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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3-27] 금요일과 토요일을 지나 주일이 온다 
본문 마태복음 28:1-10 
날짜 2016-03-2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시고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오늘날 토요일이고, 안식일 후 첫날은 주일입니다. 정확한 시간으로는 만 삼일이 아닌 만 2일이 조금 못되는 시간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말은 만 삼일이 아니라 죽은 날을 기준으로 해서 삼일 째 되는 날 부활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엉뚱한 의문 같은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하필 삼 일만에 부활하신 것일까?’ 성경의 숫자들은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7은 완전수입니다. 12는 완전히 채워진 상태를 의미하는 수입니다. 40은 광야 40년, 엘리야의 40일, 예수님의 40일 등에서 보듯이 연단과 준비의 기간을 의미하는 수입니다.

그렇다면 3이란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에 3이란 숫자가 나오는 대목이 몇 곳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지정하여 준 장소인 모리아 산까지가 삼일 거리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 시간은 침묵의 시간이었고 무덤 속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였습니다. 두 번째는 요셉이야기입니다. 요셉의 낮아짐과 고난은 총 삼 단계로 진행됩니다. 구덩이에 빠지는 단계, 종으로 팔려가는 단계, 감옥에 갇히는 단계가 그것입니다. 요셉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내리막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끝자락은 세상을 기근에서 구해 내는 구원자의 영광이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은혜였습니다. 세 번째는 욥의 이야기입니다. 하루 아침에 가산(家産)과 자식을 다 잃고 아내로부터 저주를 받은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의 방문은 위로의 방문이 아닌 고통을 가중시키는 정죄의 방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죄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친구들과 욥은 논쟁을 벌이는데, 세 친구와 총 삼 라운드에 걸친 논쟁을 벌입니다. 욥에게 그 논쟁은 자신이 당한 아픔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히는 아픔이자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이었습니다. 이처럼 3이라는 숫자는 우리 삶에 찾아오는 고통의 문제와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언제 찾아오는가를 다룰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때로 우리는 금요일과 주일 사이를 살아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이 지나야 부활의 아침 주일이 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하면 우리가 때때로 금요일과 토요일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금요일은 어떤 시간인가요? 금요일은 철저히 실패(失敗)와 절망(絶望)의 시간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과 절망의 시간입니다. 제자들에게도 금요일은 실패와 절망의 시간입니다. 믿었던 예수님, 희망을 걸었던 예수님은 힘없이 악인들 손에 붙잡혀 죽는 것을 보고 분노를 발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자기들 힘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 깊은 자괴감(自愧感)과 절망감(絶望感)에 빠져든 시간입니다. 확신하고 장담했던 일에 실패해서 자신의 비참함을 몸서리치며 느껴야했던 시간입니다.

토요일은 어떤 시간인가요? 토요일은 무덤같은 시간입니다. 무덤은 모든 것이 중단된 곳입니다. 무서운 침묵(沈黙)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토요일이 그러했습니다. 숨을 거둔 예수님의 시신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으로 염을 거친 채 차가운 바위무덤에 안치된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능력도 멈춰버린 시간이 토요일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잡히는 스승을 버려두고 도망친 후 문을 닫아 잠그고 한 방에 모여앉아 두려움에 떨지만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 수 없어 무서운 침묵 속에 숨어야 했었습니다. 먹고 싶다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조차 멈춰버린 시간, 눈은 떴으나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이 토요일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우리에게는 금요일도 오고 토요일도 옵니다. 어떤 장로님은 최근에 아침에 눈을 뜨는데 한쪽 눈만 떠지고 한쪽 눈은 떠지지 않더랍니다. 한쪽 눈을 움직이는 신경이 마비가 된 것입니다. 갑자기 눈 한쪽이 안 떠지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관리하고 관리해도 병이 찾아올 수 있고, 그 병으로 인해 잘 쌓아왔던 인생이 한순간에 휘청거리는 위기에 빠질 두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몸에 장애가 와서 그때부터는 굴레 속에 갇혀 사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에 너무 집착해서 사는 것도 문제지만 돈이 너무 없어도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의 돈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급한 나머지 사채를 썼는데, 그때부터 인생의 지옥문이 열려버렸습니다. 눈더미처럼 불어나는 이자와 인정사정없이 압박해오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여러 번 자살을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밥 생각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모든 관계가 다 끊겼습니다. 부부간에 신뢰가 깨어지고 부모자식 간에 문제가 대화가 단절되면 그때부터 가정이 무덤이 되거나 전쟁터가 됩니다. 직장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아침에 직장 가는 것이 도살장 끌려가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때로는 의를 위해 고난당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데 주위에서 시기질투하며 깎아내리며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려는데 직장이나 세상사람들이 다니엘을 싫어하듯이 나를 싫어할 때도 있습니다. 선한 일로 인해 사람들에게 찍혀 그때부터 거룩한 왕따가 되어 금요일 인생, 토요일 인생이 되어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2. 부활의 아침은 오고야 맙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정리해 보면, 금요일은 예루살렘, 토요일은 무덤, 주일은 갈릴리 이렇게 됩니다.

주일은 어떤 시간이며 갈릴리는 어떤 곳인가요? 주일은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주시는 시간이자 왕성한 생명력으로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일 새벽에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장소로 따지면 갈릴리가 그러한 곳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오늘 주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는 것은 실패의 절망의 장소인 예루살렘을 떠나 나와 함께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입니다. 실패와 절망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어떤 것이든, 때로 그 고난이 한없이 지속될 것처럼 보입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2019을 보면 문을 꼭꼭 닫아 잠그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도 예수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갔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고 무덤에 찾아갔던 것은 아닙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더 이상 좋아질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1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였어도 제자들은 듣고도 믿지 아니하였다고 나오고, 1613을 보면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두 제자가 돌아와서 그 소식을 전할 때에도 역시 믿지 아니하였다고 나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여긴 것입니다.

삶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을 만큼 사방이 막힌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 주님께서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부(聖父)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 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의 성령께서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주일이 온다는 사실, 기필코 부활의 새아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 금요일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며 절대로 변하지 않아! 더 나아지지 않을거야!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어! 너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직 금요일이고 토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이 오고 있습니다. 너희 집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네 남편도, 네 아내도, 네 자식도 바뀌지 않을 거야! 상황은 점점 더 힘들어질 거야! 그렇지만 아직 금요일이고 토요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일이 오고 있습니다. 교묘하고 악한 사람이 더 주도권을 잡는 것 같습니다. 아직 금요일이고 토요일이어서 그렇습니다. 주일이 오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부활의 새아침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이 천사를 통해서 또 친히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갈릴리에서 보자입니다. 내가 먼저 갈릴리에 가 있을테니 내 형제들더러 그리로 와서 나를 만나라고 가서 전하라! 내 제자도 아닙니다. 내 형제라고 하십니다. 배반하고 도망친 자들을 형제라 하십니다. 왜 갈릴리입니까? 예루살렘이 실패와 절망의 장소였다면 갈릴리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면서 첫출발을 했던 곳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곳이자, 하나님께서 실패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도록 다시 사명을 주시고, 다시 재충전시켜 주시는 부활의 능력이 임하는 곳입니다. 네가 나를 처음 만났던 곳에 와서 다시 시작해 보자 이겁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가난한 심령을 다시 가지기 시작하면 부활의 능력과 은혜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내 인생에 부활의 새아침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부활의 능력은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는 데서부터 옵니다. 누가복음 24을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절망한 나머지 엠마오로 낙향하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믿음의 눈을 뜨고 용기를 얻게 되었을 때 하는 고백이 이것입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32)

 

주님의 말씀이 들리면 식었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집니다. 싸늘히 식었던 열정이 다시 불붙기 시작합니다. 손 놓았던 주의 일을 다시 하게 됩니다. 피해 다녔던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고, 눈도 마주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쓰임 받는 도구가 됩니다.

 

 

3. 영원한 주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기도 하겠지요. “목사님, 다 맞는 말씀입니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부활의 아침도 오겠지요. 그런데 아십니까? 금요일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인생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영원히 살아야할 것은 인생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덤 속 같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 진 인생을 마지못해 살고 있는 영원한 토요일 인생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울 때가 끝도 없다고 느낄 때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저 가정은 끝이 없이 계속됩니까? 하나님께서 좀 불쌍히 여겨주시면 안 됩니까?’

 

자폐증 딸아이를 가진 제 친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비슷한 상황을 가진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만 양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주일학교부터 대학부 청년회까지 쭉 같이 자라고 같이 활동한 모교회 동기생 중에 은정(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경남 어느 교회의 집사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 돋보이지는 않지만 알고 보면 신앙이 참 알 찬 친구였습니다.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에는 항상 있어요. 말없이 잘 섬깁니다. 저보다 몇 년 빨리 결혼을 했습니다. 첫째가 태어났습니다. 딸입니다. 둘째도 딸입니다. 첫째가 커 가는데, 아기 때는 나타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나타납니다. 자폐가 심합니다. 거기다가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심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커 가면서 수술대에 몇 번을 올랐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아니겠지, 아니겠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부정도 하고 몸부림도 쳤습니다. 좋다는 약도 다 쓰고, 능력이 있다는 사람은 전국 팔도를 마다않고 찾아다녔습니다. 되겠지, 될 꺼야! 이번에는 진짜 맞을 거야! 희망을 놓지 않고 뭐든지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안 되고 안 되고 또 안 됩니다. 걸었던 기대가 사정없이 곤두박질 칠 때면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과 절망감과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罪責感) 때문에 인생도 영혼도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 모진 소용돌이를 통과한 후에야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안 되는 거구나! 안 되는 거였어!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실 수도 있구나! 이것이 죽어야 비로소 끝나는 내 인생의 십자가구나! ..... 깨닫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친구의 소원이 뭔지 아세요? 그 친구의 소원은...... 자기 딸보다 하루만 더 살다 죽는 것입니다.

금요일에 멈춰 버린 인생도 있습니다. 토요일 무덤 속에서 멈춰 버린 인생도 있습니다. 그럴 지라도 부활의 새 아침은 다른 곳을 통해 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라고 하셨습니다. 제 친구는 자폐증 딸로 인해 그 남편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즐겨하던 술과 세상친구들을 멀리하고 가정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눈물로 눈물로 부르짖는 아내를 보면서 아내를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편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습니다. 빨리 갑니다. 그 끝자락에는 영원한 주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진 고난과 십자가를 이겨내신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우리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은혜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의 은총이 우리 모두의 삶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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