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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강해17 타인과 자신의 고통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
2020.03.08 08:43
제목 | 요한복음강해17 타인과 자신의 고통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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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9장 1~3절(신약 160) |
날짜 | 2020-03-08 |
설교자 | 전용표 목사 |
3월 8일 가정예배지
인도 / 가족 중에서
1. 시작기도
하나님, 오늘도 3주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긍휼을 나타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찬 송 :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 성경봉독 : 요한복음 9장 1~3절(신약 160)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강 론 : 타인과 자신의 고통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
/ 전용표 목사
5. 기 도 : 인도자나 가족 중에서
하나님,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내가 고통스럽고 어려울 때 위로받기를 바라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도 했고 그 사람의 고통을 이야기거리로 삼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셨지만 내 기준을 가지고 남을 차별하며 대할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을 지금까지 믿고 따랐지만 아직 주님을 닮지 못한 이러한 모습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더 닮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고통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고통을 통하여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이 있지만 우리가 잃은 것보다 더 귀한 것들로 채워나가실 것도 믿습니다. 이 믿음 안에 거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코로나 사태가 어서 빨리 끝이 나고 교회공동체로 모여 예배드릴 날이 이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주님의기도
성경 : 요한복음 9:1~3(신약 160)
제목 : 타인과 자신의 불행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
오늘로서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린지 3주째입니다. 성도들과 대구경북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에게 주님의 긍휼하심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부터는 요한복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금 코로나사태를 맞아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전국에서 격려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대구에 있는 한 스테이크전문점에서 계명대 의료진들을 위해 매일 스테이크도시락 150개를 만들어서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본인들도 영업이 어려운 상황일텐데 이 일을 매일 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처럼 살신성인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훈훈한 뉴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마스크 유통업자들은 모두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마당에 돈을 더 벌려고 매점매석을 일삼았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지극히 선한 마음이 있는 반면 지극히 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의 양면성이 가장 잘 드러날 때는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고통을 대할 때입니다. 이점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만났던 제자들에게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1.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로
오늘 본문 요한복음 9장 1, 2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1,2)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불쌍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이런 말은 하지 않고 부모가 죄가 많아 맹인으로 태어났습니까, 자기 죄로 맹인으로 태어났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잔인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모습이자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잔인할 정도로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대하는 모습에서 사람은 내면에 숨어있는 은밀한 잔인성을 드러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니 자주 있다고 봐야겠지요.
사람은 남의 행복보다 남의 불행에 훨씬 더 관심이 많습니다. 남의 행복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남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고 또 남의 행복을 이야기할 때보다 남의 불행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기도 합니다. 걱정하는 투로 말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동정의 마음을 가지는 동시에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나가면 죄가 있어서 저런 일을 당한다고 제자들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뒤에는 죽을 때까지 거룩해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것을 성화(聖化)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화의 삶을 살려면 내 속에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는 타락한 본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코로나라고 하는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눈에 보인다면 불안하거나 무섭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속에 타락한 본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둔감함이 실은 우리 영혼을 서서히 병들게 하는 치명적인 영적 바이러스입니다.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남의 불행과 고통을 보면서 ‘누구 죄 때문인가’라고 한 제자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의 불행과 고통을 은근히 좋아한다든지, 호김심이나 이야기거리로 삼는다든지 할 때 우리 속에 거하시는 주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실까를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성숙해야겠습니다.
2. 주님의 마음으로
제자들이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에 대해 부모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라고 잔인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차별의식 때문입니다. 맹인은 자기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차별의식이 제자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맹인이 아닐 뿐 아니라 자기들보다 뛰어났다면 감히 이런 질문을 함부로 하였을까요? 못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잔인한 질문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의 그 전제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어떤 스승에게 자산이라는 제자와 신도가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자산은 귀족이며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이고 신도가는 천민에다 다리 한쪽이 잘린 장애인입니다. 자산은 속으로 은근히 신도가를 무시합니다. 어쩔 수 없이 스승 아래서 동문수학(同門受學)하고는 있지만 자기는 귀족에다 높은 벼슬아치인데 천민에다가 절름발이인 사람과 동문이라는 것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딜 갈 때도 떨어져서 걷습니다. 신도가가 모를 리 없습니다. 어느 날 신도가가 자산에게 그럽니다. “이보게 자산, 나는 스승님과 있을 때는 내 다리가 둘인지 하나인지를 까마득히 잊어버린다네, 하지만 자네와 있을 때는 내 다리가 한쪽이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느껴지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스승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귀족인지 천민인지, 다리가 둘인지 하나인지 가리지 않고 그저 한 사람으로서 대해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산은 사람의 신분과 신체의 어떠함을 기준 삼아서 사람을 달리 대한다는 뼈있는 소리입니다. 자산은 신도가의 말에 크게 뉘우치고는 다시는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듣고 고칠 줄 아는 자산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 이야기에 나오는 스승과 같은 분입니다. 얼마나 가졌는가, 얼마나 배웠는가, 어떤 집에 사는가, 그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를 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올바로 믿고 이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자기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세상 기준을 가지고 자기를 정도 이상으로 높인다거나 정도 이하로 낮춘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남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믿고 주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아 이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3. 불행을 넘어 영광으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우문현답(愚問賢答)을 뛰어넘어 나와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위대한 대답이었습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3)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고는 그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불행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십니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사람들은 불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십니다. 우리 삶은 불확실성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불행이다 복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까지 불행이 될지 끝까지 복이 될지 모릅니다. 복이 불행이 되는 경우도 있고 불행이 복이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40년 동안 수제화를 만들어 온 수제화 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팔을 잃게 되었습니다. 구두 만드는 사람이 팔이 하나 없으면 뭘 하겠나 하는 절망에 처음에는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속에서부터 강하게 일어나서 죽지 않았습니다. 퇴원을 하고 의수(義手)를 맞추러 갔습니다. 보조기 가게 사장님이 기왕 이렇게 된 것 이제부터 장애인을 위한 구두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그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그래, 이거다’ 싶어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두 손으로 하던 일을 왼손 하나로 하려니 일은 몇 배로 어렵고 몸도 훨씬 힘들었습니다. 가죽 자르는 칼에 허벅지가 찔리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5년, 드디어 왼손 한 손으로 자유자재로 구두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그럽니다. “어떤 사람은 40년 동안 앉아만 있다가 내가 만들어준 구두를 신고 처음 걷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맞는 신발이 없어 붕대를 감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만일 이분에게 불행한 사고가 없었다면 말 그대로 그저 ‘예쁜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분은 ‘희망이라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른팔이 사라졌지만 여러 사람에게 오른팔보다 더 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불행이냐 복이냐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주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백이면 백 불행이라 해도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시면 백사람이 불행이라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천 명이 하나같이 불행이라 해도 주님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시면 천 명이 불행이라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사태가 지금 보기에는 모두에게 불행으로 보이지만 주님께서 이 일을 통해 어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맺는 말
고통은 같아도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미풍이 솔솔 불어오면 쓰레기 더미에서는 악취가 풍기지만 꽃밭에서는 꽃내음이 납니다. 여러분, 모두가 겪는 고통의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악취가 아닌 그리스도의 꽃내음을 풍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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