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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강해 29 미운 발 고운 발

2020.06.28 18:53

배재우전도사 조회 수:112 추천:1

제목 요한복음강해 29 미운 발 고운 발 
본문 요한복음 13:1~20(신약 169) 
날짜 2020-06-28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29

성경 : 요한복음 13:1~20(신약 169)

제목 : 미운 발 고운 발

 

 

차를 운전하면서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가 좋은 음악이 나오길래 채널을 고정하고 들었습니다. 노래가 끝나더니 광고가 나오는데, “어디에 있는 송광사에서는 6월 모일 법회에서 세족식(洗足式)을 봉행합니다!”라고 하더군요. 불교방송이었습니다. 목사가 불교방송을 듣다니 좀 멋쩍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도 세족식을 거행하더군요. 교회 외에 학교나 무슨 단체의 수련회나, 관공서 같은 곳에서 행하는 것은 들어봤어도 절에서도 행하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 시작이 예수님인지 알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섬긴다는 의미를 담아서 행하는 것 같습니다.

 

 

1. 발 씻김의 의미

 

 

오늘 본문에 세족식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이 제자들 발 씻기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당신이 떠나실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발을 씻기셨습니다. 주인이 밖에서 들어오면 종이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주인 발을 씻겼습니다. 발 씻겨주는 사람은 종이고 씻음 받는 사람은 주인입니다. 그런데 스승이신 예수님이 제자들 발을 씻겼습니다. 섬김받아야 할 분이 반대로 겸손히 낮아져서 섬기셨습니다. 이렇게 발을 씻기신 것을 섬김으로 이해하면 나중에 예수님은 발을 씻기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제자들에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주라고 명령하신 14절 말씀은 내가 주와 선생으로 섬겼듯이 너희도 서로 낮아져서 섬기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6~11절까지 이어지는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면 발 씻기는 것이 섬김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어보입니다.

예수님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닦기 시작하여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발은 절대로 씻길 수 없다는 식으로 완강히 거절하지요. 그때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다. 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8)

 

예수님이 씻어줘야 예수님과 상관이 있어 진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째서 예수님이 나와 상관있는 분이 되셨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대신 당하셨기에 나와 상관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제자인데도 발을 씻겨주지 않으면 아무 상관이 없는 관계로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죄를 사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의 의미를 다 깨달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상관없다 하시니까, 예수님과 상관있고 싶은 마음에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또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10절 상반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10상)

 

발을 씻긴다는 것을 섬김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만 죄를 씻어주시는 것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목욕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의미하고, 발을 씻는 것은 매일 매일 짓는 죄를 회개하는 성화에 이르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계속할 필요는 없고, 그때그때 짓는 죄를 회개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구원받을 때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으니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데, 성경과 맞지 않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목욕했다고 평생 발 안 씻고 살면 안 됩니다. 매일 묻히는 때는 씻어야 합니다. 매일의 회개, 성화에 이르는 회개는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집에는 미끄베라고 해서 부정한 것을 씻어내는 정결의식을 행하는 욕조가 다 있었습니다. 그것을 미끄베라고 하는데, 몸을 씻는 큰 미끄베와 손과 발만 씻는 작은 미끄베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어도 된다는 말씀을 금방 이해한 것입니다.

이렇게 발 씻어주는 것을 섬김이 아니라 죄를 씻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씻어주는 것이 뭡니까? 용서입니다. 그러면 14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됩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죄를 용서하였으니 너희도 서로 용서하여 주는 것이 옳으니라 (14)

 

 

2. 발 씻김의 단계

 

 

이렇게 말씀의 의미를 알고 나니 차라리 그냥 놔 둘 걸, 이런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섬김이 덜 힘들지, 용서가 더 힘들거든요. 섬김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지만 용서는 의지만으로 되지 않거든요. 아니, 용서할 의지가 생기면 그건 이미 용서한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용서, 정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보다 더 어려운 것이 용서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 그래서 가장 위대한 일이 어쩌면 용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은 사실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인데도 용서를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내가 마음이 옹졸해지지 않았나, 돌아보고 마음을 넓게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 왜 어렵습니까? ‘그 일은 절대 용서 못합니다’, ‘그 사람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용서가 어렵습니까? 그럴 수 있지요. 용서가 왜 어렵느냐?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전도서 말씀에 모든 것이 때가 있다 하셨는데, 용서에도 때가 있습니다. 저수지에 돌멩이를 던지면 풍덩 하고 빠지면서 물결을 일으킵니다. 돌멩이가 클수록 물결도 크고 오랫동안 파장이 계속 됩니다. 그런데 한 시간 두 시간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한 몇 분 지나면 잔잔해집니다. 모든 것이 이와 같습니다.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픔이라는 물결이 일어납니다.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 우리가 딱히 할 말이 없으니 그렇게 위로하면서 말하지만 실은 슬퍼해야 하고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슬픔의 파장이 가라앉습니다. 슬픔을 이기는 비결은 슬퍼하는 것입니다. 용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든지, 나쁜 일을 겪으면 분노와 미움이 일어납니다. 그때는 분노해야 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미워하지 마라, 아무리 말해도, 미움이라는 파장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그게 안 됩니다. 미워할 만큼 미워해야 합니다. 그게 실은 내가 죽는 과정입니다. 보십시오. 미워하면 누가 제일 힘듭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제일 힘듭니다. 미워하면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합니다. 그게 내가 죽는 과정이에요. 내가 죽어야 용서가 되는 거거든요.

이렇게 한참 미워하다 보면 미움도 어느 정도 잔잔해지고 아직까지도 미워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물결이 잔잔해졌다는 신호입니다. 물결이 잔잔해진 다음이라야 물속이 들여다보이는 법입니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풍덩 하고 물결을 일으켰던 그 돌멩이라는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모양새가 선명히 보입니다. 한참 시간이 지나면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지, 거기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요셉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를 종으로 판 형들에 대해 처음에야 용서가 됐겠습니까? 밤잠을 못 자지요. 그런데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알게 됩니다. 자기를 애굽에 온 것은 형들이 팔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허물을 용서해 주라는 말씀은 우리가 가야 할 최종적인 종착지이지만 거기까지 단번에 갈 수 없습니다. 중간 기착점이 있습니다. 거쳐 가야 합니다. 그 중간 기착점이 분노이고 미움입니다. 미움도 과정이란 말씀입니다. 주님도 그것을 잘 아십니다. 충분히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용서의 때가 찾아옵니다.

용서, 왜 어렵습니까?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주셔야 용서가 됩니다. ‘주님의 명령이니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하실 수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명령이니까 우리가 용서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용서는 하나님 은혜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성경을 보면 용서는 항상 하나님쪽에서 하시는 것으로 나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은혜이고, 하나님이 그런 마음 주셔야 되는 것이라면, 그럼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아닙니다. 은혜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달라고 더 매달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용서하신 과정을 보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에서 흐르는 땀이 핏방울처럼 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다 터져서 피가 되어 흘러내리는 듯한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부어집니다. 기도하고 사모하면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맺는 말

 

 

잠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 19:11)

 

살다 보면 용서받을 일도 하고 살고 용서해야 할 일도 겪으며 삽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누군가의 발을 씻겨주고 나도 누군가에게 발을 씻김 받으며 사는 겁니다. 언젠가 세족식에서 어떤 분 발을 씻겨드리는데 발이 나무뿌리처럼 엉망입니다. 피부는 소나무 껍질처럼 각질이 일어난 것이 부드러운 손은 벨 정도였고 발톱은 독수리부리와 같았습니다. 그게 미운 발이 아니지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름다운 발, 고운 발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의 발을 씻기고 있는데, 정말 곱고 예쁜 발을 누군가 내밉니다. 올려다보니 내 돈을 떼먹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발은 아무리 고와도 미운 발이겠지요. 그런데 그 발이 정말 내가 씻겨야 할 발입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씻겼던 발은 잠시 있으면 주님을 저주까지 하면서 모른다고 배반한 베드로의 발입니다. 주님을 저주하면서 모른다고 부인하더라도 내가 이미 너의 죄를 씻어놓았으니 너는 죄책감으로 나를 피하지 말고 내가 찾아갈 때 만나도록 하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내가 정말 씻겨야할 발은 미운 발입니다. 그 미운 발이 내가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쓸 이유가 되는 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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