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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강해 1 위험한 시도
2021.07.14 20:24
제목 | 위험한 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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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다니엘 1:1~16(구약 1231p) |
날짜 | 2021-07-11 |
설교자 | 전용표 목사 |
다니엘서 강해 1
성경 : 다니엘 1:1~16(구약 1231)
제목 : 위험한 시도
지금은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로 꼽히지만 백 년 전만 하더라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북유럽의 핀란드란 나라가 있습니다. 2백 년 간 스웨덴의 식민 통치를 받았고 그 후 또 러시아로부터 2백 년 간 식민 통치를 받던 핀란드는 너무나 가난하여 젊은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나라를 버리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젊은 음악도이던 장 시벨리우스라는 친구와 함께 국민들에게 우리 민족이 결코 형편없는 민족이 아님을 음악을 통해 알려주자며 굳게 다짐 하면서 음악 활동에 몰두합니다. 그리하여 시벨리우스는 당시 유럽 음악을 주름잡고 있던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음악풍에서 벗어나 조국 핀란드의 민요와 서사시를 오롯이 담아내는 전혀 새로운 풍의 곡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명작이 핀란디아라는 교향곡입니다. 이 곡이 발표될 당시 핀란드는 여전히 러시아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때여서 러시아는 핀란디아를 금지곡으로 선정하여 연주를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핀란디아는 핀란드 곳곳에서 암암리에 연주되었고 핀란드 국민들 가슴에 독립의 열망을 불타오르게 하였습니다. 핀란디아는 저항을 상징하는 곡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랜 독립운동 끝에 핀란드는 1917년 마침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세계음악계에서는 시벨리우스에게 국민파음악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품은 뜻이 허위로 끝나지 않고 민족을 깨우는 일로 이어진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6백년 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젊은이들 중에도 뜻을 세운 이들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입니다. 오늘부터 다니엘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는 열왕기상하를 살펴보았으니까 유다 멸망 후 포로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 다니엘서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상으로 적당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는 아직 유다가 완전히 망하기 19년 전입니다. 그러니까 유다는 자기나라 백성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망해가던 나라였던 것이지요. 다니엘서는 1~6장까지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갖가지 고초를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가는 장면과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습니다. 그런데 7~12장까지는 미래예언이 나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껴서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1. 우리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주권
1, 2절은 다니엘이 언제 적 사람이고 어째서 바벨론에 끌려가서 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 2절을 읽겠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1,2)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이라는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의 왕으로 전통적인 강대국 앗수르와 애굽을 KO시키고 국제사회의 패권을 쟁취한 인물입니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 때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성전에서 하나님 섬기는데 쓰는 값진 기구들을 노략해서 자기가 섬기는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습니다. 이때 사람들도 많이 잡아갔는데 거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치욕적인 기록입니까? 나라가 침략당하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것도 치욕적인데 이방 나라 왕이 쳐들어와서 하나님 성전을 노략질했다는 겁니다. 아마 한쪽에서는 ‘이럴 수가 있나? 성전이 노략당하다니!’, ‘하나님 영광이 이렇게까지 땅에 떨어지다니!’하면서 하나님 영광이 땅에 떨어진 것을 비통해하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또 한편에서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 맞냐? 살아 계시다면 당신 집이 노략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단 말인가?’하면서 신앙의 뿌리까지 흔들리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다니엘서는 주께서 하나님의 전의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신 것이라고 2절에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 허락하에서 일어났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당신 집이 노략당하고 당신의 영광이 짓밟히는 일까지 허락하시는 분이다 이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 시대에 대입하면 이런 겁니다. 세상이 기독교를 욕하고 하나님을 욕하면서 하나님과 교회의 영광이 땅에 떨어져서 이것을 걱정하고 또 세상에 대해 화도 나고 하는데 정작 하나님은 그 옆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야, 진정해, 왜 그리 화를 내냐? 내가 허락한 일이야! 내가 세상 더러 기독교 욕 좀 하라고 했어!”
하나님은 필요하면 당신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는 일까지 허락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다니엘 시대는 유다나라가 악한 나라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자기 아버지 요시야와는 영 딴판으로 백성들 등가죽을 벗겨먹는 악한 통치를 일삼고 나라의 권력자들도 약한 자들 등골 빼먹기 바빴습니다. 나라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채 노아시대처럼 죄악이 가득 쌓여서 누가 청소를 해도 해야만 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는 일까지 허락하시어 유다 나라 대청소에 들어가신 겁니다. 우리시대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비단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듭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 있냐?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시나? 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그 일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일어난 겁니다. 하나님은 그 일까지 섭리하십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 믿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 내게 해가 되지 않는 일만 하나님이 하신 일로 인정하는 것은 미신을 믿는 자들도 가지고 있는 신앙 수준입니다. 내 통제를 벗어난 일이라고 하나님까지 통제력을 잃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통제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가질 때 흔들림이 진정됩니다.
2. 거세를 강요당하는 자들
이런 큰 격변기에 일개 힘없는 개인의 삶은 송두리째 뿌리 뽑히기도 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힌 자 중에 청운의 나이의 다니엘과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잡혀가서 완전한 바벨론 사람이 되어 바벨론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개조를 강요받습니다. 3~7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3~7)
유다의 귀족 집안의 자재들을 바벨론식으로 교육시켜 완전히 바벨론 사람을 만들어 인적자원으로 활용하려는 국가시책이 있었던가 봅니다. 식민통치를 하던 나라들이 옛날부터 사용하던 정책이지요. 거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발탁된 겁니다. 이들은 바벨론 말을 써야 했고 바벨론의 학문과 문화를 배워서 철저하게 바벨론 사람으로 살도록 강요받습니다. 그리고 이름까지 바꿉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이 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 되고, 미사엘은 메삭이 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가 됩니다. 다니엘은‘하나님이 재판하신다’는 뜻이고 벨드사살은 ‘벨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는 뜻입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이고 사드락은 ‘아쿠신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미사엘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이고 메삭은 ‘아쿠신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아사랴는‘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뜻이고 아벳느고는 ‘느고의 종’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백하는 이름들이 바벨론 신들을 찬양하고 고백하는 이름으로 다 바뀐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장로님이고 내 이름이 ‘김요한’인데 불교도인 회사 사장님이 나를 ‘문수보살’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어이 문수보살, 이리 와서 이것 좀 해봐라!’ ‘문수보살, 퇴근 안 하나?’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 이름을 붙인 것은 이것보다 훨씬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일입니다. 다른 신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1계명을 생명처럼 여기도록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우상 이름이 자기 이름이 된 겁니다. 별명이 아닙니다. 평생 우상 이름으로 불리면서 살아야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신실한 신앙인인 다니엘과 세 친구는 미칠 지경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민족정체성과 신앙정체성을 동시에 거세(去勢)당한 채 세상을 위한 영적인 환관으로 살도록 강요당한 것입니다.
세상을 위한 영적인 환관이 될 것을 강요당한 결정판이 왕이 내려준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받아먹으라는 명령입니다. 온 천하의 주인인 나 바벨론 왕이 내려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바벨론의 철학, 바벨론의 가치관, 바벨론의 문화, 바벨론의 신앙을 선전하는 충성스런 종이 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실은 다니엘과 세 친구뿐 아니라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상를 장악한 천민자본주의와 세속문화가 우리가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눈만 뜨면 매일같이 세속문화의 충실한 종이 되라고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신앙정체성을 강제로 거세하려 달려듭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심각해졌습니다. 어디 가서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걸 드러내면 손해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점점 더할 겁니다. 예전에 기독교와 목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시절에는 그래도 뭔가 부당한 것을 강요당하거나 음주가무를 강요당할 때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어서 이것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그래도 더 이상 강요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용감하게 그런 말 하는 사람도 드물 뿐더러 세상 사람들 반응도 ‘웃기지 마라, 요즘 제대로 된 기독교가 어디 있냐’는 식입니다. 모든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세상은 마지막 남은 신앙까지 거세시키려고 덤벼듭니다. 우리는 이제 기독교 침체기의 긴 터널의 시작점에 선 것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런 세상에 내가 길들여지면 편합니다. 하지만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진정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나를 길들인다고 쉽게 길들여질 수 없습니다. 신앙자존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뿌리를 거세하려는 거대한 세속의 물결과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3. 뜻을 정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긍휼
다니엘과 친구들은 뜻을 정하고 거절의 뜻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8, 9절을 읽겠습니다.
마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8,9)
왕이 내려주는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는 힘없는 나라들을 도륙하고 빼앗아 온 부로 마련한 음식들입니다. 그러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 입장에서는 자기네 동족을 살육하고 빼앗아 온 것으로 마련한 산해진미(山海珍味)인 것이지요. 그것이 우상의 진수성찬입니다. 그래서 거절합니다. 왕이 내려주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만약 왕이 ‘한 잔 받으시오’라고 하는데 그 잔을 거절하면 왕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담당 관리인 환관장이 다니엘과 친구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겁니다. 자기 목 달아날 일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더니 왕의 산해진미를 먹은 자들보다 얼굴빛이 월등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9절에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으려고 작은 몸부림이라도 치면 하나님이 거기에 은혜와 긍휼로 응답하십니다. 돈이 되면 뭐든지 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할 것 안 할 것 가려서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들 선생님 눈 피해서 부정행위를 하면서 성적 올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혼자서 부정행위 하지 않고 정직한 성적을 받는 것은 학원 선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적 여부를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 평생에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성형 열풍 속에서 다들 시쳇말로 얼굴 천재로 변모해 가는데 사각턱 들창코 단추 눈을 그대로 가지고 생김새로 사람 평가하는 왜곡된 세상과 맞짱 뜨며 사는 사람은 이미 살아있는 순교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원판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용은 빈약한데 거창하게 포장하고 저렴한 원재료를 쓰면서도 최상급인 것처럼 과대 선전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심을 지키면서 정직하게 장사해서 버텨내는 사람의 삶은 스펄전 목사님의 명설교와 동급의 설교입니다. 자신의 노력과 성실로 성공했으면서 그 열매를 성공하지 못한 이들과 나누는 사람은 이미 우리 시대의 바나바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와 긍휼 베푸시기를 잊지 않으십니다.
맺는 말
제 후배 중에 고등학교 때 어머니 돌아가시고 대학교 때 아버지 돌아가신 후배가 있습니다. 괴로워서 술도 많이 마시고 하나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물려준 재산을 자기 공부할 것만 남기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앞으로 돈 벌면 선교사님과 어려운 사람 위해 쓸 것이라고 다짐을 하더군요. 얼마 전 통화를 했습니다. 저 경기도 쪽에서 살고 있습니다. 집을 한 채 지어서 안식년으로 국내 들어오신 선교사님들 거처로 제공하고 있더군요. 매달 100만 원씩 어려운 사람들 위해 지출을 한답니다. 죽을 고생해서 터전 잡고 삶을 일구었습니다. 이것 저것 하다가 실패 본 것도 여럿 있고 뭣 하나 쉽게 된 것이 없이 고생고생 하며 살았습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습니다. 그런 후 서서히 형편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청년시절 하나님 앞에 울면서 다짐한 것을 잊지 않고 지키며 살고 있더군요. 하나님이 그 친구에게 은혜와 긍휼 베푸시기를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 바른 뜻을 정한 사람의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아니 아름답게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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