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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강해 36 죽지 않는 사람
2020.08.17 17:36
제목 | 요한복음강해 36 죽지 않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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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7:1~5(신약17) |
날짜 | 2020-08-16 |
설교자 | 전용표 목사 |
요한복음강해 36
성경 : 요한복음 17:1~5(신약 175)
제목 : 죽지 않는 사람
도라지나 더덕이나 인삼도 5년 이상 키우기가 어렵습니다. 뿌리가 다 썩기 때문입니다. 5년 이상 키우려면 반드시 옮겨심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생 도라지나 더덕, 삼은 10년 20년 100년도 삽니다. 참 신기합니다. 약초를 오래 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덕은 스스로 옮겨 다니며 산다고 합니다. 땅의 기운이 다하면 모든 영양분을 줄기를 타고 옆으로 옮겨다니며 산다고 합니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확인할 길은 없고, 그분의 말대로라면 그 또한 자연의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어보고자 오랜 세월 경험을 축적하고 축적한 것이 결국 지혜입니다. 식물인 더덕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지혜를 축적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이 갈수록 지혜를 버리고 순간의 즐거움과 만족을 추구하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무시하고 저버리고 오로지 지금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일면 맞지만 그런 식으로 현재를 위해 미래의 것도 포기하거나 당겨써 버리는 식으로 살면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이며 또 이 자연이나 지구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신앙이라는 것은 원래가 영원을 추구하는 것인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이 현세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다 여기에 빠져 살아가는 추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이것을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를 몸으로 알아간다
17장은 십자가 지실 일을 앞두고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라는 것이 우리 사람이 흔히 뭔가 어려운 문제를 놓고 해결을 바라며 드리는 기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 것처럼 아버지께서도 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 즉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 제자들을 세상에서 보존해 달라, 나를 믿는 자들이 나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 이런 기도들입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들이 영화롭게 되는 것은 면류관 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십자가의 길을 포기없이 중단없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심으로써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를 간곡히 바라고 기도하십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시면서 예수님은 문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3절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3)
오늘은 이 3절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생은 말 그대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복음은 사실 이 영생에 관한 복음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명, 영생, 거듭남,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거듭나는 길, 생명을 얻는 길, 영생을 얻는 길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영생 얻는 길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독생자 예수를 믿는 것이 영생 얻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영생을 얻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냥 영생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얻는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건데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를 믿지 않아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대충 아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교회를 욕하는 사람중에도 성경도 많이 알고 예수님도 잘 아는 사람이 있던데 그런 사람도 그럼 영생을 얻은 것이냐?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서 안다는 말은 그렇게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노스코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몸으로 체득한다,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가령, 제가 오랜만에 해운대 바닷가에 가서 ‘야, 바다다!’라고 하는 것과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험한 파도와 싸워가면서 온몸으로 바다를 배운 전문 뱃사람 아는 바다가 같을 리 없습니다. 저는 그저 눈에 보이는 바다를 알 뿐입니다. 어부는 바다가 때로는 얼마나 고맙고 때로는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그리고 바다의 그 끝없는 크기와 위력이 온몸에 고스란히 베여 있습니다. 3절에서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말은 바로 어부가 바다를 아는 것과 같이 아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살면서 몸으로 체득하고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영생이 뭐냐? 하나님을 몸으로 알아가는 것이고 예수를 몸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신비한 신앙체험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신앙체험으로 하나님을 알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수처럼 살면서 예수를 깨달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등부 시절 우리를 가르치셨던 박전도사님은 하루에 몇 장씩 읽고 기도는 몇 분을 하는지 만날 때마다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매직으로 팔뚝에다가 성경을 읽자라고 큼지막하게 적어주셨습니다. 학생들은 그게 싫어서 되도록 박전도사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다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박전도사님을 그리워합니다. 살아보니까 왜 그분이 그토록 강조하셨는지 알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 그때 우리들 팔뚝에다가 잘 지워지지도 않는 그 굵은 매직으로 ‘성경을 읽자’라고 쓰셨던 그 심정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고,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더 나아가서 이런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를 닮아가려고 애쓰다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느끼고 깨닫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를 아는 것이고, 그 앎이 바로 영생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어부는 결코 자기가 바다를 다 안다고 자신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 바다에서 50년을 살았는데 하면서 파도가 이는 데도 만만히 보고 바다에 나가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경력이 오랠수록 바다를 더 겁냅니다. 바다를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고 할 때 그 안다는 말이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완전히 아는 단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알아간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수를 알아가는 과정을 계속해서 밟아가는 것이 곧 영생입니다. 영생은 그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상태가 아닌 것이지요. 만약 영생이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늙고 아픈 상태로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영원을 사는 또 하나의 길
예수님은 원래가 영원한 분입니다만 그분이 영원히 사시는 방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본받아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영원히 사십니다.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 안에 아버지와 함께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요14:23). 내가 예수를 본받아 살면 영원하신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십니다. 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이렇게 영원하신 예수가 함께 거하는 사람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요11:25,26). 그리고 예수를 본받아 산 사람은 뒷사람들이 꼭 본받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예수를 본받아 살려는 사람 의 인생을 통해 영원히 사시는 것처럼 예수를 본받아 산 사람도 그를 본받는 사람을 통해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래서 죽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지요.
한 가지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요즘 갑상선암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갑상선암이 쉬운 암으로 알려졌지만 갑상선암이 식도나 기도까지 전이가 된 경우는 대부분 의사가 포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난치성 갑상선암이라고 분류되는 이 암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치료해 내는 의사가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장항석 박사라고 합니다. 이미 장항석 박사가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에 올랐을 때 그래도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어 세계적인 암 권위자가 있는 센터인 미국 뉴욕의 한 암센터에 갔을 때 그간의 수술 이력을 내보였더니 그곳에 있는 세계적 권위자들이 오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놀라워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저 실력만 뛰어난 의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의사입니다. 한 번은 암이 복부까지 전이가 되어 배가 불룩해진 83세 실향민 할머니가 죽기 전에 이 암을 한 번 떼내고 북한에 있는 고향 산천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17시간 수술을 한 끝에 암을 다 떼어내고 소원을 들어줬다고 합니다. 올해 59세인 장항석 박사의 별명은 ‘낭만의사’입니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이기에 부은 별명입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가 장임수 박사인데, 부산에서 명의로 손꼽힌 의사였습니다. 아버지 장임수 박사가 줄기차게 강조한 것이 ‘의사는 돈 보고 치료하면 안 된다!’였습니다. 평생을 돈 밝히지 않고 어려운 형편의 사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했던 아버지 장임수 박사는 다름 아닌 성산 장기려 박사님의 일곱 번째 제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장항석 박사는 아버지 곁에서 장기려 박사님을 보면서 외과의사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병원비가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원급을 가불해서 병원비를 대신 내주던 사람, 입원비를 낼 돈이 없는 사람 몰래 도망치도록 했던 병원장, 장기려 박사의 삶이 곧 작은 예수의 삶이었고, 그 사람이 일곱 번째 제자 장임수에게 이어졌고, 장임수의 삶은 그 아들 장항석에게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사는 돈 보고 사람 치료하면 안 된다라고 했던 장기려 박사의 가르침은 영원히 죽지 않고 오늘처럼 돈 세상이 된 어둠 속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발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순간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영원을 불사르는 시대입니다. 영원한 것을 무시하고 비웃는 시대입니다. 그저 오늘을 사는데 모든 것을 집중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간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영원을 저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원한 삶을 열어주기 위해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으셨던 예수를 알기 때문입니다. 영원을 위해 삽시다. 영원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누구에게선가 그 씨앗이 자라나고 또 씨를 뿌리고 또 자라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언젠가 죽어 이 땅을 떠나지만 우리는 계속 누군가의 삶을 통해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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