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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 편으로 살기 
본문 잠언 21:21~31(구약 934) 
날짜 2021-06-20 
설교자 전용표 목사 

주님과 동행 21

성경 : 잠언 21:21~31(구약 934)

제목 : 하나님 편으로 살기

 

 아직 초등학교 티를 벗어나지 못한 중학교 1학년 시절 점심시간에 초등학교 때 많이하던 오징어달구지라는 놀이를 하면서 놀았었습니다. 땅바닥에 오징어를 큼지막하게 그려놓고 그 주변을 짝발로 뛰면서 서로 넘어뜨리면서 힘겨루기를 하는 놀이였습니다. 그때 휘상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유도부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데 키가 180이 넘고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였지요. 다들 이 친구 편이 되고 싶어 했는데 이 친구가 들어간 팀이 대개는 이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이 친구한테 한 번 붙들렸다하면 그날은 옷이 남아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매가 찢어지든지 옆구리가 찢어지든지 어디 하나는 찢어지고 맙니다.

 성경은 귀인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하시면서(시 146:3) 오직 하나님으로 너의 도움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에서는 여호와를 대적으로 삼고 살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도 여러 차례 합니다.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그 사람이나 민족의 대적이 되신다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사람을 대적으로 삼고 살아도 피곤하고 힘든 인생이 되는데 하나님을 대적으로 삼고 살면 그 인생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고 살아야지요. 그런데 하나님 편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패가 갈려 싸우면서 서로 우리가 하나님 편이고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주장할 때 쓰는 하나님 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아가느냐는 측면에서 하나님 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두 구절은 사람이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시고 사람이 아무리 전쟁을 위하여 마병을 준비해도 전쟁의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합니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30, 31)

 

 제 아무리 지혜롭고 명철해서 기가 막힌 전략을 짜더라도 하나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람이 철저히 계획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전쟁의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을 대적으로 삼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나님 반대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라, 하나님 편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1. 바르게 살고 베풀며 살라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편에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대적으로 사는 것이냐? 21절을 읽겠습니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1)

 

 바르게 살고 좀 베풀면서 살기를 힘쓰라, 그러면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는다. 이런 말입니다.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즐거움을 얻는다는 뜻도 됩니다. 사람이 바르게 사니까 떳떳하고 문제 될 게 없어요. 또 베풀면서 사니까 마음이 즐거워요. 그래서 바르게 살고 베풀면서 살면 마음이 즐겁고 괴롭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생명이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명예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덕을 쌓고 살라는 정도가 되겠습니다. 흔히 장수를 분류할 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용장(勇將)입니다. 용맹이 뛰어난 장수입니다. 삼국지에 장비같은 인물이 용장입니다. 겁이 없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물러섬이 없습니다. 둘째는 지장(智將)입니다. 지략이 뛰어난 장수입니다. 초한지에 나오는 한신 같은 인물입니다. 지형지물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고 다양한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기에 적은 도대체 저 장수가 이번에는 어떤 작전을 들고나올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장수입니다. 셋째는 덕장(德將)입니다. 덕이 있는 장수입니다. 다윗이 덕장입니다. 자기 고향 베들레헴의 우물물 한 번 마시면 여한이 없겠다고 하자 부하들이 직진을 뚫고 들어가서 그 우물물을 떠오자 다윗이 고맙다고 마시고 그들에게 상을 내렸느냐? 그러지 않지요. 그 물이 부하들의 목숨값이라며 자기가 괜한 말을 해서 부하들 목숨 잃을 뻔 했다면서 땅에 쏟아버립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요. 그것이 덕입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울이 죽었을 때 누구보다 슬피 울며 애도했고 사울의 장수였던 아브넬이 투항하자 기꺼이 맞아주기도 했습니다. 이같이 덕장은 좌우를 다 끌어앉는 큰 아량이 있습니다. 큰 그릇이지요. 22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헌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지혜로운 사람이 전쟁을 잘해서 적들의 성을 차지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덕스럽게 사는 사람이 성을 얻는 것같이 힘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용장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지장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덕장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바라시는 것이 주님을 닮아 덕스럽게 살기를 바라세요.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하셨습니다(고전 8:1). 하나님의 백성은 말을 함에 있어서도 바른 말보다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엡 4:29). 덕을 세우는 쪽으로 가는 것이 주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잃더라도 덕은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2. 무례히 행치 말라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편에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대적으로 사는 것이냐? 24절을 읽겠습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24)

 

 무례하다는 말 ‘야하르’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면서 거만을 떤다는 뜻이고, 교만하다는 말 ‘제드’는 남을 무시하면서 사는 교만함을 뜻합니다. 이런 자를 망령된 자라 한다 했는데, 망령된 자라는 말 ‘루츠’는 비웃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남을 함부로 대하고 깔보고 비웃고 조롱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공동번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잘난 체 우쭐대는 사람을 거만한 자라 한다. 그런 사람은 남을 깔보며 무례한 짓을 한다.”

 30, 31절과 연결시키면 이렇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대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그렇게 보면 우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대적으로 산 적이 많을 겁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괜히 우쭐대고, 또 누군가를 업신여기고 할 때마다 우리가 실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곤 했던 것이지요.

 교육전도사로 첫 사역 시작한 교회에 오장로님이라고 계셨는데 부산경남지역에서 가장 큰 토건회사에 재정을 맡은 이사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와 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항상 겸손하셨고 남 대접하기를 즐기셨습니다. 본인은 유행 지난 구닥다리 차를 타고 다니셨고 누구를 대하든 허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하셨습니다. 첫 사역을 나온 어설푸기 짝이 없는 교육전도사인 제게도 ‘전도사님 전도사님’ 하시면서 얼마나 깎듯이 대해주시고 식사대접이나 선물도 여러 차례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참 인격적인 분이셨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절로 생각나게 하는 보기 드문 인격자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 사역지였던 교회에서 만난 한 장로님은 정반대였습니다. 건축업을 크게 해서 성공한 분이었는데, 한 번은 교회 마당에서 그분과 몇마디 대화를 하였는데 마지막에 저더러 그러더군요. ‘어이, 전전도사, 내가 일개 전도사와 이렇게 대화를 나눠주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겨야 돼, 알았어?’ 순간 내가 무슨 군대조직에 들어와 있나 싶은 것이 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내보니까 저뿐 아니라 그분은 다른 모든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시더군요.

 지난주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격이란 나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저 사람 신앙 좋은가, 된 사람인가 안 된 사람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같이 다니면서 그 사람이 약자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됩니다. 약자 앞에서 힘 들어가고 함부로 대한다면 그 순간 자신은 스스로 자기의 존재감을 한껏 느낄지 모르지만 착각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대적으로 살면 결국 끝이 좋지 않습니다. 평안이 없고 외롭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목사님, 인격적으로 대하면 오히려 만만하게 보고 무시합니다. 예, 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더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길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어렵더라도 그 길을 닦아야 다른 사람들도 그 길로 따라 옵니다. 누가 닦아주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닦아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하나님 편에서 사는 길을 걸어가십시오. 하나님이 도울 힘이 되어주십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라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편에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대적으로 사는 것이냐? 26,3절을 읽겠습니다.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26,27)

 

 26절에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한다는 말은 그저 속에 탐욕이 가득해서 더 차지하려고만 들고, 남 잘 되는 것 배 아파서 못 견디고 그저 이겨야 하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은 그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푼다고 하십니다. 뭐 어려운 말씀 아닙니다. 쉽습니다. 27절에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다는 말은 악인이 정직한 땀으로 모으지 않고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불량 재료를 써서 이윤을 많이 남겼든지 남에게 줄 것을 안주거나 덜 주고 착취를 하였든지, 회사 돈을 빼먹었든지 하면서 모은 제물인데, 그중에서 하나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악한 뜻으로 드린다는 말은 또 뭔가 더 얻기를 바라면서 ‘하나님, 제발 이번에 이 일도 잘 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바라는 바도 정의롭지도 않고 편법을 쓰는 것인데 그걸 이루어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는 예배도 드리고 예물생활도 하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종교생활만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물만 아쉽지 않게 챙겨드리면 내 소원을 넙죽넙죽 잘 들어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분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이사야 1장에 보면 이사야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물 드리러 온 사람들더러 화를 내시며 이러시지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나님이 예배하고 예물드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역정을 내신 이유는 그들이 손에 피를 잔뜩 묻히고 왔기 때문입니다. 온갖 죄란 죄는 다 짓고 남을 해치면서 살다와서는 복 달라고 송아지 살라바치고 염소 살라바친단 말이지요. 하나님은 예물 좀 드리면 입이 벌어져서 좋아하시는 분 아닙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다 살펴보고 아시는 분입니다. 갈라디아 6장 7절에 뭐라고 하셨습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옛날번역으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했는데 그 말은 하나님은 웃음거리가 되지 아니하신다는 뜻입니다.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예물 드리고 또 잘 되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뭐라고 할 것이며 우리 기독교를 뭐라고 할 것입니까? 비웃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비웃움거리가 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죄된 방법으로 살다와서 예물을 드려 소원을 이루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을 비웃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뿌린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악을 밭갈고 심으면 악을 거두게 하시고, 선으로 밭갈고 심으면 선한 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니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른 체 종교생활만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 편이 되는 것 아닙니다. 죄와 벗하며 살다와서 예물 드린다고 좋아하실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는 길은 달리 있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 뜻에 맞게 하루하루 살면 그것이 하나님께 잘 보이는 최상의 길입니다. 미가서 6장 7절에서 보면 하나님은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기름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맺는 말

 

 

톨스토이가 쓴 《바보이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가 힘을 좋아하는 이반의 형 시몬에게 큰 군대를 가질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이반의 둘째형 타라스에게는 손을 대는 것마다 성공하도록 해서 큰 돈을 벌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큰 형 시몬은 큰 군대로 전쟁을 즐기다가 망하고 말았고 둘째 형도 돈으로 망하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이제 시몬을 총공격합니다. 이반이 원하는 것을 뭐든지 줄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반은 땀흘려서 얻은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바보지요. 마귀가 힘들어 죽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미끼를 던져도 물어야 골탕을 먹이든 망하게 하든 하는데 물지를 않는 겁니다. 결국 마귀가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하나님과 묵묵히 동행하는 사람, 바르게 살면서 기회 되는대로 베풀며 사는 사람, 남을 업신 여기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은 마귀도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을 삽니다. 그것이 형통이고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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