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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강해 14 내 속에 목마름

2020.02.08 15:31

배재우전도사 조회 수:137 추천:1

제목 요한복음강해 14 내 속에 목마름 
본문 요한복음 7:37~39(신약156) 
날짜 2020-02-02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14

성경 : 요한복음 7:37~39(신약 156)

제목 : 내 속의 목마름

 

 

 

군대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은 풀 베는 일이었습니다. 예초기가 없던 시절 오로지 낫으로 풀을 베는데 낫이라 해봈자 날은 뭉텅한 데다 낫자루는 쇠파이프를 잘라 붙인 것이어서 아령으로 써도 될만큼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그런 낫으로는 풀을 베는 것이 아니라 힘껏 휘둘러서 끊어냈습니다. 포병부대이다 보니 부대 경내가 무지무지 넓었습니다. 이등병 때는 풀을 베다가 자꾸 뒤를 돌아보거나 앞을 봤습니다. 얼마나 벴고 얼마나 남았나 보려고 말이지요. 그런데 조금 지나면 보지 않습니다. 그저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팔을 휘두를 뿐입니다. 뒤를 보거나 앞을 본다해서 남은 풀밭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이치에 마음이 적응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중요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바로 지금입니다. 과거도 내 시간이 아니고 미래도 내 시간이 아닙니다. 오직 지금, 현재만이 내 손에 있는 시간입니다. 과거는 주로 기쁨 아니면 아픔이라는 흔적으로 남고 미래는 기대 아니면 불안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과거와 미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서 바뀝니다. 예를 들어 지나간 일 중 아픔으로 남아있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의 의미를 지금에 와서 깊이 깨닫는다면 더이상 아픈 상처가 아니게 됩니다. 기쁨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감사는 할 수 있는 기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되면 앞날에 대한 마음도 달라집니다. 불안하게만 여겨지던 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의미가 있어서 허락하실 것을 믿기에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더더욱 현재, 지금 이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과거도 바뀌고 미래도 바뀌는 것입니다.

 

 

 

1. 나를 이기게 하시는 성령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보더라도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지, 마음이 그렇게 따라주느냐? 그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착하기로 소문 난 농부가 장에 갔다 오면서 어떤 가게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가게에서 주인과 경찰관이 달려오더니만 “저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돈 훔친 사람 틀림없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당신이 저 가게에서 돈을 훔쳤어?”경찰이 묻습니다. 농부는 “아닙니다. 저는 저 가게에 들어간 적도 없습니다!”라고 했지만 가게 주인은 남의 돈을 훔쳐 간 도둑놈이 거짓말까지 한다며 더 큰소리를 쳤습니다. 동네사람들도 몰려와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저 사람 그리 안 봤는데 영 형편없는 사람이네!” 그날 농부는 동네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경찰서로 잡혀갔고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습니다. 이튿날 다행히 범인이 밝혀졌습니다. 농부는 풀려났지만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억울함을 참지 못해 가슴을 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나마 진범이 잡혀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식구들이 위로해주었지만 억울함을 풀 길이 없었습니다. 농부는 그길로 시장에 나가 어제 자신이 당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고, 1년 2년 3년이 지났습니다. 농부는 농사짓는 것도 잊고 자신이 얼마나 억울하게 당했는지를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농부는 자신이 갖고 있던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정호승시인의 책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억울하고 속상하면 누군가에게 막 말하고 싶지요. 그런데 한두 번 이야기하고 말아야지 자꾸 말하고 말하면 처음에는 들어줘도 나중에는 들어주는 척만 합니다. 많이 말 한다고 많이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한두 번 말했다면 이제는 마음에서 정리하고 잊어야 합니다. 그게 내가 살 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음이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 마음을 누가 이깁니까?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누가 이기냔 말입니다. 누구도 못 이깁니다. 마음보다 더 크고 더 강한 존재라야 합니다. 그게 누구냐? 그게 우리 속에 임하여 계신 성령입니다. 성령이 이기게 하세요.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받고는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 나옵니다. 성령을 받자 실패가 주는 아픔이 아무리 깊었어도 그것이 제자들의 발목을 잡지 못했고, 앞날의 불안과 두려움이 아무리 무겁게 내리눌러도 그들을 주저앉히지 못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고치십니다.

 

 

 

2. 나를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

 

 

 

성령은 우리를 고치실 뿐 아니라 내가 누군지 나를 찾아주시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성령, 이러면 권능, 능력, 이렇게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성령은 능력이어서 부족한 자에게 능력을 더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하시는 본질적인 일은 사람을 진리가운데로 이끄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라 부르시고 또 진리의 성령이라 소개하시면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16장 13절상반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a)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때 먼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내가 지금까지 붙들고 살던 것, 중요하게 여긴 것들이 과연 이것이 참다운 것들인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지금까지는 이런 생각 없이 그저 마음 내키면 사고 먹고 추구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이런 고민이 들게 하십니다. 제가 중학교 때 나이키 프로스펙스 아식스 같은 소위 브랜드 신발이 처음 나왔습니다. 아주 비쌌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집 아이들은 그런 것 못 사신고 나이케, 프로스팍스, 아삭스 같은 짝퉁신발을 사 신었습니다. 그때 저는 보세 신발점에서 정가보다 조금 싸게 파는 브랜드신발을 파는 것을 보고는 나이케와 프로스팍스에서 탈출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드디어 할인된 가격으로 브랜드 신발을 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진퉁 브랜드에 입성을 한 것이지요.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새 신을 신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갔는데 모두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혼자 생각이지요. 착각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 저는 제 인생을 산 것입니까, 아닙니까? 아니지요. 그걸 어찌 제 인생 산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없지요.

오늘날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자기인생을 찾는 시대입니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몇 년째 유행하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은 못 누려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누리고 살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가장 좋은 것을 사고 먹고 누리자, 나에게 충분히 투자하자,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못됐다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어디 있는고 하니 나를 찾자, 나에게 투자하자, 현재를 누리며 살자, 이렇게 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 돈으로 하는 것, 물질적인 것, 외모를 꾸미는 것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카피인생입니다. 나를 찾는 것이라 하지만 나를 찾고 나에게 투자하는 것이 돈이나 물질적인 것, 외모를 꾸미는 것에 국한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지금이 도리어 심각한 자기상실(自己喪失)의 시대라고 봅니다. 그리고 다들 평범한 인생을 못 참아하는 엑스트라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평범함은 결코 초라함이 아닌데 평범한 자기 인생을 실패한 인생처럼 초라한 인생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과장되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6장 25절에 보면 베스도 총독이 바울의 말을 듣고 바울 네가 미쳤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했을 때 바울이 하는 말이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진짜 자기를 찾은 것이지요. 성령께서는 우리를 좋은 것으로 덧칠을 해서 멋있게 보이게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생기면 그토록 고민이던 철사머리도 사랑스럽고 자유민주주의형 얼굴도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것으로 보이는 일대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나를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나를 진정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시기질투하지 않고 온전히 인정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칭찬해도 그게 진짜 내가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해도 그게 진짜 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걸치고 있는 것 하나 없는 자연인 그대로의 나, 그 나를 보게 하시고 인정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3. 예수를 믿을 때 임하시는 성령

 

 

 

이 성령을 어떻게 받습니까? 예전에는 주로 성령충만 받는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한다고 표현합니다. 표현만 다르지 의미는 같습니다. 성령충만 받는다고 하면 기도원이나 집회 같은 데서 목이 쉬라고 부르짖는 것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목이 쉬도록 기도해야 성령충만을 받을 것 같습니다만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는 조건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37, 38절 다시 한 번 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7~38)

 

그런데 사도행전에 오순절 성령받은 사건을 보면 제자들을 비롯한 120명의 사람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그들이 오로지 힘썼던 기도가 도대체 뭘까? 성령을 주옵소서, 능력을 주옵소서, 이랬던 것인가? 그 단서가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나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오순절 이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물어오는 자들에게 베드로가 대답한 말인데, 여기를 보면 회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들이 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기들이 마가다락방에서 10일동안 오로지 했던 기도의 핵심은 회개였던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큰어려움과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 들려온 내면의 소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너는 마치 코카콜라 판매원이 코카콜라를 팔 듯이 목회를 하고 있구나!” 생각해보니 교회를 온갖 시스템으로 만들어놓고 그 시스템을 열심히 돌렸던 것입니다. 거기에 깊은 영성이 없었습니다. 설교도 목회일정에 맞추어 성도들을 동원하는 식이었지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전달하는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회사를 경영하듯이 하고 있었던 것이 깨달아지면서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후 목사님은 방안에 들어가서 괴로워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 잘못되었음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고백이 이어지고 깊어질수록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무겁게 누르던 목회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데서 오는 평안과 기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은 어딜가든 ‘내가 그래도 개척을 해서 60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을 시켰는데’ 하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그건 자부심이 아니라 교만이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하고 기쁠 수가 없는 겁니다. ‘주님, 이제는 예전같이 내 바라는 목표는 주님이 주신 목표인양 포장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교회를 시스템화 시켜놓고 가열차게 시스템을 돌리는 식으로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성도들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깊은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셨다고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뉘우치고 고백하고 회개할 때 역사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핸들을 잡고 내 마음대로 무면허 운전을 했다면 뉘우치고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성령께 핸들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핸들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맺는 말

 

 

어떤 청년이 너무 가난하고 배가 고파서 가게에서 빵 봉지를 하나 들고 부리나케 도망을 쳤습니다. 한참을 달려서 뒤가 조용해졌을 때 빵을 먹으려고 봉지를 봤더니만 빵봉지가 아니라 가루비누봉지였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처량해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 아픔을 딛고 청년은 인생을 헛으로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배고픔은 담도 뛰어넘게 하고 목마름은 흙탕물도 마시게 합니다. 여러분 내 속에 목마름을 가져야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오늘 성령의 목마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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