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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강해7 내로남불과 박넝쿨

2020.12.27 09:40

배재우전도사 조회 수:201 추천:1

제목 요나강해7 내로남불과 박넝쿨 
본문 요나 4장 1~6절(구약 1288) 
날짜 2020-12-27 
설교자 전용표 목사 

12월 27일 주일가정예배지

 

인도 / 전용표 목사

 

1. 시작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를 인도하사 마지막 주일까지 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큰 어려움을 가져다 준 한 해였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치지 않았음을 기억하면서 감사로 예배하오니 우리 예배를 받아주옵소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찬 송 : 73장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1,3,4절)

 

3. 기 도 : 김태돌 장로

 

4. 성경봉독 : 요나 4장 1~6절(구약 1288)

 

5. 특별연주 : 전찬영 학생

 

6. 설 교 : 내로남불과 박넝쿨/ 전용표 목사

 

7. 기 도 : 인도자

나와 너, 우리와 너희로 가르고, 하나님이 나와 우리에게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기를, 너와 저들에게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기를 바라면서 살아온 모습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모두의 하나님이듯이, 그리고 불만하며 불만족하며 산 우리를 변함없이 안아주신 하나님임을 기억하면서 올 한 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 일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끌어 안고자 결심하오니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이 마음이 내년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서 좋은 결실로 이어지도록 은혜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 찬 송 :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9. 봉헌기도 : 인도자

 

10. 축 도 : 전용표 목사

 

 

 

요나서 강해 7

성경 : 요나 4:1~6(구약 1288)

제목 : 내로남불과 박넝쿨

 

어떤 분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 일이 있어 갔다가 강가 언덕 위에 세워진 2차 세계대전 전승탑을 보고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보통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들을 보면 무기를 들고 달려 나가는 군인들과 깃발을 세우는 사람들을 조각해 놓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키에프에 있는 전승탑은 언덕에 올라 손을 펴고 서 있는 어머니를 조각한 상(像)이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람에게 전승탑인데 어째서 어머니를 조각해 놓은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대답을 합니다. “전쟁에 있어 가장 절박한 것은 자식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머니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든 적국의 어머니들이든 똑같습니다. 어머니들의 마음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 뜻을 담아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조각한 것입니다.” 이기기를 골몰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갖가지 경쟁에서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특히 상대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경쟁자일 때는 더 간절해지지요. 그런데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게 하시기 위해 누군가에게 패배의 쓰라림을 선사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시는 분일까요?

요나는 니느웨가 망해야 이스라엘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의 바람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내로남불 신앙

 

 

1, 2절을 봅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1,2)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신 분이어서 틀림없이 니느웨를 봐주실 것임을 알고 다시스로 도망쳤던 건데 기어코 다시 붙잡아 오셔서 이런 못 볼 꼴을 보게 하시느냐는 불만입니다. 그런데 보통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씩씩거리면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퍼부으며 말했습니다. 원문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나가 말하고 있는 것이 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말과 같이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셔서 재앙을 내리려 하다가도 돌이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나가 말한대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요나가 불만입니까? 자기들에게만 그런 하나님이면 되는데, 저 자들에게도 그런 하나님이 되어 주시니까 불만입니다.

가령 나는 주일도 잘 지키고, 헌금도 잘 하고, 저 사람은 보니까 날씨 좋으면 등산 가고, 날씨 안 좋으면 영화 보러 가고 하면서 할 것 다 하고 살아가는데, 저런 사람도 사랑해 주시고, 복을 주시고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불편하지요. 신앙생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나나 대충 하는 저 사람이나, 아예 안 하는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게 없어요. 불만 생길만 하지요. 그런데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남들보다 하나님께 잘 보여서 복을 더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목적이라면 참 유치한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자 동시에 저들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만인의 아버지이십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고 유치한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나와 너, 우리와 저들을 자꾸 구분짓고 가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도 나와 우리만의 하나님이라고 단정짓습니다. 너와 저들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했을 때는 용서하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저와 저들이 잘못했을 때는 정확하게 따져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내로남불이지요. 참 골치 아픈 신앙이 아닐 수 없는데 사실 이런 신앙이 우리에게 많습니다. 참답게 말씀을 배우고 깨우치면 이런 우리 모습을 깨닫고 새로워지게 됩니다. 그것이 곧 천국에 이르는 변화입니다.

 

 

못된 심보 신앙

 

 

요나는 더 이상 이런 꼴 보기 싫으니 자기 생명을 거두어가 달라고 합니다. 죽고 싶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망나니라도 부모 앞에서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부모 앞에서 죽고 싶다, 죽을 것이다는 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부모 가슴에 못 박는 말이지요. 그런데 요나는 자기 감정에만 충실해서 그것이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든 말든 내뱉고 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어이가 없으셨는지‘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하시지요. 참 점잖게 말씀하세요. 그런데 요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나가버립니다. 4, 5절 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4,5)

 

반항기가 많은 사춘기 아이들이 뭐 물어보는 것을 싫어하지요. 물어보면 짜증 내면서 문 닫고 방에 들어가 버립니다. 요나가 딱 사춘기 아이들 수준입니다.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밖에 나가서 노숙(露宿)을 한다고 난리입니다. 이거 뭡니까? 하나님 괴롭히기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반항하면서 밥도 먹지 않고 자학 모드로 돌입하지요. 그러면 부모 마음 아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태신앙으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 했지만 지금은 신앙생활 접었다고 합니다. 왜 접었냐고 물어보니까 아버지에게 섭섭한 것이 있어서랍니다. 아버지가 교회 집사님이신데, 자기가 신앙생활 하지 않으면 아버지 마음이 아프니까 아버지 마음 아프라고 일부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참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인생이나 신앙을 볼모 삼아서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입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읍 동쪽으로 가서 자기를 위해 초막을 짓고는 니느웨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나 지켜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겁니까? 재앙이 불어닥쳐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참 못된 심보입니다만 어떤 사람도 이러한 요나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 사람에게 좋은 일 생겼다는 말 들으면 기분 나쁘고, 그 사람에게 나쁜 일 생겼다는 말 들으면 괜히 기분 좋고 한 사람 한 둘 정도는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참 힘든 마음인데, 세익스피어는 이런 마음에 빠진 사람을 ‘녹색 눈의 괴수’라고 불렀습니다. 눈이 녹색으로 바뀐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려고 덤비는 것과 같이 이런 마음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꼭 오늘 요나처럼 좋지 못한 일 일어나기를 바라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시골에서 목회하는 어떤 목사님이 기독신문을 보다가 신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면서도 라이벌 의식이 있던 친구 목사님에 관해 대문짝처럼 실린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친구 목사님의 교회가 5년 만에 수백 명으로 부흥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시골에서 오십 명도 되지 않는 교회에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은 갑자기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기분이 매우 얹잖았습니다. 그 정도에서 그치면 되는데 그때부터 목사님은 친구 목사의 교회가 시험드는 일이 혹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면서 안테나를 곤두세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참 고약한 마음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잠언 말씀을 보다가 잠언 21장 10절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남이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인의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목사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인이었던 겁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데 행복할 리가 있겠으며 목회가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불행하기를 바라고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주님 말씀대로 어딜 가든지 누굴 만나든지 평화가 임하기를 비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꾸역꾸역 평화를 빌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그 평화가 내게 돌아옵니다. 내 인생이 평화롭고 평탄하게 되는 겁니다.

 

 

박넝쿨을 주시는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이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뛰쳐나가 니느웨가 망하나 안 망하나 지켜보는 요나를 위해 놀랍게도 하나님은 박텅쿨을 하나 마련해 주십니다. 6절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6)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참 속도 없으신 분입니다. 선지자인 요나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대변인입니다. 시키는 대로 말하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그런 요나가 오히려 주인인 하나님을 향해 마음에 들지 않게 일한다면서 울그락 불그락 해서 큰소리를 치고 하는데도 ‘너 너무 심하게 화낸다, 네가 화내는 것이 합당하냐?’ 이러십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고,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고 앉아있는 요나인데, 행여 뜨거운 햇빛에 몸 상할까봐 박넝쿨을 자라게 하셔서 그늘을 지워주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독재자였으면 당장에 잡아다가 볼기짝을 쳤겠지요. 요나는 하나님이 자기 생각 같이 일하시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습니다만 만약 하나님이 자기 같았으면 하나님을 향해 불효자식처럼 불만을 토하고 소리 지르고 대답도 않고 박차고 나가는 사람을 가만 놔뒀겠습니까? 요절을 내도 냈겠지요. 하나님이 요나 자기 생각처럼 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요나로서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어서 천만다행인 거지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속이 터질 것 같아도 참아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우리 인간하고 비슷한 분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잘못하면 금방 화냈다가 좀 잘 대해드리면 좋아해 주고 복도 주고 하면서 감정적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하나님은 사실 태산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6절에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고 한 부분은 ‘요나를 악에서 빼내려 하심이었더라’로 번역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박넝쿨을 통해 요나를 악에서 빼내려 하신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이렇게 내게 대들고 대답도 않고 박차고 나가는 너 같은 불효자도 뜨거운 햇빛에 몸 상할까봐 박넝쿨을 준비해 주는 나를 보면서 저들을 그토록 미워하고 망하기를 바라는 네 자신이 좀 부끄럽고 찔리고 해야 하지 않느냐? 그것을 깨닫고 저들을 향한 미움과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미움과 경쟁심을 이기기 힘들어 하는지 잘 아십니다. 용서하기 힘들어 하는 존재인지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용서하라고 하시기보다는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도록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박넝쿨입니다. 저도 예전에 그토록 용서가 안 되던 것도 하나님께서 제 형편을 풀어주시니까 마음이 넉넉하고 너그러워져서 용서가 되더군요. 사람은 예수님 같은 용서를 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용서는 그냥 좀 너그러워지는 정도, 잊어버리는 정도입니다. 그런 용서도 어려워요. 그래서 하나님은 박넝쿨을 주셔서 그런 용서라도 하고 살라고 하십니다. 저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박넝쿨 하나씩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맺는 말

 

 

오늘이 2020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정말 모두에게 엄청난 한 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올 한 해로 끝나지 않고 내년을 위한 밑그림이 되고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해 낙과(落果)가 많이 되어 거든 것이 부족하다면 다음 해에는 떨어진 낙과가 거름이 되어 풍성한 결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내 인생을 힘들게 했던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면 내년에 인생 농사가 좋으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올해 내가 만난 사람들, 덕이 된 사람이나 해가 된 사람이나 모든 사람을 팔벌려 안아주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심정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한다면 내년이 사뭇 다르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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