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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 5대제사시리즈. 소제

2016.03.08 20:27

양도사 조회 수:196

제목 [03-06] 5대제사시리즈. 소제 
본문 레위기 2:1-16 
날짜 2016-03-0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제가 어렸을 적, 자존감이 낮아서 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손이었습니다. 손가락이 유난히 짜리몽땅합니다. 손톱은 뭉텅합니다. 어렸을 때 참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가늘고 길쭉한 손가락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제 첫째가 제 바람대로 가늘고 길쭉한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둘째는 저를 닮아 짜리몽땅한 손가락, 뭉텅한 손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둘 다 마음에 듭니다. 가늘고 길쭉한 손가락뿐만 아니라 그렇게 싫었던 짜리몽땅하고 뭉텅한 손이 어쩜 그렇게 귀엽고 좋아 보이는 걸까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 손가락과 손톱을 싫어하고 있을 때 제 부모님도 제 손을 싫어하셨을까? 절대 아니지요. 저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 속에 하나님께서 제 눈을 바꾸시고 제 마음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때가 되면 부르시고, 멀리 있을 때 가까이 부르십니다. 하나님 가까이 가면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고 우리의 눈이 변화됩니다. 내 인생을 바라보던 눈이 변화되고, 다른 사람을 보는 눈도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발견하면서 내 인생의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어지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레위기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앞부분은 제사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 뒷부분은 거룩한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이 나옵니다.

 

 

 

1. 제사와 제사자는 동일합니다.

 

 

지난 주 번제에 이어 오늘은 소제라는 제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소제에서 ‘소’자는 작을 ‘소’(小)자가 아니라 흴 ‘소’(素)자입니다. 희다는 뜻입니다. 고운가루, 밀가루가 흰색이니까 흴 소자를 써서 소제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말로는 ‘민하’라고 합니다. 선물, 예물이라는 뜻도 있고, 약한 나라가 힘센 나라에 정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공물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에 많은 가축을 예물로 삼아 앞서 보냈지요? 그때 예물이 ‘민하’입니다.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해 선물공세를 편 것이지요.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예물입니다.

 

번제가 동물제사라고 한다면 소제는 곡식제사입니다. 번제는 목축 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신 제사법이고 소제는 농사짓는 사람들을 위해 주신 제사법입니다. 또 소나 염소 양에 비해 밀가루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소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제사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진 감사제사 가운데 소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번제가 더 낫고 소제는 더 못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을 드리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제물에 ‘나를 담았느냐, 담지 않았느냐’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가 가인은 피가 없는 땅의 소산물, 즉 곡식으로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고, 아벨은 피가 있는 제사, 즉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맞지 않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였기 때문에 양으로 제사지냈고,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기 때문에 곡식을 드린 것뿐입니다. 가인이 드린 것이 바로 ‘민하’, 소제였습니다. 그럼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가? 창세기 4장 4~5절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4:4b, 5a)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무엇이고 받지 않으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아벨과 그의 제물이고, 받지 않으신 것은 가인과 그의 제물입니다(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라고 쉽게 얘기들 하는데 성경대로 보면 ‘아벨과 그의 제사’이고 ‘가인과 그의 제사’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제물이 아니고 앞에 나오는 ‘아벨’과 ‘가인’입니다.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아벨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삶을 살았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아벨과 그의 제사는 받으신 것입니다. 가인은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매우 중요한 예배의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에 내가 실려 있어야 합니다. 껍데기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예배가 생명이고 예배가 능력이다!’ 예 맞습니다. 예배가 생명이고 예배가 틀림없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껍데기 예배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능력이 되지요. 요한계시록8장에 보면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향로를 천사들이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올라갑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신 후 천사가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으니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했습니다. 우레 음성 번개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는 고유한 표현들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껍데기 예배는 받지를 않으시는데 어찌 내 삶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옵니까? 그런 면에서 예배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배만능주의란 내가 어떻게 살든 간에 예배만 안 빼먹고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생각입니다. 철저히 비성경적입니다. 껍데기 예배는 절대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에 내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구경하듯이, 보험 든다는 생각으로 드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에 여러분 자신을 담아야 합니다. 부족해도 말씀대로 살려고 나름 몸부림 쳤던 모습이 있었다면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내십시오. 여기 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왜 더 안 되고 더 어렵습니까? 언제까지 이래야만 합니까?’ 혹시 이런 고민과 믿음의 회의가 있었다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 쏟아내십시오. 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교회생활 따로 사회생활 따로, 따로국밥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한심하고 위선적라고 느끼고,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 쏟아내십시오. 교회에서는 믿음이 생기는데, 세상만 나가면 한없이 초라하고 위축되고 작아지는 것 같아서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한 적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 쏟아내십시오. 뭔가를 담아도 담아야 합니다. 헌금함에 헌금 넣었다고 이 예배에 나를 담은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정 받기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게 진짜 예배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2. 고운가루라야 합니다.

 

 

소제는 드리는 방법이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요리를 하지 않은 상태로 드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요리를 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1~3절은 요리를 하지 않은 상태로 드리는 방법이 나옵니다. 1절만 읽어볼까요?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1)

 

고운가루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이라는 것을 얹어서 태워드리는 겁니다. 요리를 하지 않은 상태로 드리는 방법은 4~10절까지 나오는데, 4절, 5절, 7절을 읽어볼까요?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4)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5)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7)

 

요리를 해서 드리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화덕에 구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흙으로 둥글게 만든 화덕에다가 밀가루 반죽을 넓게 해서 척 붙여서 구워내는 빵을 말합니다. 터키나 중동사람들은 이 넓적한 빵에다가 양고기와 소스를 곁들여서 먹기도 합니다. 터키에서는 케밥이라고 부르지요. 둘째는 철판에 부쳐서 드리는 것입니다. 가마솥 솥뚜껑 거꾸로 해서 ‘찌짐’ 붙여먹는 것 생각하면 됩니다. 셋째는 냄비에 넣고 쪄서 드리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가 잘 하는 방법으로 해서 드리면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드리든 간에 일단은 고운가루라야 합니다.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고운가루’입니다. 소제도 번제의 원리와 같습니다. 기왕 태울 것 곡식단 그대로 태워도 될 건데 고운가루 만들어서 태우라 하시거든요. 지금처럼 마트 가면 밀가루 파는 시대가 아닙니다. 밀가루는 집에서 직접 만듭니다. 밀 수확을 해서 그걸 맷돌에 갑니다. 제가 어렸을 적 어머니 따라 방앗간에 가보면 쌀을 빻을 때 한 번만 빻지 않습니다. 한 번 빻고 다시 털어 넣고 또 빻습니다. 기계로 해도 두 세 번 빻아야 고운 가루가 되는데, 맷돌로 하자면 몇 번을 반복해서 갈아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갈고 난 뒤 아주 가는 채로 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고운가루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쏘레트’라고 합니다. 대충 갈면 입자가 곱지 않습니다. 상당히 거칩니다. 그 거친가루로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소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래 걸리고 번거로워도 고운가루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맷돌에 갈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번제로 치면 소를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을 씻는 과정에 해당됩니다. 번제도 그렇고 소제도 그렇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인스턴트식품이나 페스트푸드처럼 속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번거롭고 힘든 과정이 걸립니다.

 

이것은 진정한 예배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의 자연인이 거듭나서 진정한 예배자로 세워지는 데는 쉽지 않은 과정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야곱은 믿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형 에서의 칼을 피해 도망치던 벧엘에서였습니다. 인생의 큰 위기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믿음도 그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아주 어린 초보단계의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 일이 있은 후 20년 간 능수능란한 외삼촌 라반을 만나서 10전 10패 하는 인생살이의 쓴맛을 봅니다. 그때까지도 야곱은 진정한 예배자는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진정한 예배자가 된 것은 얍복강가에서 기도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진 뒤였습니다. 그때 야곱은 비로소 고운가루로 거듭납니다. 그간의 20년의 모진세월은 거친 야곱을 고운가루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맷돌질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진정한 예배자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닮은 사람이 되는 데까지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때까지 계속 맷돌로 가십니다. 하나님이 가실 때마다 이를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깨닫지 못할 때에는 더 강력한 맷돌로 가십니다. 환난과 시련이라는 맷돌질을 겪은 사람이라야 사람이 겸손해 지잖아요? 교만과 고집과 아집이 꺾이잖아요? 정말 하나님만 높이는 사람이 되잖아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자가 되려면 거친 성격이 맷돌에 갈아져 고아져야 합니다. 거친 말이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거친 행동이 양처럼 순해져야 합니다.

 

 

 

3. 넣으면 절대 안 되는 것, 반드시 넣아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소제에 관한 규정을 보시면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넣지 말아야할 것과 반드시 넣어야할 것입니다. 넣지 말아야할 것은 누룩과 꿀이고, 반드시 넣어야할 것은 기름, 유향, 소금입니다. 먼저 11절입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11)

 

누룩은 밀가루반죽을 부풀게 하고 발효시키는 이스트, 효모입니다. 성경에서 누룩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곳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부패와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누룩을 넣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성소 안에 차려놓는 진설병, 누룩 넣지 않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누룩 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룩을 철저히 제거합니다. 누룩이 부패와 죄를 상징하는데 특별히 누룩은 밀가루반죽을 발효시키면서 부풀어 오르게 하는 성질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누룩은 ‘자기자신을 과장해서 높임을 받고자 하고, 자기의 의와 업적을 드러내고자 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상징’합니다.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결국 이 누룩 같은 성질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까? 순수했을 때는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 영광만 생각하던 것이 누룩이 들어가게 되면 은근히 자기를 높이기 시작하고 부풀리기 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위험하지요.

꿀은 왜 넣지 말라하시는 걸까요? 사사기 14장에 보면 삼손이야기가 나옵니다. 삼손이 이스라엘 여인에게는 안 끌리고 자꾸 블레셋 이방여인에게 끌리지요. 딤나에 사는 블레셋여인이 좋아서 자꾸 거길 내려가는데, 한 번은 내려가다가 젊은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자 괴력을 발휘해서 염소 찢듯이 찢어 죽입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아예 딤나 여인과 결혼을 하기 위해 내려갑니다. 가나안 땅 들어가면 가나안 사람과 결혼하라 하셨습니까, 하지 말라 하셨습니까? 하지 말라 하셨지요. 내려 가다가 자기가 찢어 죽인 사자가 궁금한 겁니다. 가봤어요. 그런데 죽은 사자 몸에 꿀이 있는 겁니다. 삼손이 그 꿀을 취해서 걸어가면서 먹고 자기 부모에게도 드려 먹게 하였습니다. 그 꿀을 얻기 위해 죽은 사자와 접촉을 했을까요, 하지 않았을까요? 했겠지요. 나실인으로 구별된 삼손이 부정한 것과 접촉하고, 부정한 시체로부터 얻은 꿀을 먹으면 돼요, 안 돼요? 안 돼요. 사사기 성경은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입니다. 알면 더 재미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사자가 의미하는 바는 블레셋입니다. 젊은 사자처럼 힘센 나라 블레셋!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 그 죽은 시체와 같은 블레셋의 몸에 있는 그 부정한 꿀을 이스라엘이 자꾸 부러워하고 탐한단 말입니다. 꿀이 뭐냐? 가나안의 풍부한 물질과 화려한 문화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그걸 탐하다가 가나안과 통혼하고 가나안 우상을 섬기고 하다가 고생을 하지 않습니까? 이제 돌아오겠습니다. 꿀을 넣지 말라는 말씀이 뭐냐?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릴 때에 세상의 화려함을 좇는 마음, 세상을 부러워하는 마음, 세상을 향한 탐욕을 그대로 품은 채 나오지 말라 이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꾸 세상의 것에 연연하고 세상을 향해 기웃거리고 세상문화 세상유행 못 따라가서 안달이고 하는 것 같이 초라한 모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것이 좀 없고, 세상 즐거움 좀 못 누리고, 세상 유행 좀 못 따라가더라도 당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가장 행복해야 하고 가장 즐거워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때만이라도 세상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깨닫고 세상 향한 마음을 비우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고 가야 합니다.

 

반대로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은 기름 유향, 그리고 소금입니다. 레위기에서 기름은 구별의 의미입니다. 사람도, 기구들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할 때 기름을 바릅니다. 유향은 태울 때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하는 요소입니다. 소금은요?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 반드시 소금을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금언약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변함이 없는 사랑이고, 변함없는 겸손입니다.

형편이 남들보다 좋아져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변함없이 겸손하고, 변함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형편이 계속 곤두박질 칠지라도 원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 사랑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계획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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