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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강해 2 축제는 끝났다 
본문 요한복음 2:1~12(신약143) 
날짜 2019-10-2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요한복음강해 2

성경 : 요한복음 2:1~12(신약 144)

제목 : 축제는 끝났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과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한 나무들, 여전히 푸르른 소나무를 비롯한 상록수, 그야말로 형형색색이 어우러진 지금이 일 년 중 최고의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교회 앞에 논이 특히 예쁩니다. 노랗게 물든 논과 바로 뒤에 조경집에서 심어놓은 소나무들이 기가 차게 색의 조화를 이루는데 어제처럼 햇살까지 비춰주면 보석이 따로 없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영롱한 보석입니다. 그런데 어김없이 농부는 벼를 베 버립니다. 순식간에 황금빛 들판이 황량한 들판으로 바뀝니다. 보고 있으면 우울해지지요. 그것도 잠시 금방 찬바람 불어오고 겨울이 됩니다. 이 추위 언제 끝이나나 하면서 지내다보면 어느새 또 입춘이다 경칩이다 하면서 봄이 옵니다. 자연의 주기나 인생의 주기나 비슷합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도 힘겹게 시작하는 단계가 있고, 활짝 꽃을 피우는 잘 나가는 시절이 있고, 또 위태로워질 때가 있으며, 쓸쓸히 쇠퇴하는 단계도 찾아옵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침체의 늪을 빠져나오는 봄과 같은 시간도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힘겹게 시작하는 단계는 힘은 들어도 젊음이 있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절정기는 뭐 그저 좋지요. 다시 시작되는 봄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 또한 아니 좋을 리 있겠습니까? 가장 힘들 때는 쓸쓸한 쇠퇴기인 것 같습니다. 가을 단풍절정기가 지나면 그만이야 나무와 산의 빛깔이 싹 바랩니다. 그러면 우리는 빛깔이 맛이 갔다고 합니다. 참 우리민족은 표현이 기가 찹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뭐든 맛으로 표현합니다. 재미있으면 맛이 난다 그러고 흥이 없으면 맛이 안 난다 그럽니다. 잘 되면 살맛 난다 그러고 잘 안되면 살맛 안 난다 그럽니다.

인생의 쇠퇴기가 찾아오면 살맛이 없어지지요. 맛을 잃은 포도주처럼 됩니다. 축제의 막이 내리는 시간입니다.

 

 

 

1. 축제는 끝났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개의 표적 중 첫 번째인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들 몇 명과 함께 가나라는 동네에서 열린 혼인잔치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혼인잔치는 일주일 계속됩니다.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기다려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루 이틀 잔치하는 것도 버거운데 일주일 잔치하려면 얼마나 준비가 많았겠습니까? 음식준비가 이만저만 아닐 것입니다. 다른 음식은 모자라면 화덕에 불 피워서 바로바로 만들어 내면 되는데, 포도주는 그렇지 않습니다. 포도주는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야 되는 거라서 결혼날짜가 정해지면 1년 전 2년 전부터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참석하셨던 잔치집 주인이 계산을 잘못했는지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왔는지, 결혼잔치 기간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낭패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1~3절 상반절까지 읽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1~3a)

 

지금처럼 마트 가서 사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는 큰일입니다. 분위기 다 가라앉고 손님들은 욕을 하면서 돌아갑니다. 혼인잔치가 험악해지면서 망치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딸아이 둘을 키우는 어떤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병원에서 몇 달을 치료하고 나왔지만 심한 어지러움증과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후유증이겠거니 했는데 한참이 지났는데도 계속 그렇습니다. 뒷바라지 해줘야할 초등학생 딸아이가 오히려 엄마의 지시를 받아가면서 어설푸게 살림을 살고 동생까지 챙깁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몸이 망가진 충격도 충격이지만 엄마로서의 역할을 못해주는 것이, 그리고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잔치가 끝 난 인생, 다시는 잔칫날이 올 것 같지 않은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예전 같이 장사가 안 될 때, 예전처럼 사람 만나는 것이 술술 이루어지지 않고 막힘이 많아졌을 때, 자식들 소식이 우울할 때, 내 인생에 잔칫날은 이제 다 간 것인가 하고 느껴지는 일들이 많지요. 더 이상 맛을 낼 수 없는 인생으로 쭉 살아야하나? 맛없는 인생이 계속되면 어떻게 하나?

 

 

 

2. 원래부터 무능한 인간

 

 

 

일이 이렇게 되자 잔칫집은 난리가 났겠지요. 손님들 동요가 커지기 전에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동네방네 수소문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없는 겁니다. 이때 이런 사정을 알고는 마리아가 아들인 예수님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며 도움을 청하는 의미로 한 마디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거절하는 듯한 말씀을 하세요. 4절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4)

 

요한복음에서 주님의 때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며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시는 듯 한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여기 말고도 몇 군데 더 나오는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다음 어김없이 반대로 하십니다. 7장에도 보면 초막절 명절 때 예수님의 동생들이 ‘유명해지고 싶으면 사람들 많이 모이는 절기 때 예루살렘 올라가서 활동을 하시오’라고 조롱하듯이 말하자 예수님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을 ‘내 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내가 내 일을 꼭 해야겠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거절의 때가 응답의 때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완강히 거절하시는 듯 할 때가 실은 주님이 그 일을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시는 때입니다. 오늘 마리아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시자 그 말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합니다. 마리아는 거절의 의미를 알았던 것이지요. 거절의 때가 응답의 때입니다. 막히는 것이 점점 많아질 때 사방으로 둘러싸인 듯 할 때 믿으면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 입구에는 손님들 들어올 때 손 씻고 들어오라고 놔둔 물 항아리 여섯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결례라고 해서 유대인들이 종교적 의식으로 손 씻는데 쓰는 물입니다. 유대인들은 정결례를 목숨처럼 여겼습니다. 정결례를 행하면 구원받고 행하지 않으면 큰 죄가 된다고 여겼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정결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굉장한 공격을 당하고 곤욕을 치르지요.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서 손을 부지런히 씻는다고 죄가 없어지고 한다는 게 얼마나 웃깁니까? 겉을 씻어도 그 속마음에 죄가 득실득실 거리는데 말입니다. 정결례를 행하는데 쓰는 물 담아 놓는 항아리도 여섯 개입니다. 여섯은 완전수 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입니다. 예수님이 결국 이 말로 포도주를 만드시는데, 이 정결례 때 쓰는 물을 담아놓은 여섯 항아리가 실은 구원을 베풀지 못하는 유대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맛도 없는 그들의 신앙생활, 인생의 문제를 실제로는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능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이 맹물이 든 여섯 항아리가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교를 의미했지만 오늘날은 우리들입니다. 젊었을 적부터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세계를 다니며 살았습니다. 제 잘 난 멋에 살았습니다. 인기와 부와 명성 다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사랑하는 딸이 암으로 일찍 죽는 아픔을 겪으면서 사람이 변했습니다. 딸이 믿던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자기 지성으로는 기독교인들은 무식하고 뭘 몰라서 있지도 않은 신을 하나님이라고 만들어서 믿는다 생각을 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딸이 죽어가는데 아버지인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자신의 무능을 뼈저리게 느낀 겁니다. 그리고 딸이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인생을 신앙으로 의미 있게 살고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같으면 도저히 저렇게 못하겠는데 어떻게 저렇게 자기 죽음을 맞이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 뒤에 하나님이 없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신앙을 갖게 되고 나서 깨닫고 고백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누린 모든 것이 선물이었구나! 나는 내가 재능이 남들보다 특출해서 내 재능의 대가로 당연히 누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모든 것이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었구나!

우리는 원래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무능한지도 모르고 잘 난 줄 착각하고 살 정도로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인생을 실수없이 성공적으로 살아가는데도 무능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에 맞게 살아가는데도 무능하고 죄를 씻는데도 완전히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얼마나 무능한 존재들인지.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큰 대가를 치를 줄 알면서도 이기지 못하고 꾸역꾸역 또 하면서 살아갑니다. 무능하기 짝이 없어요. 맹물입니다. 애당초 맛 나는 포도주가 아닙니다. 모자라는 여섯 항아리에 든 맹물입니다.

 

 

 

3. 곤혹스러움에서 더 큰 칭찬으로

 

 

 

마리아의 부탁을 거절하시는 듯했던 예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여섯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십니다. 채웠더니 연회책임자에게 주어 손님들 상에 갖다 내라는 겁니다. 믿음없이 할 수 없는 일인데, 시중드는 하인들이 순종 하나는 확실히 할 줄 알았던 사람들인가 봅니다. 그대로 했더니만 난리가 났습니다. 갖다 주는 동안에 물은 포도주로 변했고 얼마나 맛있는 포도주였던지 마신 손님들이 극찬을 한 것입니다. 10~11절을 봅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0,11)

 

대개 사람들은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 내고 손님이 취하면 안 좋은 포도주를 내는데 당신은 취한 뒤에 더 좋은 포도주를 주는구나! 포도주가 떨어져 흥도 떨어지고 큰 곤욕을 치르던 잔치집이 이제 더 큰 칭찬을 받는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다른 것 다 사라져도 주님을 붙들면 잔치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잔치는 불량식품 몇 개 더 먹는 것입니다. 청년에게 잔치는 든든한 직장을 얻는 것이고 꿈을 펼치는 것입니다. 장년에게 잔치는요?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주님 뜻에 무르익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든 것은 힘든 일이 많이 생겨서 힘든 것도 있지만 우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예수님에 관한 연극을 한다길래 영화 티켓보다 몇 배가 비싼 티켓을 큰 맘 먹고 사서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감동적인 연극이 끝이 나고 예수님 역할 했던 배우와 같이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연극 때 썼던 십자가를 보더니 자기도 십자가 지고 가는 사진 찍고 싶다 해서 아내더러 찍어 달라 하고는 십자가를 지는데, 엄청나게 무거운 겁니다. 연극 소품이니까 가벼울 줄 알았거든요. 예수님 역할 맡았던 배우에게 이게 왜 이렇게 무겁냐고 물었더니 주인공 배우가 그러는 겁니다. ‘가벼운 것 가지고는 실감 나는 연기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하고 똑같이 무겁게 해야 진짜 연기가 됩니다.’ 여러분, 인생이 뭡니까? 원래 힘든 겁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주어진 인생이 어찌 가벼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떠난 인생이 원래가 포도주 떨어진 잔치집인데, 이걸 인정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모릅니다. 인생은 원래 무겁고 슬프고 쓸쓸한 겁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인생이 더 힘든 겁니다. 그걸 깨닫고 그 속에서 나를 성화시키면서 하나님의 뜻에 깊이 물들어 가는 것이 장년들의 잔치입니다.

 

 

 

맺는 말

 

 

 

벼를 베면 들판은 황량해지고 곧 추운 삭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보고 있노라면 우울해 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화려한 가을 색에 취해 있을 때 사실 저 나무와 산과 땅은 이때부터 겨울을 이겨낼 준비를 시작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가을이어서 온통 가을 색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구석구석 물들어서 추운 겨울을 이기고 따스한 봄을 맞이하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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