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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23/교사주일설교 기왕이면 
본문 요한복음11:45~53 
날짜 2020-05-24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23/ 교사주일설교

성경 : 요한복음 11:45~53(신약 166)

제목 : 기왕이면

 

1961년 예루살렘에서 독일이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아히히만이라는 사람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뉴욕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이 세계적인 이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예루살렘 법정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선 아히히만이라는 사람이 6백만 명을 학살한 원흉(元兇)치고는 인상 좋은 평범한 아저씨여서 충격이었습니다. 굉장히 험상궂게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 사람이 너무 평범하게 살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기계 일을 하면서 좋은 남편이자 자식들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였으며, 회사나 마을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엉망진창으로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는 이 사람이 사형을 받을 때까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히히만이라는 사람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대령이었는데 맡은 업무는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할 때 유대인을 가스실이 설치된 수용소로 신속히 이송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실함을 타고난 아히히만이 그 일을 맡은 뒤부터 일이 실수없이 진행되었고 일의 속도도 몇 배로 빨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나치는 전쟁 막바지에 유대인 학살을 신속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재판에서 자기는 국가가 시키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였을 뿐 유대인을 미워한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그들을 괴롭힌 적도 없다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나 아렌트 기자는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인이 되는가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인이 특별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도 극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아히히만 같이 자기가 몸 담고 있는 단체에서 시키는 일이라고 무비판적으로 충실히 행하면 평범한 사람이지만 악에 이용당할 수도 있고, 나아가 악에 지대한 공헌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더 극단적인 예는 바로 가스실에서 가스를 살포하는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스위치가 고장 나서 말을 듣지 않자 밤을 새서 스위치를 고쳤고 다시는 고장 나지 않도록 완벽한 스위치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신속히 죽어 나갔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일을 잘 행한 사람입니까,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한 사람입니까? 따로 떼놓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일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악이 될 수 있습니다.

 

 

1. 내가 악인이 되는 경우

 

 

그래서 악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이에 있습니다. 악인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입니까? 이것이 내게 유익이 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한테 유익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백번 생각해 봐도 나한테 유익이 되고 내가 몸 담고 있는 모임이나 단체에 유익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까 자신이 없어요. 그럼 거절해야 합니다. 그럴 때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도 내가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설령 선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깎아내리려 하고 비난하려 들기 때문에 내가 악인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선한 것을 인정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악인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다윗을 시기질투하다보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인이 되지 않습니까? 아무리 다윗이 싫더라도 다윗이 선한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만 했더라도 그처럼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욕심이 많아도 악인이 됩니다. 돈욕심, 명예욕, 다들 어느 정도씩은 다 있습니다만 과하면 반드시 악인이 됩니다. 쾌락을 탐하는 마음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에 엔(N)번방 사건을 보십시오. 거기에 관계된 사람들 겉으로 보면 다 평범해 보입니다만 쾌락을 탐하는 마음에 붙들리니까 악마같은 일들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가장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인 대제사장 무리와 바리새파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악인 노릇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45,46,53절을 봅니다.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45,46,53)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자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이들은 예수를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12장 9~12절을 보면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로 인해 예수 믿는 사람이 더 늘어나자 아예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참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가장 신앙이 좋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아는 자들이고 심지어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 죽이는 논의를 합니다. 왜요? 예수가 자기 무리에게 방해가 되니까, 예수께 인기와 관심이 몰리는 것이 싫으니까, 예수로 인해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리던 그 명예와 권리들을 잃게 될까봐, 죽이겠다는 겁니다. 결국 여기에 욕심도 있고, 자기무리에 대한 충성심도 있고, 무지함도 있고, 시기와 질투도 있고 다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버젓이 알고 그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말입니다. 그들 중 누구 한 사람도 일어나서 사람 죽이는 것은 하나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요? 그 아무리 우리 무리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 죽이는 것을 과연 하나님께서 인정하실까를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모이기 전날 밤에 진실하게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고민했었다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라며 반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악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누구든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까를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습관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누군가가 미워서 밤잠을 이루기 힘들 때 미움에 마음을 맡기지 마시고 죽을 힘을 다해 고민하십시오. 과연 하나님이 이런 나를 인정하실까? 시기와 질투가 치밀어 올라 그 사람 하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전부 꼴보기 싫게 느껴질 때 거기에 마음을 맡기지 마시고 죽을 힘을 다해 고민하십시오. 과연 하나님이 이런 나를 인정하실까? 어떤 집사님이 분하고 미워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였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어떤 집사님에게 돈을 떼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보면 사람들과 어울려 하하호호 하면서 거침없이 잘 지내는 걸 보니 너무너무 밉고 싫은 겁니다. 밤에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고 그 사람을 어떻게 혼내 줄까, 이렇게 이렇게 해서 망신을 톡톡히 주면 얼마나 통쾌할까, 그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이렇게 사고라도 한 번 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이 집사님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주를 믿는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래도 말씀생활 하고 기도생활 한다는 사람이 이래서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의 이 생각과 마음을 다 감찰하고 계셨을텐데, 내가 요즘 정말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함부로 이런 생각과 감정에 마음을 내어주며 살았구나, 크게 반성을 하고 곧바로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악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미움을 평범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악인이 됩니다. 죄를 평범히 여기기 시작하면 악인이 됩니다. 가해자만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까 생각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든지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2. 기왕이면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죽이려 공모하는 이들의 악한 공모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49~52절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49~52)

 

대제사장의 말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의 인기가 올라가고 백성이 예수를 따르다보면 예수를 지도자로 삼고 로마에 항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로마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우리를 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저 예수를 우리 손으로 죽이고 우리 안전을 지키는 것이 낫다, 한 사람이 죽어서 민족이 망하지 않는 길이 유익하지 않겠는가? 이런 방법이 있는데 어찌 그 방법을 마다하겠는가?’ 결국 예수를 죽여서 모두가 망하지 않고 살아남자는 말입니다. 가야바는 온갖 정치적인 계산을 깔고 한 말이지만 이 말은 의도하지 않게 예수님의 죽음이 모두를 살리시는 죽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맞춘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자기들의 정치적인 계산으로 예수를 죽이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자들의 악한 계략을 인간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 가능하도록 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악인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실 때 악도 사용하시고 악인도 사용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악을 직접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악인으로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행하는 악이 묘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데 쓰여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일을 하십니다. 예수의 제자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서른에 팔아먹는 파렴치한 짓을 하도록 하나님은 내버려 두셨습니다. 가룟유다는 자기의 행위가 기록된 예언을 이루어가는 도구가 될 것을 모르고 한 일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룟유다의 행위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악을 이길 수 있는 비결, 악인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뭔지 아십니까? 죽도록 미워한다고 이깁니까? 힘을 키워 짓밟아 주면 이깁니까? 미워한다고, 짓밟아준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도 악인이 됩니다. 악이나 악인은 그런 것으로 이기지 못합니다. 악을 어떻게 이기느냐, 내가 만난 악인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나님께서 저 악인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믿어내면 이깁니다. 저 악인이 내게 저지른 악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믿어내면 이깁니다. 이것이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의 의미일 것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면 악인으로 쓰임을 받은 사람도 있고, 의인으로 쓰임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이나 므낫세, 하만, 헤롯 같은 이는 악인으로 쓰임 받은 경우이고,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이는 의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경우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든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기왕이면 의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아무 생각이나 아무 감정이나 내키는 대로 맡겨 살면 안됩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인정하실까? 이 생각을 꼭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맡겨주신 아이들을 양육할 때 그들이 의의 도구로 쓰임받도록 좋은 도구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맹목적인 사람으로 길러내면 곤란합니다.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길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양육한 아이들은 반드시 민족의 내일이 되고 교회의 내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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