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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32 영원한 동반자 
본문 요한복음 16:5~13(신약174) 
날짜 2020-07-19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32

성경 : 요한복음 16:5~13(신약 174)

제목 : 영원한 동반자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촌 밑에서 자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삼촌 밑에서 일을 배우면서 삼촌 도움으로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가정도 생기고 나이도 어느 정도 되자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따로 나가서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한 덕에 머지않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또 조금 지나자 사업이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삼촌네와 부딪히는 일이 빈번히 생겼습니다. 관계가 불편해졌습니다. 그런 시간이 많아지자 삼촌 곁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관계가 불편한 것도 그렇지만 이제는 이 촌구석이 좁게 느껴졌습니다. 좀 더 시장이 넓고 기회가 많은 곳에 가서 크게 한 번 인생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삼촌도 눈치를 챘는지 떠나고 싶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조건이 월등히 좋은 소돔 근처 땅으로 옮겨갔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 이야기가 아닌 요즘 이야기로 들리지 않나요? 오늘 본문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날이 다 되신 예수께서 보혜사를 보낼 것이며 보혜사가 오시면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고 일러주시는 이야기인데, 이 말씀을 롯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를 대할 때 롯이 믿음이 부족하여 아브라함 곁을 떠나 소돔처럼 타락한 곳을 찾아갔다며 쉽게 정죄합니다. 그리고 조카에게 선택권을 양보하고 자기는 척박한 땅에 남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인격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더 좋은 기회를 포기하고 척박한 곳에 남아 하나님과의 깊은 교감을 유지하며 살고자 자발적 불편을 선택한 아브라함보다는, 더 나은 수준으로 사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기회를 찾아 발 빠르게 움직이며 노력한 롯이 우리와 더 가까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를 읽을 때 내가 아브라함이 아니라 롯이라 생각하고 읽어보면 또 다른 깨달음과 유익이 있으리라 봅니다.

 

 

1. 세상이란 열차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롯이 처음 간 곳은 소돔 근처 소알이었습니다. 소알은 물이 풍부하고 초장이 드넓은 곳으로 에덴동산 같고 애굽의 나일강가와 같이 비옥한 기회의 땅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소돔을 받쳐주는 위성도시에 불과하였습니다. 시골 출신 롯은 그곳에서 소돔이라는 주류사회를 흠모하면서 거기에 진입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둡니다. 창세기 19장 1절을 보면 소돔을 심판하러 간 하나님의 사자들이 소돔에 도착하였을 때 롯이 성문에 앉아있었다고 나옵니다. 할 일이 없어서 성문에 앉아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문은 지도급 인사들이 모여서 성안 문제를 의논하거나 정책을 결정하고 재판을 하는 곳으로 롯이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소돔 성에서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던 롯이 떠돌이라는 을의 신분을 극복하고 소돔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갑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성공과 주류사회로의 진입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동안 롯은 소돔의 가치관과 문화에도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신앙 양심에 저촉되던 것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서 너희 집에 들어온 사람을 내놓아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협박을 하였을 때 롯은 놀랍게도 ‘나에게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다. 그들을 너희에게 제공할 테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행하고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고 합니다. 그건 죄가 되지만 이건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기 기준에 따라 죄를 마음대로 규정하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깨달아야 할 것이 우리가 주변부 사람으로 어려운 처지로 살면서 신앙생활 할 때에는 그렇지 않던 것이 점점 주류사회로 진입할수록, 을에서 갑이 될수록 죄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예외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습성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 곧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시면서, 그 보혜사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고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8~11)

 

‘더 나은 삶을 향해서 도전하라, 인생을 한 번 던져보라, 갑을 그렇게 욕한다마는 사실 너도 갑이 부럽지 않으냐, 너도 갑으로 한 번 살아봐야지 않겠느냐’고 속삭이는 세상이라는 열차에 올라타서 가다 보니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습니다. 얻은 것은 천박한 가치관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모든 것을 돈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얻은 것입니다. 잃은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입니다. 처음 성령을 경험하고 은혜를 체험했을 때는 나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했지만 거친 세상에서 모든 에너지를 밖으로 쏟는데 기계처럼 익숙해지자 마음도 기계처럼 딱딱해져서 좀처럼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마치 오랜 세월 노숙자로 살아온 사람이 집을 장만해줘도 집안에 있는 것이 도리어 불편하여 자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처럼 내면을 돌아보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둔감해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처음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는 어떤 기이한 체험으로, 어떤 뜨거움 같은 것으로 말씀하시고 만나주시는 경우가 많지만, 믿음의 연륜이 오래되면 성찰이라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스스로 자꾸 질문을 던지게 하십니다. 내가 이거 바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 내가 지금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교회생활은 익숙한데 세상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가?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2. 호모 사케르에게 진정한 위로란

 

 

롯의 말을 들은 소돔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롯 집의 대문을 부수려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롯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롯은 자신이 소돔 땅에서 성공을 하였고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애써 쌓아 올린 것들과 다져온 관계들이 실은 뿌리 없이 돌 위에 조심스레 세워둔 공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바람이 불지 않아 가만히 있었던 것이지 바람 불면 한순간 날아갈 수 있는 것들이었단 사실이지요. 그것을 느꼈을 때 롯은 말할 수 없는 충격과 불안, 공포를 느낍니다. 언제든 내 삶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때 찾아오는 불안과 공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충격적입니다.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때, 생각지 못했던 병이 발견되었을 때,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을 때, 그럴 때 우리는 견고한 바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인 줄 알았던 내 인생이 잘린 나뭇가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삭막한 들판에 홀로 나뒹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내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 몸 조차도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믿었던 관계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언제든 벌거벗겨져 내동댕이쳐질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병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고, 믿었던 직장도 경기가 나빠지면 언제든 정리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좋던 관계도 생각지 못한 일에 일어나 거기에 휩쓸리다 보면 어느새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관계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호모 사케르(Homo Sacar)’입니다. 호모 사케르는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4. 22~)이라는 철학자가 말한 개념인데, 언제든지 뿌리가 잘려 버려질 수 있는 존재, 벌거벗은 생명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이후부터 실은 안식을 잃어버린 존재, 평안을 잃어버린 존재, 행복을 잃어버린 존재들입니다. 뿌리가 잘린 나무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것을 잊으려고 여기저기에 뿌리를 견고히 내려보지만, 그리고 뿌리를 내렸다고 안심도 해보지만 언제 질병으로, 실패로, 관계의 악화로 뿌리 없는 존재가 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롯이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은 너무 깊고 어둡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과 두려움은 다름 아닌 주님의 또 다른 음성이기도 합니다. 롯이 소돔사람들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한 말은 “떠나라!”였습니다. ‘떠나라! 이곳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떠나라, 이런 삶이 내가 너에게 기대한 삶이 아니다, 떠나라.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건 네게 어울리는 옷이 아니다, 벗고 떠나라! 그런 것들이 진짜 인생의 위로가 아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둔감했던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마지막 주님 앞에 서야 할 심판에 대하여 관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런 거룩한 주제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음성입니다. 얼마 전 모장로님이 어떤 사람이 허리를 고쳐준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사람이 얼굴에 선한 기운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시는데, 그 말이 얼마나 마음에 많이 와닿는지, ‘아, 내가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 모습이구나!’ 하면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보혜사, 곧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을 보면 우리 신앙이 어렸을 적에는 유치한 우리들 기도에 응답하여 주심으로써 우리 믿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느 정도 장성한 뒤로는 거룩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십니다. 그를 위해 때로는 그토록 응답을 척척해주시던 성령께서 성공이 아닌 실패를 주기도 하시고, 건강을 잠시 거두기도 하시고, 기쁨이 아닌 아픔을 주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진리에 눈을 뜨게 하십니다. 죄를 죄로 여길 줄 아는 죄의 개념을 분명히 갖게 하시고, 어떤 어려움과 손해가 따르더라도 의를 추구하게 하시고, 장차 하나님 앞에 서서 살아온 모든 날을 결산하게 될 날이 틀림없이 있을 줄 알고 세상의 것을 우상 삼지 않고 살기를 다짐하는 신앙의 결단을 하게 하십니다.

진정한 삶의 위로는 지금 내가 성취한 것,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속에서 날마다 깨우치시고, 바른 길 가게 하시고, 나를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 동행하시는 동반자가 되어 주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의 위로입니다.

 

 

3. 진정한 위로를 추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혜택

 

 

롯이 소돔을 떠나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자의 권고를 듣고 고민 고민하다가 떠납니다. 완전히 소돔사람들인 사위 될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고를 업신여겼지만 롯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떠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롯이 가야 할 곳을 말씀해 주지요. 오늘 말씀을 보면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해주시는 것들 중에 장래일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3)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 주신다는 것인데, 점쟁이처럼 길흉을 알려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13절 앞부분을 보면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붙들고 살려면 때로는 어려움도 있고 고난도 당하고 밑지는 일도 당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런 성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진리대로 살아낼 수 있는 길을 찾게 하시고 그 길을 걸어가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거울에 뿌옇게 때가 끼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듯이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상황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세상 때가 많이 껴서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끊임없이 죄에 대해 우리를 민감하게 하시고, 의를 고민하고 선택하게 하시고, 심판대에 서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길을 걸어가게 하실 때 어떤 사람은 그것이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길이라 여겨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인생의 기쁨과 참된 위로로 삼을 수도 있고, 그런 것에 흥미가 없어 그저 남들처럼 세상 사람으로 살면서 종교 생활의 일환으로 예배만 형식적으로 참석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점점 마음의 때가 벗겨집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길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됩니다. 세상의 때, 욕심의 때, 이런저런 얽힌 감정의 사슬 같은 것을 거둬내니 그렇습니다. 길이 더 선명해지니 길이 평탄해집니다. 주님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한다고 하셨는데,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복하여 세상 옷을 벗어 던진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맺는 말

 

 

그 어떤 것도 흔들리지 않는 기초는 없습니다. 견고할 것 같던 것들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호모 사케르들입니다. 우리가 주님 나라에 입성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분은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순복하여 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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