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제목 [05-01] 사사기 강해4. 다음세대 다른세대 
본문 사사기 2:6-10 
날짜 2016-05-01 
설교자 전용표 목사 

 아프리카 남부지역에 가젤영양과의 속하는 ‘스프링복’이라는 예쁘고 귀여운 동물이 있습니다. 겁이 매우 많아서 항상 무리지어 다닙니다. 그러다가 뒤에서 한 마리가 뭔가에 놀라 뛰기 시작하면 앞에 있던 녀석도 뛰고 또 앞에도 뛰고 해서 순식간에 무리전체가 펄쩍펄쩍 뜁니다. 4미터 높이로 펄쩍펄쩍 뛰어오릅니다. 빠르기도 얼마나 빠른지 시속 80km나 됩니다. 겁이 많으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막 뛰는데 멈추질 않습니다. 지칠 때까지 뜁니다.  
  사람도 실은 마찬가지입니다. ‘너 왜 공부하니?’ ‘다른 애들도 다 하잖아요’ ‘다들 왜 쉬지도 않고 학교 학원 빙글빙글 돌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지?’ ‘대학 가야지요!’ ‘대학을 왜 가야지?’ ‘다들 가잖아요. 안 가면 좋은 직장 못 들어가고 성공 못해요’ ‘성공이 뭔데?’ ‘남들보다 잘 되는 거요’
  저 자신을 비롯한 우리사회가 아이들을 스프링복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성향과 기질, 은사와 달란트를 외면하고 그저 돈 버는 기능만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과연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모두가 공감하고 염려는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저변(底邊; 밑바닥)에는 불안이 깔려 있습니다. 
  스프링복으로 키우다보니 우리사회는 건전한 의미의 개성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입으면 똑같이 입어야 되고 다른 사람들이 사면 똑같이 사야하며 다른 사람들이 먹으면 똑같이 먹어야 됩니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제일 인기 있는 메뉴는 ‘아무꺼나!’이고 우리나라 커피숍에서 인기 있는 메뉴는 ‘같은 거’입니다. ‘같은 거 주세요.’ 더 문제인 것은 한 번 밖에 없는 인생까지도 그렇게 산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로 잘 뭉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가볍게 보면 개성(個性; personality)이 없어서이고 진지하게 보면 자아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자아정체성이 분명하고 자존감(自尊感; self-esteem)이 건강한 사람은 자기색깔이 분명합니다. 유행 따라 옷 입지 않고 남들 사는 방식대로 살지 않는다고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만의 방식이 있고 나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에게 마련해 두신 인생이 있음을 믿고 키우십시오. 획일화된 기성품처럼 키우지 마시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작품처럼 키우십시오. 

  어린이주일인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버린 이유를 짚어보고 오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세대교체의 실패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영도(領導) 아래 가나안정복전쟁을 마무리하고 각자 분배받은 땅에 흩어져 안착한 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숫자도 더 많아졌고 가진 것도 많아졌고 모든 것이 더 나아졌습니다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이후의 세대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는 다음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1. 부모세대의 실패 : 자녀의 자립신앙을 길러주는 데 실패
   진실한 신앙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십시오


  먼저 7절을 함께 읽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7)

  여호수아 세대의 지도자들이 생존한 동안에만 여호와를 섬겼고, 그들이 죽고 난 뒤에는 섬기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세대가 살아있을 때는 부모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신앙생활 했지만, 부모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신앙생활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중에는 아예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들의 책임도 있지만 부모의 책임도 큽니다. 사사기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어째서 자녀세대가 자립신앙을 이루는데 실패하였는가가 나옵니다. 
  미가의 집과 단지파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은데 실은 자기(自己)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도 세우고 제사장을 먹여주고 입혀주는데, 자기가 복 받기 위해서입니다. 자격이 안 되면서도 제사장 일을 하고, 또 그러다가 돈 좀 더 주는 곳이 생기니까 신의(信義)를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합니다. 결국 신앙의 이름으로 돈을 추구하고 명예와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부모세대가 이렇듯 온통 이기적인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자녀세대가 그 모습 보고 참신앙을 갖는다든지 신앙생활의 참맛을 깨닫는다든지 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다음세대가 점점 신앙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또 보십시오. 새로운 땅을 찾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장하지 않고 평화를 이루며 사는(shalom의 상태) 백성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학살하기까지 합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신앙인인데 집에서나 사회에서는 분노조절이 안 되어 부부싸움이 심하고, 회사나 이웃사람들과도 쉽게 다투며 사는 오늘날 신앙인들도 이 부류에 속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들은 신앙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 사사기 19~20장까지에는 첩을 둔 레위인과 그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이스라엘 지파 간의 내전(內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어떤 레위인이 첩을 두고 살았는데 이 첩이 달아나자 첩을 다시 데려오다가 첩이 베냐민 지파의 땅에서 집단성폭행을 당하는 줄거리입니다. 레위인이면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지도자 내지 중직자들인데, 첩을 두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종교인들 중에는 두 집 살림을 살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족한 이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영적으로 타락하여 세상 사람들과 같이 쾌락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였다는 것이지요. 교회의 중직자여서 주일날 교회 가서는 경건한 척 하는데 실생활에서는 세상향락을 몰래몰래 즐기면서 산 것입니다. 윤리도 도덕도 양심도 희미하게 삽니다. 부모세대가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서 자녀세대들이 자기신앙을 키워나갔을 리가 만무(萬無)하지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금 내 자녀가 신앙의 자립을 이루지 못하고 겉도는 신앙생활 한다? 하나님과 교회와 담을 쌓고 산다? 내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앞선 세대의 잘못이 큽니다. ‘우리 세대는 이렇게 충성했는데, 지금 젊은 사람들은 충성하지 않아!’ 이런 말로써 우리들의 책임을 부인해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자꾸 다그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신앙생활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내 속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서 그로인해 만들어지는 진실한 신앙 인격과 은혜의 영성이 자녀세대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생수의 강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생수의 강이 흘러가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2. 부모세대의 실패 : 하나님의 비전을 인간의 야망으로 둔갑시킨 실패 
   ‘무엇’이 아닌 ‘어떻게’에 초점을 마추십시오


  여호수아 세대가 어째서 이런 위선적인 신앙생활에 빠져들었는가? 어째서 자녀들에게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복 받기 위해 살고(기복 신앙, 즉 바알신앙) 자기 한 몸 잘 되기 위해 사는 신앙의 모습만 보여주며 살았는가? 어째서 윤리와 도덕의 기준도 내팽개치면서, 오로지 움켜잡기 위한 신앙생활을 보이며 살았는가? 원인이 뭘까요? 하나님이 주신 비전(vision)을 오해(誤解)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신 비전은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서 온갖 힘의 논리를 앞세워 약자를 억압하고, 교만을 능력으로 둔갑시키면서 자기 잘난 멋에 살아가는 인생관으로 철갑을 두른 나라가 가나안족속이 세운 세상나라입니다. 거기는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습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즐기면 되는 나라입니다. 힘의 논리, 결과지상주의(結果至上主義), 쾌락주의 인생관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의 요체(要諦)는 이런 것입니다. ‘내가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너희에게 넘겨 줄테니 너희는 서로서로 형제처럼 여겨서 서로 나누고 베풀면서 사는 나라를 이루어라.’ ‘항상 용서받은 죄인의 심정을 가지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면서, 양심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심령에 내주(內住)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나라를 이루어라.’ ‘정치와 경제가 하나님의 공평(公平)과 정의(正義)를 추구하며, 문화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인간관계가 하나님의 긍휼(矜恤)과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라!’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었습니다. 땅을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비전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비전은 그저 땅이었습니다. 430년 노예생활하고 40년 땅 없이 광야생활하다 보니까 땅에 한이 맺혀서 땅을 차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하니까 완전히 다 차지하지는 못했어도 먹고 살만큼의 땅은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생활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거예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본질을 잃어버린 모든 시대의 교회와 성도가 걸어갔던 ‘혼합주의의 넓은 길’입니다. 
  이런 모습이 자녀세대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이미’ ‘무엇(what)’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대통령이 되겠다, 장군이 되겠다, 의사가 되겠다, 했지만 살다보니 아주 평범한 뭔가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비전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How)'가 남았습니다. 저를 예로 들어보면, 저는 이미 목사가 되었고 또 목양할 교회를 주셔서 담임목회를 평안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어떤 교회를 만들어가는 목사가 될 것인가? 어떤 신앙 가르치는 목사가 될 것인가? 어떤 성도 길러내는 목사로 살 것인가? 이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목회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자꾸 나태해지고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마치 가나안 땅 차지하고 안주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도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죽을 때까지 고민하셔야 합니다. 그 모습을 자녀세대들이 봅니다. 그 모습이 실은 자녀세대들을 살리는 모습입니다. 신앙은 앉혀 놓고 하는 교실수업으로 전수되는 것보다 평소 무의식 속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통해 전수되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평생 쓰레기청소하며 살았다면 나중에 칠순잔치나 여타 의미 있는 기회에 자녀들 모아놓고 말씀하십시오. ‘너희 아버지는 평생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하찮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 너희들도 아버지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적어도 그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낮은 곳에서나마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썼다! 나는 너희들이 이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비전은 이런 것입니다.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의 비전을 붙들고 산 사람의 여운(餘韻)은 참으로 오래 갑니다. 신앙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내 자녀가 평생 하나님께 쓰임 받고, 평생 올바른 신앙을 추구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What)이 되라고 자꾸 말하면 안 되고, 어떻게(How) 살 것이냐를 자꾸 말해 주어야 합니다. “의사가 돈 많이 번다, 의사되어라!” 그렇게 말해주면 내 자녀가 돈 많이 버는 의사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자꾸 세상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십시오.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좋은 의사가 되어라!” “누구누구는 변호사 되었는데, 사건 하나 맡을 때마다 몇 백만원씩 받는다더라!” 돈 많이 갖다 주는 쪽으로 유리하게 하는 법조인, 아무리 돈 많이 번들 그게 뭔 대수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너는 열심히 노력해서 힘없는 노동자들, 도시 빈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법조인이 되어라!” 기왕이면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나 자신이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를 고민하고 살다보면 자녀들에게, 손자들에게 자꾸 ‘어떻게(How)’를 가르치는 사람이 됩니다. 어떻게(How)에 비전을 두고 살아서 한 번 반짝하고 쓰임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쓰임 받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부모세대의 실패 : 믿음의 story를 만들어 가는데 실패
   믿음의 story를 물려주십시오

 

  다음세대가 다른 세대가 된 이유 세 번째는 믿음의 스토리를 물려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봅시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10)


  어째서 여호수아 이후 세대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는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이를 어떻게 믿고 섬기겠습니까?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부모세대는 하나님 능력으로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지런히 가르라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부지런히 가르치고 반복적으로 들려줘야 하나님을 잊지 않고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믿음의 스토리를 자꾸 들려주면 자녀들 세대도 그 믿음의 스토리를 재현(再現)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놀라운 원리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 믿음의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었을 때 출애굽 2세대들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이 하나님의 손길로 애굽을 이겼습니다. 이 믿음의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었을 때 출애굽 2세대들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여리고를 이기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대부분 이야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복음서도 대부분 이야기들입니다. 
  손주들 앉혀 놓고 ‘오르르 깡꿍’만 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은혜를 말해 주십시오.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랬다’라고 내 업적 이야기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을 높이십시오. 나 자신을 높이는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면 자녀나 손주의 신앙을 망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들려주면 그 신앙이 놀랍게 성장합니다. 그 자녀도 똑같이 체험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오늘 치열한 경쟁의 시대, 모두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녀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붓고들 있습니다. 최상의 투자는 자녀의 마음에 진실한 신앙,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사는 신앙을 심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부모세대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이 종교생활을 떠나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모습이 자녀들의 심령을 살리고 한 평생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으로 세워나갈 것입니다. 이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418 사사기강해7 꿀벌 드보라와 산염소 야엘(듣기) 사사기 4:1~24  2016-05-29  전용표목사 
417 사사기강해13 입다의 위험한 거래 (듣기) 사사기 11:29-40  2016-07-17  전용표목사 
416 열왕기상 강해3 하나님의 경영 인간의 경영(듣기) 열왕기상 43:20~28 (구약517)  2017-02-26  전용표목사 
415 거룩한 성찬 누가복음 22:14~20(신약134)  2019-04-14  전용표목사 
414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의미 창세기 47:11~12(구약75)  2019-05-12  전용표목사 
413 [02-14] 산상수훈6 어디에다 집을 지을 것인가 (듣기) 마태복음 7:24-27  2016-02-14  전용표 목사 
412 [03-06] 5대제사시리즈. 소제 file 레위기 2:1-16  2016-03-06  전용표 목사 
411 [02-21] 5대제사시리즈. 온전한 예배가 드려졌을 때 (듣기) file 레위기 8:22-24  2016-02-21  전용표 목사 
» [05-01] 사사기 강해4. 다음세대 다른세대 (듣기) 사사기 2:6-10  2016-05-01  전용표 목사 
409 [03-13] 5대제사시리즈. 화목제 (듣기) 레위기 3:1-5, 7:15-18  2016-03-13  전용표 목사 
408 [02-28] 5대제사시리즈. 번제 file 레위기 1:1-17  2016-02-28  전용표 목사 
407 [03-27] 금요일과 토요일을 지나 주일이 온다 (듣기) 마태복음 28:1-10  2016-03-27  전용표 목사 
406 [04-03] 5대제사시리즈. 속건제 (듣기) 레위기 6:1-7  2016-04-03  전용표 목사 
405 [04-10] 사사기 강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듣기) 사사기 17:1-6  2016-04-10  전용표 목사 
404 [04-17] 사사기 강해2. 단지파의 선택 사사기 18:1-31  2016-04-17  전용표 목사 
403 [04-24] 사사기 강해3. 길갈인가 보김인가 (듣기) 사사기 2:1-5  2016-04-24  전용표 목사 
402 [05-08]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신명기 5:16  2016-05-08  전용표 목사 
401 [05-15] 사사기 강해5. 사사 옷니엘 사사기 3:7~11  2016-05-15  전용표 목사 
400 [05-22] 사사기 강해6. 사사 에훗 사사기 3:12-23  2016-05-22  전용표 목사 
399 히브리서강해10 인내와 연단 (듣기) 히브리서 121:1~13(신약366)  2016-12-04  전용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