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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동행 20 소용(小勇)과 대용(大勇)
2021.07.08 11:20
제목 | 소용(小勇)과 대용(大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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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잠언 20:1~5(구약 932) |
날짜 | 2021-06-13 |
설교자 | 전용표 목사 |
주님과 동행 20
성경 : 잠언 20:1~5(구약 932)
제목 : 소용(小勇)과 대용(大勇)
청년 시절 교회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비가 오는 밤에 교회에 있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청소년들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소위 폭주족들이었습니다. 오토바이 쇼바를 한껏 높이고 갖가지 조명을 달고 배기음을 요란스럽게 나도록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달리던 폭주족, 기억나시지요. 아마 비가 오니까 비를 피하기위해 교회로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네 명이었는데 나이가 제일 많은 아이가 열여덟 살, 제일 어린 아이가 열세 살이었습니다. 퇴학당한 아이도 있고 자퇴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나이가 적은 아이들이 열여덟 살 난 아이를 가리키면서 이 형이 자기들 세계에서 최고라는 겁니다. 어째서 최고냐고 물으니까, 이 형은 사거리에서 신호 안 보고 끝까지 밟는다는 겁니다. 밤에 많은 차들이 싱싱 달리는 사거리에서 신호무시하고 있는 힘껏 달린다는 겁니다. 그것도 뒤에 동생들 태우고 말입니다. 사고 나면 둘 다 죽는 거지요. 그런데 그걸 해낸다고 이 형이 최고라는 겁니다.
맹자가 용기에는 소인배의 용기인 소용이 있고 큰 용기인 대용이 있다고 했는데, 목숨 걸고 사거리를 통과하는 이들이 최고로 치는 용기는 대용은 아니고 소용이겠지요. 이른 나이에 벼랑 끝에 서게 된 그 아이들이 거친 세상에서 남에게 눌리지 않고 자기가 강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을 아마 그런 것에서 찾았나 봅니다. 세게 보이기 위해서 의미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은 용기라기보다는 어리석음에 가깝게 보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른 나이에 폭주를 뛰게 된 그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거친 세상에서 약한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세게 보이는 나름대로의 보호색을 다들 한 두 가지씩은 가지고 살지요. 거기에 사람은 용기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진짜 용기도 있을 것이고 소용도 있을 것입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용기는 용기인데 지혜를 겸비한 용기를 말씀합니다. 오늘은 여기에 관해 생각하고자 합니다.
1. 거만에 기대지 말고 하나님께 기대라
먼저 1, 2절을 읽겠습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1)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2)
대학에 들어가니까 우리 과가 철학과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때가 암울한 시절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더군요. 술버릇이 참 다양하더군요. 한 친구는 명랑한 친구였는데 술을 마시고 막 울어요. 얼마나 슬프게 우는지 저는 집에 뭔 일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술만 들어가면 자동으로 울더군요. 어떤 친구는 뭘 물어보면 소심해서 대답도 잘 못하고 숫기가 없는 친구였는데 술이 들어가니까 선배들한테도 임마점마 하면서 막 덤벼들고 큰소리치고 난리였습니다. 행패부리는 유형이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날은 주로 안나타나더군요. 술이 들어가도 평소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 들어가니까 독특한 술버릇들이 있었습니다.
1절에 보면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고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다, 이에 미혹되는 자는 누구든지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 술이 들어가면 사람이 거만해서 괜히 들떠서 큰소리 치게 만듭니다. 겁나는 것이 없어져요. 그런 습관을 끊지 못하다가 결국 왕이 베푼 자리에서 큰 실수를 합니다. 술에 취해서 왕 멱살을 잡고 이놈저놈 합니다. 신하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왕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왕을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인데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겁니다. 술에 취해서 말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큰 실수 저지를 수 있으니 술마시지 말라고 술만 금하는 말씀으로만 보지 말고 좀 넓게 봐야 합니다. 자, 술이 들어가면 소심하던 사람도 거만해져서 큰소리를 치게 되는데, 술과 같이 사람에게 이것이 들어가면 거만해지고 큰소리도 치고 잘 난 체 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것이 들어가면 겸손하던 사람도 거만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잘 난체 하면서 모두를 가르치려 들까요? 돈과 권력, 힘, 이런 것들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뭔가 자꾸 생기면, 많아지면 괜히 더 용감해져서 큰소리를 치는데,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건 거만입니다. 거만과 용기는 다릅니다. 뭐가 자꾸 생겨서 그것으로 인해 겁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아래로 보이고 말이 세지고 하는 것은 거만이지 용기가 아닙니다. 용기는 뭡니까?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사울 왕 때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블레셋은 강하고 이스라엘은 약하여 이스라엘 쪽에서는 감히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부관과 단둘이서 적진을 향해 돌격을 감행합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직전이 와해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지요. 그때 요나단이 혈혈단신으로 돌격을 감행하면서 부관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없던 물질이 생겨서, 힘이 생겨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사람들이 이제 만만하게 느껴지는 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거만입니다. 용기는 없어도 담대한 것이 용기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고 담대함이 없을 때 자꾸 뭔가 믿을 구석을 찾는데 그러지 마십시오. 뭔가 좀 있는 사람? 아닙니다. 귀인을 의지하지 말라 하였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하였습니다(시 144:3). 불안하고 부딪힐 용기가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리십시오. 끊어졌던 줄이 이어지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이 깨달아지고 확신이 생기면 어떤 것과도 부딪힐 수 있는 담력이 생깁니다. 참된 용기는 하나님과 내가 연결될 때 옵니다. 무엇을 가져 담대하려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대어 담대함을 얻으십시오. 거만에 기울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대십시오.
2. 약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인격이 드러난다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1)
1절 말씀을 조금 더 생각하겠습니다. 돈이나 자리나 이런 것이 생기더니 그렇지 않던 사람이 거만하게 변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좀 씁쓸하지요. 힘이 생기면 사람이 몸의 자세부가 달라지고 목소리부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말이 거칠 것이 없어지고 걸음걸이에 힘이 들어가고 앞장서서 걷지요. 좀 전에는 그런 상태에서 겁 없이 행동하다가 왕의 비위를 건드려 화를 당하는 것을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낮은 자를 대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개 힘이 생기면 약자를 함부로 대합니다.
어떤 청년이 영어회화 강사입니다. 제법 유명하고 유튜브에서도 꽤 알려진 나름 유명강사지요.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오나 봅니다. 바빠서 전화를 못받으면 문자로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네요. 영어강사 주제에 전화도 안 받고, 야, 얼마 줄까? 뭐 이런 식의 문자가 온다네요. 내가 너한테 돈주는 쪽이니 나는 너에게 함부로 말해도 되고, 너는 내게 돈 받는 쪽이니 내 기분 상하게 하면 안 되지만 나는 네 기분 상하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인 것이지요. 아직도 이런 사고를 가지고 촌스럽게 갑질하는 사람은 실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인격을 자랑하며 사는 미련한 사람이지요. 인격은 나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야단칠 때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다들 어린아이라고 부시하고 함부로 대할 때 주님은 존중해 주십니다.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그것이 인격입니다. 좀 지위가 된다고 나이도 어린 사람이 부모나 삼촌 뻘 되는 사람들에게 반말이나 하고 그러는 것은 진정한 용기도 권위도 아니라 거만이고 미련입니다.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하셨지요(잠 16:18)
힘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그 사람이 공명정대하여 그릇이 된다 싶으면 거기에 오래 머무르는 성질이 있지만 그릇이 아니다 싶으면 갑자기 떠나버립니다. 사울은 차라리 왕이 되지 않았으면 부잣집 아들로 평안히 살다가 생을 마쳤을 것인데 왕이 되는 바람에 오히려 하나님께 버림받고 실패자로 생이 끝나고 말았음을 기억하고 잘 될수록 약자 앞에 고개를 숙이십시오.
3. 상대에게 박수를 보내는 대용의 사람이 되라
평소에 점잖은데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어지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길에서 다른 차와 신경전을 벌이다가 급기야 상대 차가 옆으로 지나가면서 창문을 내리더니 ‘야이, 개XX야, ....’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보니까 아들 뻘 밖에 안 되는 겁니다. 갑자기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는 그 차를 막아세우고 찻길 한 가운데서 거친 욕을 해가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차는 밀리지요. 밀리니까 누가 좋아합니까? 뒤에서도 도로 한 가운데 차 세우고 뭐하는 짓이냐 지나가면서 한 소리들 하지요. 그때 지나가는 차 안에서 누가 욕을 하며 한창 싸우고 있는 집사님을 쳐다보는데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집사님이 가르치는 주일학교 아이였습니다. 엄마 차를 타고 가다가 자기 교회 선생님이 그러고 있는 것을 본 것이지요. 충격을 받았습니다. 싸우다 보면 체면이고 이미지고 명예고 다 깎이고 말지요. 3절을 읽겠습니다.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3)
3절을 반대로 풀면 이런 말이 되지요. 다툼은 명예를 깎아내리는 법이니 무릇 지혜로운 자는 다툼을 멀리하느니라. 그러려면 순간의 굴욕을 참아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소한 일에 칼을 뽑아 휘두르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순간의 굴욕을 참는 것이 용기입니다. 유방을 도와서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통일을 이루었던 대장군 한신이 무명인사였을 때 큰 포부를 품고 항상 칼을 차고 다녔습니다. 그걸 아니꼽게 본 성읍 건달들이 장날 사람들이 많은 데서 한신을 빙 둘러쌉니다. 맨날 칼 차고 폼 잡고 다니는데 어디 용기가 있으면 그 칼로 덤벼보든지 그럴 용기가 없으면 자기들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라고 합니다. 구경꾼들이 가득한데 그 중에는 한신이 짝사랑하던 여인도 보고 있었습니다. 한신은 칼을 뽑지 않고 건달들 가랑이 사이로 지나갑니다. 치욕스럽지요. 만약 거기서 칼을 뽑았다면 한신은 건달들 손에 죽었든지 살인자가 되어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만 했을 겁니다. 순간의 굴욕을 참는 인내가 한신에게는 있었고 그것이 결국 나중에 항우와 싸움에서 승리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고방식 자체를 점검하고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대개 사람은 모든 것을 대립구도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가령 이런 것이지요.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 아는 사람 중에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한 번 공을 잡았다 하면 한꺼번에 다섯 명도 제끼고 골을 넣는다고 하면서 공 잘 차는 사람 자랑을 하면, 옆에 듣고 있던 사람이 자기 교회에도 학창 시절 선수 생활 했던 청년이 있는데 그 친구는 혼자서 열 명도 제낀다는 겁니다. 뭐 이런 식이지요. 마치 내 주변에 그렇게 공 잘 차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지는 것 같이 느끼면서 말이지요. 그런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다들 몸속에 전사의 피가 흐르는지 대체로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주변에 대해 대립구도, 경쟁구도로 인식하는 습관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대립구도, 경쟁구도로 생각하고 느끼는 습관이 베여 있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할 일도 많이 생기고 갈등하고 다툴 가능성이 그만큼 많겠지요. 인생df 피곤하게 사는 길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경쟁의식이 강하고 대립구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자신을 몰랐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가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 이런 식으로 살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게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옆에서 막 자랑하는 듯한 말을 쏟아내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어요. 오히려 좋겠다며 부러워해주고 잘 했다며 치켜 세워주고 그럽니다. 그런 사람이 어딜 가든 환영받고 사람들이 좋아하지요. 그러니까 진정한 용기는 남을 죽이고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는 용기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양떼가 많아져 자기 목자들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부딪히자 힘으로 조카를 꺾지 않고 조카에게 선택권을 양보합니다. 그렇게 자기와 롯이 함께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지 않습니까? 그건 이기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잘 싸우는 것은 소인배의 용기지만 남을 칭찬하고 높여주는 것은 대용입니다. 경쟁적이고 대립하는 사고방식 생각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
4절에 심어야 거둔다는 말씀은 지금부터도 늦지 않았으니 앞으로의 삶이 평탄키를 바란다면 지금부터 어색하더라도 바른 것을 하나씩 익혀서 가다 보면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거둘 날이 있으리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5절에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이란 깊이 잠재 되어 있는 재능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신약의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가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젖부침을 받아서 예수님의 온갖 좋은 품성을 내가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속에 들어왔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만 골몰하느라 마음에 찌꺼기가 잔뜩 껴서 예수님의 풍성을 기르질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성령의 조명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마음을 뒤덮고 있는 세상의 온갖 찌꺼기를 거둬 치우고 예수님의 품성을 개발하여 그것을 마음과 몸에 익혀서 살아갑니다.
용기는 용기인데 지혜가 없는 용기는 나와 너, 모두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소인배의 용기로 남지만,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는 용기는 나와 너, 우리 모두를 평안으로 인도하는 복된 용기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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