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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 22 어울리되 어울리지 못하는 
본문 열왕기하 17:27~41(구약592) 
날짜 2019-07-28 
설교자 전용표 목사 

*녹음 파일에 문제로 영상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열왕기하강해 22

성경 : 열왕기하 17:24~41(구약 592)

제목 : 어울리되 어울리지 못하는!

 

 

어렸을 적 마을에 개가 많았습니다. 세파트나 진돗개는 이름만 들어봤고 주로 똥개라고 불리는 개들이었습니다. 요즘은 외국에서 들어온 종류들이 워낙 많아서 종류가 다양합니다. 종류만큼이나 개들도 성격이 다양하다고 그럽니다. 골든리트리버 같은 경우는 얼마나 친화력이 좋은지 어떤 개하고도 잘 어울리고 또 다른 짐승들과도 잘 어울린다고 그럽니다. 그렇지 않은 까칠한 종류의 개들도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개는 사람에게 잘 묻어들어서 길들이기가 제일 쉬운 짐승입니다. 반면에 고양이는 다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먹이를 주고 보살펴 주고 해도 고양이는 개처럼 길들지 않습니다. 독자노선입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고양이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 못지않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잘 섞여야할 때도 있지만 섞이지 않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과 따로 놀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세상과 똑같아져도 안 됩니다. 잘 묻어들기도 하면서 또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죽어도 섞이지 않아야 합니다.

 

 

 

1. 파편처럼 흩어지는 인생, 엮어지는 인생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나라를 세워서 한 210년 정도 지속되다가 앗수르라는 큰 나라에 침략을 받아 망하였습니다. 그간에 전성기를 누린 적도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쌓다가 망하였던 나라입니다. 그 대가는 실로 참혹했습니다.

앗수르라는 아주 잔인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이 돌에 새겨놓은 기념비를 보면 전쟁에서 이긴 후 적들의 머리를 잘라서 들고 다니는 것은 보통이고, 사람 가죽을 벗겨서 주머니를 만들어 거기에 술을 담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죄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룬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당장은 괜찮지만 그 대가를 치르게 될 때는 정말 혹독하게, 에누리 없이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저 다른 나라로 강제 이주를 시켜서 뿔뿔이 흩어버렸습니다. 17장 6절을 봅시다.

 

호세아 제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6)

 

지금이야 돌아다니면서 사는 시대이지만 옛날에는 태어난 곳에서 평생 나무처럼 살던 시대 아닙니까? 그런 시대에 고향에서 뿌리 뽑혀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처럼 저주가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아서 당한 결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없으면 인생이 파편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신세가 됩니다. 삶이 좀 덩어리로 뭉쳐지고 해서 뭔가 그림이 그려지고 해야 되는데, 그런 게 없습니다. 전부 조각일 뿐입니다. 조각난 인생입니다. 이것 따로 저것 따로, 뭔가 엮어지고 꿰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엮어주십니다. 허무하게 지나간 일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열매가 맺히고, 잊혔던 일도 새삼 의미있게 마무리됩니다. 좋았던 일과 좋지 않았던 일을 적절히 엮어서 위로도 되고 만회도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정확하신 분인지 모릅니다. 얼마 전 어떤 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권사님이 새벽기도에 가면 두 시간을 기도하고 집에 가시는 분인데, 하루는 아무리 기도를 하려고 해도 기도가 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일찍 집으로 가셨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머니가 상태가 좋지 않아 막 넘어가고 있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 알고 삽니까? 어떻게 다 조절해 낼 수 있습니까? 불가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살아가면 내가 다 모르는 것 하나님이 아시고 인도하시고, 내가 다 조절해 낼 수 없는 일도 하나님께서 정확히 조절해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인생은 분명한 구심점이 있어서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질서를 잡기에 파편처럼 조각난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모이고 모여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이루어가는 인생이 되고야 맙니다.

 

 

 

2. 억지 신앙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

 

 

 

앗수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간 다음 다른 나라 사람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에 살게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도 섞이고 피도 섞이니까 민족성이 약해져서 ‘우리가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말하자면 ‘민족말살정책’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상황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강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정착하게 되는데, 30,31절을 보면 그들이 올 때 저마다 자기민족의 신을 싸들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우상을 섬기면서 그 땅을 죄로 더럽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얼마를 치셔서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그들이 처음으로 거기 거주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들 가운데에 보내시매 몇 사람을 죽인지라 (24,25)

 

이것을 저는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라고 봅니다. 어차피 이들은 이방인들이고 우상의 자식들이니 무관심하면 그만일 것을 하나님께서 그들이 죄를 지을 때 징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관심이고 사랑입니다. 비록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이 거룩한 땅을 죄로 더럽히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배워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요구하신 사건이란 말이지요. ‘이곳은 내가 특별히 애정이 있는 땅이다. 너희들이 비록 억지로 끌려와서 이곳에 살게 되었다만 나는 너희들이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 나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들에게 내리신 징벌은 실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좋아서 믿는 사람이나 억지로 끌려오다 시피 해서 믿는 사람이나 똑같이 관심을 가지십니다. 아니 어떤 때는 억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실 때도 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생일 때 학생회 여름수련회가 있었는데, 그때 저는 은혜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달동안 저녁마다 교회 나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수련회에 참석을 하였고, 친구들 중에는 끌려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좀 논다고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학생신분에 술담배는 기본이고 본드 흡입도 하고 모여서 온갖 지저분한 일을 다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해 수련회에서는 다른 해보다 아주 특별한 수련회였습니다. 특히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막 은혜가 부어지는데, 끌려온 친구들에게 가장 큰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땅바닥에 데굴데굴 뒹굴면서 죄짓고 살아온 것을 회개하는데 그 불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옮겨 붙어서 모두가 뒤엉켜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 생할 잘 하는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고 엉망으로 하는 사람, 억지로 하는 사람도 사랑하시고 어쩌면 더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강제로 이주해 사람들에게도 간섭하셨습니다. 그냥 멋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삶에도 간섭하십니다.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3. 섞이지 않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

 

 

 

우상을 들고 들어와서 그 땅을 죄로 더럽히는 강제이주민들에게 하나님께서 징벌을 내리시니까 이 사람들이 ‘아, 이곳 신이 노하셨구나! 이 곳 신을 섬기는 법을 알아서 신을 노하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고는 앗수르 당국에다가 이 곳 신을 섬기는 법도를 알고 싶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앗수르 당국이 이스라엘에서 잡아갔던 제사장 한 사람을 다시 사마리아로 돌려보내 줬습니다. 그 사람이 강제이주민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를 가르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분인데 그분을 섬길 때는 이렇게 이렇게 섬겨야 됩니다.’ 그런데 강제이주 해 온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 제사장이 가르쳐 준대로 여호와도 경외하고, 자기들이 원래부터 섬기던 자기민족의 신도 섬기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33)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게 참 재미난 현상입니다. 여호와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것!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닙니까? 누가 하던 행동이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던 행동입니다. 그거 하다가 망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나 여호수아나 또 다른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너희들이 그 땅에 들어가거든 오직 여호와만 섬겨야지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만 지켜야지 우상의 율례와 법도를 지켜서는 안 된다’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이스라엘은 죽어라고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섬겼습니다. 34~41절까지의 말씀이 바로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이게 참 재미나지 않습니까? 결국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이 쫓겨난 자리를 또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채우더란 말입니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도시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한 채 있었는데, 누군가 돌을 던져 그 집 유리창이 깨졌습니다. 그러자 유리창 깨지기 전에는 안 그러던 것이 유리창이 깨지고부터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집 앞에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밤에 몰래 와서 큰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래도 치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흐르니까 그 동네 여기저기에 쓰레기가 많아졌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도시에 범죄도 늘어났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처리하지 않으니까 좋지 못한 연쇄반응이 일어나더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입니다. 29절을 보면 강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자기들이 들고 온 신상을 위해 새로 신전을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 이스라엘 사람들이 워낙 여기저기에 산당을 많이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그거 재활용하면 됐습니다. 깨진 유리창 그대로 두니까 거기에 뭐가 자꾸 와서 붙는 겁니다. 술 좋아하면 술친구가 자꾸 엮이고 책을 좋아하면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자꾸 붙습니다. 도박 좋아하면 도박 좋아하는 사람이 자꾸 엮이고 성경을 좋아하면 성경 좋아하는 사람이 자꾸 붙습니다. 유흥 좋아하면 잘 노는 사람이 자꾸 붙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비슷한 사람이 붙습니다. 자꾸 세상과 섞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양다리 교인들이 옆에 붙고 세상과 섞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신앙의 선이 있는 사람이 붙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양면을 다 가진 사람입니다. 포로로 잡혀 가서 자기를 포로로 잡아간 나라에서 높은 관직에까지 오를 정도로 바벨론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을 한 사람입니다. 이리 구부리면 이리 휘고 저리 구부리면 저리 휘는 유연함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절대로 꺾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회유를 하고 협박을 하고 사자굴에 집어넣고 해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옆에 붙습니까?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처럼 불구덩이에 빠질지언정 타협하거나 굽히지 않는 기개를 가진 참신앙의 친구들이 붙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다윗 같은 경우는 굽히지 않는 신앙으로 살아 고난도 많이 당하고 위기도 여럿 겪었지만 그때마다 피할 길이 되어주는 요나단 같은 신실한 신앙인을 붙여주셨습니다.

 

 

맺는 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서 파편처럼 조각난 인생이 아닌 차곡차곡 엮어져서 큰 그림이 되는 인생이 되시고 부러질지언정 죄된 세상과 섞이지 않는 신앙을 가져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는 것을 체험하며 사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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