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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 26 히스기야의 연속된 고난 
본문 열왕기하 20:1~11(구약597) 
날짜 2019-08-25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26

성경 : 열왕기하 20:1~11(구약 594)

제목 : 히스기야의 회복

 

 

사람이 당하는 고난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첫째는 경제적 어려움이고, 둘째는 건강의 어려움이고, 셋째는 사람이 주는 어려움입니다. 먼저 사업에 실패한다든지 직장을 잃어버렸다든지 하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다 포기하고 죽고 싶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질병입니다. 못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갑자기 중한 병에 걸린다든지 하면 병이 주는 아픔도 크지만 정신적인 충격도 큽니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찾아왔을까? 고민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또 병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전과 많이 달라집니다. 그것도 힘든 일입니다. 세 번째는 사람에게서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특히 나보다 힘이 센 사람이 압력을 가하고 힘들게 하면 그 스트레스는 이만저만 아닙니다. 더 힘든 것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신실하게 산 사람이 이런 고난을 당하면 일단 주변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고통을 이중삼중으로 가중시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이 띄엄뜨엄 오면 그나마 견딜만한데 한꺼번에 몰려서 오면 살맛이 떨어집니다. 히스기야가 딱 그렇습니다. 히스기야는 다윗과 버금가는 신앙의 사람인데 이 세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불어닥쳤습니다. 앗수르의 대군이 쳐들어와서 수도가 함락되기 직전까지 가는 변란을 치렀습니다. 힘센 나라의 산헤립이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숨통을 조습니다. 그러는 중에 경제적인 엄청난 손실을 보았습니다. 절반이 날아갔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이번에는 죽을병이 찾아왔습니다.

세상 사람들 말로 지지리도 복이 없다하지만 그런데 이런 어려움들이 우리 인생에 나름 기여하는 바가 있습니다. 팽이를 돌릴 때 팽이가 장롱이나 장식장 밑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못 들어가게 막 때립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사람이 주는 어려움이 어쩌면 방향을 잡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히스기야가 병이 든 원인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먼저 많은 반대와 저항을 무릎 쓰고 산당까지 제거하는 대개혁을 하지 않습니까? 왕이라고 해서 무슨 무소불위의 권한이 있어서 그냥 밀어붙이면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매일 같이 반대세력의 공격에 시달립니다. 목숨 걸어놓고 하는 것이 개혁입니다. 실패하면 내가 죽는 거예요. 아마 히스기야는 개혁하면서 머리카락 다 빠졌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나라 만들어보려고 포기하지 않고 개혁을 하는 겁니다. 이것만 해도 버거운데 앗수르의 대군이 두 번씩이나 쳐들어왔습니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기적입니다만 히스기야가 받았을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겠지요? 그것이 결국 병이 된 겁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 편에 서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해서 저절로 되게 하시지 않아요. 사람의 노력도 필요하고 대가도 필요합니다.

 

 

 

1.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사형선고

 

 

 

히스기야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옵니다. 찾아와서는 힘 되는 말은 하지 않고 절망스런 말을 합니다. 1절입니다.

 

그때에 이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1)

 

‘어디 한 번 기도해봅시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뭐 이래야 되는데, ‘곧 죽습니다. 준비하십시오. 유산정리도 하시고 사람들 불러서 유언도 남기시고 정리를 하십시오.’ 이런단 말이지요. 환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서운한 말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입니다’라는 말만 믿음의 말이 아니라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도 믿음의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청년 때 가깝게 지내던 젊은 집사님이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어서 병원심방을 갔었습니다. 집사님 병세가 깊습니다. 복수가 차고 피골이 상접하고 혈색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환하게 웃으면서 도리어 우리를 위로하시는 겁니다. ‘저는 이미 주님 만날 준비 다 됐습니다. 괜히 저를 위로하느라 잘 될 거라니 기도하면 나을 거라니 그런 말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주일학교를 섬길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제가 가더라도 주일학교 잘 섬겨주십시오. 제 아내가 어린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겠지만 잘 해 나가리라 봅니다.’ 이러면서 한 사람씩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참 감동적이었고 그 때의 그분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주위에 어떤 분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병에 걸려서 병색이 깊어졌을 때 두 가지 가능성을 다 말해주고 또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삶을 잘 정리하시고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잘 이겨내시고 주님 앞에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해 주기도 하고 이런 말을 받을 줄도 아는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힘든 상황까지 왔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깊은 수렁까지 내리셨다가 오리실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매달려봅시다!’라고 말도 하고 그런 말을 받을 줄도 아는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도 인정 때문에 자꾸 살 소망을 줘서 결국 그 사람이 죽음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은 성경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무리 상대가 왕이고 또 전해야할 말이 쉽지 않은 말이었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에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2. 오로지 하나님만 향하여, 하나님을 뜻을 구하며

 

 

 

그런데 그토록 신앙이 좋던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며 기도합니다. 2~3절입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2,3)

 

아마 보통의 경우라면 이사야 같이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사람이 사형선고를 내리면 포기하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아무리 이사야 선지자가 준 말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낯을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거나 의지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얼굴만 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가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히스기야라는 사람은 자신의 개인영달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를 하나님의 법도대로 올바로 세우는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었던 사람입니다. 아직도 나라의 개혁은 완수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상의 제단을 쳐내고 산당도 쳐내고 했지만 실제 유다 사람들의 습성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좇아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살아가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제 겨우 포장지만 갈아치운 상태입니다. 앗수르에게 기적같은 승리를 맛보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앗수르의 위협이 남아있습니다. 여기에도 대비를 충실히 해야 합니다. 지금 유다는 안팎으로 위기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에게 해고통지가 떨어진 겁니다. 마치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경기 기간 중에 해고통지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서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는 자기 공로를 내세워서 좀 더 살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맡겨주신 일을 마저 감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뼈가 깎이고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감당하고 가겠습니다라는 기도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듣고자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기도를 보면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하면서 원하는 것을 뭐든지 달라고 하는 기도를 합니다. 무슨 하나님께 청구서 내미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깊어지면 이제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기도를 할 줄 알게 됩니다. 어린아이는 뭐든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장난감 안 사주면 마트바닥에 누워서 울어버립니다. 그러면 부모가 얼마나 난처하고 사람들보기에 부끄러워지는지 생각 못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단계를 벗어나면 내가 이러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를 헤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신앙이 깊어지면 하나님의 뜻을 놓고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기도를 드렸고 다윗은 어떤 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가르쳐 달라는 기도는 하며 살았으며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그 뜻에 맞추겠다고 나오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친구라 부르시고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여 심히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잘 울지 못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울지 못합니다. 또 남자들은 울면 약해보이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울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도 잘 울지 못합니다. 마음이 너무 굳어서 그렇습니다. 찬양을 불러도 말씀을 봐도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은 간경화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울어야 삽니다. 다윗도 죄를 지적받았을 때 신하들 앞에서 체면 구겨지게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울어야 쌓였던 것이 씻겨 내려갑니다. 울지 않으니까, 아니 못 우니까 씻겨 내려가지 않고 계속 쌓여만 있습니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 됩니다.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통곡하는 기도입니다. 특히 우리가 눈물로 기도하기를 원하다보면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영을 허락하시어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아온 것을 깊이 자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주를 위해 살겠으니 주님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한 번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이런 기도가 터져 나오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면 삽니다.

 

 

 

3. 15년을 주신 하나님

 

 

 

히스기야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응답하셨습니다. 4~6절을 봅시다.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4~6)

 

사형통고를 하고 돌아가는 이사야가 아직 성 가운데도 못빠져 나갔을 때 바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백성의 주권자 자리에 더 있도록 하겠다, 네가 맡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과 앗수르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임무를 마지막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6절에 보면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까지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죽을 병에서 낫게 하시는 것은 조금 더 살다 오너라, 이게 아닙니다. 뜻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15년이라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십니다. 그러면서 그 응답의 표로써 해시계의 해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적을 체험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해를 움직여 해그림자가 물러가게 하기까지 하면서 너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겁니다. 그것을 믿고 이 새롭게 주어지는 15년을 헛되이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15년을 어떻게 써야하겠습니까? 무엇을 위한 15년이겠습니까? 나라를 올바로 세우고 앗수르의 위협에서 나라를 든든히 지켜낼 수 있는 대비를 하라고 주신 15년입니다. 그저 먹고 즐기고 놀다 오라는 주신 15년이 아닙니다. 우리가 히스기야처럼 어려움을 연거푸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땐 정말 정신을 못차립니다. 겨우 하나 이겨내고 일어서는데 또 하나 불어 닥치면 그저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결국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까? 제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가 하기를 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제 제 낯을 벽으로 향하여 하나님만 향하겠습니다. 다른 것 쳐다보지 않겠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주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그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해 놓으셨던 것까지 철회하시면서 기적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뜻에 초점을 맞추고 드리는 기도보다 더 강력한 기도는 없습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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