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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4-17] 사사기 강해2. 단지파의 선택 
본문 사사기 18:1-31 
날짜 2016-04-1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사람은 일이 쉽게 풀려 그런대로 성공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한 번 살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데도 하는 것마다 되지 않아 힘들게 사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때로 고민하고 때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뭐냐 하면 신앙(信仰)과 성공(成功), 이 두 가지를 조화(調和)시키는 일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 때 신앙을 붙들면 성공은 포기해야할 것 같고, 성공을 붙들면 신앙과 멀어지는 것 같은 때가 많습니다. 신앙 없는 세상 사람들은 세상 일 하나만 바라보고 죽어라고 하니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가는데 믿는 사람들은 일단 신앙을 생각해야 되니까 제약이 많은 것입니다. 쉽게 가기가 힘들고 둘러가고 더디 갈 때가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도 어떤 이들은 이런 고민 없이 쉽게 쉽게 타협해서 성공을 거머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진실한 믿음이 있고 심령에 성령이 있는 사람은 타협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인 방법으로 살면서 동시에 잘 되기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적인 방법을 붙들면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신앙은 대충 제쳐놓고 성공을 먼저 붙들어야 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신앙으로 헤쳐 나가야 하느냐에 대해 중요한 답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라는 사람이 자기 집에 신당(神堂)을 차려놓고 하나님을 형상으로 새겨서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돈을 훔쳤다가 저주를 받을까봐 자수를 하였고 그 어머니는 자기가 퍼부은 저주가 아들에게 임할까봐 돈으로 하나님 형상을 새겨서 섬기는 액땜을 하게 됩니다. 떠돌이 무직자(無職者) 레위인 청년이 이 집에 제사장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고 미가는 이토록 구색을 갖추고 정성스럽게 하나님을 모시는데, 틀림없이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실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오릅니다.

미가의 집에 거할 땅을 찾아 정탐을 나선 다섯 명의 단 지파 정탐꾼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한 양상(樣相)으로 흘러갑니다.

 

 

1. 거주지 마련을 위한 단 지파의 노력

 

1~2절을 보십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사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1,2)

 

단 지파가 이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여서 자기들이 거할 땅을 찾아나섰다는 말씀입니다. 얼핏 보면 단 지파는 아예 땅을 분배조차 받지 못한 불이익을 당하였고, 그 불이익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여호수아와 사사기 전체를 면밀히 살펴보면 전혀 딴 판입니다. 여호수아 19장 40~46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단 지파에게도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 땅의 위치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인데, 북으로는 에브라임 지파의 땅과 접하고 있고, 동으로는 베냐민과 유다지파의 땅을 접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블레셋 족속의 땅과 접하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가나안의 토박이인 아모리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분배해줬다 해서 저절로 자기들 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가나안 족속을 물리치고 차지해야만 실제로 자기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족속이나 아모리 족속이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결국 단 지파는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의 기세에 눌려 그 땅을 차지하는데 실패하고 산골짜기로 쫓겨 올라가 눈칫밥 먹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사사기 1장 13절에 보면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지파도 단번에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름 많은 노력을 해봤겠지요. 해도 해도 안 되니까 포기하고 어디 다른 땅 없나하고 정탐꾼을 보내 알아봤던 것입니다. 다른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안 되는 일을 포기하지 못해서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시공부 붙들고 있다가 결국 돈은 돈대로 날리고 나이는 나이대로 먹어서 애를 먹는 경우도 있고, 내리막길 사업인데 미련 때문에 질질 끌다가 가족들과 친척들 돈까지 빌려서 집어넣는 바람에 나중에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척들까지도 큰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찍 판단해서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못한다 싶을 때는 옆에서 누군가가 포기하도록 끊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 지파가 분배해준 땅을 포기한 것은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자 영원한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려운 상대를 주셨다면 또 무슨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이 비록 강할지라도 갈렙처럼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면 결국은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어딘가에는 열렸을 것입니다. 어려운 사명이 주어지고 어려운 환경이 주어질수록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더 많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믿음으로 부딪쳐 보면 길이 열리게 되어 있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힘든 싸움에서 가장 귀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그렇게 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좀 더 쉬운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분배해 주신 적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너무 쉽게 얻으려 하고 너무 쉽게 신앙생활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희생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좋아지고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누구는 뭘 차지했다더라 이런 것에 너무 마음 빼앗겨서도 안 됩니다. 더디게 가는 중에 허락하신 은혜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대, 어려운 환경, 어려운 사명을 주실 때에는 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축복과 능력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2. 물어보고 빌어주고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포기하고 쉬운 땅을 찾아 나선 단 지파 다섯 명의 정탐꾼이 이리저리 다니다가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 됩니다. 평범한 집인 줄 알았는데, 집안에 신당(神堂)이 차려져 있고 화려한 신상(神像)들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또 어떤 청년이 있는데, 그 말투하며 하는 행동거지가 이 지역사람이 아닐 뿐 아니라 성직자 같아 보입니다. 물어보니 이 집안의 제사장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옳거니 잘 됐다! 우리의 가는 길이 형통할 것인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물어보니, 레위인 제사장의 대답이 당신들의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좋은 대답을 해줍니다. 5,6절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5,6)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이 너희들의 길을 인정하시고 기뻐하신다.’ ‘너희 가는 길에 하나님이 그 얼굴빛으로 환히 비춰주실 것이다!’ 굉장히 좋은 축복의 말입니다. 여기서 단 지파 정탐꾼들이 알지 못한 것은 이 제사장이 제대로 된 제사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레위인 청년은 미가에게 돈 받고 고용된 밥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입만 열렸다하면 듣기 좋은 소리만 앵무새처럼 내뱉는 것이 전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제사장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소리해 주면 꼬박꼬박 월급 나옵니다. 죄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도 해 본 적이 없고, 죄인을 향해 회개의 필요성을 설교해 본 적도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제사장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만나도 이런 제사장을 만난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것이 영적으로 볼 때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말씀에 대해 알기 원하고,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은 엉뚱한 소리나 하고 복받아라만 외쳐대는 설교자에게 절대로 끌리지 않습니다. 좀 딱딱해도 말씀의 원뜻을 풀어주는 설교자에게 끌립니다. 그러나 자기 속에 쉽게 타협하고, 좋은 소리나 들으면서 거짓된 평안에 안주하고자 하는 신앙이 있는 사람은 꼭 자기와 비슷한 설교자 목회자를 좋아합니다. 진실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따분하고 싫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정말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말씀의 원뜻을 알려는 노력입니다. 말씀의 원뜻을 알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의 원뜻은 접어놓은 체 자꾸 내 욕망을 채워줄 메시지를 바란다면 우리도 밥벌이 제사장 같은 가짜 선지자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선지자는 ‘예스 선지자’입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위로하고 축복해 주는 고용제사장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3. 훔쳐가고 배반하고

 

레위인 제사장의 점쟁이 같은 말을 듣고 기분이 한껏 좋아진 다섯 정탐꾼은 가나안 땅 최북단에 있는 이르러 마음에 꼭 드는 땅을 발견합니다. 그곳은 라이스였습니다. 그 라이스에는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7절 말씀에 보면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원뜻은 ‘그 누구도 독재하는 자가 없어서 착취를 당한다든지 하는 일 없이 풍족하고 평화롭게 지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니까 무슨 군대가 필요하겠습니까? 또 산맥으로 둘러 쌓여있는 곳이라 외적이 굳이 이곳까지 쳐들어올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군대를 기른다든지 하지 않고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기자가 라이스주민들에 대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은 정복이 대상이 될 수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이미 영적판단력을 상실한 단 지파 사람들에게 라이스는 쉬운 먹잇감으로밖에는 안 보이는 것입니다. 27절 이하에 가서 보면 결국 단 지파의 결사대가 라이스로 쳐들어가서 평화를 이루고 살던 그 사람들을 칼날로 무참히 죽이는 일을 단행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가나안정복전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학살극이었고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진 만행이었습니다.

 

돌아와서는 확신에 찬 보고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마치 오래 전 여호수아와 갈렙이 했던 믿음의 보고와도 같은 보고를 합니다. 이제 이 말을 듣고 단 지파는 라이스를 차지하고자 600명의 결사대를 꾸려서 파송을 합니다.

600결사대는 라이스로 가는 길에 미가의 집을 방문합니다. 지난 번 정탐꾼들을 먹여주고 재워준 것에 감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눈독 들여놨던 신상과 레위인 제사장을 빼앗아 가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미가가 없는 틈을 타 미가의 신당에서 에봇이며 드라빔이며 새겨 만든 우상 부어 만든 우상 등을 모조리 챙깁니다. 이 우상들은 미가가 하나님이라고 만들어놓은 것들입니다. 많이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때 레위인 제사장이 보고는 ‘당신들 뭐 하는 짓이냐?’ 묻습니다. 단지파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쉿! 조용히! 잔말 말고 너도 우리와 함께 가자! 여기 있어봤자 한 집안의 제사장밖에 더하느냐? 우리 따라 가면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될 수 있다! 어때? 그게 더 좋지 않으냐?’ 이 상황을 비유하자면 신학교 중퇴하고 빌빌거리다가 어찌어찌해서 시골교회 담임자리를 얻어 지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교회에서 담임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청빙이 들어온 것입니다. 가야 됩니까 가지 말아야 됩니까? 또 묻습니다. 이 사람 인생이 잘 풀리는 편입니까 안 풀리는 편입니까?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복이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20절에 보니 이 레위인 제사장은 ‘마음에 기뻐하면서’ 단 지파 무리들 속으로 들어갔다고 나옵니다.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과연 기회였을까요? 기회가 아니라 배반이었습니다. 무직자(無職者)인 자기를 지금까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꼬박꼬박 월급 챙겨주고, 17장 11절에 보면 ‘자식같이 대해줬다’고 나오는데 그런 사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사람이 보물처럼 아끼는 신상을 몽땅 챙겨서 떠나가는 이 모습을 어떻게 제사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양심이 죽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남보다 뛰어난 모습이라고는 잔머리지수(JQ) 뿐입니다. 지능지수는 IQ, 감정지수는 EQ, JQ는 잔머리지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디 가서 정말 진실하다, 성실하다, 이런 말을 들어야지, ‘잔머리 잘 돌아간다.’ 이런 말 들어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로 이익이 적더라도 우직하게 신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이익보다는 신앙이 우선이고 양심이 우선이고 신의가 우선입니다. 영성이 사라진 자리에 기회주의가 찾아옵니다. 영성을 잃어버리면 누구든지 기회주의자가 됩니다. 손바닥 만 한 이익을 좇아서 신앙도 져버리고 신의도 져버리는 몹쓸 인격이 되고 맙니다. 사사시대 사람들은 판단력이 좋습니다. 돈 냄새에 민감하고 손익계산서를 뽑아내는 속도가 빠릅니다.

 

더 큰 명예와 출세, 더 많은 보수(報酬)를 위해서 자식처럼 대해준 이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목회자, 축복을 위해서 남의 종교까지 빼앗아 오는, 그것도 거짓 우상을 빼앗아 오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이름과 신앙의 이름으로 잔인한 학살극을 자행하면서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켜 버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 것일까요? 겉모습만 갖춘 신앙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난주부터 살펴보았지만 미가도 레위인도 단 지파 사람들도 신앙의 겉모습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열심을 내어서 성전도 짓습니다.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목회자를 채용합니다. 하나님께 선한 길을 구하기도 하고 축복의 말을 해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러 가자고 믿음 있어 보이는 말도 심심찮게 하고 삽니다. 용기를 내어서 대적(?)을 이기는 모습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내면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정말 나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우상숭배일 뿐이다!’ ‘네가 레위인이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네 자리를 지키고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여라! 어찌 영적자존심 없이 구걸하는 인생을 택하여 산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에게 분배해 준 기업은 어찌하고 쉬운 땅 찾아 떠난단 말이냐? 그리고 그게 거룩한 영적전쟁이냐? 학살극(虐殺劇)이지? 그래놓고 부끄럽지도 않느냐? 네가 가진 잔인함에 치가 떨리지도 않더냐? 양심이 그렇게도 죽었느냐?’ 누구 한 사람, 말씀이 이상(異象 ; Hajon)으로 화(化)하여 가슴을 후려치고 양심을 후벼 파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앙의 구색은 다 갖추고 있었어도, 엘리 처럼 내면(內面)의 신앙은 없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종교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내면에 인격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따끈따끈하게 유지 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을 살고,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살아도 가슴을 때리고 양심을 찌르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때문에 고민을 해 본 적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감동을 받고 감격해 본 적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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