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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과 동행1 행복으로의 초대 
본문 잠언 30장 15~16절(구약 945) 
날짜 2021-01-17 
설교자 전용표 목사 

1월 17일 주일 가정예배지

 

인도 / 전용표 목사

 

1. 시작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깨달을 때나 깨닫지 못할 때나,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살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주님은 한결같이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받지 못한다 느낄 때가 많았고 변함없이 남을 사랑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오늘도 사랑하시어 예배자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가 주님께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신앙의 위로와 격려와 결단이 있는 예배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찬 송 :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3. 기 도 : 김태돌 장로

 

4. 성경봉독 : 잠언 30장 15~16절(구약 945)

 

5. 특별연주 : 이명숙 권사

 

6. 설 교 : 행복으로의 초대/ 전용표 목사

 

7. 기 도 : 인도자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일깨우사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지혜를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차오를 때 그것이 인생을 불만족과 공허함에 빠뜨릴 욕망인지 더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를 성장시켜 줄 욕망인지 구분하는 지혜를 한 해 동안 부어주십시오. 더 가지고, 원하는 만큼 가져서 행복 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게 하시고 원하는 것을 줄일 때 비로소 삶이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닫고 사는 한 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속에 좌정하신 성령께서 이 한 해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 되시어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고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게 도와 주옵소서. 한 주간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 찬 송 : 196장 성령의 은사를

 

9. 봉헌기도 : 인도자

 

10. 축 도 : 전용표 목사

 

 

주님과 동행 1

성경 : 잠언 30:15~16(구약 945)

제목 : 행복으로의 초대

 

 

예전에 논이나 개울에 거머리가 많았습니다. 일하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보면 거머리가 종아리에 붙어서 만찬을 즐기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거머리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데 계속 먹고 있습니다. 피를 빨아먹고 있는데도 느낌이 없습니다. 아프지 않으니까 모릅니다. 떼려 해도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래를 비벼서 떨어뜨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고 귀찮게 구는 사람을 찰거머리라고 합니다. 싫다 해도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지요. 찰거머리들은 대개 바라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또 요구하고 또 요구하지요.

 

 

인생을 태워먹는 욕심

 

 

오늘 본문이 거머리로 시작을 합니다. 15절을 볼까요?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5)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오, 다오 하는 거머리에게 있는 두 딸은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을 때 쓰는 두 빨판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거머리가 사람 손에 죽는 경우는 하나뿐입니다. 어느 정도 먹었으면 빨판을 거둬들이고 도망을 치면 되는데,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는데도 계속 먹다가 들켜서 죽습니다. 성경이 지금 거머리를 통해서 우리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족한 줄 모르고 계속 더! 더! 더! 하다가 낭패를 본다는 말씀입니다. 15, 16절 두 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15,16)

 

거머리처럼 족한 줄 모르고 계속해서 더! 더! 더! 하는 것이 서넛이 있는데 첫째가 스올이고, 둘째가 아이 배지 못한 태이고, 셋째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이고, 넷째가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라 합니다. 네 가지 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스올을 보십시오. 스올은 지옥입니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갔지만 지옥이 비좁게 되어 사람 안 받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무한정 받습니다. 인간의 욕심도 ‘이만하면 됐다!’ 하는 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을 채울 수 없는 땅은 광야 같은 땅입니다. 광야는 비가 거의 오지 않습니다. 그런 땅에다 아무리 25톤 대형 물트럭으로 10대가 가서 들어 부은들 무슨 표가 나겠습니까? 금방 스며들어서 언제 물 부었나 할 겁니다. 사람은 다른 것은 다 한계가 있는데 욕심만큼은 무한정입니다. 이 작은 몸에다가 세상을 전부 담으려고 합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이것이 죄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낫느니라고 하셨습니다(약1:15). 아담이 그 많은 것을 받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 자리까지 탐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것은 아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평생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욕심이 그러합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근본부터가 부족한 존재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이런 사람 되어 줬으면 하는 바람을 포기하지 않는단 말이지요. 그 바라는 것을 모아 보면 결국 완전한 사람 되라는 겁니다. 불가능이지요. 그런데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니까 불만족스럽고 성내고 잔소리가 심해지고 그러다가 관계가 소원해지고 깨집니다. 또 자리 욕심이 그러합니다. 자리 욕심 너무 부리니까 청탁도 하고 뇌물도 주고 비리도 저지릅니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습니까? 나중에 문제가 터지지요. 물질 욕심, 권력 욕심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뭡니까? 인생을 태워 먹는 것입니다. 한참 욕심에 이끌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인간관계도 다 끊어져 있고, 가족들 간에도 멀어져 있고, 남은 것은 후회와 외로움뿐입니다. 인생을 다 태워 먹은 겁니다.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고, 말하고 싶은대로 다 말하고 살면 인생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숯검뎅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욕심을 네 가지로 표현하면서 마지막으로 족하다 하지 않는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껏 욕심 부리면 인생 태워 먹는 것인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욕심을 다스리는 비결, 절제(節制)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줄여야지요. 그것이 절제(節制)입니다. 자 다시 불을 생각해 봅시다. 탈 것이 아직 있으면 불은 사정없이 탑니다. 무섭게 탑니다. 그러다가 탈 것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꺼집니다. 불이 더이상 번지지 않도록 하려면 태울 재료를 치우는 것이 상책이지요. 그것이 절제입니다. 사람이 욕심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욕심 자체를 부정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절간에 들어가 살아도 욕심은 꿈틀거립니다. 절제할 따름입니다. 욕심을 이기는 비결은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덜 갖는 것, 절제입니다.

어떤 젊은 주부가 가스레인지에 곰국을 올려놓고 장을 보러 나왔습니다. 불을 약하게 해 놓고 나왔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지요. 빨리 장을 봐서 집으로 가는데 동전 노래방이 있는 겁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냥 가지 못하고 딱 세 곡만 부르고 가야지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세 곡 부르고 끝이 나지 않는 겁니다. ‘한 곡만 더 해야지, 한 곡 더 하는데 3분 밖에 안 걸리는데 뭐!’ 하고 한 곡 더 불렀습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부르고 싶은 노래가 생각나니 쉽게 끊지 못하고 몇 곡 더 부르고 있는데 싸이렌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소방차가 지나가는 겁니다. 뒤는 상상에 맡깁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정도 가다가 중단할 줄 알지만 미련한 사람은 낭패를 보고야 멈춥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말도 어느 정도에서 그쳐야지 욕심 부려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돌아와서 내 인생을 태우게 됩니다. 저기 돈이 보인다 해서 욕심을 한껏 부려 정신없이 돈 따라가다가는 내 인생을 태워 먹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친구들 만나 어울리고 노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거기에 빠지다 보면 가정을 태워 먹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좋은 욕심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려는 욕심, 부모나 가족에게 잘 하려는 욕심, 배우고자 하는 욕심, 가난을 면하고자 하는 욕심, 좋은 사람 좋은 신앙인이 되려는 욕심, 이러한 것은 얼마나 좋은 욕심입니까? 좋은 욕심은 부려야지요. 그런데 좋은 욕심도 정도가 지나치면 누군가를 힘들게 합니다. 또 이쪽에는 좋지만 저쪽에는 좋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균형을 잃는 것이지요. 그러면 문제가 터집니다. 그칠 줄 모르면 이미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것의 종노릇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예요. 그것이 나를 가지고 놀다 싫증나면 어떻게 하겠어요? 내버버리겠지요. 그래서 돈이 사람 갖고 논다는 말이 생긴 겁니다. 성령은 이것이 정당한 욕심인지 부당한 욕심인지를 생각토록 하세요. 그리고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지혜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에게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하고 나를 내려놓는 사람은 인생을 태워 먹지 않습니다.

 

 

욕심을 다스리는 비결, 전환(轉換)

 

 

절제와 아울러 욕심을 다스리는 비결은 욕심의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전환(轉換)이라고 합니다. 군대에 가면 우로 굴러, 좌로 굴러를 하지요. 원래는 기합이 아니라 이쪽에 총알이 빗발치면 저쪽으로 굴러서 피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존기술입니다. 이것이 전환입니다. 욕심과 관련한 말 중에 ‘이익을 남기지 말고 사람을 남겨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의 이익보다는 사람이 더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말인데 따지고 보면 인생의 지혜가 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뜻일 겁니다. 조금 전에 욕심을 다스리는 비결로 절제를 말씀드렸는데, 절제라는 것은 그저 적당한 선에서 끊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더 소중한 가치를 위해서 덜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어렸을 적 마트에 가면 저를 끌고 장난감 코너로 갑니다. 매번 사줄 수는 없고 약속한 것이 있을 때는 사 주는데, 아이더러 원하는 것을 집으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이것 집었다 저것 집었다 합니다. “두 개는 안 된다, 하나만 사 줄거야!”라고 하면 아이가 고민 고민하다가 하나를 내려놓습니다. 자기 생각에 덜 좋은 것을 내려놓는 것이지요. 이것이 절제요, 전환입니다.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더 좋은 쪽을 가지고 덜 좋은 쪽을 포기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때가 끼면 자꾸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들고 또 어떤 것이 더 소중한 쪽이고 어떤 것이 덜 소중한 쪽인지를 구분을 못합니다. 구분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꾸 반대로 생각해서 더 소중한 쪽을 버리고 덜 소중한 쪽을 선택합니다. 속는 것이지요. 누가 속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속입니다. 마음의 거울에 욕심이 끼니까 흐릿해서 분명히 독이 묻은 건데도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해 보입니다. 마귀는 이 욕심에 이끌리라고 충동을 할 뿐입니다. 결국 스스로 속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령이 우리를 밝히 비추시면 그제서야 마음에 낀 때가 벗겨져서 어떤 것이 독 묻은 것이고 어떤 것이 더 소중한 것인지 선명해집니다.

어떤 젊은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9급 공무원이었고 튼튼한 직장 다니고 경제력 있는 사람 만나 결혼해서 1남 1녀 두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만족이 없습니다. 남들은 공무원 생활 부러워한다지만 이 집사님은 원래 5급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9급이기에 항상 불만족입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5급 고시에 붙어서 5급으로 출발했는데 자기는 9급인 것이지요. 거기다가 배속받은 민원창구는 종일 민원처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자기는 5급에 붙어서 사회적 지위도 누리는 것을 기대했는데 지금 자기처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바뀌는 일을 있었습니다. 힘든 처지의 어떤 할머니의 민원을 정성껏 처리해 드렸는데, 그분이 너무 고맙다고 삐뚤삐뚤한 손편지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하, 내가 하는 일이 실제적으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는 일이구나! 품위나 대접받는 것보다 이것이 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일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습니다. 잠시 스쳐가는 생각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주신 음성으로 여겨졌고 그 일 이후 집사님은 피곤하게 민원창구 일 보는 것이 보람되고 감사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들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닙니다. 공중 나는 새 한 마리가 땅에 내려앉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이 없을 수가 없지요. 그 뜻을 모를 뿐입니다. 그런데 그 뜻을 헤아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욕심에 이끌리지 않게 됩니다. 그 뜻이 좋아서 하게 되고, 그 뜻이 있는 일에 크게 욕심 내지 않고 보람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자 나아만은 수레 몇 대 분의 예물을 엘리사에게 바칩니다. 엘리사는 일언지하 거절하지요. 그 엄혹한 시대에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붙들기로 결심한 엘리사이기에 아무리 많은 재물, 자리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든 사람은 욕심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맺는 말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내일 행복하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을 참고 견딥니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행복은 내일에 있지 않고 지나간 어제에 있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도 돌이켜 보면 그때가 좋았던 것 같거든요. 참 신기합니다. 여러분, 행복이 내일 오지 않습니다. 오늘 와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 성령을 조명하심을 따라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절제하면서 주님의 뜻을 붙들면서 걸어가면 오늘 예비하신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하루라도 숨겨놓으신 하루 몫의 행복이 있고 주님은 그 행복을 우리에게 안겨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올 한 해 하루하루 행복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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