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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 43 의외의 사람 
본문 요한복음 19:38~42(신약 182) 
날짜 2020-10-04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43

성경 : 요한복음 19:38~42(신약 182)

제목 : 의외의 사람

 

 

 

조선시대 최고가는 스승 셋을 꼽으라면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 그리고 남명 조식일 겁니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1501년생 동갑내기이고, 이이는 그보다 33년 늦게 태어났지만 같은 시대에를 살았습니다. 율곡 이이의 제자들은 정계에 진출하여 서인이란 당을 이루어 조선중기 이후 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권세와 명예와 부를 누렸습니다. 퇴계 이황의 제자들은 남인이라는 당이 되었는데 조선중기 이후 줄곧 야당이었습니다. 반면 남명 조식의 제자들은 북인이라는 당을 이루었지만 일찌감치 당파싸움에서 퇴출되고 대부분은 저 시골에 묻혀 글 읽으며 처사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이 일어나자 재미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권세를 누리던 사람들은 임금을 따라 도망다니기 바빴던 반면 초야에 묻혀 살아가던 남명 조식의 제자들은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서 싸웠던 것입니다. 남명 조식의 제자들 중에는 57명이나 되는 이들이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켜 싸웠습니다. 임진왜란 때 3대 의병장을 꼽으라면 홍의장군 곽재우, 합천의 내암 정인홍, 고령의 송암 김면 장군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이 다 남명 조식의 제자이고, 곽재우는 조식의 제자이자 사위입니다. 정작 나라가 위태롭고 어려울 때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은 중앙정부 요직에 앉아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 아닌 저 시골에서 이름없는 처사로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마19:30, 20:16)고 하셨는데, 거기서 먼저와 나중이란 말은 꼭 시간상으로 먼저와 나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된 자는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돋보이는 자리에 있는 사람, 남들보다 뭔가라도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기도 됩니다. 교회로 본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되겠지요. 반면 나중 된 자는 남들보다 덜 가진 사람이거나 덜 주목받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정작 어떤 큰 문제가 터졌을 때 남들보다 더 유명하거나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보다는 평소 이름도 없고 가진 능력도 변변찮던 사람들이 더 나서서 더 희생을 하더라는 의미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의외의 일이 생기더라는 말씀입니다.

 

 

의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딱 그런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고 처참하게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른 사람들은 평소 그 유명하던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 같은 제자들이 아닌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같이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제자들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 시신을 요구해서 받아왔고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많이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예수님 시신을 정성스럽게 염을 하고 세마포 옷을 입혀서 아리마대 요셉이 새로 파 놓은 집안 무덤에다가 안장을 했습니다(마 27:60).

우리는 이 이야기를 무심코 읽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만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은 이들이 한 일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어느 나라건 반역죄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는 일은 목숨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조선시대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수양대군 세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능지처참형으로 세상을 마감한 사람들을 사육신(死六臣)이라 부릅니다. 동료인 이들을 배반했던 사람은 신숙주이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숙주의 절개가 녹두나물처럼 잘 변한다 해서 녹두나물을 그때부터 숙주나물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모반죄로 죽은 사육신의 시신은 후한이 두려워 수습해 주는 이가 없어 사형터에 나뒹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이 밤에 몰래 수습해서 한강변에다가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공회에서 받은 죄목은 신성모독과 성전모독이었고,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공식적 죄목은 반역죄였습니다. 그러니 누가 반역죄로 십자가형을 받은 이의 시신을 수습하는 무시무시한 일에 나서겠습니까? 제자들 조차 도망치고 숨어버렸습니다. 예수님 한창 인기가 있으실 때는 그 옆에서 온갖 영광을 함께 누리면서 오른편 왼편을 다투던 자들이 말이지요. 반면에 전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두 사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타나서 그 위험천만한 일을 했습니다. 38절에 이들도 예수님을 믿는 제자였지만 유대인이 두려워 숨기며 살던 사람들이었다고 한 것을 봐서 두 사람은 평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인지 표도 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있자 나서서 역할을 하는 겁니다.

먼저 된 자가 나 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남의 신앙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속단하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의외일 수 있습니다.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산잡으면 못할 일입니다. 계산이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다고 알고 믿지만 당시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은 반역죄로 죽은 사형수입니다. 장례 치루겠다고 괜히 나섰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자기뿐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반역의 무리로 찍혀서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온갖 불이익과 위협에 시달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 시점에 ‘이렇게 예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런 계산 가지고 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이니까 하는 겁니다. 그래도 스승으로 믿고 따랐던 분인데, 그 분의 시신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독수리 밥이 되고 들짐승 밥이 될 것을 생각하니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는 겁니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나선 것이지요.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구약성경 사무엘하(17장)에도 나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왕권을 장악하자 다윗은 신 신을 겨를도 없이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지방으로 도망을 칩니다. 급히 나오느라 비상식량도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 지방 사람 중 바르실래라는 노인이 와서 다윗 일행에게 음식을 제공해 주지요. 이미 나라의 모든 실권이 압살롬에게 다 넘어갔고 다윗은 서산에 지는 해입니다. 다윗 도와줬자 덕보다는 낭패볼 것이 더 많은 상황입니다. 권력을 장악한 압살롬이 이 알면 가만 놔두겠습니까? 그런데 그 위험천만한 일을 합니다. 왜 합니까?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옳으니까 한 겁니다. 내 집에 온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이고, 또 압살롬은 스스로 왕이 된 자이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친히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니까 아무리 쫓겨났더라도 왕으로 대우를 하는 겁니다.

무턱대고 사는 것보다는 계산 해 가면서 사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하지만 너무 계산에만 집착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로 살기 어렵습니다. 그저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이 바르다 싶으면 계산상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하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도리다 싶으면 하는 겁니다. 그래야 인간답게 살게 되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있습니다.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와서 예수님 시신에 염을 했습니다.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은 최고급 장례용품으로 값이 비샀습니다. 그런 것을 백 리트라, 35kg 이나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염을 마친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아리마대 요셉이 가족 묘로 쓰려고 근래 새롭게 파놓은 무덤에다가 안치하였습니다. 이들은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흘 후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이 사람들이 드렸던 세마포와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증거와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저 가족 묘로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 무덤을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자의 부활의 장소로 삼아, 오고오는 모든 세대가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 아리마대 요셉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쫓겨나서 모든 조건이 불리했던 다윗이 극적인 반전으로 압살롬을 물리치고 다시 왕위를 회복하지요. 그러자 바르실래에게 은혜를 갚겠다며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때 바르실래는 나이 팔십에 무슨 영화를 누리겠냐며 거절하면서 정 그렇다면 아들 녀석 데려가서 긴히 써달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바르실래 대신 그 아들 김함을 데려가서 자리를 주고 나라를 섬기도록 하지요. 바르실래가 알고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계산해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다 싶은 일, 사람의 도리를 다 하기 위해 한 일, 신앙양심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은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갚아주십니다.

지난 주간 읽었던 아주 감동적인 역사 이야기가 있어 나누고 마칠까 합니다.

1871년 6월 10일 미국이 조선의 문호개방을 요구하며 싸움을 걸어온 사건이 신미양요(辛未洋擾)입니다. 당시 미군은 최신식 전투함 5척, 신식포 85문, 해병대전투병 1,230을 앞세우고 강화도로 쳐들어왔는데 남북전쟁을 막 끝낸 터라 전투경험이나 무기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조선은 어재영 장군의 지휘 아래 임진왜란 때 쓰던 화포와 구식화승총과 활과 창 등으로 무장한 구식군대 600명으로 맞섰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미군 전사자는 3명, 조선군은 어재영 장군을 포함 350명이 전사, 전투가 아닌 일방적 학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국무장관 포스터는 “이 전투는 미국 해군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외교의 실책을 폭로한 최고의 사건이다.”라며 이 전투에서 진정한 패배자는 자신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직접 전투에 참전했던 미군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군은 근대적인 무기를 한 자루도 보유하지 못한 채 노후된 전근대적인 무기를 가지고서 근대적인 화기로 무장한 미군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슐레이 대령이 남긴 기록입니다. “조선군은 용감했다. 그들은 항복 같은 건 아예 몰랐다, 무기를 잃은 자들은 돌을 집어 던지고 흙을 던지면서 맹렬하게 저항했다. 전세가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되자 살아남은 조선군 백여 명은 포대 언덕을 내려가 한강물에 투신 자살했고 일부는 우리가 들고 있는 총검에 달려들어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미군 엘버트 가스텔의 기록입니다. 뻔히 죽을 전투임을 알면서도 조선의 젊은이들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어갔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했던 조선의 젊은이들의 기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기록들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나라는 희한하게도 민초들이 일어나서 나라를 구했습니다. 이름없이 산화해 간 저 젊은이들 같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우리 민족에게서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민족은 국란극복을 해내는 독특한 DNA가 있습니다. 참 희한한 민족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민족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요 은사요 기질입니다.

 

 

맺는 말

 

 

이 기질과 은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깃들어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보내는 우리 사회에 등불이 되십시오. 저 사람 예전에 저런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네! 저렇게 양심가인줄 몰랐어! 겉으로는 차가워보이는데, 속은 따뜻한 사람이었네! 비판하는 말만 잘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칭찬하는 말도 잘 하고 위로되는 말도 잘 하는 사람이었구나! 의외의 사람, 하나님께서 위기의 때에 사용하시는 의외의 사람으로 한 주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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