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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강해 27 어찌 하셨는가

2020.06.14 19:44

배재우전도사 조회 수:71 추천:1

제목 요한복음강해 27 어찌 하셨는가 
본문 요한복음 12:27~36(신약168) 
날짜 2020-06-14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27

성경 : 요한복음 12:27~36(신약 168)

제목 : 어찌 하셨을까

 

 

옛날, 우리가 진시황제라고 부르는 진나라 왕이 주변 나라들을 침략하고 폭정을 일삼으며 억압할 때 연나라에서는 맞서 싸울 힘은 되지 않고 방도를 생각하다가 자객을 보내 진나라 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성공하기 어려운 그 일을 맡을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형가(荊軻)라고 하는 사람이 실패하면 죽는 그 일을 맡겠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망설이다가 드디어 형가가 “바람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가운데 한 장사가 다시 오지 않을 길을 떠나가네”라고 구슬피 노래를 부르면서 배를 타고 떠나갑니다. 그때 연나라 왕을 비롯한 모인 이들 중 울지 않는 자가 없고 형가를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희생하는 역할은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독일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온 유럽을 피바다로 만들고 있을 때, 저 미치광이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며 히틀러 암살을 도모했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디트리히 본 훼퍼 목사님입니다. 목사가 무슨 암살을 계획하냐 싶겠지만 히틀러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5천만 명인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인 중에 살인광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이 본 훼퍼 목사님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이 도리어 이상한 일입니다. 당시 독일 기독교는 히틀러를 편들고 있었고, 히틀러를 향해 당신이 틀렸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백만명을 학살할 때에도 독일교회와 독일 기독교인들은 철저히 침묵하였고 어떤 이들은 잘한다고 박수쳤습니다. 그런 교회를 향해 본 훼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대인을 위해 외칠 줄 모르는 사람은 찬송가를 부를 자격이 없다!” 참으로 깨어있는 양심이고 행동하는 양심이었습니다. 본 훼퍼는 전쟁광 히틀러를 제거하려는 일에 가담했다가 결국은 사형을 당합니다. 당시 독일교회는 본 훼퍼를 칭송하지 않고 비판하였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역할을 맡습니다. 어떤 것은 선택과 상관없이 때에 따라 주어지는 역할이 있습니다. 자식 역할은 태어나면 하는 것입니다. 부모 역할도 자식 태어나면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역할들은 내가 선택하든지 다른 사람의 선택으로 맡게 됩니다. 역할을 잘 감당하면 칭찬과 상이 따르고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비판이 따르고 벌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칭찬이 따르는 역할을 하려고 듭니다. 아무리 칭찬과 상이 따르더라도 희생을 많이 해야 하는 역할은 쉽게 맡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희생을 하는 역할인데 칭찬은 없고 오해나 미움을 사야 한다면 맡을 사람이 아예 없을 겁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모두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보다 더한 희생이 없습니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제자들에게까지 이해받지 못하고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하시느냐며 반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그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시지 않았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힘들어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만 힘들어하신 것이 아니라 그전에도 십자가를 힘들어하셨습니다. 27절 상반절을 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27상)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는 겁니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제발 이때를 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곡한 기도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항상 힘들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전혀 다르면 위로가 덜 될 건데,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처럼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같이 가지신 분이기에 위로가 더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피하고 싶은 십자가를 어떻게 지셨을까요?

 

 

1. 사명이기에

 

 

27절 다시 한번 봅시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7)

 

‘아버지,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습니다. 제발 이때를 피해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이 일을 위하여 왔습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를 피하려고 될 수 있으면 그것만은 피하려고 고민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하셨지만, 아무리 고심하고 기도하고 피하려고 해도 그것이 당신이 짊어져야 할 사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피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명입니다. 벗어나려고,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면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사명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아합이 퍼트리는 바알 신앙을 비판하고 막아서는 것이 엘리야의 사명입니다. 그거 하다 지쳐서 더이상 못하겠다고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까지 하는데도 또 그 일을 하게 하지 않습니까? 왜 일복 있는 사람은 일이 사람 따라다닌다고 하잖아요? 사명이 꼭 그렇습니다. 사명이 사람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면 하십시오. 그건 피해 가면 안 됩니다. 피해갈 수도 없어요. 사명이 놓아주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붙들어서 또 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그런 것입니다. 그 사명이 실은 나를 골병들게 하고 망가뜨리고 죽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로 인해 내가 사는 겁니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살립니다. 마치 주님의 죽으심으로 많은 이가 살아난 것처럼 말입니다. 사명이 그런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리 고심하고 기도하고 피하려고 해도 그것이 당신이 짊어져야 할 사명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십자가 지는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2.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셨기에

 

 

정작 부모 형제나 삼 년간 동고동락하던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만류하는 길을 어찌하여 가셨는가?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셨기에 가실 수 있었습니다. 28절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조금 뜬금없이 하시는 말씀처럼 보입니다만 앞 27절과 연결해서 풀어보자면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아버지, 힘들어도 제가 십자가 지겠습니다. 그 역할을 감당 하겠으니 그것을 통해 아버지 영광 받으십시오!’그러자 하늘에서도 하나님의 화답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유교에서는 부모가 주신 몸을 상하지 않는 것을 효도의 시작이고,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하여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을 최고의 효도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비단 유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나라 사람이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90 먹은 부모가 60 먹은 자식에게 여전히 차조심 하라고 합니다. 몸을 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입니다. 자식이 성공하고 이름이 알려지면 그보다 부모가 자식키운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효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효도는 반대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희생을 치를 때 효도가 됩니다. 그것이 영광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 나라 왕이 되고 이름이 유명해지고 하셨다면 그것이 십자가 지신 것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을까요? 어림없습니다. 십자가 지셨기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입증 되었고 그것이 더없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진정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면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희생 없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집안에서도 믿는 사람이 더 희생해야 하고 교회도 이익을 더 보려고 하지 말고 희생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입니다.

어떤 일을 두고 이것이 하나님 영광을 위한 일이냐, 아니면 내 영광을 구하면서 하나님 영광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냐, 헛갈릴 때가 있습니다. 사실 헛갈릴 것이 딱히 없습니다. 내 욕심이 개입되면 그런 고민이 생기는 법입니다.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여럿 있지만 그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그 일이 내가 희생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 내게 희생이 따르는 일이면 그건 거의 틀림없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내게 희생이 아니라 이익이 많이 생기는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는 섣불리 결정하지 마시고 정말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도 그렇습니다. 지난 일로 인해 마음 아플 때가 있습니다. 내가 희생하는 역할을 하였는데도 칭찬은커녕 비판을 받고 비난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영광을 위해 내가 그 희생을 하였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때 희생하기로 결심했던 것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였다고 판단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따르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면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에 십자가 지실 수 있었습니다.

 

 

3. 공의에 부합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에

 

 

정작 부모 형제나 삼 년간 동고동락하던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만류하는 길을 어찌하여 가셨는가? 공의에 부합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에 가실 수 있었습니다. 31, 32절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1, 32)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지금까지 임금 노릇 하던 마귀는 결정타를 맞고 패배한다는 말씀입니다. 마귀는 온갖 편법과 불법, 불의, 죄로 세상을 유혹합니다. 그런 것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편법을 행해야 하고 불법을 저질러야 하고 죄를 지어야 합니다. 불의에 대해서 한눈 감고 모른체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섣불리 정의를 입에 담았다가는 따돌림받기 일쑤고, 너무 꼬장꼬장한 사람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견딜 수 없는 의분을 가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세상이 마귀의 궤계에 빠져 망가지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우리 인간이 마귀의 궤계에 빠져 죄의 종노릇 하며 사는 것을 보시면서 원통해 하셨습니다. 가장 거룩해야 하고 가장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야 할 성전마저도 장사치들의 소굴이 된 것을 보시면서 통분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의로써 불의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방법으로 이기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고 마귀에게 붙들려 종노릇 하던 자들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크셨으면 죽음으로써 그 일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이렇듯 마귀의 일을 멸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되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가, 분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은 마귀의 방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 하면서 마귀의 방법을 쓴다면 그것은 아무리 내게 좋고 교회에 좋더라도 그건 하나님께 영광이 아닙니다. 정의를 위한다면서 악으로 악을 갚는 방법을 쓴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은 아닙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 사역할 때 거기에 노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후배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는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일찍이 부동산 업계에 뛰어들어 돈을 제법 벌었습니다. 집을 장만하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어렵잖게 돈을 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돈 잘 벌던 부동산을 그만두기로 하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들어 보았습니다. 자기가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것은 투기성 부동산에 손을 댔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건 올리고 거금의 돈이 통장에 입금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복을 베풀어주신다고 느꼈답니다. 그래서 십일조도 하고 감사헌금도 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공부해 보니 그게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돈을 버는 방법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방법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살아가는데 복을 주실 리 없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그 일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투기가 아닌 건전한 방법으로 돈을 벌기로 하고 말입니다. 벌이가 싹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청년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 청년을 후배들은 믿고 따랐습니다. 보기 드문 청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정의와 공의에 맞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회에 등을 돌리게 하는 일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은 반드시 공의와 정의에 맞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깊이 생각하시고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십자가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역할을 맡게 됩니다. 힘들어도 사명이라면 피해갈 수 없습니다. 맡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거기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은 나를 살리고 누군가를 살립니다. 그리고 공의에 맞고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이라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금 찬란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쓰임 받으며 살아가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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