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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밤이 깊어가더라도 
본문 다니엘 6:1~15(구약 1242) 
날짜 2021-08-22 
설교자 전용표 목사 

다니엘서 강해 7

성경 : 다니엘 6:1~15(구약 1242)

제목 : 밤이 깊어가더라도

 

 어렸을 적 코딱지 안 먹어본 사람 드물 것입니다. 요즘에는 위생 청결에 신경을 많이 써서 아이가 코딱지를 입에 가져가기라도 하면 까무라치듯 놀라는데 그거 먹어도 큰 문제 생기지 않습니다. 몇 년 전 독일의 튀빙겐 대학 연구소에서 코딱지를 연구해서 발표한 것을 보니 코딱지에 엄청난 면역물질이 들어있어서 코딱지를 먹으면 호흡기감염과 위궤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흙도 머고 코딱지도 먹고 지금으로서는 좀 비위생적으로 보입니다만 오히려 그렇게 자란 덕에 약 없이도 웬만한 병균은 이기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살다 보면 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악인을 만나고 악한 일을 만나는 것이지요. 그것은 인생의 어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악이나 어둠은 마냥 좋지 않은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의미가 있겠지요.

다니엘처럼 악과 어둠을 거듭해서 만난 인생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 다니엘서를 읽으면 절로 듭니다. 다니엘서를 읽어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반복됩니다. 신앙을 지키고 올곧게 하려다가 고난을 겪고 극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심을 받아 살아나는 이야기의 반복은 그만큼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인생에 악과 어둠이 반복적으로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악과 어둠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다니엘의 지위는 더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올라가는 기현상이 나타납니다. 악과 어둠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세월이 흘러 천하를 호령하던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바사가 천하의 패권을 잡은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바사는 이전 어떤 제국도 이루지 못한 애굽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룬 페르시아입니다. 다리오는 세계사에 그 이름을 남긴 걸출한 왕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120개의 도로 나누고 120명의 지방 총독을 두어 다스리도록 하였고, 120명의 지방 총독들 위에 세 명의 총리를 두어 총괄하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세 명 안에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원래 나라가 바뀌면 그 이전 나라에서 고위 관직을 하던 사람들은 살아남기 어려운 법인데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의 고위 관직자였는데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페르시아 나라에서는 더 높은 관직에 올랐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던 다니엘은 어떤 기근에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였습니다.

 

 

 

1. 순교적으로 살아야 한다

 

 

 세 명의 총리는 120명의 지방 총독들에게 재정 보고를 비롯한 각종 보고를 받고 그들을 관리 감독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도록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다니엘은 120명의 지방 총독 뿐 아니라 나머지 두 명의 총리들보다 더 뛰어났고 이를 알아본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전국을 총괄하는 총리 중 총리, 수석 총리로 세울 작정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알아차린 두 총리와 지방 총독은 다니엘이 총리 중 총리가 되는 것을 기필코 막아야겠다며 다니엘을 탄핵할 근거를 찾기 시작합니다. 3, 4절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3, 4)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다니엘의 지난 수십 년간의 행적을 낱낱이 조사해 봤지만 꼬투리 잡을 만한 것이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부정도 없이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도 기적이지만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도 어떤 비리도 없었다는 것은 더한 기적입니다. 뇌물을 받고 인사청탁을 들어준 일이 없고, 권력을 이용해 국가 예산을 빼먹은 일 하나 없으며 그 흔한 측근 비리 하나 없을 정도로 주변 관리를 완벽하게 했다는 것인데 이 정도 되면 사람이 아닌 것이지요. 우리가 정치 뉴스를 통해 보거니와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의 치졸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뭐 조그마한 것이라도 있으면 엄청난 비리라도 되는 양 소설을 쓰고, 없는 사건도 만들어 뒤집어 씌웁니다. 아닌 것도 백사람이 입을 맞추어 맞다고 하면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지금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뭔가 작은 것이라도 나오면 그것을 부풀려서 사건을 만들어보려고 찾고 찾았지만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관직을 수행하는 일을 마치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듯이 아무런 흠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순교가 꼭 죽어야 순교가 아니라 부정한 돈 앞에서 내 욕심을 죽이는 것이 순교이고 월급의 몇 배 되는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어도 월급만 정직하게 받는 쪽을 택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자리와 힘을 이용해 부당하게 갑질을 하거나 사사로운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욕망에 단호히 할례를 행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신실한 기독교이었던 유한양행의 유일한 회장이 뇌물 상납을 요구하는 고위층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 괘씸죄에 걸려 1968년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세무조사를 했던 김만태 세무감찰팀장이 한 말이 세간에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20일 정도 조사를 해봤는데 탈세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고 더 기가 막힌 것은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자진 납부해 무슨 이런 기업이 있나 싶을 정도로 놀랐던 적이 있다.” 이런 것이 산 순교입니다.

이 땅에 다시금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그리스도의 계절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시를 주님께 봉헌 합니다라고 자극적인 문구를 써서 이벤트성 집회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하나가 각자 맡은 자리에서 달콤한 유익이 부정과 불의와 불공정을 꼬리에 슬쩍 달고 찾아올 때 그것을 마귀쳐다보듯 하면서 단호히 거절할 때, 그러한 사람이 한둘 늘어날 때, 정직과 믿음으로 살다가 손해본 쓰라린 마음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 보듬어 주면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삶이 예배이고 순교가 되도록 사시기 바랍니다.

 

 

 

2.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살면 만사가 형통하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바르고 정직하면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 되어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5~9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5~9)

 

 다니엘에게서 아무런 허물을 발견하지 못한 총리와 지방 총독들은 신앙 문제로 다니엘을 걸지 않으면 제거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오로지 다니엘 한 사람을 목표로 한 희한한 법령을 만들고는 왕을 충동해 시행토록 합니다. 30일 간 왕 이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는 기상천외한 법령입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법령이었지만 다리오 왕은 법령에 도장을 찍어줍니다. 자신의 자리가 불안했던지 자신을 신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법령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페르시아라는 나라는 이전에 패권국가였던 앗수르와 바벨론과는 달리 상당히 관대한 나라였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정복한 나라들의 종교와 문화를 엄격히 금지하는 억압정책을 쓴 반면 페르시아는 종교와 문화에 자유를 주었습니다. 거기다가 다리오 왕은 굉장히 지혜로운 왕이었고 다니엘을 극진히 아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페르시아 같은 나라가 들어서고 다리오 같은 왕이 통치한다고 해도 세상의 본질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페르시아라는 관대한 나라가 들어서도 그 속에는 바벨론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권모술수와 편법을 일삼는 악인들이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이 대개 더 큰 힘을 갖고 주도권을 휘두른다는 사실입니다.

정직하게 사업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가 견적을 넣는데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데도 안 되더랍니다. 선정된 업체는 이 친구보다 더 못한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더 좋지 않은 A/S 조건으로 써넣었는데도 선정되었습니다. 이유는 선택권을 가진 임원에게 뒷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뒷돈을 받은 사람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악한 사람들의 계획이 잘 통합니다. 직장 상사가 열심히 노력하는 나보다 꾀를 부리며 선물 공세하는 저 사람을 더 좋아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정직한 노력보다는 아부가 더 효력을 발휘하는 세상인 것이지요. 이렇듯 세상의 민낯이 호락호락 바뀌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뿌리 박혀 있는 악한 관습이 쉽게 바뀌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순결하고 정직하게 살고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면 저 사람들이 바뀔 것이란 순진한 기대는 벌는 것이 정신건강과 신앙건강에 좋습니다. 아직까지는 인격적으로 대한다고 대하면 더 만만하게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모습이 많습니다.

 여러분, 더 좋은 세상, 더 공정하고 더 정의롭고 더 공의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것이 죄라면 그런 세상이 금방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함을 넘어 어리석음입니다. 세상이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말씀의 현대적 의미입니다.

 

 

 

3. 비록 밤이 깊어갈수록

 

 

 야비하고 잔인한 적들이 함정을 파놓은 것을 안 다니엘이 선택한 방법은 전에 하던 대로였습니다. 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0)

 

 명민한 다니엘은 이 조서가 다리오 왕을 높이기 위한 법령이 아니라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덫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조용히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엽니다. 그리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감사였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대개는 어떻게든 자기 세력을 확보하려고 분주히 움직일 것입니다. 왕을 찾아가서 이들이 주청한 법령이 실은 이러이러한 야심을 품은 악법임을 호소도 하겠지요. 다니엘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것은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판단해서였을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대세가 기울었더라도 다만 몇이라도 포섭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단 말이지요. 이것은 다름 아닌 다니엘의 몸에 밴 습관이자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입니다. 사람에게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지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당장은 천하를 쥔 권력자의 의지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숫자가 많고 세력이 큰 쪽의 의지대로 일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늘의 하나님임을 분명히 아는 것이고 그것을 굳건히 붙드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세력을 모으고 숫자를 불렸다 해도 하나님이 한 번 ‘후’하고 부시면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만다는 것을 다니엘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으면서 누구도 온전한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로지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하나님만이 도움이 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찾아오면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가서 엎드립니다.

 우리나라 걸출한 목회자들을 길러낸 거목 서울 내수동교회 박희천목사님은 큰 어려움이 찾아오면 성경책 하나 들고 목양실에 들어가 문을 닫아 잠그고는 오로지 기도하고 말씀 보면서 이 어려움에 담긴 주님의 뜻을 깨닫기를 구했고, 또 인간적인 방법을 쓰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 속에서 답을 얻고 깨닫는 것이 있으면 목양실에서 혼자 성경책을 머리에 이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를 백발이 허연 목사님에게서 직접 들었는데, 감동과 함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속이 다 썩은 고목이 되셨구나, 고목이 되어야 거목이 되는 거구나!’

 다니엘은 보란 듯이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것도 하루 세 번, 전에 하던 대로 하였습니다.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믿음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종교 생활은 유람선 타고 여행하듯이 하면 됩니다. 하지만 공평과 정의, 공정, 사랑, 긍휼 같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심는 진실한 신앙생활은 유람선 타고는 할 수 없습니다. 군함 타고 전장을 누비는 모험을 감행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반드시 따르고 장애물을 반드시 만납니다. 편안한 종교 생활은 있어도 편안한 신앙생활이란 없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감사였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무엇이 주어져서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이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어떤 처분을 내리시든지 하나님 처분에 따르겠다는 마음이 감사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개로 하나님 처분에 나를 맞기는 감사야 말로 가장 깨끗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강력한 돌파력입니다. 교묘한 악법을 올가미 삼아 허물없이 살아온 사람을 죽이려는 자들과 오로지 하나님 처분에 따르겠다며 조용히 감사하는 사람, 둘 중에 하나님이 누구를 받으실 건가는 분명합니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모습을 갖추면 그것으로 게임 끝입니다. 감사는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지금 이런 일을 주시는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맺는 말

 

 

 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밤은 점점 더 깊어가고 어둠은 더 위력을 발휘하며 교묘한 술수를 쓰는 사람은 더 단수를 높여가며 큰소리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에 휩쓸려 똑같이 교묘해지거나 하면 곤란합니다. 어두워질수록 깨끗한 그릇으로 버텨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 편을 들어주도록 말입니다. 홀로 남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창문만 열려 있으면 결코 혼자가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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