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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35 부엽공법으로 세워진 사람 
본문 요한복음 15:20~33(신약175) 
날짜 2020-08-09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35

성경 : 요한복음 15:20~33(신약 175)

제목 : 부엽공법으로 세워진 사람

 

 

우리나라에서는 회사나 어떤 특별한 단체 같은 곳에 들어가려면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되는데, 그 중 필수적인 것이 이력서입니다. 이력서는 자신을 최대한 능력있는 사람으로 알리기 위해 살아온 이력을 간략히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지 않은 이력은 빼고 좋은 것만 적습니다. 실수했던 것이나 실패했던 것, 잘 못 하는 것이나 잘못했던 것을 적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그런 것을 적으라고 요구하는 회사도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의 인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길게 풀어쓴 이력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데 성경은 잘한 것만 아니라 못할 것도 여과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믿음의 조상이라고 칭송하는 아브라함을 보면 첫출발은 대단히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안정된 삶을 버리고 생면부지의 땅으로 가서 나그네 인생을 자처한단 말이지요. 그런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이후 보이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과연 아브라함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요. 약속의 땅까지 가놓고 기근을 참지 못해서 애굽 땅으로 가지요.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했다가 어려움이 닥치자 쉽게 신앙을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애굽에서 못된 놈들이 어여쁜 아내 사라를 보고 빼앗아가기 위해 자기를 해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지요. 하나님의 개입으로 해결됩니다만 그 일로 사라가 남의 아내가 될번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랄 땅에 갔을 때 한 번 더 그렇게 하지요. 이것을 기록한 사람이 모세인데, 아브라함이 하늘나라에서 자기 이야기를 기록한 모세를 만났을 때 어땠을까요? 왜 이런 것까지 기록했냐면서 따졌을까요? 서운했을까요? 그러지는 않았으리라 봅니다. 아마 자신의 있는 모습을 가감 없이 기록해 준 것에 대해 도리어 고마워했을 것 같습니다. 잘 보이고 싶고 감추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면 그곳은 아직 천국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부엽공법(附葉工法)으로 우리를 세우십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십자가 질 일을 앞 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임산부의 출산 비유, 장례식 비유, 포도나무 비유 등을 들어서 당신이 떠나실 것을 일러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붙어있을 것을 당부하십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지 않고 밝히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비로소 알아듣고는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0)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분임을 분명히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시기보다는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제각기 흩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31, 32상반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31, 32상)

 

어찌 보면 초를 치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이지요. 제자들이 믿는다고 했던 믿음이 공갈빵에 그친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해놓고 금방 돌아서서 주님이 내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신다며 십자가의 길을 막아서던 제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이번에도 나를 믿는다고 한다만 너희의 믿음은 아직도 몇 번은 더 넘어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더 여러번 반복해야 너희 믿음이 단단해질 것이다.’

제자들의 믿음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널뛰기 같습니다. 한결같고 꾸준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고비 넘기면 그 다음에 미끄러졌다가 또 한 고비 넘기고 또 미끄러졌다가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이 이상적인 믿음이라는 생각에 너무 붙들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폭우에 하동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서 큰 피해가 났다고 하더군요. 현대의 토목 기술로 쌓은 제방도 폭우 앞에는 버티기 힘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2천 년 전에 만든 것으로 알려진 김제의 벽골제라는 저수지 제방은 2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지금도 그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2천 년간 얼마나 많은 홍수가 나고 태풍이 몰아치고 지진이 났겠습니까만 그 많은 자연재해를 견디고 지금까지 건제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래서 2015년 역사학자들과 토목학자 과학자들이 연구팀을 꾸려서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 보았습니다. 제방을 세로로 절단해서 그 단면을 살펴봤더니 벽골제 제방은 흙으로만 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흙을 다져서 쌓은 제방 중간중간에 낙엽층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흙을 다지고 그 다음에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깔고, 그 위에 또 흙을 다지고, 그 위에 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깔기를 반복해서 쌓았던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부엽공법(附葉工法)’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부엽공법으로 쌓인 것과 흙으로만 쌓은 것을 비교실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부엽공법으로 쌓은 것은 흙이 물에 흐물흐물해지는 현상도 일어나지 않고 지진이 났을 때 충격을 흡수하는 내진기능까지 발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흙으로만 다지거나 돌로만 쌓은 것보다도 훨씬 견고하고 오래 간답니다. 이것을 알고 나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서울 풍납토성이나 신라시대의 토성들을 조사해 보니까 전부 부엽공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우리 믿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 일 없이 순탄하기만 하면 믿음이 약해집니다. 한결같이 꾸준한 것도 좋겠지만 올라갔다 미끄러졌다를 반복해도 오히려 믿음이 더 단단히 다져진다는 사실입니다. 뛰어난 토목기술자인 주님은 이런 점을 잘 아시고 우리를 단단한 신앙으로 다져나가십니다.

 

 

2. 인정할 때 찾아오는 평안

 

 

요한복음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너희가 나를 버리고 제각기 흩어질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은 자기는 절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면서 완강히 부인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실패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들 인정하고 싶겠습니까? 고매한 모습, 깨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남고 싶지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아직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모습입니다. 알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알이 깨지는 과정을 거쳐야 새가 날 수가 있는데 말입니다.

제자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 인생에서 실수했던 일이나 실패했던 일들을 지우고 싶어합니다. 전에 가르쳤던 청년들 몇 명이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만나서 차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마흔이 다 된 나이들입니다. 그 중 한 친구가 예전 제가 가르칠 때 일을 이야기하면서 참좋았다면서 고마웠다면서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별로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또 한 친구는 저에게 서운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자기가 후배와 심하게 다퉜는데 제가 후배 입장을 더 옹호했었다는 서운함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야기로 서운하다고 하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들어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청년회 안에서 서로 맞지 않아서 다투다가 몸싸움까지 있었던 일이었는데, 제가 그때 그 친구보다 어린 다른 청년 쪽으로 더 기울어졌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유야 있었지만, 지금 이런 자리에서 저런 서운함을 이야기할 정도면 저 친구가 잘 풀고 풀지 못하고를 떠나서 적어도 저 친구에게는 그때의 서운함이 컸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나가 내가 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고 좋은 소리만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잘못을 떠나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은 떠올려보면 해서는 안 되는 말,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이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지우고 싶은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지 않고 자꾸 ‘이랬어야 하는데, 이래야 되는데’라고 이상적인 모습을 정해놓고 그것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심판하고, 그 기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신앙, 너무 이상적인 인생을 그리지 마십시오. 그것이 감옥입니다. 나를 가두는 감옥이고 남을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그것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세도 아닙니다. 집착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연약함과 넘어지고 망가진 모습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집착으로 나를 감옥에 가두고 자책하며 사는 사람은 남에게도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그 사람의 자유를 속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사랑이고 성숙한 신앙입니다.

오늘 보십시오. 주님은 제자들이 충분히 배신자도 되고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저렇게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 믿음 좋은 모습을 지금은 보여주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입에서 저주가 쏟아져 나오고 그 발로는 죄짓는 길로 빨리 달음질 하리란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이 장차 당신을 버리고 흩어지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해주시는 이유를 설명하시는데, 평안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33)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은 ‘나는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어서 상처받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들도 그런 일을 하고 너무 자책하지 말아라’는 의미도 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너희가 충분히 배신자도 될 수 있고, 실패자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런 너희를 내가 미리 알고도 사랑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너희는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는 성공자도 될 수 있지만 실패자도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또 살다보면 싫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싫은 소리 정도가 아니라 비판과 비난도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정확한 판단과 지혜를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어처구니없는 판단미스(miss)와 어리석운 고집에도 빠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주님은 알고도 사랑하셨고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이걸 믿을 때 나를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남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그럴 때 내 마음에도 평안이 깃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평안이 깃듭니다.

재미난 것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주님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림받는 경험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먹고 자고 하면서 사랑을 쏟아붓고 가르쳤던 제자들에게까지 버림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력서도 복잡한 문제 없이 마냥 깨끗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잘못이지만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부족해서인가, 내가 지혜가 없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그때에도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견고한 모습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신앙의 경지라면 경지입니다.

 

 

맺는 말

 

 

말씀을 맺겠습니다. 좀 넘어져도 됩니다. 좀 실수해도 됩니다. 좀 싫은 소리 들어도 됩니다. 좀 못나도 됩니다. 너무 자신을 너무 모질게 몰아세우면서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이 이미 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온전한 사람이 아님을 충분히 인정하고 또 넘어진 순간에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주님의 온전하심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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