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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벳바게 베다니 나귀새끼 
본문 마가복음 11:1~10(신약 73) 
날짜 2021-03-28 
설교자 전용표 목사 

2021 고난주일

성경 : 마가복음 11:1~10(신약 73)

제목 : 벳바게 베다니 나귀새끼

 

 

 동남아 어떤 소수민족의 전래 동화에 신이 인간을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지는 않지만 나이는 들고 늙기는 합니다. 늙어서 기력이 없어졌는데 죽지는 않는 거지요. 그러니 세상에는 늙은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어서 젊은이들이 늙은이를 벽돌 쌓듯이 차곡차곡 쌓아두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사냥한 동물이 죽는 것을 보면서 한편 불쌍하면서도 또 한편 부러웠습니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말이지요. 그래서 신에게 가서 제발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고 신은 인간의 요구대로 죽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죽을 수 있게 된 인간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기뻐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한 경우 빼고는 사람이면 죽지 않으려고 하는데 죽지 않는 것이 불행이고 죽는 것이 축복이라고 가르치는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앞날을 아는 것입니다. 인간은 앞날을 알고 싶어 돈을 들여 점을 치기도 하고, 미래학자의 강연을 귀담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날을 알면 정말 좋을까요? 지옥이 열리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불어닥칠 불행을

알고 죽을 날과 어떻게 죽을지를 다 안다면 과연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 수 있을까요? 살맛이 날까요? 어렵겠지요. 이것이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며칠 지나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극도의 고통과 모든 사람의 버림과 저주 속에서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가셨습니다. 차라리 모르고 맞는 매가 낫지 알고 맞는 매가 더 힘든 법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하신 사건입니다. 잘 알고 있는 본문이고 여러 차례 살펴봤던 본문입니다.

오늘은 지명에 얽힌 의미 위주로 이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밧바게 베다니 나귀새끼가 담고 있는 싸인

 

 

 

 죽으러 가는 고통스러운 길목에서 예루살렘 감람산 위에 자리 잡은 두 마을인 밧바게와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감람산은 올리브 나무가 많은 곳인데 밧바게와 베다니 두 마을에는 유독 무화과 나무가 많았습니다. 밧바게라는

말은 집이라는 뜻의 베트와 무화과의 첫 열매인 파게가 합쳐진 말입니다. ‘첫 무화과의 고장’내지 ‘새끼 무화과의 고장’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베다니는 집을 뜻하는 베트와 무화과를 뜻하는 테에나가 합쳐진 말입니다. ‘무화과의 마을, 무화과의 집’ 정도로 보면 됩니다. 둘 다 무화과와 관계가 있습니다. 무화과는 첫 열매를 잘 따줘야 본

열매가 잘 엽니다. 그래서 첫 열매인 파게는 길가는 사람 아무나 따서 먹으라고 내버려 둡니다. 값없이 제공합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 둘을 맞은편 마을로 보내면서 거기에 나귀 새끼가 있을 것이니 끌고 오라고 시킵니다.

2, 3절을 읽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2, 3)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입니다. 무화과로 치면 아직 아무도 먹어보지 않은 첫 열매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무화과 첫 열매의 마을이라는 곳에서 첫 열매와 같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명을 싸인(sign)으로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친히 첫 열매가 되시겠다는 것이지요. 누구나 값없이 와서 먹을 수 있는 구원의 첫 열매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열매, 곧

테에나를 맺으시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베다니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첫 열매 파게가 되기 위해 처음 사람을 태우는 나귀 새끼를 타고 가서 죽을테니 너희는 테에나, 나를 믿고, 나를 따르는 열매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런 의미입니다. 이것이 밧바게와 베다니에서 나귀새끼를 타신 의미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주님은 죽는 마당에도 어느 하나 허투루 하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며칠 이내로 극도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그것도 배신과 버림과 저주 속에서 죽을 것을 생생히 알고 있는 분이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게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행동 하나하나에 흐트러짐이 없이 하실 수가 있을까요? 이런 예수님을 묵상하면 예수님이 놀랍기도 하지만 정말 무서운 분 같아요.

 

 

 

자득(自得)의 길

 

 

 

 묵묵히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을 걷습니다. 이런 것을 자득(自得)이라 합니다. 자업자득할 때 바로 그 자득입니다.

자업자득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요. 하지만 자득이란 말은 깊은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자득을 사전에 찾아보면 ‘스스로 깨달아 얻는다, 스스로 마음에 흡족하게 여긴다, 스스로 한 일에 대해 돌려받는다’고 나오는데

자득이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상황, 그 자리에서 최적의 답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에 한 장로님이 청도 감나무를 한 그루 얻어다가 집에 심었더니 씨가 생기더라는 말씀을 하세요. 원래 청도 감나무는 씨가 없기로 유명한데, 그걸 다른 지역에 갖다 심으니까 씨가 생기더라는 거지요. 감나무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가장 알맞게

자신을 바꾸면서 길을 찾아갑니다. 그것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연은 주어진 환경에서 길을 찾아갑니다. 바뀐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가는 모습은 자연이 우리

인간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가령 내가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밥 사야지요. 부자는 밥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돈이 얼마나 있네 하면서 자랑하며 남의 기죽이는 것이 부자가 아닙니다. 부자는 밥 사고, 베풀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부자에게 바라는 자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너네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하니까 부자는 부자인데 천박한 부자가 되는 거지요. 자득할 줄 알아야 아름다운 부자가 됩니다. 가난해지면요?

가난하다고 신세타령이나 하는 것은 가난한 자의 자득이 아니지요. 가난한 자는 씀씀이부터 줄여야지요. 남들 하는 것 다 따라 하고 살 수 있습니까? 가난한 형편에서도 씀씀이를 줄이고 최대한 아끼고 성실히 일해 모으다 보면

살만한 형편이 되지요. 그것이 가난한 자의 자득입니다. 일이 잘되고 자리가 점점 높이 올라갈 때에는요? 두려워하고 겸손한 것이 자득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니 하면서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하는 것은 자득이 아닙니다. 그러면 넘어질 일이 곧 찾아옵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 많고 좋은 학벌 많고 능력

있는 사람 많은데도 내게 이런 일을 주시는구나 하면서 은혜임을 깨닫고 두려워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왜

두려워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은 능히 반대로도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올라가는 자의 자득입니다.

 

 

 

역경 만난 자의 자득, 고난 주간의 자득

 

 

 

 역경에 처하고 사지(死地)로 내려갈 때는요? 그 속에 담긴 뜻을 찾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역경 만난

자의 자득입니다.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비관하거나 하늘을 원망하면서 주저앉기 쉬운데 그것은 길이 아닙니다.

2019년 4월에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큰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작은 것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는 뭐든지 앉아서 해야 했는데, 씻을 때도 앉아서 씻다 보니 얼굴 씻고 머리 감는 것은 불편해도 발씻는 것은 편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발을 정말 깨끗이 씻었습니다. 태어나서 발을 그토록 정성스럽게 씻은 적이 없더군요. 부려 먹을 때는 엄청 부려 먹으면서 대접은 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이 발이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고장이 나고 말았구나!” 다친 다리를 씻어주면서 다리에게 해 준 혼잣말입니다. 아껴주고 사랑하고 해야 붙어있는 법이지요. 그때부터 발을 아껴주면서 정성스럽게 씻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맛사지가 되고 회복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저의 경험은 그래도 소소한 편에 속합니다만 요셉은 인생이 달린 경험을 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팔려 남의 집 종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세상을 원망하며 가시 돋친 인생으로 산 것이 아니라 성심껏 종살이를 잘했습니다. 종의 직분을 감당한 것이지요. 정직하고 성실히 주인집을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만 거기서도 분풀이 하다가 맞아 죽지 않고 감옥살이를 잘하였습니다. 거기서도 섬기기를 다하였습니다. 요셉의 모습이야말로 역경 당한 자의 자득입니다. 요셉처럼 하면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임박한 시기에 당신의 죽음을 아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음을 향한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걸음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죽는 마당에 제대로 죽고자 노력하시고 철저히 죽고자 애쓰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좇아 구원의 첫 열매가 되시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밧베게와

베다니에서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그렇게 하실 때에 나귀 새끼를 탔든 아라비아 종마를 탔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의 장군이나 왕은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말 여러 필이 끄는 꽃단장한 전차를 타고 개선행진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에 비해 모양새가 빠지는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나귀도 별로 큰 동물은 아닌데 나귀 새끼는 더 작아요. 거기다가 아직 사람을 태워본 적 없는 나귀 새끼니까 사람 태우고 가는 것이 엉성하고 힘들었을 겁니다. 이미 그 고난의 상황에서 최적의 길을 찾으신 주님은 이것이 위엄있게 보일지 아닐지, 남들이 어떻게 볼지, 뭐 이런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첫 열매가 되어 값없이

주어지는 첫 열매만 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수만 있다면 나귀 새끼가 아니라 더한 것이라고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맺는 말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미대를 들어갔습니다.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순수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기는 힘이 든 것이 예술계의 사정입니다. 그렇다고 교편을 잡자니 인맥에 돈이 들어갑니다. 하는 수 없이 지자체에서 어르신들 위주의 취미활동을 지도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라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통해서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통해 외로움도 달래고 마음도 치료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그 일을 하게 된 데에는 뭔가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점점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을 위해 점점 마음을 더 쓰게 되었고, 어르신들 솜씨로 마을 벽화를 그리기도 하고, 어르신들 그림을 모아서 전시회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굉장한 기쁨인 것이지요.

우리가 고난주간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까? 어떤 처지, 어떤 상황이든 간에 거기서 최적의 모습을 찾아서 사는 겁니다.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이 하셨던 모습이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한 주간 그렇게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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