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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31 믿어낸 만큼 살아낸 만큼 
본문 요한복음14:1~14(신약171) 
날짜 2020-07-12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31

성경 : 요한복음 14:1~14(신약 171)

제목 : 믿어낸만큼 살아낸만큼

 

아기는 엄마 찾는 길만 알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배고프고 응아 해서 축축해도 엄마만 찾으면 해결되지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울면 됩니다. 울면 엄마가 달려옵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되면 학교 가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학교 가는 새로운 길을 알아내면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기쁩니다. 청년이 되면 이제 먹고 살길을 찾습니다. 누구 소개로 직장에 들어간다든지, 시험을 친다든지, 꼭 해 보고 싶은 끌림이 있어서 도전한다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살길을 찾아갑니다. 우리는 항상 길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길을 잘 찾으면 좋은데 길을 잃으면 힘들고 불안하지요. 대학시절 같은 과 안에서 기독교인들끼리 책을 읽고 밤새도록 토론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지난 번 우리 교회 왔던 김성욱 선교사 집에서 모이기로 해서 찾아가는데, 집이 김해였습니다. 지금은 김해가 어머어마 하지만 당시만 해도 깡촌이었습니다. 밤에 버스를 타고 가다 여기다 싶어 내렸는데, 아니었습니다. 막차가 떨어질 시간이었는데, 그 막막함과 불안감으로 헤맸던 기억이 납니다. 살다보면 예고없이 찾아오는 힘든 일들로 인해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근심이 습관처럼 몸에 배기도 합니다. 풍랑을 만나도 길만 잃지 않으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1. 믿어낸 만큼

 

 

십자가를 앞둔 예수께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판다 그러시지, 주님이 죽으신다 그러시지, 너희들이 나를 부인하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시니까 제자들이 불안하지요. 주님이 죽으시는 것도 걱정이지만 주님만 믿고 여기까지 온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기 인생도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생소한 상황 앞에 생각이 복잡하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때 근심 빛이 역력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근심하지 말라 하십니다. 근심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하지 말아야지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힘든 일이 찾아오면 근심은 선택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심하지 말라고 그러십니다. 비결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그러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3)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얼핏 들으면 천국에 미리 가서 너희들 살 집 장만해 놓고 다시 오겠다, 와서 너희들을 데려가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조금 더 읽어보면 14장 23절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내가 아버지와 함께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을 보면 예수께서 마련하러 가신다는 거처가 저 천국 어딘가가 아니라 이 땅, 바로 제자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거처를 마련하러 가신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셔서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길을 트신다는 의미입니다. 너희가 믿고 따르던 내가 십자가에 죽고, 너희 삶이 순식간에 소용돌이치고 내동댕이 쳐지겠지만, 그 고통스러운 일들이 결국 하나님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길이 마련되는 과정이니 그것을 믿는다면 이 고통스런 상황이 근심할 일만은 아니다, 이런 뜻인 것이지요. 설명이 길었습니다만, 다 과정입니다.

가을 찬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집니다. 낙엽이 뒹굴고 부서지면 지저분해지니까 사람들이 낙엽을 쓴다고 수고롭습니다. 그런데 산은 낙엽을 쓸지 않습니다. 그대로 둡니다. 산이 쓸지 않고 놔둔 낙엽은 눈비를 맞고 바람을 맞으면서 썩어 시커먼 부엽토 거름이 되고, 숲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양식이 됩니다. 산은 그 많은 낙엽을 쓸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버려 둡니다. 숲을 살찌우는 양식이 될 줄 알기 때문이고, 그것이 다 과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 해결하려 들면 길을 잃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과정임을 알고 주님의 섭리 속에 맡길 수 있을 때 길이 다시 보입니다. 제자들이 겪은 인생의 격랑은 온실 속 화초와도 같던 그들의 신앙을 광야에서도 말라죽지 않는 싯딤나무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삽니다만 그것처럼 공허한 믿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격랑은 그 공허한 믿음을 실체가 있는 믿음으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자루에 뭔가를 담을 때 흔들면서 담습니다. 더 많이 담으려고 말이지요. 인생의 파도가 우리는 흔들어 놓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 모든 것 뒤에 주님이 계십니다. 부실한 기둥 위에 무거운 짐을 얹으면 무너지고 말 듯이 근심이 크고 믿음이 약하면 허물어집니다.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허무실 때가 있으면 세우실 때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이십니다. 풍랑 속에서도 길만 잃지 않으면 근심과 불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이 길이십니다. 주님이 주관하고 계시는 과정임을 믿는 것 그것이 길입니다. 이것을 믿어낸 만큼 근심을 이기고 평안을 누립니다.

 

 

2. 살아낸 만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다고 말씀하시고 당신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빌립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달라는 좀 생뚱맞은 말을 하지요. 그때 주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9, 1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9,10)

 

아버지가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신다, 내가 아버지의 형상이다, 고로 나를 본 것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나중에는 다 이해하지만 당시로서는 제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이지요.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우리 인간 존재의 시작을 알려 주는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우리 인간 존재의 목적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하나님을 위해 삽니까? 본능적으로 자기를 위해 삽니다. 신앙생활도 나를 위해서 내 자식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하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지만 밑바닥에는 내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세상 살이를 하면서는 더욱 과감하게 자기를 위해 삽니다. 내 자존심을 위해 살고, 조그만 내몫을 챙기기 위해 삽니다. 그걸 어찌 다 탓하겠습니까? 인간인데요.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그렇게 나를 위해, 내 자존심을 위해, 내몫을 위해 살았던 흔적들이 나중에는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주머니에 압정을 가득 넣고 걸으면 압정이 살을 찌릅니다. 우리가 다 속에 가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를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찔렀겠습니까, 그것이 또 부메랑이 되어 얼마나 내 가슴을 찌르고 있겠습니까? 제가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때로 비판의 말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되더군요. 지난 날 내가 살아오면서 누구를 비판한 적이 있고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시간이 지나 다시 내게 돌아온 것이구나! 지금 내가 듣는 비판의 쓴소리는 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게서 나온 것이구나! 이걸 깨달으니까 속이 후련해지더군요. 오랜 죄값을 치룬 마음이랄까요? 가인이 동생에 대한 열등감을 동생을 제거함으로써 해소하고자 했던 비정상적 자기 추구가 결국 평생 안식 없이 유리방황하는 삶을 살게 했었는데, 그것이 가인만의 인생이 아닌 저의 인생이었고, 우리들 인생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지금 내 마음의 평안을 앗아가고 있는 일들이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고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깊이 깨달을 때 길이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나를 드러내는 삶을 살면서 남을 찌르고 나를 찌르며 사는데 비해 예수님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삼위하나님의 제2위격이시면서 이 땅에 한계 많은 인간의 조건으로 오셔서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께서 바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분의 감정이 그러했고, 그분의 말이 그러했고, 그분의 행동이 그러했습니다. 모든 것의 초점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는’ 신앙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찌르는 것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찌 이렇게 살겠습니까? 불가능입니다. 그래도 흉내는 낼 수 있습니다. 흉내내니까 자기 것이 되더군요. 저 북삼제일교회에 우목사님은 젊은 시절 사랑의 교회 옥한흠목사님에게 꽂혀서 그분 책을 있는대로 사서 읽고, 그분 설교를 찾아서 듣고, 하셨는데, 언젠가 보니까 헤어스타일이 옥목사님과 비슷하고 머리 쉰 것까지 비슷해 보였습니다. 생긴 것까지 닮아가는 겁니다. 옥목사님 닮아가려하니까 목회도 잘 하게 되시더군요. 평생 흉내내면 그 사람처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를 봐야 흉내를 내지요. 성경을 열심히 들여다 보십시오. 코로나는 우리에게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찌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주님 흉내는 낼 수 있겠지요. 예수처럼 살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에게 주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금은보화를 달라는 것을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가 금은보화를 구할 리도 없구요.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겠지요. 가령 나 자신의 욕심을 이길 수 있는 능력,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는 거룩한 의지, 죄된 본성에 종노릇 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능력,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여건들, 이런 것들일 것입니다.

뜻을 바로 세워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석하대(上石下臺)란 말이 있습니다. ‘윗돌 빼서 아랫 대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매나 제자리든지 아니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데 주어야지 욕심 채우려 했다가 가끔씩 은혜에 젖어 거룩한 뜻을 품었다 왔다갔다 해서는 신앙이 제자리든지 아니면 무너지든지 하고 맙니다. 뜻을 바로 세워 정진할 때 무슨 탑이 세워져도 세워지는 법입니다. 그러면 주님도 기도응답으로써 우리 삶에 감응(感應)하십니다. 예수처럼 살아낸만큼 근심이 사라집니다. 살아낸 만큼 평안이 찾아옵니다.

 

 

맺는 말

 

 

오늘 코로나사태는 우리가 가던 길을 지워버렸습니다. 인생에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힘든 일들이 자칫 길을 잃게 만들고 근심에 붙들려 사는 습관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길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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