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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사사기 강해5. 사사 옷니엘

2016.05.17 11:14

양도사 조회 수:425

제목 [05-15] 사사기 강해5. 사사 옷니엘 
본문 사사기 3:7~11 
날짜 2016-05-15 
설교자 전용표 목사 

  사사시대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난 후부터 최초의 왕 사울이 등장하기까지 한 300년 정도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때는 아직 변변한 국가를 이루지는 못했고 12지파가 외적(外敵)이 쳐들어온다든가 하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연합을 하는 정도의 지파연맹체 정도의 나라였습니다.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일컬어 ‘사사’라고 하였습니다.

 사사시대가 되면 출애굽이라든지 광야생활이라든지 가나안전쟁 같은 것을 경험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됩니다.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로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겪은 적 없고 혹독한 광야생활을 맛본 사람도 없습니다. 집도 땅도 우물도 먹을 것도 넉넉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광야세대보다는 덩치들도 훨씬 크고 교육도 받아서 똑똑합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좋아진 세대이지만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써내려가는 역사는 자기들이 볼 때에는 성공의 역사일지 모르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실패의 역사였습니다. 여호수아 이후의 세대가 가나안의 가치관과 문화에 매료되어 하나님 나라의 이상(理想 ; vision)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난 실패의 역사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우상의 가치관)과 문화를 좇아간 것이 결국 옆구리의 찌르는 가시가 되어 민족과 개인을 괴롭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실패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비록 실패의 역사를 써내려갔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역사를 써내려 가십니다. 이스라엘이 옆구리의 찌르는 가시로 인해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자를 구원자로 보내시어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은혜베풀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경이 사사기성경입니다.

 

 사사기에는 유명한 ‘사사기 사이클(cycl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이클은 빙글빙글 반복해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범죄-징계-부르짖음-구원’ 이렇게 네 단계로 인생과 역사를 반복하지요. 같이 해 볼까요? ‘범죄-징계-부르짖음-구원’

 오늘은 사사 옷니엘을 살펴보겠는데, 대사사(大士師) 여섯 명 중 옷니엘에 관한 기사가 가장 짧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고 간단하게 핵심만 추려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옷니엘이 다른 사사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사사기를 기록한 성경저자가 옷니엘을 기본형이자 표준형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옷니엘 기록에 보면 이 네 단계 사이클이 정확하게 나옵니다. 이후의 사사들 기록을 보면 여기서 어떤 것은 빠지는 것도 있고 덧붙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오늘은 ‘범죄-징계-부르짖음-구원’이라는 네 가지 흐름을 따라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범죄

 

 

 첫 번째는 범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더 정확하게는 가나안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타락하는 단계입니다. 7절을 읽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7)

 

 ‘여호와의 목전(目前)에서 악을 행하여’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여호와의 목전에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악이었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이 볼 때에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선택하고 살아가거든요.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목전’이라는 표현과 관련된 것이 성막 안에 차려놓은 진설병(陳設餠)입니다. 진설병을 히브리어로 ‘얼굴 빵’입니다. 하나님 드시라고 하나님 얼굴 앞에 차려놓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진짜로 드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드실 수 있는 음식처럼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밥상으로 차려서 하나님께 드렸더니 ‘부패하여 썩은 냄새가 난다, 드실 수가 없었다.’ 이것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지난 한 주간의 삶을 하나님께 밥상으로 차려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맛있게 드실까요?

 

 여호와를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이고 체험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이 하나님 방법대로 살 리가 없겠지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사모하거나 애쓰지 않으니 당연히 사는 목적은 ‘성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고 나오는데,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는 것이 성공과 쾌락을 위해서 인생을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바알신은 손에 번개창을 들고 검은 먹구름을 타고 다니는 형상입니다. 농사에 필요한 비를 내려주는 신이자 풍요로움을 주는 물질의 신입니다. 바알이 아내인 아세라 여신(女神)과 합방(合房)을 하면 비가 내리고 풍년이 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 둘이 합방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전(神殿)의 바알과 아세라 신상 앞에서 성행위(性交 ; sex)를 합니다. 신들이 보고 흥분해서 자기들도 성교(性交)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그들의 제사행위였습니다. 그러니까 가나안인들의 바알종교에는 성공과 쾌락이 두 기둥입니다. 이것이 종교였고 이것이 인생의 의미였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바보고 즐기지 못하면 멍충이입니다. 그런데 이 바알종교가 사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힘을 잃은 모든 시대에 있었고 지금 우리시대에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시대는 성공과 쾌락이라는 물질주의가 신입니다. 이것이 바알신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볼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만약 그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이 있었다면 가나안인들의 종교가 난잡하고 악한 것으로 여겼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일에 깊이 동요(動搖)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것은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지 말라’ 하지 말라는 금지사항이 많고 재미가 없는데, 가나안인들의 종교는 금지사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즐거움과 쾌락까지 있단 말입니다. 거기다가 가나안인들은 지금까지 바알을 섬기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안 망하고 잘만 살아왔습니다. 그것을 볼 때 진실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성전에 가서 예배 한 번 드리면 됩니다. 평일에는 바알 섬기고 안식일에는 여호와를 섬기고, 쉽고 편합니다. 자기들이 볼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보기에 어떤가보다는 내가 보기에 어떤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 이 생각을 하루 한 번씩이라도 하고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징계

 

 

 이렇게 여호수아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징계를 하십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8)

 

 하나님은 징계로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습니다. ‘파셨다’는 단어는 ‘노예를 사고 팔 때 쓰는 말’입니다.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이 이스라엘을 종처럼 함부로 부리도록 방치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메소보다미아는 이스라엘 북쪽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문명이 발생한 지역이자 전통적으로 강대국들이 들어선 곳입니다. 그런데 ‘구산 리사다임’이라는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뜻이 ‘갑절로 악하다’ ‘두 배로 악랄하다’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순악질’ 정도 되겠습니다. 그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니까 결국 어떤 자를 만납니까? 두 배로 악한 자를 만납니다. 갑절로 고생하는 것입니다. 풍요의 신, 쾌락의 신을 섬기니까 풍요가 오긴 옵니다. 그래서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그 풍요로움이 갑절로 괴롭고 복잡한 인생으로 몰아넣습니다. 야곱을 보세요. 속이기를 좋아하니까 자기보다 갑절로 잘 속이는 사람 라반을 만나지 않습니까? 라반 밑에서 20년을 종살이를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징계(懲戒)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는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하였고, 12장 8절에서는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아들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청년시절에 하나님 사랑에 너무 목이 말라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 사랑을 기록해 놓은 곳을 찾고자 매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어보니 의외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반면 경고와 징계에 관한 말씀은 엄청 많이 나옵니다. 실망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깨닫는 것은 경고와 징계가 바로 사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의 자식 잘못하는 것보고 그렇게 애간장 타게 걱정하거나 야단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식이니까 애간장이 타고 때로는 따끔하게 야단도 치는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징계가 있다는 것은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전히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는 증거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음

 

 

 이렇게 구산 리사다임이라는 순악질에게 8년 동안이나 어려움을 당하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시작합니다. 9절을 읽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신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뭐라고 부르짖었을까요? 아마 처음에는 원망이 어느 정도 섞인 부르짖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백성인데 어째서 이토록 고생을 시킵니까? 우리 조상들은 홍해도 가르고 요단강도 가르고 여리고도 무너뜨려 주신 하나님이라고 하더니만, 그런 하나님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살아 계시면 어디 속 시원하게 말씀 좀 해 보십시오! 제발 좀 해결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부르짖지요. 아직 부족한 부르짖음입니다. 좀 더 기도하고 부르짖다보면 회개가 터집니다.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누구 잘못도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고, 네가 하나님 저버리고 살았기 때문이며, 제가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기까지 가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비록 죄의 결과로 고생해도 그 고생 때문에 힘들다고 신음하고 부르짖고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건져주시는 분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애3:22,25)

 

 그래도 부르짖는다는 것은 아직 믿음이 남아있다는 말이고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사기 후반부에 가서는 아무리 혹독한 고통을 당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더 이상 부르짖지도 않는 모습이 나옵니다. 완전히 강퍅해지면 부르짖지도 않는 마음이 됩니다. 그래도 부르짖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은 때입니다. 그때 부르짖어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부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6,7)

 

라고 하셨습니다.

 

 

응답/구원

 

 

 간절히 찾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과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이 네 번째 단계입니다. 9~10절을 읽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신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9,10)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옷니엘이라는 사람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니다. 옷니엘이 떨쳐 일어나 구산 리사다임과 싸우는데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으셔서 능력을 더해주심으로 옷니엘이 8년간의 종살이를 종식(終熄)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부르짖으면 8년 된 문제도 해결해 주시지만 430년 된 집안 대대로 유전되어 내려오는 내력있는 뿌리 깊은 문제들까지도 해결해 주십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합니다. 잘못한 것이 있어 매를 맞아도 양심에 철판 깔고 와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살 길이 열립니다.

 옷니엘이 누구입니까?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입니다. 갈렙의 조카입니다. 사사기 1장에 보면 옷니엘은 큰아버지 갈렙과 함께 가나안전쟁에 참전하여 믿음으로 드빌땅을 차지한 실전경험이 있던 사람입니다. 큰아버지 갈렙의 신앙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노장(老將)입니다. 옷니엘이 비록 노장이지만 이때 떨쳐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가나안의 물질과 성공 쾌락의 종교에 길들여지지 않고 그때까지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쾌락으로 포장하여 주입시키고 퍼트리는 가나안종교가 다른 사람은 다 길들일 수 있었어도 옷니엘만큼은 길들이지 못했습니다. 다들 가나안종교에 물들어 가고 그 흐름을 좇아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여길 때 옷니엘은 철저히 시대의 흐름을 거부한 채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살 길은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베토벤이란 음악가를 아실 것입니다. 독일의 문호(文豪) 괴테와 베토벤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둘 다 평민이었습니다. 베토벤이 볼 때 괴테는 평민이면서 너무 귀족이 되고 싶어했고, 귀족의 삶을 흉내내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괴테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괴테는 귀족의 생활을 너무 동경한다!’ 반면 괴테가 볼 때 베토벤은 죽으면 죽었지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을 일컬어 ‘길들여지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라고 하였습니다. 베토벤을 좋아하여 많은 돈으로 후원하는 귀족들이 몇 명 있었지만 베토벤은 그들이 자기를 후원한다고 해서 그 귀족들 앞에 굽실거린다든지 그들의 구미(口味)에 맞는 노래를 작곡한다든지 하는 일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가진 철학과 이상을 표현하는 음악에서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베토벤은 영원히 그 이름이 남는 불멸(不滅)의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믿음의 야성(野性)을 지닌 사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조금 어설퍼 보이고 투박해 보이기도 한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나중에 보면 집안을 살리고, 직장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든든히 세웁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 아니 길들일 수 없었던 사람 옷니엘로 인해 이스라엘은 40년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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