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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 11 누가 내 발목을 잡는가 
본문 요한복음 6:14~21(신약152) 
날짜 2020-01-12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11

성경 : 요한복음 6:14~21(신약 152)

제목 : 누가 내 발목을 잡는가

 

 

옛날에 ‘지리소’라고 하는 심한 꼽추가 있었습니다. 허리가 얼마나 굽었는지 턱이 배꼽을 가릴 정도였고 반대로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심한 꼽추였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충분히 식구들 먹여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전쟁이 나서 젊은이들 다 잡아갈 때 지리소는 꼽추라고 면제되었습니다. 나라에서 성을 쌓는다고 젊은이들 일꾼으로 끌고 갈 때 지리소는 몸이 저래서 일을 어떻게 하냐고 제외되었습니다. 반대로 나라에서 불쌍한 사람에게 곡식 나눠줄 때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갖다 주었습니다.

세상은 똑똑해야 살아간다지만 반대로 너무 똑똑해서 풍랑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재주가 뛰어나야 성공한다고 하지만 반대로 너무 재주가 뛰어나서 자기 발등 찍는 사람도 많습니다. 너무 잘 나서 탈 나는 사람보다 조금 못 난 것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문제 많은 것도 못난 사람보다는 잘난 사람들 때문인 경우가 많고, 인생의 풍랑을 만나는 것도 내 못남을 의지한 것보다 내 잘남을 의지한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병이어라는 같은 사건을 겪은 뒤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서 혼쭐이 나는데 예수님은 물위를 유유자적 걸으시며 풍랑을 잠재우십니다. 제자들은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서 아무리 애를 써도 가려던 곳으로 가질 못하는데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오셔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가려던 곳으로 가게 해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누가 도대체 내 인생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풀어내고 가려던 곳으로 인생을 내달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1. 누가 내 발목을 잡는가

 

 

 

오병이어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먼저 배타고 건너가라고 시키신 다음 당신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중간에 풍랑을 만나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7~19절 상반절을 봅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17~19a)

 

마태와 마가복음을 참고해서 보면 제자들은 해질 무렵인 초저녁에 배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 새벽 서너시가 되도록 몇 시간동안 노를 저었는데 겨우 십여리 밖에 가질 못하였습니다. 풍랑이 발목을 잡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 풍랑이 갈릴리바다에 부는 풍랑인 동시에 제자들 마음에 부는 풍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나 마가를 보면 오병이어 사건 이후 예수님은 제자들더러 배타고 빨리 이곳을 떠나 가라고 재촉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재촉했다는 말은 ‘아낭카조(άναγκάζω)’라는 말인데 ‘하기 싫어하는 것을 강제로 시키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오병이어 이후 제자들은 그 자리를 떠나기 싫어했는데 예수님이 야단을 쳐가면서 쫓아보내셨던 겁니다. 제자들은 그곳을 떠나기 싫어했던 이유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 인기를 뒤로 하고 가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이 인기가 힘이 되고 명예가 되고 돈이 되는 것인데 이것을 어찌 포기하겠습니까?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습니까?

억지로 등떠밀려 배를 타고 떠나기는 했는데, 솔직히 가기 싫은 겁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 이 기회를 잡아야 하나, 두 마음이 싸웁니다. 그것이 제자들 마음의 풍랑입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내 인생에 발목을 잡는 사람이나 상황을 만나는 일이 있습니다. 야곱은 정든 부모와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 땅에서 타향살이할 때 힘들면 형을 원망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고향을 등지고 살면서 고생하는 것은 다 형 때문이야’ 하면서 말입니다. 야곱 입장에서는 형이 인생의 발목을 잡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자기 인생 발목 잡는 사람은 형이 아니라 자기자신이지요. 자기가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여서 원수지간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이 뒷꿈치를 잡는다는 뜻인데 이름대로 욕심을 부려서 남의 발목을 잡으니까 결국 자기 발목도 잡히게 된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거슬러 욕심을 좇게 되면 그것이 결국 화근이 되어서 나중에 내 발목을 잡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무단히 저 사람이 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없잖아 있습니다만 그에 못지않게 나 스스로가 내 발목을 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올 한 해 우리네 인생이 발목잡히는 일 없이 물흐르듯 흐르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풍랑만난 배 안으로 영접했듯이 우리들도 예수님을 제대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모셔들인다, 영접한다는 것은 연합을 의미합니다.

 

 

 

2. 물위를 걷는 주님과 연합하기

 

 

 

어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며 어떤 예수님과 연합해야 합니까? 물위를 걷는 주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오병이어 사건 이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를 거두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오래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장차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보내겠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예수님이 모세처럼 광야에서 먹을 것을 베푸는 것을 보고는 바로 그 약속된 선지자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냥 그런 위대한 선지자가 왔다라고 인정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저런 분이 왕이 되면 먹고사는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요구를 뿌리치시고 혼자 산으로 가십니다. 15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15)

 

사람들이 높여주고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무슨 사장님 정도가 아니라 왕이 되는 건데 이보다 큰 성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 좋은 일을 시험으로 여기셨습니다.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과 묘하게 겹쳐집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 네 능력을 써라, 아닙니까? 지금 군중들이 바라는 바지요. 절 한 번 해라, 그러면 세상 부귀영화 모두 주겠다, 뭣 하러 고난의 길을 가고, 뭣 하러 십자가를 지느냐? 꼭 그런 방법이라야 하나님의 뜻이고 사람들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서 인기 끌고 또 그 인기로 높아지고 왕도 되고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쉬운 길 있는데 뭣 하러 굳이 십자가 지고 죽는 어려운 길을 가려느냐? 이것 아닙니까?

누군가는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 예수님께는 시험이었습니다. 기회냐 시험이냐? 위기냐 기회냐? 종이 한 장 차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회인지, 시험인지, 어떻게 분별합니까? 욕심으로 분별합니다. 욕심을 부리면 자꾸 무리하게 뭘 하게 됩니다. 집착이 강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해야할 것 하지 말아야할 것, 경계선이 없어져요. 복잡하게 되는 원인은 대부분 욕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내 욕심인지가 또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럴 때는 이 기도를 자꾸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 기도를 자꾸 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내 욕심인지 대충 답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복잡하던 것이 단순해지기 시작합니다. 꼭 이렇게 돼야한다는 고집과 집착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길이 보이고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예수님은 욕심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욕심으로 하지 않으시니까 자신이 하신 일을 가지고 뽐내지도 않으십니다. 봐라! 내가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먹였다! 나같은 사람 봤느냐? 이런 내가 왕이 되어야 하고 이런 내 말을 들어야 되지 않느냐? 그런 것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당신이 이루신 그 놀라운 일을 뒤로 한 채 산으로 가십니다. 거기서 기도하실 따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 힘이 듭니다. 내가 잘한 일 있으면 일단 입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 없어요. 그런데 꼭 기억해야할 것이 마귀는 자꾸 욕심을 부리고 높은 곳을 쳐다보게 하지만 성령께서는 욕심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입으로 다 자랑하고 내가 칭찬과 명예를 다 누리면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가 한 일이지만 그것을 뽐내지 않고 내 공로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늘 적당히 손해볼 줄 아는 사람을 더 돕습니다.

결국 제자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욕심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하신 일에 대해서도 욕심이 없으셨습니다. 그것이 물위를 걷는 능력이었습니다. 물위로 걸어가시는 주님을 꼭 붙드십시오. 그리고 올 한해 우리도 물위를 걸을 수 잇기를 원합니다.

 

 

 

3. 풍랑을 잠재우는 주님과 연합하기

 

 

 

우리가 어떤 예수님과 연합해야 합니까?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15절을 다시 봅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15)

 

예수님은 사람들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왜입니까? 그분은 이미 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왕으로 삼아야 왕이 되는 분이 아닙니다. 이미 만왕의 왕입니다. 사람들이 높여줘야 높아지고 사람들이 안 높여주면 높아지지 못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굳이 사람들의 추대가 필요하지 않은 분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인정과 높임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디든 가실 수 있고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능히 풍랑이는 물위를 걸으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는 풍랑이 일지 않습니다. 제자들처럼 사람들의 인정이나 높임에 연연하면서 이미 자신들이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이 된 것을 힘써 믿지 못하는 구멍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풍랑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자존감이 높으면 사람들의 인정 여부에 크게 좌우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건강치 못하고 쓴뿌리가 많으면 작은 것에도 섭섭함과 서운함을 많이 느낍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너무 집착하게 됩니다. 마음이 평안하기가 힘듭니다. 그것이 풍랑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집, 학력, 돈, 이런 세상적인 가치기준으로만 평가하게 되고 자기자신도 이런 것을 기준으로 남과 비교해 가면서 삽니다. 이 또한 마음이 평안하기가 힘듭니다. 결국 내 인생에 발목을 누가 잡느냐? 건강치 못한 내 마음이 잡습니다.

모교회 후배 중에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 한쪽을 저는 후배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려서 놀림도 많이 당하고 마음에 상처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이 친구가 집에서 혼자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예수님을 깊이 만났어요. 그리고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가까이 하며 생활하는데, 처음에는 자존감이 상당히 낮았습니다.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도 없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아갈수록 눈에 보이게 달라지더군요.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에 강함이 있는 은근한 매력이 있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웃음을 줍니다.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도 생각이 어둡거나 비관적이지 않고 밝습니다. 상담을 공부해서 지금은 마음에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상담해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 예수가 들어가고 예수와 연합하니까 인생의 풍랑이 가라앉고 마음의 상처로 인해 생겨난 갖가지 풍랑이 가라앉으면서 인생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한 때 유행했던 인사처럼 올 한 해 살림살이 더 넉넉해지시길 바랍니다. 가진 것이 넉넉하면 사람이 여유가 더 생기고 자신감도 더 생기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건강치 않으면 자신감이 아니라 거만함과 교만이 더 생깁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를 만나고 깨닫고 그분과 연합하여 살아가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마음에 났던 구멍이 매워지면서 건강한 마음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다보면 지금까지 내 인생의 발목을 잡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하나씩 사라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드디어 인생이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쭉 나아가는 궤도에 올라서게 되는 것입니다.

 

 

 

맺는 말

 

 

 

결국 내 발목을 잡는 것은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내 욕심이고, 구멍나고 건강치 못한 마음입니다. 이것이 내 인생에 풍랑을 일으키는 원인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면 욕심을 끊어내고 구멍난 마음이 치유되면서 채워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가게 되는 능력과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이 은혜가 올 한 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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