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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 33 아플수록 열매는 실하다 
본문 요한복음 15:1~8(신약173) 
날짜 2020-07-2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33

성경 : 요한복음 15:1~8(신약 173)

제목 : 아플수록 열매는 실하다

 

아프리카 초원의 일인자는 사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코끼리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자와 코끼리가 싸우는 영상을 찾아보니 코끼리가 사자를 이기는 영상도 있고 사자가 코끼리를 사냥하는 영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약육강식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고, 약자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보면 반대일 수 있습니다.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누우떼가 없으면 사자는 죽고 말 것이고, 수많은 누우떼에게 짓밟히는 저 풀들이 없다면 누우떼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짓밟히고 뜯어먹혀도 또 들판을 뒤덮는 잡초들이 어쩌면 진정한 초원의 주인일 수도 있고, 잡아먹히고 또 잡아먹혀도 또 그 숫자만큼 돌아다니는 저 누우떼가 진정 초원의 주인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열결되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의 관점에서 보면 누가 일인자이고 누가 주인이냐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해 지지요.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영웅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위 영웅사관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다보니 우리네 삶을 생각할 때도 업적위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적만으로 사람을 다 평가할 수 없듯이 삶이라는 것은 업적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다 평가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것입니다. 사실 저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모습들이 있는데 그런 다양한 인생을 어떤 삶이 더 좋으냐, 뛰어나냐라는 물음으로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천편일률적으로 우리를 평가하시거나 우리를 등급매겨 줄 세우지는 않으시리라 봅니다. 그런 곳은 천국이 아닐테니까요. 이런 정도로 서론을 깔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 주님께 붙어있지 않았다는 부끄러움

 

 

누가복음 18장 9~14절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에서 세리와 같은 시각 기도하게 된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의 포문을 엽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먼저 토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토색은 힘을 이용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속여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어도 그 자리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봉투를 받고 인사청탁을 들어주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을 사면서 법인카드는 긁는 일은 철저히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돈만이 아니라 힘 있는 자리를 이용하여 아랫사람의 아이디어나 기획안 같은 것을 자기 것인양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한 일에 숟가락 얻는 일 같은 것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라는 개념에 반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한 적이 없다는 말인데 이 말이 진실이라면 이 사람이야말로 법없이 살아온 사람입니다. 간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장동료나 친한 친구들과 모여서 여자들 나오는 술집이나 노래방 같은 곳에 가서 일탈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이야기거리로 하는 음담패설에도 동참하지 않을 정도로 음란한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긋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주님, 저는 토색, 불의, 간음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토색 불의 간음 하는 자들과 같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는 세상에서 구별되게 살지 못하는 교인들과 나는 다릅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쪽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언급합니다.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굳이 같은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을 깎아 내리면서 자기를 부각시키는 기도를 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자랑이자 자기도취와 만족이고, 또 세리에게는 정죄이자 폭력입니다. 감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리새인은 어떤 선을 정해놓고 자기를 남들과 차별을 두는 사람입니다. 너희들은 이렇지, 나는 적어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 사람이야, 당신들은 이렇게 하지 않지? 나는 그래도 이렇게 이렇게는 하는 사람이야!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자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원래 성경이 말하는 금식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묶인 것을 풀어주고 자신의 가진 것으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 나누고 섬기는 것으로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끊는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정죄와도 같은 말로써 세리를 꽁꽁 묶고 있습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지요. 아무리 내가 땀흘려 번 것이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면서 드리는 십일조는 물질에 있어 자기부인이자 소유욕을 잘라내는 할례이니다. 그런 십일조가 바리새인에게는 신앙 자랑의 도구였습니다.

이렇게 어떤 기준을 정해 두고 나는 남과 다르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더욱 돋보이는 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나를 더 고립시키고 망가뜨리는 길이 됩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을 완전히 잃었을 때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자신에 의해 가족과 생이별하여 도망치며 살아가는 다윗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을 잃었을 때 결국 자신을 망가뜨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래도 우리가 이런 악순환에 빠져 더 망가지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아프더라도 깨닫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 신호 대기 하고 있었는데 어떤 일이 주마등처럼 생각났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모임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설교할 본문에 대해 연구해 와서 발표하고 자료를 나누는 모임에 임하면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모임에 참석할 때 관련 연구서적을 여러 권 읽고 자료를 준비해서 참석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빈손으로 와서 자료를 받아 가는 일이 습관처럼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분들에 대한 판단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마음 밑바닥에 자꾸 이런 마음이 자리잡았습니다. ‘나는 적어도 당신들과는 달라!’ 그것이 내가 정해놓은 어떤 선이었습니다. 적어도 이래야 돼! 라고 하는 선! 그 선이 뚜렷하면 할수록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그래서 다른 방식이 몸에 베였을, 그리고 지금도 나와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시간표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말과 행동과 눈빛에서 ‘나는 적어도 당신들과 달라’라는 속마음이 새어나갔을까를 생각하니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주님께 더 가깝다 여기고 살았는데 사실은 내가 주님께 붙어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리새인에게 붙어있는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 하지만 실은 주님께 붙어있지 못하고 엉뚱한 데 붙어살아가곤 합니다. 정신 차려보면 내가 붙어있던 곳이 주님이 아니라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니라 사울이었고 아벨이 아니라 가인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뭔지 씁쓸함이 몰려옵니다. 인생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그 부분은 싹 지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부끄러움입니다. 하지만 씁쓸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곧 살아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 실한 열매를 위한 전지 작업

 

 

오늘 주님은 어떤 가지는 제거해 버리시지만 어떤 가지는 더 열매를 맺도록 하시기 위해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농부가 더 실한 열매를 위해서 가지치기를 하는 전지작업을 빗대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1, 2절을 봅시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1,2)

 

썩은 가지, 불필요한 잔가지가 많으면 열매가 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가지가 좀 아프더라도 부지런히 전지 작업을 합니다. 농부는 좋은 열매를 바라기 때문에 전지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이 농부의 마음이 꼭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께서 젖을 떼게 하시려고 쓴맛 나는 뭔가를 바르셨어요. 달콤한 젖을 기대했는데 쓴맛이 나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빛바랜 사진처럼 아련합니다. 젖을 떼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없으니까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도 엄마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꼭 이런 심정으로 우리 삶에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옥한흠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두 가지로 우리에게 가지치기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말씀이고 둘째는 징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힘을 주셔서 말씀따라 살아가는 삶을 익히게 하십니다. 어떤 때는 말씀으로 호되게 야단도 치십니다. 또 말씀을 접하는데 찔리고 부끄럽게도 하셔서 잘못을 고치게 하십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깨닫고 기쁘고 감격하게도 하셔요. 그렇게 해서 말씀을 좇아 살아가도록 하시는 것이지요. 오늘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이 자리에 우리를 오게 하신 이유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진단도 하시고 가지치기도 하셔서 어쨌든 우리로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징계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이나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며 징계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징계 없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사람 극히 드뭅니다. 우리가 다 미련합니다. 야단 안 맞고 잔소리 듣지 않고 자라는 아이가 드물 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미련해서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그쳐야 될 때 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다 버려야 하는데, 그 쓰레기 더미가 뭘 좋다고 냄새나는 것을 부둥켜안고 살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호되게 대가를 치르게 하시지요. 다윗을 보십시오. 밧세바 취한 일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릅니까? 버려서가 아닙니다. 다시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아예 잘라내지 않으시고 어쨌든 열매를 맺도록 손질을 하시는 것이니 나중에 깨닫고 나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징계가 있었던 것을 감사히 여기십시오. 나는 지금껏 징계가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라고 좋아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신다고 사는데, 진리를 붙들고 산다고 사는데, 징계가 없었다면 내가 진짜 주님께 붙어있었던 것이 맞는가를 오히려 의심해 봐야 합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라 하셨고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말씀으로 깨우치시고, 때로는 징계로 우리를 돌이키셔서 우리를 다시 제 위치에 데려다 놓으십니다.

 

 

3. 예수를 붙들고 산 모든 것이 열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해서 도대체 어떤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전도의 열매일 수도 있고 뭔가 큰일을 해내는 열매일 수도 있겠지요. 어떤 열매냐에 대한 단서는 오늘 말씀에 들어있습니다. 5절을 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5)

 

우리는 포도나무인 주님께 붙은 가지라 하였습니다. 사과나무에 붙은 가지는 사과 열매를 맺고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는 당연히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께 붙어있으면 당연히 예수라는 열매를 맺어야겠지요. 성경에서는 믿는 자들이 맺어야 할 여러 가지 열매가 나오지만 여기서 말씀하는 열매는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는 방식은 내가 맺는 것이 아닙니다. 붙어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우리가 예수께 붙어서 살아온 모든 삶들이 열매입니다.

친구 목사님 교회에 저와 비슷한 또래의 한 여집사님이 있습니다. 그 여집사님은 아들이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이번에 우리 아이 몇 등했다, 누구네 집은 대학 어디 갔다더라 이런 말 해도 스트레스 받지 않습니다. 이 집사님 아들은 어렸을 적 불의의 사고로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그 후유증으로 정신장애가 와서 공부를 한다든지 무슨 기술을 익힌다든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그것도 괜찮습니다. 아이가 살아서 내 곁에 있는 것에 그저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지금도 살아갑니다. 이것을 너무 일반화시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사실 본질에 더 맞는 삶의 자세인 것은 맞습니다.

우리가 어떤 성과가 있든 이룬 업적이 있든 없든 간에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주님을 붙들고 고민하고 선택하고 땀 흘려 살아온 모든 삶이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어떤 업적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처한 자리, 처한 상황에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을 열매로 보십니다. 이상하게 바위가 굴러 짓누르는 바람에 이상하게 자란 나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큰 바위가 굴러서 나무를 찍어누르고 있었는데, 나무는 억지로 버티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바위에 찍어누른 나무가 마치 두 손을 벌려 물건을 떠받치듯이 넓게 퍼져서 바위를 감싸듯이 떠받치면서 자랐습니다. 그 속에서 나무가 이겨냈을 그 모진 아픔이 느껴져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무를 쓰다듬어 준 적이 있습니다. 이상한 모습으로 자랐지만 더없이 아름답게 자란 나무였습니다. 우리는 열매 하면 자꾸 세상의 영웅사관이나 성과주의에 물든 나머지 무슨 특별히 이루어놓은 성과 업적 이런 것을 먼저 떠올리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하든 못하든 때로 실수가 있든 넘어지든 간에 또 다시 믿음을 붙들고 일어서서 여기까지 살아온 평범하고도 소박한 우리의 삶을 열매로 보십니다.

힘이 없어 억울하게 당하였을 때 힘으로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은근히 나도 힘을 가지기를 동경하기보다는 나처럼 힘이 없어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에게 더 마음을 두며 살았다면 그보다 더 귀한 열매는 없을 것입니다. 신앙 양심에 차마 속이거나 피해가지 못 하고 덤터기 쓰듯이 책임을 뒤집어쓰는 경우를 겪었을 때 그것을 복이 없다 생각지 않고 예수의 사람으로 살려면 몇 번은 겪어야 하는 자격증 같은 것으로 여기며 이겨냈다면 그보다 다 아름다운 열매는 없을 것입니다. 삶의 평균치가 없음에도 우리는 평범한 삶이 마치 딱 정해져 있는 것 마냥 신세 한탄할 때 내 인생은 평범하지 않다고 종종 여깁니다만, 한발 양보해서 하루하루를 버티듯이 사는 평범하지 않은 고난의 인생을 만났을지라도, 그래서 원망도 하고 포기도 하고 쓰러지기를 반복을 하며 살았더라도 또다시 주님을 붙들고 일어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인생은 없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없이 정말 반복되는 일상을 살더라도 마음 한편에 예수믿는 사람이라는 족쇄 아닌 족쇄를 두고 나를 감정을 제어하면서 사는 날이 많았다면 단연코 말하건데 그 평범한 일상의 삶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은 없습니다.

 

 

맺는 말

 

 

오늘 이 말씀 끝에 주님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지는 기도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이루리라는 말을 듣고 한 제자들의 기도는 세상에서 손에 잡히는 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가 손에 잡히는 것을 구하는 기도보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구하는 기도로 옮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하는 것이 예수를 닮도로고, 생각하는 것이 예수를 닮도록, 감정이 예수를 닮도록, 인생관이 예수를 닮도록! 이런 기도는 절대적으로 응답 되는 기도입니다.

가지치기의 아픔을 맛본 사람일수록 열매가 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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