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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추계성례식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본문 마태복음 26:17~35(신약45) 
날짜 2019-11-10 
설교자 전용표 목사 

성경 : 마태복음 26:17~35(신약 45)

제목 : ‘이미’와 ‘아직’사이에서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마지막 만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은 유월절 명절이 시작되던 날이었고 그날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는 자리에서 빵을 떼어 주시면서 당신의 살이라고 하시고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많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흘리는 당신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이나 고린도전서에서는 이것을 기념하여 지키라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지난 2천 년 간 교회가 세워진 곳에서는 어디서나 성찬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봄, 가을 1년에 두 번 성찬예식을 행합니다.

 

 

 

1. 여기가 최후의 만찬석상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에는 마치 우리나라 명절 때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식사하듯이 유대인들도 가족들이 모여앉아 식사를 합니다. 명절식사니까 밝고 축복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한곳은 예외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곳 분위기가 매우 무거웠습니다. 예수님은 다음 날 죽으시기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거기에 예수님 말고도 무거운 마음으로 앉아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가룟유다였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기로 대제사장 무리와 약속을 하고 돈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불안하고도 무거운 마음이었을 겁니다. 가룟유다 말고도 또 무거운 마음으로 앉아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오면서 누가 크냐고 싸웠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은 죽으러 간다하시는데 한 자리 하는데 눈이 멀고 마음이 멀다보니 주님의 말씀은 들어오지 않고 그저 높아질 궁리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을 암시하는 의식을 행하시고 또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까지 하십니다. 다들 절대 그럴 일 없다 손사래를 치는데, 베드로가 유독 소리도 크고 액션이 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한다고 하십니다. 혹시 정말 예수님이 죽으시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간다니 정말일까? 제자들의 마음도 복잡하고 무거웠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마음이 무겁고 제자들은 제자들대로 마음들이 무거웠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 자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자들 모습 속에 우리들이 다 있습니다. 우리도 양심을 속이며 살 때가 있었고, 책임을 회피하고자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었고, 큰소리치지만 내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좁은 길이 진리의 길인 줄 알면서도 육신의 연약함 앞에서 넓은 길을 택하여 살 때가 있었고 상황에 이끌려 약자를 따돌릴 때도 있었으며 정의가 왜곡되는 것에 분노하기보다는 동조할 때도 있었습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경쟁하며 미워하기도 하며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가룟유다의 모습이 있고 베드로의 모습도 제자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여기가 최후의 만찬석상입니다.

 

 

 

2. 이미와 아직 사이의 미완성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들의 아직 변화되지 못한 모습에 절망하지 않으신 채 당신의 살을 찢어 나눠주시고 당신의 피를 흘려 나눠주셨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부름을 받고 ‘이미’ 제자가 되었지만, ‘아직’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아직’ 제자다운 모습으로 성숙하지 못한 제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너는 나의 살과 피를 받기에 아직은 부족하니 밖에 나가 있으라’ 하지 않고, 당신의 살과 피를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자들로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보실 때도 그러합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이미’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집사도 되고 권사도 되었지만, ‘아직’ 목사답지 못한 모습, 장로답지 못한 모습 집사와 권사답지 못한 모습으로 살 때가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우리들을 이 성찬에 참예하도록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직’ 변화되지 못한 모습,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 절망하시기 보다는 미약하지만 ‘이미’ 변화되어 온 모습을 더 보아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직’ 맺지 못한 열매에 실망하시기 보다는 보잘 것 없어도 ‘이미’ 맺어온 열매를 더 보아주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변화되어질 모습을 미리 내다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주님이 그러하시다면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좋은 날들을 인해 원망하기보다는 ‘이미’ 누렸던 좋은 날들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 변화되지 못한 자신을 향해 실망하기보다는 큰 넘어짐 후에 심기일전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힐 정도로 주님을 닮아냈던 베드로처럼 주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언젠가 나 또한 베드로만큼 신앙의 진보를 이룰 것을 믿으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이라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변화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 실망하거나 정죄하여서는 곤란합니다.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그가 변화되어 온 삶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저 사람도 베드로처럼 주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분명 성숙에 이를 것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속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품들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완성시켜 가실 때까지 우리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가야합니다.

 

 

 

3. 먹는 신앙

 

 

 

그러려면 오늘 이 떡을 받아 먹고 이 잔을 받아먹듯이 우리 삶도 보는 신앙으로 살지 않고 먹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떡과 포도주를 들고서 ‘이것을 잘 보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보는 신앙, 구경하는 신앙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먹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를 좀 안다, 성경을 좀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자꾸 먹어서 그 말씀이 내 살과 피가 되는 것이라야 합니다. 말씀으로 내가 물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에서 말씀이 묻어나오고 말에서 말씀이 묻어나오고 행동에서 말씀이 묻어 나와야 합니다. 내 가치관이 내 생각이 내 말이 내 행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을 반영하며 사는 것이라야 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마셔 이것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살이 되고 내 피가 되듯이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내가 먹어 그것이 내 살과 피가 되는, 말씀이 육화(肉化)되는 삶을 천국 갈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 먹는 신앙입니다. 몸에 영양을 공급하려면 떡을 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먹어야 하듯이 우리 영혼도 예수를 반드시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고 예수의 평안이 나의 평안이 되며 예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됩니다. 오늘 진실한 믿음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우리에게 예수 생명이 풍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맺는 말

 

 

 

오늘 성찬예식이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와 복이 임하는 예식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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