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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 29 요시야는 중심을 잡았다 
본문 열왕기하 22:1~20(구약600) 
날짜 2019-09-15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29

성경 : 열왕기하 22:1~20(구약 600)

제목 : 요시야는 중심을 잡았다

 

 

조선시대 최고 악녀로 꼽히는 장희빈은 사실 억울한 여인입니다. 드라마의 단골손님인 장희빈은 숙종의 후궁으로 중전인 인현왕후를 시기질투하다가 그 사특함이 너무 심해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은 나쁜 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은 당파싸움의 희생양입니다. 조선은 원래 임금보다는 신하들의 힘이 센 나라여서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친 임금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던 숙종임금은 집권당을 교묘히 갈아 치우는 ‘환국정치’라는 것을 통해서 세력이 커진 신하를 숙청하고 자신의 왕권을 키워나간 왕입니다. 말하자면 정치 9단이었습니다. 이때 서인당파와 남인당파가 집권당 자리를 놓고 다퉜는데, 숙종은 한 번은 남인의 편을 들어줬다가 한 번은 서인의 편을 들어주는 식으로 자신의 왕권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서인이 남인을 누르고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1당 독재체제를 이어나갑니다. 장희빈은 당파싸움에서 밀린 남인당파가 내세운 왕비였고 인현왕후는 당파싸움에서 승리한 서인당파가 내세운 왕비였습니다. 서인당파가 남인당파를 누르고 정권을 잡은 뒤 서인세력이 쓴 소설이 <인현왕후전>입니다. 그래서 인현왕후는 천하의 어진 왕비로, 장희빈은 천하의 악한 여인으로 그렸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요시야 왕을 이해하는데 두 가지 점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한 인물을 이해할 때 우리는 단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그 인물을 둘러싼 상황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여러 당파가 서로 물고 뜯는 상황에서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거의 미친짓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일이라는 점을 알고 요시야를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1. 요시야의 어려운 상황

 

 

 

요시야는 남유다 19명의 왕들 중에서 히스기야와 함께 최고의 평가를 받은 왕 중 하나입니다. 히스기야와 함께 개혁을 추진한 왕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히스기야보다 더 철저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제도적인 개혁에 머물지 않고 백성들의 삶으로 파고들어가는 실제적 개혁의 단계로까지 나아갔던 왕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출발이 극도로 불행했다는 점입니다. 21장 23,24절을 봅시다.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그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게 하여 왕을 삼았더라 (21:23~24)

 

요시야의 아버지는 아몬인데 아몬은 므낫세가 친앗수르파의 손을 잡고 추진한 우상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말로 다 할 수 없이 나라를 망신창이로 만들다가 결국 불만을 품은 자들에 의해 피살당했습니다. 악을 행하다가 피살당한 아버지의 아들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게 보통 약점이 아닙니다. 트라우마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정조임금은 벌을 받아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것이 약점이 되어서 두고두고 힘들어 하고 평생 불안증세로 편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될 때에 상황이 복잡했습니다. 아하스때부터 실권을 잡고 휘두르기 시작한 친앗수르당파가 있었고, 애굽과 잘 지내야된다고 주장하는 전통적인 친애굽파가 여전히 무시 못 할 힘이 있었으며, 히스기야 왕 때부터 바벨론과 손을 잡아야한다는 움직임이 일면서 생겨난 친바벨론당파가 서로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겨루는 상황이었습니다. 왕까지 죽일 정도면 남유다의 정치상황도 상당히 거칠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왕이 될 때 나이가 겨우 여덟 살입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힘없는 왕은 줄타기를 합니다. 이쪽 당이 힘이 세면 그쪽 손을 잡고, 저쪽 당이 힘이 세면 저쪽 손을 잡는 식입니다. 그러다보면 꼭두각시 노릇밖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가 본질임을 깨달은 요시야

 

 

 

그런데 이런 악조건 하에 왕이 된 요시야는 26살이 되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은 엉망진창이 된 성전을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서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3~6)

 

많고 많은 일들 중에 요시야는 성전수리를 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잘못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할 일은 성전이 제 기능을 하는 것임을 요시야는 생각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려면 힘센 당파의 손을 붙잡으면 되지만 요시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인 성전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라 보았던 것입니다. 꾸정물이 가득한 것을 일일이 다 비워내는 것보다 맑은 물을 계속 흘려보내면 자연히 더러운 꾸정물은 빠져나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요시야는 성전이 회복되어져서 거기서 하나님을 바로 배우고, 그러는 가운데 은혜를 받고 신앙이 회복되면 나라전체가 새로워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이것이 본질을 붙드는 신앙생활입니다. 교회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을 찾아해야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회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와 예배입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에 생명을 걸기 시작하면 자연히 회복되고 부흥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울타리도 만들어야 하고 창고도 세워야하고 농기구도 마련해야 되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물입니다. 물만 넉넉하게 공급해주면 황무지가 옥토로 변하면서 나머지 다른 것들은 다 하나씩 갖추어 지게 됩니다. 다른 것은 다 있는데 물이 없으면 사실 하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농사에 있어서 물이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본질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붙들면 치우치지 않고 중심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30평 집에 사느냐, 50평 집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에서 얼마나 마음 편히 화목하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화목에 쏟아부어야할 에너지를 평수 늘리는 것에 쏟아 붓기 때문에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종일 일하고 난 후 들어갔는데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면 50평이 아니라 100평이라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쉴 수 있는 분위기가 더 중요합니다. 월급을 얼마나 받는가가 때로는 제일 중요한 문제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실은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끔 그것을 잊기 때문에 중심을 잃습니다. 그것이 불행입니다. 무엇이 더 본질적인 것인가를 생각하고 사는 습관이 되어 있다면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본질은 두 말할 것 없이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거둬치우는 것이야 말로 본질을 세우는 일이고 중심을 잡는 일입니다. 요시야는 충분히 치우칠 수 있는 환경에서 오로지 한 가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었습니다.

 

 

 

3. 개혁의 동력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요시야왕은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본질을 붙잡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뜻하지 않는 보물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사라졌던 율법책이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8절)

 

므낫세와 아몬을 거치면서 율법책이 무시되고 잊혀졌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바쁜데 오래된 율법책 같은 것 읽을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율법책을 발견한 것이 요시야의 개혁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줍니다. 이 이후에 진행되는 요시야의 개혁을 보면 히스기야의 개혁보다 훨씬 철저하게 진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개혁이 제도적인 개혁에 그쳤다면 요시야의 개혁은 개개인의 삶의 개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힘이 바로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볼 때 율법책을 발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뜻을 세우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세워나가고자 했던 요시야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특별배려였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통해 힘을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것처럼 중심을 잃기 쉬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지지를 받았으면 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불법이 일어나고 정도를 걷지 못하는 편법이 생겨납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우리 예수님도 한참 인기가 올라갈 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다고 나옵니다.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특히 잘못된 것을 바로 고치고자 할 때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힘이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말씀에 비추어 올바르면 천만인이 둘러싸서 비난하여도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천만인이 나를 지지한다 하여도 말씀에 비추어 잘못이 있다면 그것 좋아하거나 든든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쌓은 공든탑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에게 개혁의 동력이 되는 율법책을 발견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다시 세우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실 것입니다.

 

 

 

3. 무게중심은 심령에 있습니다

 

 

 

이 율법책을 요시야 앞에서 읽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요시야는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는 옷을 찢고 회개하였습니다.

 

1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0,11)

 

요시야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책의 내용을 들을 때에 깊이 슬퍼하고 아파하고 가슴을 찢으며 회개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죄 지었지만 나는 지금껏 정직했고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어! 나는 괜찮아!’ ‘아니, 지금까지 내가 이만큼이나 했는데 왜 하나님은 저런 말씀을 주시는 거야? 참 귀에 거슬리네!’ 그러지 않고 옷을 찢고 회개하였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거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아직 이런 말씀을 듣고 회개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제대로 된 말씀을 들으면 분명히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나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주님, 제가 참 부족하고 죄인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한테 왜 이런 말씀을 주시나?’ 기분나빠하면서 화를 품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옵니까? 성령충만에서 옵니다. 성령충만은 성령께 굴복하는 것이고 붙들리는 것입니다. 성령에 붙들리면 말씀에 찔리게 되고 말씀에 찔리면 회개가 일어납니다. 성령에 붙들리지 못하고 내 자아에 붙들리면 말씀을 거절하고 화를 내게 됩니다. 성령은 반드시 나를 깨뜨린 다음에 다른 고치도록 하십니다. 나를 문제 삼지 않고 남을 문제 삼는 성령충만이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령은 그런 분입니다. 성령을 통해 말씀을 깨달으면 말씀으로 남 죽이는 도구로 삼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면 기쁨과 동시에 찔림이 일어납니다. 그 말씀은 나를 찌르는 도구가 됩니다. 내가 그토록 남을 비판했는데 내가 비판하는 저 사람 속에 있는 것들이 실은 내 속에도 그대로 있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 말씀을 깨달으면 모두가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에 우선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겸손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를 고백하면서 겸손히 엎드리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내 삶을 조명하시고 내 마음상태를 조명해 주십니다. 밝히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살려내십니다. 마른 뼈와 같은 상태까지 떨어졌어도 말씀이 들어가면 살아납니다.

 

 

 

맺는 말

 

 

 

요시야는 충격적이고 어려운 상황에서 왕이 되었으나 그는 다른 줄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을 세워나가기로 결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어떤 힘보다 더큰 힘이 되는 율법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시야는 그 율법의 말씀을 들을 때 옷을 찢는 겸손한 심령을 가졌을 때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시고 개혁군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붙들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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