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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 33 유다 멸망 : 절망이 희망이다 
본문 열왕기하 24:18~25:7(구약605) 
날짜 2019-10-13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33

성경 : 열왕기하 24:18~25:7(구약 605)

제목 : 유다 멸망 : 절망이 희망이다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 여인이 위태롭게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바위에 앉아있습니다.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앉아있습니다. 눈은 흰천으로 묶여있어 한치 앞을 볼 수 없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여인은 하프를 들고 있습니다. 줄이 딱 한 줄 가닥밖에 남지 않은 하프입니다. 여인은 그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줄밖에 남지 않은 하프를 연주합니다. 그리고 캄캄한 하늘에 별 하나가 보일락 말락 희미하게 여인을 비추고 있습니다. 조지 프레드릭 와츠라는 화가가 이 그림을 그리고 제목을 ‘희망’이라고 붙였습니다. 딸이 죽은 뒤 고통스러운 절망 속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한 가닥 남은 줄이라도 멈추지 않고 연주하는 것 그것이 희망입니다. 비록 나를 비춰주는 것이 희미한 별 하나밖에 없더라도 끝까지 연주하는 것이 희망입니다. 오늘은 열왕기서 강해 마지막으로 유다 나라의 멸망을 살펴보겠습니다. 유다의 멸망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함께 듣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 살펴본 여호야김왕 다음에 이름이 비슷한 여호야긴이 열여덟 살 나이에 왕이 됩니다만 겨우 석 달 통치하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왕실창고와 성전의 보물들을 탈취하고 집기들을 파괴하고, 왕족과 귀족들, 기술자들, 군지휘관들을 다 잡아갑니다. 사실상 유다나라는 껍데기만 남은 신세가 됩니다. 그런 다음 여호야긴의 숙부이자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놓고 물러갑니다.

시드기야는 껍데기만 남은 나라에 왕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바벨론을 섬기다가 또다시 애굽을 섬기겠다고 바벨론을 배반합니다. 유다는 고질병인 애굽병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결국 그것이 마지막 화근이 되어 망합니다. 망할 때의 기록을 보면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바벨론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틈 없이 에워쌉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은 양식이 바닥나서 자식을 잡아먹는 아비규환을 겪은 끝에 함락됩니다. 시드기야 왕은 호위병들을 이끌고 도망을 치다가 붙잡혔는데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 왕이 보는 앞에서 두 아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남아있는 놋기둥을 비롯한 성전의 집기들을 전부 다 가져가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고 불태웠습니다. 유다는 이렇게 철저히 짓밟히고 깡그리 망하였습니다. 이건 사람으로 치면 죽은 것에 해당됩니다. 완전한 절망(絶望)이지요. 절망이란 단어가 끊을 절(絶)자에 바랄 망(望)해서 ‘희망이 끊어지다’입니다. 영어로 dispair인데 ‘희망을 잃다’ 우리말과 뜻이 똑같습니다.

 

 

 

1. 정직한 절망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다가 철저히 망해서 완전한 절망 상태에 빠진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토록 회개하라고 부르고 불렀지만 끝까지 외면하지 않았습니까? 상류층이나 서민들이나 죄다 물질을 최고로 치는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면서 공평과 정의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쳤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나무한테도 절하고 해와 달과 별에게도 제사지내고 화를 면하려고 자식까지 불살라 바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말하고 타일러도 망나니짓을 그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이방나라를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후려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맞을 짓 했으니 맞아야 합니다. 징계를 달게 받아야 징계가 끝이 납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가서는 한다는 소리가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는데 자식의 이가 시다고 합니다. 에스겔 18장 2절을 봅시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겔18:2)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시다는 말은 죄는 우리 조상이 지었는데 왜 자식들인 우리가 벌을 받아야 되느냐는 말입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간 제사장인데 동족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전혀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처사가 잘못됐다는 원망만 쏟아놓는 겁니다. 그런 말을 쏟아내는 것을 듣고 에스겔이 전한 말씀이 에스겔 18장 31절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18:31)

 

너희 죄를 인정하라, 그 죄를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 징계를 달게 받음으로써 죄를 씻어내라는 것입니다. 징계에는 내 죄로 인해 오는 징계가 있고, 내 잘못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에 따라 오는 징계가 있습니다. 어떤 징계든, 징계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이유로든 징계가 오면 다리 방도가 없습니다. 받는 것이 상책입니다. 예전에는 시험을 치고 나면 꼭 매타작이라는 걸 했습니다. 지난번보다 성적이 내려간 학생들을 때리거나 틀린 문제개수만큼 때립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잊어버리셨는지 매타작을 하지 않고 수업을 끝내셨습니다. 그러면 이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한 시간만 더 길어질 뿐입니다. 놀아도 노는 게 아닙니다. 차라리 맞는 편이 낫습니다. 맞고 나야 마음 편히 놀 수 있습니다.

정직한 절망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후회와 아쉬움과 원망으로 절망의 시간을 보내서는 희망이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무엇이 부족했었는지, 내 죄가 무엇인지, 무엇이 하나님이 은혜를 거둬가시도록 만들었는지, 정직하게 직면하고 씻어내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직하게 절망을 대하는 태도이고, 이렇게 할 때 희망의 문이 다시 열립니다.

 

 

 

2. 역설의 신앙 : 절망은 희망이다

 

 

 

열왕기서를 보통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썼다고 그럽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열왕기하 마지막 부분이 예레미야 39장과 마지막 장인 52장에 똑같이 기록되어 있어서 그렇게 생각들을 하는가 봅니다. 정확한 것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열왕기서가 유다나라가 망한 것으로 끝이 나지 않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야긴 왕이 37년만에 풀려나서 왕 앞에서 식사를 하는 지위를 누린 사건으로 끝맺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하 25장 27~30절을 읽습니다.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27~30)

 

여호야긴은 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아버지인 여호야김을 이어받아 열여덟 살에 왕이 되어 겨우 석달 통치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왕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죽지 않고 긴 세월 갇혀 지내다가 37년 만에 기적적으로 풀려났습니다. 풀려난 정도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바벨론 왕 앞에서 식사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왜 이것을 열왕기서의 마지막으로 삼았을까요? 여호야긴이 풀려났듯이 장차 자기민족도 풀려날 것이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희망을 담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망해서 기나긴 절망의 터널로 들어가는 마당에 그래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의 약속을 희망으로 삼고 들어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망한 것을 그저 절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절망이 곧 새로운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말하자면 역설의 신앙을 품은 것입니다. 내 잘못으로 인한 징계이든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징계이든 간에 주시는 징계의 기간을 정직하게 대면하며 밟아나가는 사람이 가지는 특권과도 같은 신앙이 바로 절망이 희망이라는 믿음입니다.

망해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징계하심임을 깨닫고는 더욱 말씀을 붙들고 주어진 자리에서 예배자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다니엘 에스겔 모르드개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안정되고 보장된 자리를 버리고 주의 나라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사생결의(死生決意)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왔고 무너진 성전과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나라가 망한 후 유다의 역사는 끝이 난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더 정결하고 더 단단한 신앙으로 가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또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뚜벅뚜벅 걸어 나옵니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만들어집니다. 왜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역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크게 한 번 넘어지고 크게 한 번 아프고 난 뒤에 진짜 나를 알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게 되고 죽기 전에 꼭 해야할 진짜 일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넘어진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병든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망한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거기서부터 일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악하게 살 권리는 없고 착하게 살 의무만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절망할 권리는 없고 희망할 의무만 있습니다. 절망이 곧 희망입니다.

 

 

 

 

맺는 말

 

 

나무가 둥치가 잘리면 정말 볼품없습니다. 하지만 봄이 돌아오면 잘려나간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돋습니다. 역시나 잘려나간 둥치에 비하면 볼품없습니다. 그렇지만 새순입니다. 아프거나 다치고 나면 몸이 예전에 비해 초라합니다. 크게 넘어지면 형편이나 인간관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움츠려듭니다. 하지만 새순이 돋습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일수록 그해 봄에 자라난 새싹은 유난히 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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