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제목 열왕기하강해 32 여호야김 : 브레이크가 고장나다 
본문 열왕기하 23:36~24:7(구약604) 
날짜 2019-10-0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32

성경 : 열왕기하 23:36~24:7(구약 604)

제목 : 여호야김, 브레이크가 고장나다

 

아파트에 사는 어떤 사람이 출근을 하려고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어젯밤에 주차를 어디에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상주차장에 했는지 지하 1층에 했는지 2층에 했는지.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바쁜 시간에 지상부터 지하 1층 2층을 다 돌아다녀서 겨우 2층 구석에 주차된 차를 발견했습니다. 차를 타려고 하는데 차키를 집에 놓고 왔습니다. 언제 또 올라갔다 옵니까? 아내에게 차키 가지고 오라고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전화기도 안 가지고 나온 겁니다. 하는 수없이 다시 올라가서 차키를 겨우 찾아와서 출근을 했습니다. 한바탕 난리를 치뤘습니다. 경도인지장애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나이의 사람들의 평균적인 기억력보다 좀 심하게 떨어지거나 건망증이 심한 것을 경도인지장애라고 합니다. 이것은 치매까지는 안 갔지만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경우입니다. 치매의 전조현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큰 지진이 오기 전에도 전조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작은 지진의 발생빈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지진이 안 일어나게 할 수는 없지만 위험한 시설 같은 것을 미리 손본다든지 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피해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자동차 같은 경우 브레이크에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빨리 손을 봐야 합니다. 다른 데는 돈을 아껴도 브레이크에 돈을 아끼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우리 인생에는 어떤 전조현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의 싸인입니다. 잘 알아차리고 예방처방을 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야의 아들입니다. 요시야가 죽자 백성들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요시야를 죽인 애굽이 내정간섭을 합니다. 자기들 허락없이 왕을 세웠다고 왕을 잡아가고 대신 그 동생인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자기들 말 잘 듣는 꼭두각시 왕과 정부를 세우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애굽에 의해서 왕이 된 자가 여호야김입니다. 유다 나라로 봐서는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일이고 여호야김 개인으로 봐서는 생각지도 못한 왕노릇을 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심기일전해서 잘 해야 되는데, 여호야김은 나라를 말아먹기 시작합니다. 내치(內治)와 외교(外交) 모두 엉망으로 하다가 급기야 왕이 된 지 4년 만인 주전 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나라 곳곳이 전쟁의 포화 속에 쑥대밭이 되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흔히들 망조(亡兆)가 들었다는 말을 합니다. 망조는 망징패조(亡徵敗兆)의 준말입니다. 망하거나 패할 조짐이라는 뜻입니다. 나라가 갑자기 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전조현상인 망조가 있고난 뒤 망합니다. 유다도 마찬가지인데 여호야김 왕 시대에도 이미 여러 가지 망조가 보이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결국 나라가 망합니다. 그 몇 가지 망조를 한 번 살펴봅시다.

 

 

 

1. 결정적인 판단착오에 빠지게 내버려두셨습니다

 

 

 

첫 번째 망조는 결정적인 판단착오를 한 일입니다. 1, 2절을 봅시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1,2)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해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애굽을 섬깁니다. 섬긴다는 것은 조공을 갖다바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바벨론을 섬깁니다. 애굽과 싸워서 이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에게 이제 애굽을 섬기지 말고 우리를 섬기라고 압박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제정세가 7절에 정확히 나와있습니다. 바벨론이 애굽한테 이겨서 애굽 땅을 다 점령했고 애굽은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어차피 조공을 바치는 것이면 정세판단을 잘 해서 패권을 잡은 나라에게 바치는 것이 유다로서는 살아남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은 어찌된 판인지 3년 간 바벨론을 섬기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다시 애굽을 섬깁니다. 애굽이 잘해준 것도 없습니다. 짧게는 수 십 년 길게는 수 백 년 동안이나 피를 빨아먹은 나쁜 놈들입니다. 거기다가 애굽은 이미 죽은 권력입니다. 패권을 잡은 바벨론을 배반하고 망한 나라 애굽한테 붙는다는 것은 망하려고 작정을 한 거지요. 판단착오도 이런 판단착오가 없습니다. 바벨론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기 속국이 된 나라들 군대를 앞세워 유다를 짓밟아버렸습니다. 이게 바벨론의 1차 침략입니다. 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시기로, 즉 버리기로 결심을 굳히셨다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기로 결심을 하시면 사람이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할 때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께서 긍휼을 거두지 않으셨다면 사람이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해서든 막으십니다.

 

 

 

2. 참된 말이 버림을 받습니다

 

 

 

이렇게 결정적인 판단착오를 하게 되는데는 여러 가지가 작용합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권력관계에 의해 참된 의견이 버림받고 잘못된 의견이 채택되는 상황이 작용합니다. 이 점은 예레미야 36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레미야 36장 20~26절을 살펴봅시다.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렘 36:20~26)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아 전한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여호야김이 그것을 가져오게 해서 읽으라고 합니다. 한 장씩 읽을 때마다 그것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칼로 두루마리를 잘라서 화롯불에 집어넣어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예레미야까지 잡아 죽이려고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숨기셔서 예레미야는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이렇게 진실한 말을 하는 자의 말은 묵살하고 곁에 간신배들의 말만 듣게 되는 것이 망조입니다.

나라가 망할 때는 항상 임금 곁에 간신들이 겹겹이 산을 이룹니다. 유유상종이겠지요. 왕이 진실하면 진실한 사람들이 가까이 오게 되고 왕이 음란하거나 탐욕스러우면 그런 것 좋아하는 신하들이 가까이 붙게 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가려서 사겨야 됩니다. 능력도 있고 의로운 마음도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의로운 마음만 있거나 한 가지만 가지고 있습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능력은 탁월해서 뭐든지 했다하면 일을 이루어냅니다. 그런데 마음이 바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마음은 정말 바른데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저 평범하거나 조금 못하기도 합니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꼭 써야한다면 누구를 쓰시겠습니까? 2번입니다. 능력은 출중한데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를 이용해먹고 해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능력이 크면 클수록 큰 도둑이 됩니다. 그러나 능력은 평범하거나 부족해도 마음이 바른 사람은 나를 해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나라 말아먹는 도둑은 되지 않습니다.

 

 

 

3. 악인이 의인되고 의인이 악인되는 풍토가 강합니다

 

 

여호야김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나라가 본격적으로 망하기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 망하도록 내버려 두신 결정적 이유는 무죄한 자의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봅시다.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3,4)

 

므낫세가 지은 모든 죄가 뿌리깊은 원죄 역할을 했고, 거기다가 여호야김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습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는 것은 억울한 피해자를 많이 만들어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의인을 악인으로 몰아서 죽이는 일이 많았다는 겁니다. 반면 악인은 의인으로 둔갑시켰겠지요. 예레미야 22장 13~19절까지 보면 여호야김이 저지른 죄가 자세히 나옵니다. 찾아서 살펴보겠습니다.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화려한 집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잡아다가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품삯은 주지 않습니다. 집을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 등골이 휠 정도로 세금을 걷고, 안 되면 누명을 덮어씌워 죽이고는 빼앗습니다. 왕이 이렇게 하면 그 신하들도 똑같이 합니다. 그러니 권세자들과 그 측근들은 폭정과 착취를 일삼고 힘없는 백성들은 빼앗기고 울부짖고 죽어나갑니다. 억울하다고 법에 호소해도 재판장이 빼앗은 자들과 한통속입니다. 오히려 거짓으로 고소했다고 무고죄나 명예훼손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악인이 의인되고 의인이 악인 되는 기가 찬 현상이 일어납니다. 돈과 권력 있으면 풀려나고 돈 권력 없으면 없던 죄도 만들어서 벌을 줍니다. 이런 식으로 흘린 억울한 사람들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칼을 뽑아 드십니다. 세상이 악해지면 억울한 사람이 많이 생깁니다. 억울해서 부르짖어도 세상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잘못 편들다가 나도 당할까봐 겁이 나서 외면하고 언론은 왜곡보도 하고 덮기 바쁩니다. 세상이 아무리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억울한 사람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참다 참다 결국 칼을 뽑아 드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단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다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억울하면 억울할수록 울화통이 터지지만 그 대신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십니다. 힘이 없어서 당하면 당할수록 점점 하나님이 그 사람 편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싸울 수가 있습니다만 싸워도 상대를 가려서 해야 합니다. 상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에 속한다면 되도록 그런 사람과는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의로운 사람을 핍박하고 억울하게 만들면 하나님이 몇 번 참으시다가 나중에는 내 대적이 되십니다.

사람이 용감한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은 바벨론의 군대요 칼입니다. 그 뒤에 하나님의 정의의 칼이 있다는 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그것을 본 자들이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정확히 분별해냈습니다. 우리가 이런 눈을 길러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섭리, 이것을 봐내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 분별력이자 지혜입니다. 그러나 여호야김과 그의 측근들은 이런 안목과 분별력, 지혜가 없었습니다. 본인들이 없으면 그것을 가진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이의 경고를 귀담아 들으면 되는데, 오히려 죽이려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무섭습니다. 정의를 해치면 얼마간 참으시다가 결국에는 심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믿게 되면 크게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며,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70이레가 차면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맺는 말

 

 

 

여호야김 시대는 국운이 쇠하는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징조가 있었지만 대비하거나 거둬치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봐 낼 줄 알았던 예레미야 같은 이는 시대를 밝히는 등불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시대의 등불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258 요나 강해 3 천륜이란 점에서 요나 1:11~16(구약1287)  2020-12-27  전용표 목사 
257 아름다운 가풍(家風) 예레미야 35:14~19(구약1110)  2017-05-14  전용표 목사 
256 신년주일 멀리 가려면 예레미야 29장 4~14절(구약 1095)  2021-01-03  전용표 목사 
255 송구영신예배 절망과 희망의 노래자 예레미야 25장 11~12절(구약1089)  2020-12-31  전용표 목사 
254 열왕기하강해5 살리는 귀 열왕기하5:1~14(구약567)  2019-02-03  전용표 목사 
253 열왕기하강해10 하나님의 막대기 열왕기하 8:7~15(구약 573)  2019-03-10  전용표 목사 
252 열왕기하강해9 뜻밖의 하나님 뜻밖의 사람 열왕기하 7:3~20(구약 571)  2019-03-03  전용표 목사 
251 열왕기하강해8 두려움과 담대함 열왕기하 6:8~23(구약569)  2019-02-24  전용표 목사 
250 열왕기하강해7 작은 자의 하나님 열왕기하 6:1~7(구약569)  2019-02-17  전용표 목사 
249 열왕기하강해6 욕심과 요행수의 결과 열왕기하 5:15~27(구약267)  2019-02-10  전용표 목사 
248 열왕기하강해4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열왕기하 4:1~7(구약564)  2019-01-27  전용표 목사 
247 열왕기하강해3 그래도 불쌍히 여겨주실까 열왕기하 3:1~27(구약562)  2019-01-20  전용표 목사 
246 열왕기하강해1 새 시대를 여는 사람 열왕기하 2:1~18(구약560)  2019-01-06  전용표 목사 
245 열왕기하강해2 먼저 되고 나중 되고 열왕기하 2:19~25(구약562)  2019-01-13  전용표 목사 
244 열왕기하강해 33 유다 멸망 : 절망이 희망이다 열왕기하 24:18~25:7(구약605)  2019-10-13  전용표 목사 
» 열왕기하강해 32 여호야김 : 브레이크가 고장나다 열왕기하 23:36~24:7(구약604)  2019-10-06  전용표 목사 
242 자라게 하시는 이 열왕기하 23:24~30(구약603)  2017-05-07  전용표 목사 
241 열왕기하강해 30 요시야는 철저하였다 열왕기하 23:1~14/ 예레미야 7:1~15  2019-09-22  전용표 목사 
240 열왕기하강해 29 요시야는 중심을 잡았다 열왕기하 22:1~20(구약600)  2019-09-15  전용표 목사 
239 열왕기하강해 28 므낫세는 최선을 다하였다 열왕기하 21:1~18(구약599)  2019-09-08  전용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