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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달콤함이 화려함을 입고 올 때 
본문 7:1~27(구약 915) 
날짜 2021-03-21 
설교자 전용표 목사 

주님과 동행 10

성경 : 7:1~27(구약 915)

제목 : 달콤함이 화려함을 입고 올 때

 

 오래 전 일입니다. 자갈치 시장에서 송도 쪽으로 가다 보면 아미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곳에 자리한 교회에

부목사로 일하고 있는 모교회 선배 집을 방문해서 집구경을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선배 집 베란다에서 부산에 유명한 홍등가인 완월동 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갈치 앞바다도 보이는데 그것보다도 완월동 거리가 더 눈길을 끌더군요. “형님, 여기 전망이 정말 좋네요?”라고 했더니 그저 웃기만 하더군요. 교회가 마련한

사택이었는데 아마 기도 많이 하라고 일부러 그런 자리에 사택을 마련한 것인가 하고 혼자 생각 했드랬습니다.

청년 때는 그런 골목이 있으면 다른 골목으로 가도 되는데 괜히 그쪽으로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기도 하지요.

호기심이 든다 해서 그런 골목을 찾아다니면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겠지요.

오늘 본문 잠언 7장은 어리석은 청년이 음침한 골목으로 가다가 간교한 여인의 유혹을 받는 이야기를 사실적이고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간교한 여인은 세상의 지혜를 의인화한 것입니다.

청년이 유혹에 넘어가 음행에 빠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저버리고 세상 정욕과

세상의 얄팍한 지혜에 빠져 사는 것을 의미하고, 그 결과는 사망이라고 경고하는 말씀이지요. 이 이야기를 실제

음행의 유혹에 빠지는 이야기로 읽어도 되고 세상 정욕에 빠져 살아가는 이야기로 읽어도 됩니다.

읽어보면 너무 재미있고 그 묘사가 기가 찰 정도로 뛰어납니다.

그래서 잠언 7장을 지혜문학의 정수라고 일컫습니다.

 

 

갈비 먹은 사람은 라면에 목숨 걸지 않는다

 

 

자 먼저 1~5절까지는 지혜자가 우리 인생들을 ‘내 아들아’ 하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제발 지켜서 살고,

하나님의 지혜를 마음판에 새겨서 살라고 신신당부하지요. 1~5절을 읽겠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1~5)

 

‘내 아들아 지켜라, 새겨라’라고 하는 것은 잠언에서 계속 반복되는 당부지요. 하나님 법을 눈동자처럼 지키라

하고 누이나 친족처럼 여기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마음 판에 새긴 하나님의 법을 새겨 놓아야

그것이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유혹을 받기 전에 미리 새겨 놓으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밖에서 특등급 한우갈비를 배불리 먹고 왔으면 동생 라면 끓여 먹는 것 부럽지 않겠지요. 반대로 한우

갈비집에 초대를 받아놓고 시장기가 돈다고 라면 두 개 끓여서 밥까지 말아 먹고 가면 아무리 한우갈비라도 별로 끌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먼저 맛보느냐, 마음에 무엇을 먼저 새겨넣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맛을 먼저 본 사람은 세상의 달콤함이 아무리 손짓해도 그것을 유혹이라고 알아차리지, 속절없이

넘어가지는 않는단 말이지요. 설령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갔다 하더라도 이미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자기가 죄 지은 줄을 알고 마음이 쓰리기라도 하단 말이지요. 그러나 그속에 하나님의 법이 없으면 세상의 달콤함에 속절없이 빠져듭니다. 유혹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음에 빠진 줄도 모르고 죄에 빠진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먼저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갈비 먼저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지혜가 갈비입니다. 갈비 먹은 사람은 라면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

 

 

음녀의 집으로 향하는 젊은이

 

 

자, 그런 다음 지혜자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6~7절을 읽습니다.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6~7)

 

창으로 내다보다가 어떤 어리석고 지혜 없는 젊은이가 보이는 겁니다. 어리석고 지혜 없다는 것은 바보 멍충이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믿음 생활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잘난 사람이지요. 너무 잘 나서 자기 꾀를 믿는 사람, 자기 힘을 믿는 사람, 자기 지혜를 믿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이나 법, 진리를 소중하게 생각할 리 없겠지요. 그래서 무시합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자, 지혜 없는 자입니다. 그러한 젊은이가 골목을

서성입니다. 8~9절을 읽습니다.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8~9)

 

음녀가 사는 골목에 기웃거리고 서성이면서 이리저리 사람들 눈치 살피다가 결국 음녀 집 쪽으로 갑니다.

시간이 언제입니까?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입니다. 점점 더 어두워지지요? 이 젊은이의 심령상태가

처음에는 해질 무렵처럼 조금 어두웠다가 나중에는 아예 캄캄해졌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똑똑하고 자기가 잘 났고 한 사람은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의 방법을 찾지 않고 세상의 방법을 찾고, 세상 사람 붙들고, 세상의 지혜를

찾지요. 그게 음녀의 집으로 가는 것이고 점점 캄캄해 지는 겁니다.

 

 

음녀의 유혹의 기술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음녀가 나타납니다. 어떤 옷을 입고요? 음녀의 옷을 입고 말이지요. 음녀의 옷은 야하고

화려합니다. 여념 집 여인처럼 점잖게 입지 않습니다. 아주 화려하고 자극적이지요. 유혹은 수수한 옷을 입고

오지 않고 아주 화려하고 자극적인 옷을 입고 찾아 옵니다. 너무 화려하다 싶으면 유혹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 11~12절을 읽습니다.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1~12)

 

마귀가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돌아다니는 것처럼 음녀도 먹잇감을 찾아 사방천지를 돌아다닙니다. 안 가는 곳이

없어요. 어떤 때는 거리, 어떤 때는 광장, 또 모퉁이를 돌아다니면서 먹잇감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음녀가 먹잇감을 기다리는 장소와 지혜가 사람들을 부르는 장소가 일치합니다. 우리가 1장에서 살펴봤듯이 지혜도 사람을 부를 때, 거리, 광장, 길목, 성문 어귀 같은 곳에서 불렀습니다(1:20~21). 세상 어딜 가든지 그곳에는 하나님의 지혜도 있고 세상의 지혜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이고 더뎌 보이고 밑지는 것 같습니다. 반면 세상의 지혜는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지혜로워 보이고 빨라 보이고 이기는 기술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는 선합니다. 반면 세상의 지혜는 교묘하고 악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살리는 쪽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혜는 죽이는 쪽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기고 죽이는데 나중에 보면 그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도 같이 죽는 길입니다. 그런데 당장 내가 이기는 것 같으니까 그런 지혜를 붙들지요.

사람들이 이 젊은이처럼 세상의 지혜를 더 좋아하고 거기에 더 빠지는 이유가 뭘까요? 달콤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13절 봅시다.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13)

 

음녀가 볼 때, 젊은이가 딱 보니까 벌써 스스로 절반은 넘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딱 달라붙습니다.

몸을 막 비빕니다. 입을 맞춥니다. 입술에서 꿀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죽음의 입맞춤이지요. 여기서 마음이 바른

사람, 그래도 하나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더라도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면서 ‘이기 와이리 달라붙노? 안 떨어지나?’하면서 호통을 치겠지요. 그런데 이 젊은이는 음녀가 풍겨대는 분 냄새, 향수 냄새에 흠뻑 취하고, 보드라운 살갗이 닿는 느낌에 홀려서 분별력 상실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남자들이 낯선 여인이 분냄새 풍기면서 콧소리 넣은 소리로 “옵~ 빠ㅎ!” 하는 소리에 정신줄 놓으면 큰일 납니다. 잘못 따라갔다가는 장기매매단이 기다리는 수가 있습니다.

찰싹 달라붙은 음녀가 본격적으로 유혹의 기술을 발휘합니다. 14절을 봅시다.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14)

 

음녀가 심지어 자신이 서원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요, 화목제를 드리며 사는 사람이라면서 신앙까지 들먹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이야기에 마음이 쉽게 열립니다. 고난받고 연단 받은 이야기, 직분이 어떻게 되고

어떤 식으로 충성했더니 하나님이 어떻게 복을 주시더라는 이야기를 은혜롭게 하면 금새 마음이 열리고 어느새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마음이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믿게 됩니다. 여러분, 죄송한 말씀이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너무 쉽게 믿지 마세요. 예전에는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것이 보증수표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가라지가 너무 많아서 쉽게 믿어서는 곤란합니다.

잘못하다가는 돈 잃고 신앙까지 잃어버립니다.

음녀의 유혹이 계속됩니다. 15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15)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운명이야, 이런 말입니다. ‘얼마 투자하면 월 얼마씩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옵니다.

딱 한 채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조건 없습니다. 오늘 내로 결정해야 합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마지막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면서 더 알아볼 기회나 생각할 기회를 차단하면서 서두르는 것은 십중팔구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들은 채 만 채 하겠지만 욕심이 있으면 판단력이 흐려져서 귀가 솔깃하고 마음이 바빠지지요. 16~20절 봅시다.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16~18)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19~20)

 

굉장히 달콤하고 좋을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요. 남편이 보름 있어야 한다면서 안심도 시킵니다.

항상 유혹은 굉장한 대가가 주어질 것처럼 속이고,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속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가면

다 들통나고 대가가 혹독한 법입니다.

이렇게 음녀가 하는 말들은 전부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반면 1장에서 보았듯이 지혜가 부르는 소리는 거칩니다.

아프게 찌릅니다. 때리듯이 부릅니다. 원래 양약은 쓴 법입니다. 몸을 해치는 것은 대부분 달지요.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라고 해서 다 싫어할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아합이 전쟁에 나가려고 할 때 400명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나가면 큰승리를 거둘 것이라 달콤한 말을 쏟아냈습니다만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아합에게 나가면 죽는다며 쓴소리를 합니다. 아합은 미가야가 자기에게 언제나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며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전쟁에 나가지만 그날이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왕상 22장). 원하고 바라는 대로 척척 되면 꾀는 늘지 몰라도 참된 지혜가 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참된 지혜는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 생기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고난은 변장하고 찾아오는 축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달콤함의 대가

 

 

화려한 옷을 입고 자극적인 몸짓으로 음녀가 쏟아내는 온갖 달콤한 말에 청년은 넘어가고 맙니다. 여인을 따라

음녀의 집으로 걸어가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그 모습이 꼭 도살장에 죽으러 가는 소의 모습과 한가지입니다.

22~23절을 봅시다.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러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22~23)

 

필경은 화살이 간을 뚫게 됩니다. 대가는 말할 수 없이 쓰라리고 치명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쉽게 버는 돈, 몰래

즐기는 쾌락, 그것이 언젠가는 간을 뚫는 화살이 됩니다. 동양의 지혜서인 <채근담>에 보면 ‘자신의 분수에 맞는 복이 아니거나 까닭 없이 주어지는 이익은 하늘이 내린 미끼가 아니면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에도 정의가 있어야 그 물질이 복이 되지 정의가 결여된 물질이나 성공은 반드시 간을 뚫는 화살이 되어 나를 괴롭힙니다. 즐거움도 땀흘린 뒤에 누리는 즐거움이라야지 땀흘림이 없이 누리는 즐거움은 반드시 간을 뚫는 화살이 되어 나를 망칩니다. 주로 유혹은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그것도 천천히가 아니라 빨리 얻으려고 할 때 찾아옵니다. 그게 정의가 없는 탐욕이고 그것이 음녀입니다. 물질 뿐 아니라 명예나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달콤해 보이지만 거기에 넘어갔다하면 죽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26)

 

음녀의 침상에서 음녀가 제공하는 달콤한 향락을 즐기는데 그 침상 밑에는 음녀가 주는 달콤함을 받아먹고 죽은 시신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돈이든지 쾌락이든지 명예든지 권력이든지 갖가지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고 또 넘어가서 스스로 인생을 괴로움으로 망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담심리학자인 이관직교수님의 책 「기독교상담으로 본 잠언」에 보니 중독자가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는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나는 중독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는 바보짓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남은 불륜이지만 나는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고, 남이 노력 없이 얻은 것은 불로소득이지만 내가 노력없이 얻은 것은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도수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

 

 

유혹은 달콤함이 화려한 옷을 입고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유혹의 길을 가다가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키면 그 순간 닥쳐오던 화가 복으로 바뀌고

사망의 길이 구원의 길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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