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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 23 유다왕 히스기야 : 뒤집기 한판 
본문 열왕기하 18:1~8(구약593) 
날짜 2019-08-04 
설교자 전용표 목사 

*녹음파일의 문제로 영상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열왕기하강해 23

성경 : 열왕기하 18:1~8(구약 593)

제목 : 유다와 히스기야 : 뒤집기 한판

 

 

예전에는 씨름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같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하면 TV 보느라 골목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양한 씨름 기술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기술은 뒤집기 기술입니다. 유도의 업어치기 한판승보다 더 화끈하고 짜릿하고 화려한 기술입니다. 뒤집기 기술은 일단 상대편 아래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못 들어오게 내려누른다든지 팔로 막는다든지 합니다만 뒤집기 기술을 쓰려는 선수는 중심을 잘 잡고 끝까지 파고듭니다. 기술을 걸 수 있는 지점까지 파고들었다 싶으면 자신의 몸을 지렛대로 삼아서 순식간에 몸을 뒤집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집채만 한 상대선수도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뚝 떨어집니다. 관중들은 난리가 납니다. 뒤집기 기술은 주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선수들이 썼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의 쾌감이 클 수밖에 없는 기술입니다.

유다나라의 흐름을 보면 히스기야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을 결정적으로 뒤집어 놓은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 때 맺은 북이스라엘 아합집안과의 혼인으로 인해 아합의 딸 아달랴를 통해 남쪽 유다에 바알신앙이 흘러 들어왔고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거기다가 국제정세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히스기야의 아버지인 아하스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던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앗수르의 신하가 되는 정책을 썼는데, 그로 인해 앗수르의 우상들까지 전격 도입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국이 우상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다가는 남은 것은 망하는 길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한판 뒤집기로 살려낸 왕이 히스기야입니다.

 

 

 

1. 아버지는 악인으로 살았어도

 

 

 

히스기야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우상숭배에 중독된 나라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우상정책을 적극적으로 쓴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와 딴판이었습니다. 1~3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3)

 

다윗과 같이 행했다는 평가는 왕들에 대한 평가 중 최고의 평가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아버지 아하스는 최악의 평가를 받은 왕인데 아들은 최상의 평가를 받은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최고의 아버지 밑에서 최악의 자식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최악의 아버지 밑에서 최고의 자식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무엘 같은 경우는 최고의 신앙인지만 그 아들들은 불량배였습니다. 아하스는 최악의 왕이었지만 아들 히스기야는 최고의 왕이었습니다. 우연히 된 일은 아닙니다. 원인을 찾자면 틀림없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역을 하느라 정작 자식들을 신앙으로 키울 시간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이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는 불량배로 자랐습니다.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지만 히스기야가 선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사야선지자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웃시야 왕 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걸출한 선지자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왕에게도 찾아와서 거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나중에 히스기야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또 이사야의 말을 경청했던 것을 보면 히스기야는 아버지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침없이 전했던 이사야 선지자를 참된 영적스승으로 알고 그때부터 존경하며 따랐던 것 같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 악인으로 살았어도 좋은 영적스승을 만나니까 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이런 평생의 스승을 만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지식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많지만 인생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성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많지만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엘리야를 만나지 못했다면 엘리사도 없었을 것이고 사무엘을 만나지 못했다면 다윗도 없었을 것이고 조만식을 만나지 못했다면 주기철도 없었을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 좋은 영적 스승을 만나도록 기도하십시오.

 

 

2. 한 번은 넘어야할 산, 피해가지 마십시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적은 나이도 아니고 많은 나이도 아닙니다. 몇 살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뜻을 세운 바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어찌 보면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이미 그때 뜻을 굳건히 세워서 왕이 되고나서부터 아버지가 추진했던 우상정책을 다 거둬치우기 시작합니다. 4절을 봅시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4)

 

흔히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라 부르는 대목입니다.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하나는 산당(山堂)을 제거한 일이고 또 하나는 모세시대에 유례 한 느후스단이라는 놋뱀을 부순 일이니다. 먼저 산당을 제거한 것을 봅시다. 산당이라는 것은 언덕이나 큰 나무 아래에 세운 신당(神堂)인데, 동네마다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산당에서는 하나님도 모셔놓고 온갖 잡신도 모셔놓고 같이 섬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사왕이라든지 개혁적인 왕들이 온갖 우상들을 찍어버렸어도 이 산당만은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산당에 손댔다가는 왕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마치 불교에 삼신각(三神閣) 같은 것입니다. 오래 된 절에 가면 대웅전 뒤편에 삼신각이라고 작은 전각이 꼭 있습니다. 거기는 부처는 없고 산신 할배가 있습니다. 절에서 왜 이런 걸 만들어 놨느냐면 불교가 우리나라 처음 들어올 때 사람들의 민간신앙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너희가 뭔데 조상적부터 믿던 걸 못 믿게 하느냐?’며 불교를 반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도 믿고 원래부터 믿어오던 신신 할배도 편하게 믿으라고 삼신각을 만들어놓은 겁니다. 혼합종교지요. 산당이 딱 이짝입니다.

산당은 유다나라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넘어야할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넘어본 왕이 없었던 산입니다. 아무리 뒤어난 왕도 산당 앞에까지만 가고 더 가질 못합니다. 한 번도 산당을 넘어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산당 건드리면 정치생명 끝장 난다. 절대로 그건 건드려선 안 되니 명심하여라!” 선대 왕들이 자식들에게 아마 이렇게 유념시켰을 겁니다. 그러니 넘으려고 감히 시도조차 못했던 산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히스기야가 끝까지 파고들어서 넘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한 번은 반드시 넘어야 인생이 풀리고, 새로워지는 뭔가가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그런 것이 꼭 있습니다. 피해가면 언젠가 또 그 문제에 부딪혀서 좌절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한 장애물, 반드시 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한 산, 그거 넘어야 합니다. 예수를 십 년 넘게 믿었는데도 아직 성경을 일독도 못했다? 그거 넘어야 신앙의 정체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한 시간 이상 해 본적이 없다? 그거 넘어야 기도의 깊은 맛을 아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저 눈만 잠시 감았다 몇 마디 하고 일어서는 것 가지고는 기도의 참맛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해가지 말라 하십니다. 정면으로 부딪혀 넘어가라 하십니다. 한 번은 넘어야 뒤집어집니다.

 

 

 

3. 형통의 비결은 말씀입니다

 

 

 

잠시 씨름의 뒤집기 기술을 생각해보고 가겠습니다. 뒤집기에서 일단은 파고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그 다음으로는 자기 몸을 지렛대 삼아서 몸을 획 뒤집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먹히려면 두 발이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균형이 무너져서 치우치면 상대선수가 몸으로 누르든지 호미 걸이 기술을 쓰면 영락없이 나자빠집니다. 히스기야의 개혁을 보면 이런 균형미가 돋보이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느후스단이라고 하는 놋뱀을 부숴버린 일입니다. 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4)

 

놋뱀의 유례는 모세 시대입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향해 심하게 원망을 했을 때 불뱀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물어 죽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그것을 보면 낫는다고 하셨고 그렇게 했더니 실제로 나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다 사람들이 이 사건을 떠올리고는 놋으로 뱀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 ‘무슨 병에 걸렸든지 간에 이 놋뱀 한 번 쳐다보면 낫는다!’라고 하면서 부적처럼 받들었습니다. 미신이지요. 놋뱀 쳐다보면 낫는다는 것은 모세 시대에 일시적으로 주셨던 치료책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이 유행했다는 것은 유다에 온전한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시대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한동안 온전한 율법책이 사라져서 없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없던 시대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부분 부분은 있었겠지만 온전한 율법책은 없었던 것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무엇을 근거로 신앙생활을 했느냐? 없습니다. 자기소견에 옳을 대로 했습니다. 성경이 사라지니까 사람들 신앙이 미신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야, 옛날 우리 할아버지한테서 들었는데 모세 시대에 놋뱀 만들어서 섬겼더니 온갖 병이 다 나았다더라, 우리도 한 번 해 보자! 뭐 이런 식이 된 겁니다.

말씀이 사라지면 건전한 신앙은 사라지고 어김없이 미신적인 신앙이 파고듭니다. 중세시대 이야기를 전에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 다녀오면서 세숫대야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선전을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 발 씻길 때 썼던 그 세숫대야인데 여기에 물을 담아서 씻으면 모든 피부병이 다 낫는다! 다 썩은 나뭇토막 가져와서는 이것이 예수님 달리신 십자가의 일부라서 이걸 붙들고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신다! 녹슨 못도 등장하고 별의 별 것이 다 등장합니다. 말씀이 약해지면 반드시 미신적신앙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미신적신앙이 쉽고 편합니다. “헌금 많이 하면 복받는다!” 얼마나 편합니까? 드린 것의 10배로 받는다면 빚을 내서라도 드리겠지요. 이런 신앙은 편합니다. “40일 아침금식 했더니 응답이 되더라!” 이런 것도 쉽습니다. 기준이 사라지면 저마다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신앙생활합니다. 이런저런 비결들이 난무합니다.

최고의 비결은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빠른 지름길이 없고 효과적인 비결이 없습니다. 어떻게 했더니 응답받았다더라는 등 미신적 신앙이 꼭 지름길 행세를 합니다만 진짜 지름길은 말씀신앙으로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놋뱀을 부수고 하나님께 연합하여 하나님 말씀만 지켰더니 형통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복 받으려고 다른 비결 찾을 필요없습니다. 이미 우리 손에 비결이 주어져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시간되면 풀리고 또 채워지는 역사가 찾아옵니다. 반드시 찾아옵니다.

 

 

 

맺는 말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하고 언제나 그 앞에서 주저 앉았던 산이 있다면 이제 결단하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생의 정체가 풀릴 것입니다. 온갖 이상한 신앙과 미신적인 것을 떨쳐버리고 말씀으로 균형을 잡고 꾸준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진정한 형통의 역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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