회복이 아닙니다. 정말 회복은 깊이 파인 상처의 흔적이 남는 것이 회복입니다.

 그것 때문에 나와 비슷하게 말 못할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고통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고 눈시울이 젖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진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워서 됩니까? 겪었기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깊어진다는 것은 깊이 파이는 것입니다. 안 파이고 깊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열 명의 자식이 죽는 견딜 수 없는 아픔 고통은 헛된 고통이 아니라 욥을 진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고통이기에 이 고통 자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그 고통 자체가 이미 회복임을 깨닫고 가야 합니다.

상처가 그리스도를 닮게 합니다. 갈라디아서 617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그런 말을 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 무엇입니까? 고난의 흔적입니다. 숱한 고난의 흔적이 곧 예수의 흔적입니다. 주를 위해 받은 고난의 흔적, 좁은 길을 가려다가 받은 고난의 흔적, 말씀대로 살다가 받게 된 고난의 흔적, 이 고난의 흔적이 곧 예수 닮은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우리 몸에다 예수의 흔적을 새겨 넣으시는 겁니다.

 

 

 

 

 

 

2. 용서가 회복입니다

 

 

 

 

 

 

 지금 욥기 마지막 결론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욥기 마지막은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입니다. 무엇이 회복입니까? 우리는 다시 채워진 재산과 다시 얻은 가족을 회복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보다 우선적인 회복이 앞에 나옵니다. 7,8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7,8)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가서 잘못했노라 하고 회개의 의미로 번제를 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욥의 기도를 받으라 하셨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대신 회개의 기도를 드리면 사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욥에게는 친구들을 용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살아보면 제일 어려운 일이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일입니다. 욥을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은 이내 돌변해서 욥과 싸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은 뒤로 둘의 관계는 서로를 이겨야하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욥 입장에서 보면 자기를 죄인으로 몰아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자식들까지 죄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던 친구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적()이었습니다. 떼거지로 몰려와서 인정사정없이 물어뜯는 이리떼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욥에게 보내십니다. 용서해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라고요. 잔인하게 가슴팍에 대못을 받던 사람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십니까? 무슨 뜻입니까? “욥아, 그래야 네가 산다! 내가 너의 정당함을 알아줬으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되지 않느냐? 그러니 그들을 용서해라. 그래야 네가 회복된다!” 이겁니다. 여기까지 가야 회복됩니다. 그래야 회복됩니다.

여러분, 욥기를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욥이 고난 중에서도 참고 인내했더니 하나님께서 갑절의 복을 주셨다고 몸통 잘라 내고 말씀을 하는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그게 아닙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10)

 

 

 언제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셨습니까?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이기고 지는 관계만큼 인생을 힘들게 하고 인생을 소모전으로 허비시키는 것도 없습니다. 개미지옥처럼 거기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기분 좋다가도 그 사람 얼굴만 보이면 좋던 기분 싹 사라집니다. 그런데 복음의 능력은 그 고리를 끊어버립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붙들리면 감정의 무장해제(武裝解除)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은혜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해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는 반드시 나를 깨뜨리고 나를 무장 해제시켜서 용서로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은혜 받아서 나 혼자 즐겁고 나 혼자 기쁘고, 저 사람을 풀어줌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가 아니라 그저 감정 충만(感情充滿)한 카타르시스일 뿐입니다.

 여러분, 회복이 뭡니까? 언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까? 이기고 지는 관계의 악순환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 괴로운 관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3. 함께 계신 것이 회복입니다

 

 

 

 

 

 

 우리가 욥기에서 놓치기 쉬운 마지막 한 가지를 남았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세 번째 회복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재산이 갑절로 채워지고 자녀를 다시 얻은 것에 도취되어 욥기가 끝까지 욥의 고난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고 끝난다는 점을 놓치고 맙니다. 욥기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끝가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인생(人生)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이런 것입니다. 다 모릅니다. 속속들이 다 알 수 없습니다. 속속들이 다 밝혀지지도 않아요. 또 무엇을 말씀합니까?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를 구하고 다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야할 의무가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하나님 자유입니다. 무한(無限)하시고 불변(不變)하시고 영원(永遠)하신 자유입니다.

 그러면서 욥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 하나님이 항상 욥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고난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태풍 같은 질책으로, 때로는 다시 채워주시는 모습으로, 어떤 모습으로든 하나님은 욥과 함께 하셨습니다. 욥이 자신의 생일과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억울하다고 끝없는 말을 늘어놓을 때, 친구들은 네가 틀렸다, 그런 말 듣기 싫다하면서 윽박질렀지만, 하나님은 묵묵히 다 듣고 옆에 계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곁에 계신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회복입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몹쓸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을 때, 무엇이 진정한 위로이겠습니까? 침상 옆에서 네가 왜 죽는지 이유를 정확한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설명해 주는 것요? 아닙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곁에서 손잡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보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맺는 말

 

 

 

 

 

 

 여러분, 설익지 마십시오. 빛깔 좋게 익으십시오.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도전 앞에, 폭풍 속에서 나타나시는 불붙는 사랑 안에 제대로 순종하고 따라가서 제대로 익으십시오. 제대로 영광스러워 지십시오. 아름답고 멋있고 찬란해 지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78 사도행전강해5 어떤 위세에도 굴하지 않으며 사도행전 4:1~22 (신약 192)  2017-08-06  전용표 목사 
77 사도행전강해4 예수 중심의 교회 사도행전 3:10 (신약 190)  2017-07-30  전용표 목사 
76 사도행전강해3 성령의 창조물인 교회 사도행전 2:36-47 (신약 189)  2017-07-23  전용표 목사 
75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도행전 1:1-11 (신약 187)  2017-07-16  전용표 목사 
74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사도행전 1:1-11 (신약 187)  2017-07-09  전용표 목사 
73 맥추절의 감사 출애굽기 23:14-17 (구약 116)  2017-07-02  전용표 목사 
» 욥기강해8 회복의 하나님을 만나다 욥기 42:10-17 (구약 804)  2017-06-25  전용표 목사 
71 욥기강해7 동문서답 하나님을 만나다 욥기 41:11-42:6 (구약 802)  2017-06-18  전용표 목사 
70 욥기강해6 하나님과 화해하기 욥기 35:1-16 (구약 795)  2017-06-11  전용표 목사 
69 욥기강해5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 욥기 23:1-17 (구약 783)  2017-06-04  전용표 목사 
68 욥기강해4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욥기 21:1~34(구약781)  2017-05-28  전용표 목사 
67 욥기강해3 참된 위로자 욥기 4:1~(구약763)  2017-05-21  전용표 목사 
66 아름다운 가풍(家風) 예레미야 35:14~19(구약1110)  2017-05-14  전용표 목사 
65 자라게 하시는 이 열왕기하 23:24~30(구약603)  2017-05-07  전용표 목사 
64 욥기강해2 깨어진 할렐루야 욥기 2:1~10(구약761)  2017-04-30  전용표 목사 
63 욥기강해1 사심 없는 신앙 욥기 1:1~22(구약761)  2017-04-23  전용표 목사 
62 부활의 증인 사도행전 14:19~28(신약212)  2017-04-16  전용표 목사 
61 성찬의 의미와 유익 (듣기) 고린도전서 11:23~29(신약277)  2017-04-09  전용표 목사 
60 열왕기상 강해8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듣기) 열왕기상 12:25~33(구약536)  2017-04-02  전용표 목사 
59 열왕기상 강해7 이스라엘의 분열 (듣기) 열왕기상 12:1~20(구약534)  2017-03-26  전용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