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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강해20 빛바라기 세 갈래 길

2020.03.29 10:06

배재우전도사 조회 수:185 추천:1

제목 요한복음강해20 빛바라기 세 갈래 길 
본문 요한복음 11장 1~10절(신약 164) 
날짜 2020-03-29 
설교자 전용표 목사 

3월 29일 가정예배지

 

인도 / 가족 중에서

 

1. 시작기도

 

하나님, 지난 한주간도 흉흉한 소문이 가득한 세상가운데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오늘 이렇게 가정예배로 주일예배를 드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찬 송 :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3. 성경봉독 : 요한복음 11장 1~10절(신약 164)

 

4. 강 론 : 빛바라기 세 갈래 길 / 전용표 목사

 

5. 기 도 : 인도자나 가족 중에서

 

하나님, 오늘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행과 불행을 초월하신 주님을 믿으면서도 행과 불행에 얽매여서 때로 교만하고 때로 좌절하며 습관처럼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는 행과 불행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어 우리 영혼이 힘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우리는 그저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삶에 골몰할 때가 많았으며 그로 인해 마음도 복잡하고 삶도 복잡하고 영혼도 혼탁한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야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나에게 좋다고 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쉽게 둔갑시켜 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진실로 내게 손해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영혼이 혼탁함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살게 하여주십시오.

 

주님, 우리는 얼마나 내 유리한 때를 구하며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을 향해 늦다고 아우성을 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때가 주님께 속하였으며 주님께는 늦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때를 믿고 살아감으로써 조급한 마음이 가라앉게 하시고 우리 영혼이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우리 예배를 받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은혜베푸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주님의기도

 

 

요한복음강해 20

성경 : 요한복음 11:1~10(신약 164)

제목 : 빛바라기 세 갈래 길

 

 

어렸을 적 불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호롱불 아래서 살다가 전기가 들어왔는데 전깃불 아래에서 그림자가 선명하게 생기는 것을 보고 형들과 한동안 그림자놀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장에서 사오신 손전등이 있었는데 손전등을 켜고 손을 갖다 대니까 빛이 손을 통과해서 손이 반투명하게 보였습니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장난을 많이 했었습니다. 빛은 이런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실은 빛은 이 땅 모든 것에 생명을 줍니다. 빛이 없으면 식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빛을 받아야 풀도 나무도 꼿꼿하게 잘 자랍니다. 빛이 있으니까 밝히 볼 수 있습니다. 빛은 또 시간이기도 합니다. 시간이란 것은 지구와 태양과의 관계입니다. 결국 지구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시간이 태양빛에 의해 정해집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빛을 떠나서는 성립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여러 가지에 빗대어서 말씀하시는데 그중에 당신을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사람이 빛이 있는 동안에 다니면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에 넘어지게 하는 것도 많고 넘어지게 되는 상황도 많습니다만 주님을 빛으로 삼고 그 빛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의 시작부분으로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이 일부러 지체하시다가 늦게 찾아가는 대목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빛을 좇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행(幸)과 불행(不幸)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여동생과 함께 베다니라고 하는 마을에 살았는데 예수님과는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이 들었고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동생들이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서 속히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셨습니다. 4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4)

 

지난 번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맹인을 보시고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가 행(幸)과 불행(不幸)을 나눕니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죽을 병이 걸린 것을 다들 불행이라 하지 행이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경우를 두고 유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이로 볼 때 예수께서 행과 불행을 구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만사라는 것이 행이 불행으로 연결되고 불행이 행으로 연결되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옛날 여희라고 하는 약소국 여인이 강대한 나라에 공물(貢物)로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불쌍해서 어쩌나? 저 꽃다운 나이에 남의 나라에 끌려가서 바쳐진다니 불쌍해서 어쩌나?” 집안사람들 동네사람들 다 나와서 울었습니다. 여희도 자신의 신세가 불쌍해서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런데 공물로 바쳐진 여희가 그 나라에 가서 왕후가 되었습니다. 여희는 지난날 신세를 한탄하며 떠나온 것을 생각하고 웃었습니다. 요셉도 그렇지 않습니까? 남의 나라에 종으로 팔려 가는 길은 누가 보더라도 불행의 길입니다만 그것이 총리가 되는 길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요셉이 종으로 팔려 가던 불행의 길이 복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등극한 것은 지극한 영광이었으나 나중에는 비극이 되고 말지요.

여러분, 결국 행과 불행이라는 것은 ‘단 것 먼저 먹을래, 쓴 것 먼저 먹을래?’입니다. 어떤 사람이 원숭이에게 하루에 사과를 일곱 개씩 주기로 약속을 하고 오전에 세 개를 주고 오후에 네 개를 준다니까 원숭이들이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네 개를 주고 오후에 세 개를 주기로 바꿨더니 원숭이들이 박수치며 좋아하였습니다. 원숭이들이 어리석어 보입니다만 사람이 그러고 삽니다. 단 것 먼저 먹으면 쓴 것 먹을 일 생기고, 쓴 것 먼저 먹었으면 단 것 먹을 일이 찾아옵니다. 안 되면 되고 되면 안 되고, 이기면 지고 지면 이기고, 한 번 유리하면 한 번 불리하고, 한 번 불리하면 한 번 유리하게 됩니다. 굳이 이것이 행이니 불행이니 하면서 미리 판단해서 교만 떨 것도, 한탄할 것도 없습니다. 행이니 불행이니 너무 따지고 그에 따라 웃었다 울었다 하는 것이 실은 맹인의 삶이고 어둠의 삶입니다. 행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으신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이 무슨 불행이 있으며 무슨 행이 따로 있습니까? 주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에게는 불행도 행이요 복입니다. 이걸 제대로 깨닫고 믿는 것이 빛의 삶이요, 그럴 때 우리 영혼에 무한한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2. 하나님 영광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에 걸려 죽게 된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내가 잘 되는 일, 내게 좋은 일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너무 쉽게 단정해 버립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라고 하셨지 우리의 영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 되는 일, 내게 좋은 일이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백 년 전 십자군전쟁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슬람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성지를 이교도들에게 짓밟히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며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정복하러 간 사건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군량미가 떨어졌습니다. 배가 고프자 그들은 마을마다 가서 닥치는 대로 죽이고 겁탈하고 빼앗았습니다. 그들이 약탈한 지역은 기독교인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이슬람 사람들과 전쟁을 하였는데,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음 그들이 한 일은 학살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안에 살고 있던 주민 수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구한 세수대야나 녹슨 못, 나무토막 같은 것을 유럽으로 가지고 가서 예수님이 제자들 발을 씻긴 세수대야라고, 예수님의 피가 묻은 못이고, 십자가 나무토막이라고 비싼 값에 팔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슬람 세력들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빼앗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고 자랑삼아 말했지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말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이지 나의 영광이 아닙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도 하셨는데 이 말씀을 나사로를 살림으로써 예수님이 유명해 지고 명예와 인기를 얻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일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받아 죽게 되셨고 실제로 얼마 있지 않아 죽으셨습니다. 물론 그 죽음이 믿는 자들을 살리시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당신이 받게 될 영광은 십자가의 죽음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내가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행한 십자군전쟁처럼 오로지 자기들의 탐욕을 채운 일을 가지고 , 자기들만 잘 된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포장하는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설사 내게는 손해가 있더라도 진정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을 바라야 합니다. 우리가 저 세상에 나가서 그럴 수 있을 때에 한국교회 위에 짙게 드리운 치욕의 먹구름을 거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이 맑지 않습니다. 탁합니다. 자신의 영광이라는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면 영혼이 맑아집니다. 이것이 빛되신 예수님을 좇아 사는 모습입니다.

 

 

3. 때

 

 

급하다고 오라 할 때는 가지 않으시던 예수님이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 그때서야 나사로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6~8절을 읽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6~8)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기별을 받으신 후 예수님은 이틀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그동안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대로 가자고 하십니다. ‘아니, 선생님, 최근에도 유대인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했었는데 또 그 위험한 곳으로 가려 하십니까?’ 제자들이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때가 되었다 생각하신 예수님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가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상태가 더 악화될 때까지 놔두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듭니다. 급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늑장을 부리고 뜸을 드리신단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급하다고 때가 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급해서 참지 못하고 말하고 행동하다가 낭패 봤지, 주님이 늦어서 낭패 본 것은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자기가 기다리지 못하고 몸종 통해 후사를 봤다가 집안에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급하고 서둘러도 주님의 때가 아니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참지 못해서 늦다고 느끼는 것이지 주님께는 늦다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때를 구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지는 때에 맞추십니다.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야 예수님이 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시는데 굳이 이렇게 하신 것은 주님이 죽어있는 우리를 살리시는 분임을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당신 또한 나사로처럼 죽었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 것을 나사로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을 통해 예시하시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들을 위해 주님은 때를 맞추신 것입니다.

청년회 때 담당목사님이 수련회 강사로 의사인 친구분을 모셔온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렸는데 집에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하늘같은 존재인데, 그 하늘이 무너진 것입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꼭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지만 집에서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되어 학비며 책값을 벌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가 되는데 남들보다 두 배의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이 분이 병원에서 환자들을 대하는 자세가 여느 의사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따뜻한 자세로 정성을 다해서 환자를 대하였습니다. 환자의 말을 일일이 다 들어주고 의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분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젊은 나이에 치료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학비가 없어 공사판에서 일을 하면서 만난 그 순박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프고 추웠던 기억들이 콧대높은 의사가 되지 않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환자를 따뜻한 가슴으로 대하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의사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주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될 때까지 주님은 늦추십니다. 우리는 늦다 생각하지만 주님께는 늦다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시간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 주님 앞에서 내 때를 주장하는 마음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때를 온전히 주님께 맡길 때에 우리 영혼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때는 빛에 달려있습니다.

 

 

맺는 말

 

 

빛되신 예수를 깨닫고 믿고 좇아감으로써 우리 영혼이 힘을 얻고 맑아지기를 원합니다. 시간과 때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내어 맡기는 삶을 통해 우리 영혼이 평안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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