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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강해8 고난을 통해 배우는 자비

2021.01.10 02:17

배재우전도사 조회 수:211 추천:1

제목 요나강해8 고난을 통해 배우는 자비 
본문 요나 4장 7~11절(구약 1289) 
날짜 2021-01-10 
설교자 전용표 목사 

1월 10일 주일 가정예배지

 

인도 / 전용표 목사


 

1. 시작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코로나에 한파까지 불어닥친 지난 한 주간, 저희들의 삶을 붙잡아주시어서 모든 것을 견디고 여기까지 오게 하심을 감사하면서 오늘도 가정에서 주일예배로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 영광 받아주옵소서. 사자굴에서도 다니엘과 동행하여 주신 주님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찬 송 : 208장 내 주의 나라와

 

3. 기 도 : 전태석 장로

 

4. 성경봉독 : 요나 4장 7~11절(구약 1289)

 

5. 특별연주 : 김만성 박우순 집사 부부

 

6. 설 교 : 고난을 통해 배우는 자비/ 전용표 목사

 

7. 기 도 : 인도자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찾아오는 어려움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만으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리는 데는 부족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깨닫는 마음을 더하사 주님의 숨은 뜻을 깨달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사람 되게 해주옵소서. 고난 속에서 주님의 긍휼하신 마음을 배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함께 힘들어하는 마당에 그래도 믿는 자로서 이웃을 향한 작은 여유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고, 작은 힘이라도 불어넣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살려고 할 때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어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 찬 송 : 327장 주님 주실 화평

 

9. 봉헌기도 : 인도자

 

10. 축 도 : 전용표 목사

 

 

 

요나서 강해 8

성경 : 요나 4:7~11(구약 1289)

제목 : 고난을 통해 배우는 자비

 

우리 윗대 어르신들이 6.25, 보릿고개, 산업화를 겪으면서 정말 어려운 시절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세대들도 결코 그에 못지않은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부도 사태인 IMF 체제를 겪었지요. 인터넷 혁명이 일어나서 글은 알아도 첨단 기계 앞에서는 까막눈 신세가 되는 경험을 했지요. 가정해체의 시대를 맞아 가족끼리 뿔뿔히 흩어져 살아가고 있지요. 그리고 코로나사태라는 마치 중세 유럽의 흑사병 사태와 같은 전대미문의 전염병을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과 우리나라 국민들을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주님이 빗장을 풀어버리실 때

 

 

하나님은 대답도 하지 않고 뛰쳐나가 못된 심보로 니느웨 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지켜보던 요나를 위해 박넝쿨을 준비하십니다. 박넝쿨은 순식간에 자라 요나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어 줬습니다. 요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요나가 좀 깨닫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거역하는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시는데, 내가 니느웨에 재앙이 임하기를 계속 바라야 되겠는가?’ 이렇게 좀 자기를 반성하고 뉘우치기를 바라셨던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 판단이 전적으로 맞다는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요나는 깨닫거나 뉘우치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번에는 벌레를 한 마리 준비하십니다.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먹기 시작하였고 다음날 동틀 무렵 박넝쿨은 시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제거하신 다음에 또하나를 더 예비하셨습니다. 동풍입니다. 동풍은 메마른 사막으로 이루어진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으로 모든 것을 바싹 태우는 바람입니다. 가림막 역할을 하던 박넝쿨을 제거하신 다음에 햇볕과 동풍이라는 고통을 겪게 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는 모든 것이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일이 맞아떨어집니다. 누군가 미리 다 손을 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징계를 베푸실 때는 지난 주에 계약해지 했는데, 갑자기 사고가 나서 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된다든지 하면서 모든 것이 누군가가 일부러 빗장을 풀어놓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사람 힘이 닿지 못합니다. 백약이 무효합니다. 그럴 때 상책은 달리 없습니다. 깨닫는 겁니다. 깨닫고 무릎을 꿇는 겁니다. 어떤 고난과 징계는 깨닫고 무릎 꿇으면 풀리기도 하거든요.

내 잘못으로 인해 징계로 주시든, 아니면 내 잘못과 상관없이 연단으로 주시든 간에 우리에게 오는 고난을 소화 시키는 최고의 비결은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은 깨달음의 기회로 주신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던가를 깊이 반성한 다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빨리 깨닫고 엎드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균형 잡힌 신앙의 중요성

 

 

 

그런데 요나는 깨닫기보다는 더 화를 내고 하나님께 덤벼듭니다. 8절에 보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한 번 더 물으시지요. 9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9)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이 질문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만 이미 감정의 통제력을 잃은 요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라고 하나님을 향해 퍼붓듯 대답합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을 향한 경외고 뭐고 없습니다. 내 편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조차도 공격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박 넝쿨 하나 죽은 것으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은 ‘박 넝쿨 은 아까워하면서 저 많은 니느웨 사람들 죽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냐? 아니 재앙이 임해 죽기를 바란단 말이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박넝쿨보다는 니느웨 사람 12만여 명의 사람 목숨이 훨씬 소중한데, 어째서 요나는 박넝쿨 죽은 것은 아까워하면서 니느웨 사람들 죽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잘못된 신앙 때문입니다. 가령 이런 것입니다. 한동안 세상을 힘들게 했던 아이에스(IS)라는 이슬람 테러집단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람을 납치 해서 참수를 하는데, 그 끔찍한 장면을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방송을 합니다. 사람 목을 자르면서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강아지가 다친 것은 안타까워하고 슬퍼합니다. 어째서 사람이 그렇게 됩니까? 그들의 신앙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지금 집도 가족도 다 버리고 목숨 걸고 진리를 지킨다고 믿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이 신(神)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하는 일은 뭐든지 옳은 일이고 선(善)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을 납치해서 목을 쳐 죽이면서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겁니다. 지금 요나가 이것과 거의 같습니다. 박넝쿨은 아까운데 니느웨 사람 12만 명 목숨은 아깝지 않습니다.

몇 주 전에도 C. S. 루이스의 말을 빌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정말 무서운 신앙이 뭐냐 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우리가 다 옳고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틀렸고 마귀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 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 옳고, 우리의 방법은 뭐든지 바르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해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누가 보더라도 옳으냐, 우리가 하는 방법이 누가 보더라도 바르냐, 바르지 않느냐를 봐야 하는 것이지요.

지난 주간 성도들과 통화를 하는데 많은 분이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목사님, 정말 힘들어요. 직장 동료들이 쳐다보는 눈이 예전 같지 않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 너무 싫어합니다. 직장에서 왕따 당하는 분위기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설명해도 변명으로만 들릴 것이고, 또 몇몇 교회만 잘 한다고 해결 될 상황도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교회가 어떤 신앙으로 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지성, 감성, 의지, 이 지정의(知情意)의 균형을 갖춘 신앙으로 가야지 이 균형을 놓치게 되면 어렵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은 뜨거운 것도 중요합니다만 지성도 중요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은 뜨거운 감성의 역할이 아니라 지성의 역할입니다. 지성이 약화되니까 신앙이 맹목적이고 광적이고 비상식적이 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니까 우리는 코로나 안 걸린다, 식사해도 된다, 이런 교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겁니다. 이게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니,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발이 땅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실 것이니 안 죽는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진짜 신앙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안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안 뛰어내리는 것이지요. 조심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모두가 힘들어하는 마당에 함께 조심해서 어쨌든 확진자 숫자를 낮춰서 빨리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고 좋은 믿음입니다. 그래야 장사하는 사람들도 숨통 트이고, 유치원, 학교도 정상수업 하고, 교회도 다시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도 나누고 할 것 아닙니까? 잘못된 신앙은 차라리 신앙이 없는 것보다 위험합니다. 신앙이 없으면 신앙을 가지면 되지만 잘못된 신앙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자기와 주변 사람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균형잡힌 신앙으로 가야겠습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을 배우며

 

 

요나가 가진 신앙은 나, 우리라고 하는 작은 울타리에 갇혀서 전혀 세상을 품는 큰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신앙이지요. 그런 요나를 향해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지시는 것으로 요나서가 끝을 맺고 있습니다. 10, 1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변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10,11)

 

네가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았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박넝쿨을 아끼면서 니느웨에 있는 저 12만 명이 넘는 사람 목숨은 어째서 아끼지 않는 것이냐? 너희 편이 아니기 때문이냐? 이러한 질문으로 끝맺고 있는 이유는 요나서를 읽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 대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너도 네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저 사람이 안 되기를 바라는 것이냐?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불쌍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잘 됐다는 마음을 갖고 있느냐?

사람이 평소에는 내 편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가급적 안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던 사람도 바뀔 때가 있습니다. 큰 고난을 겪거나 크게 아플 때입니다. 그때는 내 편 네 편 없이 그저 모든 인생이 불쌍하게 여겨지는 마음이 생깁니다. 크게 아프고 나면 저 길가에 시들어가는 이름모를 풀 한 포기에도 마음이 갑니다. 그것은 갑자기 착해져서 갖게 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는 고난을 통해서 배우라는 것인데,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모든 것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마음이 대아(大我)이고, 나와 우리만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소아(小我)입니다. 요나는 안타깝게도 대아(大我)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옹졸한 작은 자아인 소아(小我)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다 좁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아도 여전히 좁습니다. 그런 우리를 넓히시려고 하나님이 때로는 아프게도 하시고, 어렵게도 하시고, 죽을 만큼 힘들게도 하시는 겁니다. 힘들어 보면 다 불쌍해 보입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게 사는 것이 없어요. 다 불쌍한 거예요. 아파보면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합니다. 하찮은 생명이란 없어요. 다 살려고 바둥거리고 있는 게 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상주에 가면 존애원(存愛院)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의료원입니다. 임진왜란 때 다른 곳도 그렇겠지만 상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북천전투라는 큰 전투가 상주에서도 있었는데 거기서 조선군이 패하여 1만 7천이 넘는 사람이 전사하였습니다. 상주 땅은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죽으니까 전염병이 돌아서 살아남은 사람도 질병에 시달립니다. 7년간 계속된 전란에 그 넓은 상주 벌판도 황폐해져서 굶주림은 극에 달했습니다. 전쟁이 끝이 나고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 그래도 재산이 어느 정도 있던 사람들 열 세 명이 모여서 십시일반 돈을 내어 병원 건물을 짓고 의원을 고용해서 병자들을 치료해 준 것입니다. 자기 집안 먹여 살리기도 빠듯했을 것인데, 자기 집안만 생각지 않고 상주지역민 전체의 고통을 짊어지기로 했던 것이지요. 참 훌륭한 선조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도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저들도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것입니다. 또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고통을 통해 배울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나도 어렵고 모두가 어렵지만 이런 때일수록 아는 사람이나, 지역주민들 가게를 일부러라도 한 번씩 더 이용해주려는 작은 배려를 실천한다면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맺는 말

 

 

처마에 빗물이 떨어지면 땅이 움푹 팹니다. 그런데 거기에 물이 고이면 그렇게 맑고 영롱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영롱한 빛을 발하는 성도로 살아 주님이 복 주시고 붙들어 쓰시는 그릇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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