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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사기강해7 꿀벌 드보라와 산염소 야엘 
본문 사사기 4:1~24 
날짜 2016-05-29 
설교자 전용표목사 

  2003년에 출간된 책 중에 마사 발레타의 ‘여자한테 물어라’라는 마케팅에 관한 경영서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왜 산에 오르는가?” 그것은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왜 여성을 상대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여성들이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여성에게 실질적 상품 구매능력이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이 쓰인 지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남성들의 월급은 아내의 통장에 자동 이체되고 남성들은 자신의 월급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쓰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상품의 구매율의 80% 이상이 여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이제 사회 전반에 이어져 경제계, 정치계, 예술계, 교육계 등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의 힘이 남성들의 힘을 뛰어넘은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세월이 많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의 힘이라는 것이 구매율의 80%나 된다는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여인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이 택한 사람 드보라 : 인권변호사이자 여선지자

 

 

 

 이스라엘이 또 타락의 길을 가자 하나님께서는 북쪽 하솔 왕 야빈의 손에 파셔서 20년을 고생하게 하십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여성인 드보라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니다.

 4절에 보면 드보라를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에게 나아가서 재판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사라는 말 ‘쇼페팀’안에는 ‘재판관’이라는 의미가 이미 들어있는데, 굳이 사람들이 드보라에게 나아가서 재판을 받았다고 언급하는 이유는 드보라의 재판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는 의인을 악인 만들고 악인은 의인으로 둔갑시키는 불의한 재판이 행행하던 시대인데 드보라만은 공평과 정의에 입각하여 올바른 재판을 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외국인노동자 산재처리문제로 동분서주 뛰어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참 아쉬운 것이 인권변호사였습니다. 정말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닌 억울한 일 당한 사람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발벗고 나서주는 변호사!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바로 인권변호사 출신이지요. 드보라는 사사시대의 인권변호사였습니다. 드보라의 이름 뜻이 꿀벌입니다. 드보라는 억울한 자, 원통한 자, 약한 자들에게는 정말이지 하나님의 꿀같은 은혜를 나눠주는 어미 꿀벌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드보라가 행한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당시 북쪽 하솔왕 야빈의 압제 속에 기죽어 살던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어 떨쳐 일어서게 한 일이었습니다. 5장 6절을 보면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라고 나오는데 이것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이 백성이 철병거 900승을 앞세워 착취하고 압제하는 하솔 왕 야빈의 철권통치에 기가 죽어 어깨 펴고 다니지 못하고 전부 숨어 다녔다는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드보라는 바락이라는 장수에게 사람들을 모아서 하솔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한판 붙을 것을 명령합니다. 6,7절입니다.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6,7)

 

 물론 이것은 자기 생각에서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한 말입니다. 자기 안위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에게 이런 응답이 임할 리가 없지요. 민족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항상 고민하며 기도하고 사니까 이런 응답이 임한 것이지요. 바락은 납달리 지파의 장수로서 게데스라는 곳에 거하고 있었는데, 그 이름 뜻이 ‘벼락’입니다. 이 바락이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에서 만 명을 이끌고 다볼산으로 가서 진을 치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하솔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그리로 이끌어 가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이기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자, 바락 에게는 적장을 쓰러뜨리는 최고의 영예를 안겨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만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닙니까? 그런데 바락은 못하겠다고 합니다. 8절입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8)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도 믿음이 있어야 자기 것이 됩니다. 결국 바락은 적장을 쓰러뜨리는 최고의 영예를 놓치고 말지요. 바락은 왜 여자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장수가 되었을까요? 바락은 하나님 말씀보다는 상황을 더 크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눈을 밝으나 믿음의 눈은 어두운 사람이었습니다. 철병거는 말이 끄는 마차같은 것인데, 두 사람이 타서 한 사람은 마차를 운전하고 한 사람은 화살을 쏩니다. 고대에는 모두가 창이나 칼을 들고 걸어 다니면서 싸우는 식이었는데, 거기에 말이 끄는 병거가 나타나서 휘젓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완전 공포의 살인병기인 것입니다. 말벌 한 마리가 꿀벌 1천 마리를 상대한다고 하는데, 철병거가 딱 그런 격입니다. 철병거가 900승이나 되었으니 팔레스타인 북부지방을 호령하는 맹주(盟主)로 군림하였던 것입니다. 바락은 시스라의 철병거만 자꾸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보십시오. 직장 상사가 턱도 아닌 것 가지고 몰아세우고 야단 치고 할 때 그 뒤에서 가사롭게 쳐다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한 상태에서 한계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솟아날 구멍이 없는 상황에서도 저 먹구름 위에 헬리콥터 대기하고 기다리시는 주님을 보십시오.

 

 

 

 순종에 승리로 화답하시는 하나님(12~16)

 

 

 

 철병거도 약점은 있습니다. 바로 산악지대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점과 비가 와서 질퍽질퍽하게 되면 적의 화살의 쉬운 표적이 되고 만다는 점입니다. 그럼 철병거를 가진 시스라는 되도록 평지로 끌어들여서 싸우려고 할 것이고, 철병거를 가진 시스라를 상대하는 이스라엘군은 평지가 아닌 산지에서 싸우고자 해야겠지요.

 바락이 납달리와 스불론지파들에서 모은 1만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다볼산에 진을 칩니다. 다볼산은 갈릴리바다에서 서쪽 지중해방향으로 펼쳐진 이스르엘 평원에 우뚝 솟은 550미터 정도 되는 산입니다. 이스라엘이 독립군을 모아서 한판 붙으려고 진을 쳤다는 보고를 받은 시스라는 900승의 철병거를 이끌고 다볼산 아래 기손강에 진을 칩니다. 강에 어떻게 진을 치느냐?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아스팔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평지가 되는 계절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이때가 건기였기 때문에 시스라는 안심하고 기손강에 900대의 철병거를 집결시킨 것입니다. 자, 이스라엘군대는 산 아래로 진격해서 내려가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지요. 그런데 14절을 보십시오. 드보라가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믿고 산 아래로 진격해서 내려가라고 합니다. 탱크를 향해 맨몸으로 돌격하라는 명령과 같습니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대를 넘겨주셨다는 응답입니다. 이것 믿고 가라는 겁니다. 15절을 보면 믿음으로 순종해서 나가면 누가 먼저 앞서 가십니까? 하나님! 하나님이 반드시 앞서 가십니다. 바락은 하늘같이 의지하는 드보라의 말이니까 믿고 내려갑니다. 시스라는 이게 웬 떡인가 싶었겠지요. 그때 갑자기 하나님의 칼날이 나타나서 시스라의 군대를 큰 혼란에 빠지게 하십니다. 15절에서 말씀하는 이 칼날이 뭐냐? 이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한 승전가(勝戰歌)가 5장인데, 5장 21절을 보면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라고 나오는데, 건기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와 억수같은 비를 퍼부은 것입니다. 전혀 조짐도 없던 기상이변(氣象異變)이 일어나서 기손강이 흙탕물로 변하자 그토록 자랑하던 900승의 철병거는 무시무시한 살인병기가 아닌 관짝이 된 것입니다. 빨리 도망치지도 못하는 손쉬운 표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위력을 떨치던 재능이나 물질이나 권세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면 쓸모없게 되고 도리어 나를 망하게 하는 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스라는 이것을 까맣게 몰랐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님 말씀에 사력(死力)을 다해 순종하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사력(死力)을 다해 싸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순종이 어떤 임계점(臨界點)을 통과하는 순간, 그토록 우리를 두렵게 하던 것이 순식간에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게 해 주십니다. 물은 90도가 되어도 끓지 않습니다. 99도를 넘어 100도가 되었을 때 끓습니다. 그때까지 말씀을 붙들고 버텨야 합니다. 그 임계점을 넘어서면 됩니다.

 

 

 

 믿음의 여인 야엘에게 최후 승리의 면류관을 주시는 하나님(17~22)

 

 

 

 그토록 위세를 떨치게 해 주었던 900승의 철병거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시스라는 혈혈단신으로 도망을 칩니다. 도망을 치다가 자기네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던 겐족속 사람 헤벨의 장막으로 숨어듭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시스라를 극진해 대접합니다. 물을 달라하는데 우유를 주고 따뜻한 양털이불로 덮어줍니다. 하루 종일 전쟁을 치르다 왔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피곤한 몸에 우유가 들어가고 양털이불을 덮어주니 금방 골아 떨어집니다. 시스라가 골아 떨어지자 야엘은 겁도 없이 장막칠 때 쓰는 말뚝을 들고 들어가서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힘껏 때려 박아버립니다. 야엘은 ‘홉빠 홉빠’하면서 남자 홀리는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팔뚝이 굵은 억센 여인이었습니다. 야엘이 얼마나 힘이 셌던지 말뚝은 관자놀이를 관통해서 땅에 박혀 버렸습니다. 팔뚝 굵은 여인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야엘이 입증하는 순간입니다. 약함의 여성성을 뛰어넘어 외유내강이 되든 외강내강이 되든 간에 약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여성이 아닌 강한 여성이 되십시오.

 야엘은 시스라를 쓰러뜨리는 모험을 통해서 자기 집안에 그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고 하솔 왕 야빈과 동맹을 맺고 살아온 수치를 갚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려는 결단이자 모험입니다. 세상 왕의 영광을 위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숭고한 도전이었습니다.

 장수의 가장 영예로운 죽음은 자기보다 훌륭한 장수의 칼에 죽는 것입니다만 20년간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했던 시스라는 여인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것도 장수가 칼에 죽는 것도 아니고 장막 말뚝에 박혀 힘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최고의 수치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전쟁에서의 최고 영예는 적장을 누가 죽였느냐입니다. 바락은 철병거 900승을 물리쳤지만 최후 승리의 영광은 야엘의 몫이었습니다. 그 순간 바락은 옆에서 박수쳐주는 역할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반쪽의 순종은 반쪽의 승리만 가져다 줍니다. 절대로 주연을 맡을 수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주도권은 목소리 큰 사람, 힘 있는 사람이 쥐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영적인 주도권은 주의 영광을 위해 모험을 거는 자가 쥡니다.

 

 오늘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주연은 단연 드보라와 야엘 두 여인이고 조연은 바락입니다. 자, 이 두 여인의 힘의 원천이 5절과 11절에 나옵니다. 5절과 11절을 보십시오. 드보라와 야엘의 공통점이자 힘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나무입니다. 두 사람 다 나무 곁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드보라는 종려나무 곁에 거하였고, 야엘은 상수리나무 곁에 거하였던 여인들입니다. 성막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지방에는 변변한 예배처소가 없었을 당시 신실한 사람들은 옛날 아브라함이 하였던 것처럼 아름다리 나무 아래에 장막을 치고 살면서 그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었던 인물이 신약에도 나오지요. 나다나엘! 예수님이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려왔을 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보았다’라고 하시는데 나다나엘은 매일 시간을 내어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가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경건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여인의 힘, 아내의 힘, 엄마의 힘은 바로 기도에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깨달아 아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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