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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42 성공과 실패 
본문 요한복음 19:28~30(신약181) 
날짜 2020-09-2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42

성경 : 요한복음 19:28~30(신약 181)

제목 : 성공과 실패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첫째,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산 것이 후회된다고 합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 없는데 쓸데없이 걱정을 달고 살았다는 것이지요. 둘째, 뭔가 하나에 미친 듯이 빠져 살아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합니다. 셋째, 좀 더 도전적으로 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합니다. 한 번 삐끗하면 저 나락에 떨어져 인생이 어찌 될지 모르니 대부분 사람은 될수 있으면 안전한 길 선택해서 살려고 하지요. 뭐 대부분 사람이 다르지 않습니다. 넷째, 내 감정을 솔직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합니다. 참 남 눈치 많이 보며 살지요. 이것 저것 계산도 많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고 살기 쉽상입니다. 함께 살아가야하는 세상이니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나를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한 번 뿐인 인생이라는 점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다섯째, 나의 삶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 후회된다고 그럽니다. 남의 눈 의식하는 문화가 많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 특히 더 그렇지요. 주체성이 없는 삶을 평생 살면 후회되겠지요. 여섯째,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합니다. 교회 와서 인사할 때는 하는데 돌아가서는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한다, 이 말 참 어색하지요. 부모 돌아가시고 난 뒤 제일 후회되는 것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일곱째, 친구들에게 더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쁘게 살다보면 친구 다 떨어지지요. 인생이 힘들어지면 더 그렇구요. 여덟째, 자신감 있게 살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교육이 중요해졌습니다만 예전만 해도 어디 그랬나요? 못하면 못한다고 윽박지르고 야단치고, 그러니까 자신감이 오히려 다 떨어지지요. 또 자신감을 교만의 일종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많았습니다. 인생을 사는데 자신감이 참 필요한데 말이지요. 아홉째, 세상의 많은 나라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코로나로 더 그렇게 되겠네요. 열 번째, 결국 행복은 내 선택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겁니다. 결국 인생은 내 선택의 결과를 돌려받는 것이지요. 순간순간 불행의 씨앗을 선택하면 불행을 거두며 사는 것이고 행복의 씨앗을 선택하면 행복을 거두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어렵습니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긴데,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공감이 많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공감이 간다는 것은 우리 또한 죽을 때 비슷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겠지요. 어떻게 하면 죽을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죽을 수 있을까? 지금 살기도 바쁜데 뭘 죽을 때 걱정을 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질문은 죽을 때를 위한 질문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지요.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를 물질의 문제로 생각들을 합니다만 인생의 성공과 실패라는 것은 물질 문제가 아니지요. 후회의 문제일 것이라 봅니다. 후회가 덜 한 인생이 성공 인생이고 후회가 많은 인생은 물질을 많이 모았다 해도 실패 인생이겠지요.

 

 

내가 무엇인가를 아는 인생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헬라어로‘테텔레스타이’인데 이 말은 ‘임무를 완수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일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인지를 아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그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법이지요.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감당해야할 일이 나무에 달려 죽는 일임을 처음부터 아셨던 것이지요.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은 그 일을 이제 다 이루고 죽는다는 것이지요.

전에 오셨던 몽골 김성욱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몽골사역의 어려움 중에 이런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같이 사역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겼더니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고 안 나타나더랍니다. 아무 말도 없이 말이지요. 한 석 달 정도 지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타나더랍니다. 유목민 기질이 있어서 좀 힘들고 하면 훌쩍 떠난답니다. 그 사람 뿐 아니라 그 나라 풍토가 다 그렇답니다. 중요한 일을 맡기기가 참 힘이 들지요. 내가 누구인지 아직 깊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면 끝까지 가기가 어렵습니다.

살다보면 가끔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사는 것이 버겁고 끝도 없을 것 같고 계속 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누군가에게 속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그냥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게 못하지요. 도망치듯이 던져 버렸다가도 또 다시 그 일을 잡게 되지요. 하기 싫어서 도망쳤다가도 또 다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해야할 사명은 그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하기에 놓지 못하는 일, 그것이 곧 내게 주어진 사명이고, 벗어나려해도 놓아주지 않는 자리가 곧 내 자리입니다.

목사님들 중에는 독특한 은사가 있는 분들이 계세요. 가는 곳마다 예배당 건축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아는 분들 중에도 그런 분이 몇 분 계시는데, 여기 계실 때 그렇게 고생해서 예배당 건축했는데, 다른 곳에 가셨는데 거기서도 건축하고 계시더라고요. 우스개소리로 죄많은 목사가 건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고 건축하면서 빚어지는 갖가지 문제들 하며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이 따르지요. 그래서 생겨난 말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든데, 두 번 세 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게 그분들 사명 같습니다. 힘들어도 그 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해냅니다. 사명이면 감당할 기질과 은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벗어나고 싶고 도망치고 싶으신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 괴로움을 안고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끝까지 가 내셨습니다. 그래서 다 이루셨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내가 해야할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금상첨화지요. 그러나 대부분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내 일이고 벗어나고 싶은 역할이 내 역할인 경우가 많습니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도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 감당한 것 같다’라고는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인생

 

 

예수님은 마지막 영혼이 떠나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완성하신 일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이 소개하고 있는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신 일을 몇가지 생각해 본다면 이런 것이지요. 인생을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쳐버린 한 여인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셨지요. 너무 망가지고 꼬여버려서 스스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지경이던 그 여인의 꼬인 인생의 실타레를 풀어내셨습니다. 새롭게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38년 간 베데스다 연못에 기거하면서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할 때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낫는다는 무지개 같은 허상에 인생을 걸고 덤벼 봤지만 제 힘으로는 움직일 수도 없는 병든 육체로 인해 번번히 경쟁에서 지고 마는, 참 절망스런 인생을 사는 사람을 만나서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더 이상 무지개 같은 허상을 붙들고 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남을 이기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완전한 절망, 절대절망인데, 아무리 절대적인 절망 상태가 찾아온다해도 예수 안에서는 그것도 이겨내는 절대 생명이 있음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어서 죽으시는데, 19장 34절을 보면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고 나옵니다. 물과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내어주시면서 그 일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참다운 인간으로 살 수 있으며,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참인간의 삶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내어주는 삶, 누군가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팡이가 되어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물과 피를 쏟아내는 삶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하고 따라야하는 최상의 삶의 모습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군에 가 있는 첫째에게서 가끔 전화가 옵니다. 전화를 통해 군생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예전 제가 군생활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곤 합니다. 훈련병 때 이동 중에 군가를 부르는데, 소리가 작으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했습니다. 그러니 다들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릅니다. 이건 뭐 노래가 아니고 악이지요. 그런데 그 와중에 한 친구가 입만 달싹달싹 립싱크를 합니다. 서울 뺀질이라고 별명이 붙은 친구였습니다. 나중에 일과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몇이서 그 친구에게 어째서 군가를 소리높여 부르지 않느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서울 큰 교회 찬양사역자라서 성대를 상하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다는 겁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순간 멍해지더군요.

20세기 대표적인 기독교사회학자이면서 윤리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 6. 21~1971. 6. 1)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경지는 이타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최고로 도덕적인 사람은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도덕이고 철학이고 종교고 다 따져봐도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지요. 철저하게 버려진 인간, 절망속에 던져진 인간을 위해 사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신 예수님입니다.

 

 

 

맺는 말

 

 

어떻게 하면 죽을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죽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하는 질문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고민하는 오늘을 위한 질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며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우리가 그런 정도로는 살기 힘들 것입니다. 아쉬움이 남고 후회도 남겠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 감당해야할 몫은 감당하고 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이기적인 사람,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닌, 그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도 하고 희생도 해 보면서 사는 사람으로 살아, 그 사람 예수님 닮은 구석이 있었어라는 평이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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