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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4-24] 사사기 강해3. 길갈인가 보김인가 
본문 사사기 2:1-5 
날짜 2016-04-24 
설교자 전용표 목사 

 동시대에 뛰어난 인재들이 쏟아진다든지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든지 하면 그 세대를 일컬어 황금세대라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언제가 황금세대였는지, 어느 또래를 황금세대라고 부를만한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황금세대가 이미 지나간 교회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쏟아지는 교회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 모교회에서는 저의 2년 후배들 또래가 황금세대였습니다. 일단 숫자부터가 50여명으로 다른 기수에 비해 많았습니다. 선교단체출신자들이 많아서 신앙열기가 대단했습니다. 그 세대들부터 교회 안에 찬양문화가 꽃을 피웠고 정기적인 찬양집회가 열렸으며, 그 세대부터 교회의 단기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모였다하면 기독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분위기였으며 하나님 나라 이루겠다는 비전(vision)이 뜨거웠습니다.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불사(不辭)하고 여름수련회에 참석하는 후배들도 있었고, 수련회는 어김없이 눈물바다가 되곤 했습니다. 그야말로 황금세대였습니다.

 한 2년 전 카카오밴드 덕택에 전국방방곡곡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던 후배들이 다 모이는 시간을 가졌다고 친한 후배에게서 소식이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뜨겁던 50여명의 후배들 중 현재 신앙생활을 신실하게 하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했고 경우 신앙생활 명맥만 유지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었으며 절반정도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기수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후배도 신앙생활을 거의 접은 상태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동기들 모임인데 한쪽에서는 술판이 벌어지는 진풍경도 있었다고 후배가 마음이 상해서 소식을 전해 준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호락호락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년시절 선교단체와 교회청년회에서 말씀을 배우고, 뜨겁게 찬양을 드리고, 또 신앙서적을 통해 도전받고 할 때에는 이렇게 살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확신도 들고, 또 평생 동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진출해 보면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합니까? 괜찮은 직장의 문턱을 넘기가 힘듭니다. 거기서부터 세상의 막강한 힘을 경험합니다. 어렵게 문턱을 넘고 들어간 직장에는 독특한 직장문화라는 것이 버티고 있습니다. 마치 철옹성(鐵甕城) 여리고와 같이 숨통을 죄여 오지요. 1차 2차 3차 이어지는 회식문화는 또 어떻습니까? 선택의 폭이 없어요. 골리앗 앞의 선 것처럼 대책이 없고 작아만 집니다. 결혼할 때도 보면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상적인 기준이 중요합니다. 자식 놓고 살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기준은 자연스레 돈벌이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하면 이루며 살 수 있을까?’ 청년시절 밤새워 토론하며 기도했던 삶의 목표는 철없던 시절 멋모르고 했던 소꿉장난처럼 여겨지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믿음을 접거나 자연스레 신앙과 멀어지는 사람이 하나씩 나옵니다. 아니면 교회에서는 성도(聖徒), 세상에서는 세속적인 사람으로 적당한 선에서 나름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나옵니다. 투철하게 신앙을 유지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끝까지 붙들고 버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1. 이스라엘이 가나안족속과 공존을 선택한 이유

 

 여호수아의 영도(領導)를 따라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이와 매우 흡사합니다. 각자에게 분배된 땅을 갈렙 같은 이는 그 땅에 거하던 장대한 아낙자손들을 물리치고 확실하게 차지했는가하면 단지파처럼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에게 져서 저 산지로 쫓겨 올라가 기죽어 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가나안 사람들과 어정쩡한 동거를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가나안 전쟁이라는 대업을 무사히 마친 영도자 여호수아도 부르심을 받고 죽었습니다. 서서히 세대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소유권을 넘겨주신 가나안 땅을 확실히 차지하려는 과감한 도전을 단행하는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보김이라 이름하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시는 말씀이고, 두 번째는 앞으로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지적하십니다. 가나안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라 했는데, 그들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가나안 백성의 제단, 우상의 제단이지요? 그 제단을 헐라 하셨는데, 그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백성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그들과 어정쩡한 공존(共存)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가나안 제단을 헐지 않았다는 것은 혼합주의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뻔한 잘못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가나안 백성들 중에 키가 2m 50cm가 넘는 아낙자손처럼 힘이 강한 족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가나안 백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통적으로 유목민족입니다. 광야 40년 생활도 유목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서는 정착해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농사를 지어봤습니까? 귀농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농사를 배웁니까? 옆집 사는 토박이한테 배우지요. 이런 필요 때문에 공존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농사를 짓는 데는 농사주기가 중요한데 가나안 사람들의 농사주기는 온통 바알신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가나안 주민을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남겨두면서 농사를 배우는데, 그들의 농사법을 배우면서 동시에 그들의 신화라든지 그들의 신앙까지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도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1장 28절을 보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노역을 시켰다고 나옵니다. 어차피 일손이 필요한데, 저들을 종으로 부리면 훨씬 더 유익한데 쫓아낼 필요가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계산을 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스라엘백성들도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살만큼의 땅은 차지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다시 목숨 걸어놓고 가나안 족속과 싸우는 길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배가 부른 것입니다. 우리도 문제 있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작정기도다 뭐다해서 합니다만 한숨 돌려보십시오. 금방 풀어집니다.

 

 

2. 하나님 말씀보다 인간적 계산으로 선택한 것이 결국 가시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보다 인간적인 계산과 상황을 앞세워서 선택한 것들이 결국 다 올무가 됩니다. 3절을 볼까요?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좇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3)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공존을 선택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어떻게 보면 더 타당성이 있고 더 유익하기까지 합니다. 유혹은 항상 하나님 말씀보다 더 좋아 보입니다. 더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선택하는 순간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서 손을 떼시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좇아내지 아니하리니!’ 내버려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의 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때로는 싫기도 하겠지만 하나님의 간섭이 있을 때가 행복한 신앙생활입니다. 뭘 하면 마음에 찔림도 있고, 자꾸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 같고, 뭔가 거림직한 일을 하고 왔는데, 그 주일에 설교 말씀이 꼭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은혜입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현상이 사라지기 전에 하나님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조금 지나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완전히 평안한 상태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남겨둔 그들이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이 올무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보다 내 계산으로 선택한 것이 당장은 유익을 주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 때문에 골치 아파집니다. 옆구리에 가시가 됩니다. 잘 빠지지도 않습니다. 유다지파에게 분배된 가드를 정복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거기서 누가 나옵니까? 골리앗이 나옵니다. 골리앗이 나와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 백성을 저주하였습니다. 딤나를 정복하지 못했을 때 거기서 누가 나옵니까? 블레셋 여인 들릴라가 나옵니다. 들릴라가 나와서 삼손을 눈알을 빼버립니다.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당 조만식 선생이 독립운동 때문에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시는데, 만기 두 달을 앞두고 일본형사들이 그럽니다. ‘두 달 미리 풀어줄테니 나가라!’ 미끼였습니다. 고당이 고맙다고 나가면 이것을 이용해서 고당 조만식도 우리에게 협조하고 그 대가로 두 달 먼저 석방되었다고 신문을 통해 떠들어댈 계획이었습니다. 그때 조만식 선생님은 ‘내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죄가 있어 들어온 것이 아니고 불법으로 우리나라 잡아먹은 일본의 잘못에 항거하다 부당히 들어온 것이다. 부당하게 나를 잡아가둔 너희들 말을 내가 들을 이유가 없다’하며 일언지하(一言之下) 거절하였습니다. 만약 그 때 조만식 선생이 일본 형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조만식선생은 평생 따라다닐 불명예스런 꼬리펴를 하나 달았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취하는 것이 욕심에 이끌리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주셔서 취하는 것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고민하는 가운데 말씀보고 기도하고 주님께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하면 하나님께서 때로는 꿈을 통해 때로는 사람들을 통해 때로는 말씀 통해 때로는 기도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3.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박하게 순종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재미난 가정을 한 번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박하게 순종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낙자손이나 블레셋 족속 같은 강대한 족속들을 순식간에 제압(制壓)하고, 경험 없는 농사도 심으니까 저절로 백배의 결실을 맺고 하는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엄청나게 힘든 일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아낙자손과 블레셋 족속들과 피 터지는 싸움을 오랫동안 했을 것이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농사를 능숙하게 익히는 데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소일거리로 조금 하는 것과 자식 키우고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농사는 차원이 다릅니다. 가나안 족속의 도움 없이 농사를 익히기 위해서는 몇 년 간은 완전 바닥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이것을 실패라 생각해서도 안 되고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가져야했던 정신은 바닥정신이었습니다. 겨우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니까 일찍 배가 불러서 바닥정신을 잃어버린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바닥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종살이 하던 민족입니다. 모든 집안이 다 상놈집안입니다. 광야에서 40년 떠돌이 생활하던 노숙자 출신들입니다. 숟가락 하나 남지 않았다 해도 그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이 바닥정신을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입니다. 이 과정을 거쳤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신앙과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농사법을 익혔을 것입니다. 음란하고 난잡한 가나안문화와는 전혀 다른 건강한 하나님 나라 문화를 이룩했을 것입니다. 부리는 자와 종살이하는 자로 계급이 나누어지지 않는 둥근 세상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4. 여호와의 사자는 길갈로부터 올라왔습니다.

 

“목사님 역사에 가정이란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 이상적입니다. 현실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님이나 하나님은 사회생활 안 해 보셔서 너무 교과서적인 말씀만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이 말씀에 대한 이런 이상적인 순종을 한 적이 없었느냐? 아닙니다. 있었습니다. 길갈에서 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어디서부터 와서 말씀을 전했느냐입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오지 않고 어째서 길갈에서부터 왔을까요? 길갈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길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여호수아 5에 잘 나와 있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디딘 첫 번째 땅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요단을 건너자 여리고 성문을 굳게 닫히고 여리고 백성들은 간담이 녹았습니다. 전투태세를 단단히 갖추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 여세를 몰아서 단숨에 쳐들어가든지 아니면 전투훈련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거기서 계산기 두들기지 않고 할례를 행합니다. 그것은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방법은 옛사람의 습성, 죄된 습성을 끊어내고서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서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그 결과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사람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이것이 이스라엘의 황금세대인 길갈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자기들도 경험해 봤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왔다는 것은 이 신앙을 왜 잃어버렸느냐는 질책이자 이 신앙을 회복하라는 촉구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전하는 준엄하신 말씀을 듣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같이 울었다고 나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4)

 

 그래서 이곳 이름을 <보김>이라 불렀다. 보김은 <우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을 차지했는데, 그 땅이 웃음의 땅이 되지 못하고 우는 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불순종으로 돌아서자 굴러갔던 수치가 다시 굴러 와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슬프게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사람들은 불순종을 끊어내어 보김을 길갈로 바꾸어 살았던 사람들인데 반해 사사시대의 사람들은 다시 변절하여 불순종의 길을 감으로써 길갈을 보김으로 바꾸어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불순종하면 우리 삶은 보김이 될 것이지만, 우리가 세상과 계산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면 하나님께서는 과거 모든 수치스러웠던 삶을 다 굴러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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