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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사기강해10 하나님 나라의 승리방정식 
본문 사사기 7:1-25 
날짜 2016-06-19 
설교자 전용표 목사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꽃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이 될 필요가 없다. 꽃은 꽃이기만 하면 된다!’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반드시 한 두 번은 방황을 하게 됩니다. 특히 사춘기 때나 젊었을 때 방황을 합니다. 그러나 방황도 해야할 시기가 있고,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려야할 시기가 있습니다. 나이 40에 아직 사춘기 청소년처럼 정처 없고 혈기에 이끌린다면 그 방황은 누구에게도 인정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떤 방황을 거쳐 이곳까지 왔든지 간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안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뭔가를 특별히 이루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백성답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만족하십니다.

 

 

 

 

 “아직도 많으니 더 솎아내라!”(1~8)

 

 

 

 미디안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이스라엘과 미디안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롯 샘 근처에 진을 쳤는데, 오합지졸 민병대(民兵隊) 수준이고, 미디안은 실전경험이 많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군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민병대는 32,000명이었고, 미디안은 그보다 4배가 많은 135,000명의 대군이었습니다. 4대 1의 싸움! 이스라엘 민병대 안에서는 벌써부터 동요가 일어납니다. 겁에 질린 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믿기지 않는 명령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두려워 떠는 자는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2,3)

 

 두려워 떠는 자 돌아가라 했더니 22,000명이 돌아가고 1만 명만 남았습니다. 이제 13대 1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도 32,000명의 숫자이면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술(戰術)을 잘만 사용한다면 기적 같은 승리도 노려볼만한데 1만 명이면 뭐, 할 말이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많다고 하시면서 한 번 더 솎아내라고 하십니다. 4절 상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4a)

 

 물 가로 내려가서 물을 마시게 한 뒤 손으로 물을 떠서 개처럼 핥아 먹는 자를 선택하시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는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개처럼 핥아 먹는 자를 추려보니까 겨우 300명, 무릎 꿇고 물을 마신 자는 9,700명! 9,700명 돌려보내고, 이제 남은 자는 300명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들은 경계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돌려보냈다 그러고, 유대랍비들의 전통해석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들은 평소 바알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사소한 일에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려보냈다는 해석입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더 적은 쪽을 선택하셨다는 점입니다. 32,000에서 다 돌려보내고 딱 300명, 1퍼센트가 채 안 되는 숫자만 남기셨습니다. 4대1의 싸움이 13대1의 싸움으로, 이제는 무려 450대1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상황을 점점 더 절망스럽게 몰아가십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절박(切迫)하게 하시고 간절(懇切)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남아 있는 300명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배수진(背水陣)’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한 마리 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우는 토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여우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뛰었지만 토끼는 살기 위해 뛰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절함의 차이입니다. 지독한 간절함에 사로잡힐 때 몸과 영혼이 하나 되는 몰입(沒入)이 이루어집니다. 그 때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간절한 만큼 이루어집니다. 죽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던 다윗의 기도가 바로 간절함과 절박함의 기도였고,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룻의 기도가 간절함과 절박함의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마다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믿을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 믿지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의 습성(習性)입니다. 믿을 구석이 완전히 끊겨야 그때서야 고집이 꺾이고 하나님 찾습니다. 부르짖지 않던 사람도 부르짖기를 시작합니다. 간절해 질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붙들고 간절하게 구한 사람이라야 나중에 해결되고 ‘내가 했네’ 하면서 딴 소리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했다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 제로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시고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나의 가능성을 줄여 가시고 나를 간절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두려우면 적진에 들어가 보아라!”(9~14)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00명 가지고 135,000명과 싸우라고 등 떠밀면 ‘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갈 사람이 있겠습니까? 혼자서 450명과 싸우라는데 겁 없이 간다면 그 사람이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이지요. 이때 하나님께서 두려워하고 있는 기드온 보고 적진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한 번 들어보라고 하십니다. 확인시켜 주실 게 있다는 뜻이지요. 10절 11절 상반절입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10,11a)

 

 부라를 데리고 미디안진영으로 몰래 잠입(潛入)해 들어간 기드온은 메뚜기 떼와 같이 땅을 뒤덮고 있는 미디안 군대의 숫자에 숨이 턱 막힙니다. 그러나 그 충격은 잠시 후 적병(敵兵) 둘이 나누는 꿈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이보게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뭔가 불길한 징조가 있는 꿈이였네!”

 “무슨 꿈을 꿨는데 그러나?”

 “글쎄, 들어 보게나! 보리떡 한 덩어리가 우리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오더니만 우리 미디안 장막을 치기 시작 하는데, 장막이 다 엎어지고 쓰러지고 난리도 아니었다네!”

 “저런! 정말 불길한 꿈일세! 그 보리떡은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기드온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뜻이 틀림없어!”

 

 여기까지 들은 기드온은 순식간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보리떡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곡식 다 빼앗기고 겨우겨우 목숨 부지하면서 먹던 눈물의 떡으로서 이스라엘 자기들을 상징하는 것이거든요. 감동이 벅차오르지만 소리는 내지 못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서 결전에 돌입(突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앞서 가셔서 미디안의 군대조직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켜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치고 있던 샘이 하롯 샘이었지요? ‘하롯’이란 말은 ‘떨다, 두려워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서 얼마나 무서워 떨었던지 곁에 있던 샘 이름을 ‘두려워 떨던 샘’이라고 붙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적진에 들어가 보니까 누가 더 떨고 있어요? 적들이 우리보다 더 떨고 있더란 말입니다. 적들이 더 패배의식에 저려있더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두려움의 사람’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작은 자’에서 ‘큰용사’로 변화되길 바라십니다. 역경과 장벽 앞에서 우리가 바랄 것은 ‘상황의 반전’이 아니라 ‘나 자신의 변화’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보다 앞서 가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체질로 체질개선을 이룰 때, 오늘을 사는 삶의 자세가 180도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심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가 없으며, 절망에 붙들려 있을 수 없으며, 대충대충 열정 없는 모습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글씨가 지렁이 기어가는 것 같아서 남부끄러워서 100만원을 주고 만년필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다고 지렁이필체가 명필로 바뀌는 것 아닙니다. 차라리 5천원 주고 ‘펜글씨교본’ 사서 한달 동안 꾸준히 따라 쓰면 필체가 바뀝니다. 본질은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신뢰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미적지근한 체질에서 나보다 앞서 가셔서 먼저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체질로 개선하는 것, 여기서부터 인생의 변화는 시작됩니다.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다(33~35)

 

 

 

 적진 탐방을 성공적으로 마친 기드온은 기상천외한 작전을 세웁니다. 우선 300명에게 무기를 지급(支給)합니다. 무기는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이었습니다. 그리고 300명을 세 분대(分帶)로 나눕니다. 작전을 지시하는데, 작전이라 해봤자, 너무 단순합니다. 적들이 고이 잠든 밤 이 경에 적진(敵陣) 가까이 접근했다가 기드온이 신호를 주면 일제히 항아리를 깨드리고 횃불을 치켜들고 나팔을 힘껏 불라는 것입니다. ‘무기’ 치고는 너무나 엉뚱하고, ‘작전’ 치고는 너무 황당합니다. 정규전 군사 교범에 따르면 거의 미친 짓이나 다름없는 작전입니다.

 그런데 300명이 기드온의 행동을 따라 일제히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치켜들고 나팔을 불어대면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외쳤더니, 이 엉뚱한 무기가 위력(威力)을 발하고, 황당하고 미친 짓 같아보이던 작전이 효력(效力)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곤히 자던 미디안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을 치기도 하고, 칠흑 같은 밤에 적군 아군을 구별하지 못해서 자기네끼리 칼부림 하면서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 자멸(自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칼 한 자루 쥐지 않은 300명의 민병대로 실전경험이 많은 미디안의 135,000명을 괴멸(壞滅)시키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그런데 말이지요, 꼭 신앙적인 방법은 이렇게 유별나야 합니까? 좀 정상적이고 이해가 가는 방법은 신앙적인 방법이 아니고 이처럼 유별나고 상식을 벗어나야 하느냔 말입니까? 제가 신학대학원 입시준비할 때 만났던 어떤 전도사님은 만날 때마다 사람 김 빼는 이야기를 합니다. ‘공부 그렇게 한다고 신대원 합격하는 것 아니야! 신대원은 은혜로 들어가는 곳인데 공부한다고 되나? 기도 많이 하고 믿음으로 시험 치러 가면 하나님께서 답을 다 보여주신다!’ 입담 좋은 사람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니까 저도 막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아직 신앙관이 확고히 서 있지 않던 때라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이거 내가 기도해야 되는데 허튼 짓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성경에는 비정상적인 방법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기독교인들 중에는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좀 엉뚱한 방법을 신앙적인 방법이라 생각을 한다든지, 노력해서 얻기보다는 요행을 통해 얻는 것이라야 하나님의 방법이라 여긴다든지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성경을 곡해(曲解)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드온과 300명이 쓴 작전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작전입니다. 보십시오. 적들이 두려움과 패배의식에 빠져 있지 않다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작전이지만, 기드온이 적진에 들어가서 확인한 것과 같이 적들은 많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패배의식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뭔 소리만 났다하면 놀라서 도망치기 일쑤입니다. 삼국지에 ‘망풍이주(望風而走)’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람소리만 듣고도 도망친다’는 말입니다. 미디안이 바로 망풍이주의 상태였던 것입니다. 초보 권투선수는 맞는 것이 겁이 나서 보지 않고 막 휘두릅니다. 두려움에 깊이 빠져 있는 미디안을 자중지란으로 몰아넣는 기가 찬 작전인 것입니다. 기드온과 300명이 135,000명에게 정면대결을 펼쳤다면 승산이 없지만, 135,000명이 싸우지 않는 방법으로 싸웠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아이디어였다고 밖에는 달리 볼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에 깊이 사로잡히면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틈새시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남들은 생각지 못하는 인생의 지혜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가하면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 방법인데, 그 방법이 효력을 발휘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임재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참된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다워 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이 일에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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