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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낮추고 높이는 권세 
본문 다니엘 4:19~37(구약 1239) 
날짜 2021-08-08 
설교자 전용표 목사 

다니엘서 강해 5

성경 : 다니엘 4:19~37(구약 1239)

제목 : 낮추고 높이는 권세

 

 어떤 마부가 당나귀 등에 돌부처를 싣고 가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합장을 하며 절을 합니다. 당나귀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줄 알고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마을에서도 또 그러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절을 하니까 당나귀가 목을 뻣뻣히 곧추세웁니다. 마부가 이놈의 당나귀가 짐 떨어지게 왜 이러냐며 꾸짖고 자세를 고치려 들자 당나귀는 감히 나를 건드린다며 마부에게 대들기까지 합니다. 참다못한 마부가 몽둥이로 후려쳤고 그것을 피하려다가 당나귀가 펄쩍 뛰는 바람에 돌부처가 떨어졌고 떨어지면서 당나귀 다리를 쳐서 당나귀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당나귀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이지요. 살면서 하나님이 걸쳐주신 것이 마치 자기 것인양 교만히 굴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누군가 지은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4장은 느부갓네살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기가 겪은 일을 들려주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궁전에서 편안하게 지내면서 또 꿈을 꾸었고 그로 인해 번민하였다고 합니다. 번민했다는 말은 벌벌 떨었다는 말인데, 천하를 가진 사람이 벌벌 떨 정도면 굉장히 불길한 꿈이었나 봅니다. 이번에도 나라 안에 박수와 술객 술사와 점쟁이를 모두 모아서 꿈을 해석토록 하는데 지난번과 달리 꿈 내용을 다 말해주고 해석하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7절에 보면 그들이 해석을 못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들이 실제로는 꿈을 해석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꿈의 의미를 알기는 알지만 그것이 왕에게 변고가 생긴다는 내용이어서 왕에게 밉보일까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거짓 술사나 거짓 선지자들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액운이 온다고 불안을 주고는 굿을 해야 한다, 부적을 써야 한다며 돈을 뜯어내지만 왕이나 권력자들에게 그랬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 권력자들에게는 주로 좋은 말, 축복의 말만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이번에도 다니엘에게 꿈을 해석해 달라면서 자기가 꾼 꿈을 쭉 이야기합니다.

 “꿈에 보니 땅 중앙에 나무가 있는데 견고하게 자라더니 높이는 하늘에 닿아 땅끝에서 보이고 잎사귀는 아름답고 열매는 천하 만민이 먹을 만큼 많고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며 그 나무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그 나무에서 먹을 것을 얻더구나. 그런데 난 데 없이 한 순찰자,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만 ‘나무를 베고 가지를 자르고 잎사귀를 털고 열매를 흩어버리고 짐승들과 새들을 쫓아내라. 그러나 그루터기는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들풀 가운데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을 것이다. 그 마음이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느부갓네살은 이어서 이 꿈의 전체적인 의미를 자기 입으로 말을 합니다. 그것이 꿈에서 거룩한 순찰자들에게 들은 말인지 자기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꿈의 전체적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한 말입니다. 자 17절을 같이 읽습니다.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17)

 

 지극히 높으신 분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그분이 자기 뜻대로 권세를 사람에게 주시고 천한 자를 높이 들어 세우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꿈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천한 자는 겸손한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의미는 느부갓네살 왕이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런데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며 나무가 잘린 것이 뭘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것은 모르니까 답답하고 엄청 불길한 꿈이라서 걱정이 되는 것이지요.

 

 

 

1.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의 해석

 

 

 자, 느부갓네살의 꿈 이야기를 쭉 들은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면서 자기도 번민을 합니다. 19절을 봅시다.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19)

 

 다니엘이 꿈의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 꿈이 자기가 모시는 왕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걱정하고 번민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니엘이 ‘이 불길한 꿈을 잘못 말했다가 왕이 노발대발하면 내 목이 달아날 수 있는데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 이런 식의 고민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이 박수, 술객, 점쟁이, 술사들이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른 점이지요. 술객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왕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요. 아합 같은 악한 왕에게 무조건 승리할 것이라며 축복의 말만 해줍니다(왕상 22:11,12). 그러나 참 선지자는 아무리 왕이라 해도 아합 같은 악한 왕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언합니다(왕상 22:17). 그렇다고 여러분 내가 참선지자나 된 것처럼 아무한테나 바른소리 한답시고 상처주는 말 막 하지 마십시오.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가급적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가 되는 말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고요(엡 4:29).

 다니엘이 해석을 쭉 이야기합니다. 하늘까지 닿고 세상 모든 육체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이 나무는 바로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합니다. 권세가 하늘에 닿고 땅끝까지 이른다는 의미지요. 그런데 권세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권세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도 되지만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역까지 침범하였다는 의미도 됩니다. 하나님이 권세를 주셨는데 그 권세를 겸손하게 쓰지 않고 교만하게 쓴다는 지적입니다. 그것을 누가 다 보고 있느냐?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지요. 그래서 순찰자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순찰자라는 말은 감시자라는 말입니다. 순찰자의 감시망에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한 통치가 차곡차곡 쌓이자 하나님이 순찰자를 통해 심판을 단행하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정적(政敵)들에 의해 쫓겨나서 들짐승처럼 숨어 살면서 초근목피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좀 못된 사람, 악인이 벌도 받지 않고 어려움 없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기는 한거냐,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거냐고 울분이 치밀 때가 있습니다만 순찰자들이 그들의 악행을 차곡차곡 수집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정의를 시행하십니다. 그래서 악인의 잘 되는 것을 보고 시험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시 37:1). 교만하고 힘으로 내리 누르는 통치를 하던 느부갓네살이 쫓겨나서 짐승처럼 살게 되는 형벌을 받는데, 그 형벌이 언제 끝나게 됩니까? 깨달을 때까지! 26절 봅니다.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26)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다시 왕위를 되찾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깨달아야 끝이 납니다. 징계도 시험도 언제 끝나느냐? 하나님이 보실 때 ‘이제는 네가 충분히 깨달은 것 같구나!’ 하실 때 끝이 납니다. 그래서 징계로 주어진 고난이든 연단이나 시험으로 주어진 고난이든 간에 자꾸 깨달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 무슨 뜻입니까, 미련하여 깨닫지 못하니 깨닫는 마음을 주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분히 깨달았다 싶으면 아침 안개 걷히듯 물러가는 역사가 찾아옵니다.

 

 

 

2. 악몽을 무효화 시킬 비책 :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물론 깨달으면 회복시켜 주신다는 내용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비참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쫓겨나지 않을 수 있는 비책을 제시합니다. 27절입니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27)

 

 비판을 못 하게 해서 건전한 비판기능을 억압하는 것도 문제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이 무조건 비판부터 하고 보는 트집 잡기식 비판도 문제입니다. 선지자나 성경의 인물들은 그 시대를 비판하면서 바른 대안까지 같이 제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닥쳐올 7년 기근을 예견하면서 사람들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기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7년 기근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그 대비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창 41:33~36). 혹시 비판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 실력을 기르십시오. 누가 들어도 수긍할만한 대안까지 제시하면서 건전한 비판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니엘이 제시한 대안은 공의를 행하고 긍휼을 베풀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시여 왕위를 굳건히 하는 길은 신상 세워놓고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여 절하게 하고 억지 충성을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 중 가난한 자들에게 곡식을 풀어서 굶어 죽지 않게 하고, 왕의 측근이나 권력자들이 힘없는 백성에게 권세를 부리지 못하도록 그들을 단속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열심히 땀흘린 사람이 자기 몫을 빼앗기지 않고 정당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면 그것이 왕께서 왕위를 굳건히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개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를 설파한 것입니다. 공의와 긍휼, 사랑과 공의,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자 하나님의 뜻입니다. 정치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작업이지 측근들 배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사회가 좀 더 복잡해졌지만 정치와 통치의 기본은 똑같습니다. 공의를 행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 더 가난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힘없는 사람 더 억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통치자가 악하면 자꾸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임금은 줄고 수도나 전기 의료보험같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민영화시켜서 기업들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돈 없는 사람은 병에 걸려도 병원에도 못 가고 죽습니다. 악한 통치자는 모든 정책을 가진 자 중심으로 써서 힘없는 사람은 개돼지처럼 살게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통치를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그렇게 나가다가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길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공의와 긍휼을 시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기본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가로막혀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푸는 길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특히나 인생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해졌을 때는 다른 데서 자꾸 길을 마련하려고 헤매지 마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예배부터, 말씀 생활, 기도 생활부터 붙들면 풀립니다. 틀림없습니다.

 

 

 

3. 낮추신 다음 높이신다

 

 

 이토록 하나님이 꿈을 통해서, 다니엘의 해석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나아가 몰락을 피할 수 있는 비책까지 일러주시는데도 느부갓네살은 듣지 않습니다. 29~31절을 봅시다.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29~31)

 

 이미 지난번 첫 번째 꿈과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멀쩡히 살아나온 사건을 통해서 하늘의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그분이 하실 일을 꿈을 통해 미리 알려주신다는 것을 경험했으면서도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이란 거대한 제국을 자기 능력과 권세로 건설했고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건설했다고 자화자찬합니다. 아직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기적 체험하고 신비한 것을 경험하면 간혹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근본까지 바뀌기는 힘듭니다. 사람이 근본부터 바뀌려면 진실한 회개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벌레보다 못한 죄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주님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사람이 바뀝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언제 일어납니까? 죄송한 표현이지만 코피 터져야 일어납니다. 왕창 넘어지든지 내 속의 숨어 있던 사악한 본성의 밑바닥을 보게 되면 일어납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말을 무시하고 하던 대로 하다가 결국은 사람들에게 내쫓겨서 소처럼 풀을 먹고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인생살이가 된 후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34절입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4)

 

 총명이 돌아왔다는 것은 제정신 차렸다,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이걸 보면 신약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지요. 탕자입니다. 탕자도 그 많은 돈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돼지우리에 빠지는 신세가 된 후에야 뉘우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지요(눅 15:11~32). 최씨가 고집 세다고 하지만 고집 없는 성씨, 고집 없는 사람 세상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사람에게는 하나님 앞에 낮아지지 않으려는 고집이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그게 꺾여야 하는데, 그게 꺾여야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 되는데, 그게 잘 안 꺾인단 말이지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우리보다 하나님 고집이 더 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고집부리다가 지치기라도 하지만 하나님은 지치지도 않으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고집을 꺾고 우리 교만을 꺾으십니다. 그런 다음 다시 높여주시지요.

 하나님이 나를 낮추실 때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존심 부리지 마십시오. “예, 주님, 참 자존심 상하지만 제가 낮아지겠습니다. 저를 더 낮춰주십시오. 더 낮아지겠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낮아진 만큼 높여주십니다.

 

 

 

맺는 말

 

 

 깨달아야 끝이 나고 기본을 붙들어야 길이 열리며 낮아진 만큼 높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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