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제목 열왕기하강해 20 유다왕 아하스 : 독수리를 모으는 자 
본문 열왕기하 16:1~20(구약589) 
날짜 2019-07-14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20

성경 : 열왕기하 16:1~20(구약 588)

제목 : 유다왕 아하스 : 독수리를 모으는 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늘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독수리의 원래 이름은 수리입니다. 독수리는 죽은 사체를 뜯어먹는 민머리독수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구분해서 쓰던 것을 언제부턴가 구분없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어떤 동물이 죽으면 시쳇말로 귀신같이 알고는 나타나서 뜯어먹습니다. 동물이 죽었을 때만 나타나지 않고 병이 들거나 상처가 깊어 죽어가는 것도 정확히 알아차리고는 몰려듭니다. 따라다니면서 죽기를 기다립니다. 신앙생활도 신앙을 갉아먹는 일을 불러들이는 병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두려움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보면 돌밭에 뿌려진 씨앗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는 환난이나 박해 때문이고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인데, 환난이나 세상 염려나 그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교만도 넘어지게 하는 것이지만 두려움도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교만도 심각한 질병이지만 두려움도 그 못지않은 질병입니다.

오늘 유다의 12번째 왕인 아하스를 살펴보겠는데, 두려움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함께 교훈을 얻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어려운 상황 속에 내 역할이 있습니다

 

 

유다 왕 아하스는 왕이 될 때 상황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왕이 되었습니다. 앗수르라는 공룡이 무역로를 손에 넣고자 끊임없이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오자 이것을 막아내고자 전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유다에게도 반앗수르 동맹에 가입하라고 압력을 넣는데 유다가 거절을 하자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쳐들어온 것입니다. 5절을 봅시다.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5)

 

이런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습니다. 누구는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에 왕이 되는가하면 누구는 태평성대에 왕이 되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역대 최고 성군인 다윗의 아들인 덕에 아버지가 잘 다져놓은 나라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시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완전히 망가뜨려 놓은 나라를 물려받아서 처리해야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상황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넉넉한 형편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려운 형편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남이 쌓아놓은 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도 있는 반면, 남이 해놓은 저지레를 해결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 회장할 때는 모든 여건이 괜찮다가 내가 회장되자 상황이 갑자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은 ‘왜 나는 복이 없는가? 왜 나는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하고 흙수저로 태어났는가?’ 이런 생각에 빠지기 쉬운데, 믿는 사람은 그런 생각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러한 생각은 운명에 굴복하는 생각입니다. 어째서 이런 상황을 내게 주셨는가? 이런 시기에 내가 감당해야할 역할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라고 이런 어려운 시기에 내게 일을 맡기셨나?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 나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하나님 주권신앙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생충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동남아시아 나라들보다 더 못사는 나라였고 지저분한 나라였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 83%가 몸에 기생충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 나라를 비관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 몸에서 기생충을 없애보자고 뜻을 모은 사람들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기생충박멸협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나라의 협조를 구해서 한 일이 채변봉투로 기생충 검사해서 기생충약을 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채변봉투에 대한 기억이 많을 겁니다. 채변을 해 오지 않아서 야단 맞을까봐 많이 가져온 친구 것 빌려서 낸 경우도 있고 참 웃지 못 할 많은 추억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기생충이 사라졌고 2010년 대에는 보건위생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생적인 나라에 속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못 살고 이렇게 지저분할까? 나는 어쩌자고 이런 나라에서 태어났을까?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모두가 이런 생각만 했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없었겠지요. 누군가는 이 지저분한 나라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했으니 나라가 이렇게 성장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힘든 상황, 어려운 환경을 피해가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내 사명이 되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복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악조건일지라도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면 그것이 복입니다. 아하스는 이 점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 두려움, 정공법을 쓰십시오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이 쳐들어온 위기 속에서 아하스는 벌벌 떨었습니다. 이때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이사야 7장에 가서 보면 아하스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다’고 나옵니다. 그때 이사야선지자는 떨고 있는 아하스를 찾아가서 ‘저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연기 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하니 겁내지 말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을 합니다만 아하스는 이사야선지자가 전해 준 말을 붙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극도의 공포를 이기고자 별의 별 방법을 다 씁니다. 어떤 방법까지 썼느냐? 3,4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3,4)

 

자식을 불살라 바치는 인신공양(人臣供養)까지 했다는 말입니다. 자식을 불살라 바치는 제사는 이스라엘에는 없는 일이고 하나님께서도 금하신 극악한 일로서 원래 암몬 사람들의 풍습입니다. 아주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자식을 불살라서 몰렉신에게 바치면 해결받을 수 있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가증스런 제사법입니다. 아하스가 위급해지자 이 가증한 일까지 한 것입니다. 사람이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의외로 뭐든지 다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성이 포위되었을 때 양식이 떨어지자 자식까지 잡아먹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임진왜란 때도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신앙을 망치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것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심리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마음의 문제라 이 말입니다. 상처가 나서 피부가 벗겨지면 바람만 스쳐도 아픕니다. 건강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별 것 아닌 것도 겁이 나고 움츠러듭니다. 그러면 사람이 자꾸 판단력이 흐려지고 실수도 잦아지고 그럴수록 더 겁이 나고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내면의 견고함이 있으면 좀처럼 두렵지가 않게 됩니다. 약하면 더 눌리게 되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센 척할 필요 없습니다. 센 척 한다고 세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견고해야 세집니다. 십대의 나이로 천하제일의 용사 골리앗 앞에 나아갔던 다윗은 ‘너는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네가 모독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가 나아가노라’ 하면서 두려움 없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까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굳게 믿는 만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대하20:20)고 하셨습니다. 교만해진 마음을 낮추시고 연약해진 마음을 담대하게 하시고 불안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주인이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대, 부담스러운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나 한 번 실패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 할 때에도 혼자 가서는 안 됩니다. 주의 말씀과 함께 가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이런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하여 마음에 착상이 시켜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두려움을 물리쳐 주십니다. 마음을 담대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안타깝게도 아하스는 두려움을 다스리는 방법을 잘못 선택하여 자식을 불살라 바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3. 독수리를 불러들이는 악수(惡手)에서 벗어나십시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자식까지 불살라 바친 아하스는 그 일로도 두려움을 떨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좀 더 실제적인 방법을 씁니다. 앗수르 왕에게 재물을 갖다 바치면서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7,8절을 봅시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7,8)

 

아하스는 앗수르 왕의 신복과 아들이라 자처하면서 굴욕적인 자세로 도움을 구합니다. 거기다가 왕궁 곳간의 은금 뿐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의 은금까지 다 갖다가 바칩니다. 세상 왕을 의지하겠다고 하나님 아닌 세상 왕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집에 있는 은금까지 가져다가 바칩니다. 무늬만 하나님 백성이지 세상 사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두려움을 정공법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자꾸 무리한 수를 두게 된다는 점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끌어들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방법이 처음에는 먹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꼭 그래요. 요나가 하나님 명령 싫다고 도망치는데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어요. 태워달라니까 태워준다고 해요. 먹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길로 들어선다 해서 곧바로 무슨 일이 생기고 그러지 않습니다. 나중에 터집니다. 아하스가 스스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종이 되어 도움을 구하자 디글랏 빌레셀은 군대를 이끌고 아람에 쳐들어가서 아람을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뒤 이스라엘로 쳐들어가서 이스라엘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쳐들어오느냐? 재물 갖다 바치면서 도움을 요청했던 유다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이런 것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하지요. 유다와 앗수르 사이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있는데 이 둘이 잡아먹히면 그 다음 순서는 유다가 되는 것은 국제사회에 냉엄(冷嚴)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두려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법을 끌어다 쓰게 되면 계속 내주게 됩니다. 야금야금 내주다가 나중에는 다 무너지게 됩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지 않고 세상방법으로 해결하려 드는 모든 것은 반드시 독수리를 불러들이는 악수가 되고야 맙니다. 아직도 주님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드는 일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주님께 가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후유증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해결할 길을 주님께서 열어주실 것입니다.

 

 

맺는 말

 

 

아하스는 두려운 상황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었고 떨어지는 위기도 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하스는 후자의 길로 갔습니다. 그 결과 아하스는 온갖 우상을 의지하고 세상 방법을 다 썼으면서도 나라를 더 큰 위기 속에 빠뜨리고 자신도 유다 왕들 중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되는 오명을 얻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만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더라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258 열왕기하강해9 뜻밖의 하나님 뜻밖의 사람 열왕기하 7:3~20(구약 571)  2019-03-03  전용표 목사 
257 열왕기하강해10 하나님의 막대기 열왕기하 8:7~15(구약 573)  2019-03-10  전용표 목사 
256 열왕기하강해11 견고한 모래성 열왕기하 10:1~14(구약578)  2019-03-17  전용표 목사 
255 열왕기하강해12 예후의 개혁과 한계 열왕기하 10:18~31(구약 579)  2019-03-24  전용표 목사 
254 열왕기하강해13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만회 열왕기하 11:1~21(구약 580)  2019-03-31  전용표 목사 
253 열왕기하강해 14 요아스의 개혁과 실패 열왕기하 12:1~8,17~21(구약581)  2019-04-07  전용표 목사 
252 거룩한 성찬 누가복음 22:14~20(신약134)  2019-04-14  전용표목사 
251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의미 창세기 47:11~12(구약75)  2019-05-12  전용표목사 
250 신앙 교사의 보람 디모데후서 1:1~5(신약343)  2019-05-19  전용표 목사 
249 합력하여 선이 되려면 로마서 8:28(신약250)  2019-05-26  전용표 목사 
248 열왕기하강해 15 엘리사의 죽음 열왕기하 13:14~19(구약584)  2019-06-02  전용표 목사 
247 열왕기하강해 16 유다와 아마샤 : 락불가극 역대하 25:1~24(구약688)  2019-06-09  전용표 목사 
246 열왕기하강해17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금강이 되어라 열왕기하 14장 23-29  2019-06-16  전용표 목사 
245 열왕기하강해18 유다왕 웃시야 : 미끼 역대하 26:1~5, 16~23(구약590)  2019-06-23  전용표 목사 
244 열왕기하강해 19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들 : 급경사길 열왕기하 15:8~31(구약586)  2019-06-30  전용표 목사 
243 상대적 감사, 절대적 감사 누가복음 18:9~14(신약126)  2019-07-07  전용표 목사 
» 열왕기하강해 20 유다왕 아하스 : 독수리를 모으는 자 열왕기하 16:1~20(구약589)  2019-07-14  전용표 목사 
241 열왕기하강해 21 이스라엘왕 호세아 : 패망 열왕기하 17:1~6, 13~18(구약590)  2019-07-21  전용표 목사 
240 열왕기하강해 22 어울리되 어울리지 못하는 열왕기하 17:27~41(구약592)  2019-07-28  전용표 목사 
239 열왕기하강해 23 유다왕 히스기야 : 뒤집기 한판 열왕기하 18:1~8(구약593)  2019-08-04  전용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