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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대적 감사, 절대적 감사 
본문 누가복음 18:9~14(신약126) 
날짜 2019-07-07 
설교자 전용표 목사 

맥추절 설교

성경 : 누가복음 18:9~14(신약 126)

제목 : 상대적 감사, 절대적 감사

 

 

맥추절(麥秋節)은 보리 밀을 추수하고 난 뒤 지키는 절기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상황에서는 반년을 살고 난 후 상반기를 결산하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바쁘게 달려온 상반기를 돌아보면서 의미를 찾고 감사하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로 원래 의도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일깨우시고자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을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인으로 여기고 있지만 예수님 당시만 해도 바리새인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이 경건한 신앙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유독 예수님만 바리새인을 그토록 비판적으로 대하셨습니다. 세리는 다들 아시는 대로 죄인의 대명사입니다.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며 동족의 피를 빨아먹던 자들입니다. 신앙이 가장 좋다고 평가받던 바리새인과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던 세리가 같이 기도하러 올라간 것입니다. 성전 안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고 일반인은 성전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이 두 사람이 기도한 장소는 정확히는 성전 마당입니다. 거기서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는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이야기를 하시고 예수님은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 세라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맥추절인 관계로 이 이야기를 감사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감사를 드려야하는가? 무엇이 성숙한 감사이고, 하나님께 기뻐 받으시는 감사인가를 오늘 본문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비교를 통한 감사는 성숙하지 못한 감사입니다

 

 

 

11절을 봅시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1)

 

토색은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해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하는 것 같은데 뜯어보면 감사가 아닙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부정이 없습니다. 토색하며 불의와 간음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니 참 사는 것이 추하게 보이고 죄 되어 보여서 자기도 한때 저런 인생으로 빠질 뻔도 했는데,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단 말이지요. 그걸 생각하면 아찔하면서 그저 고마운 겁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면 그렇게 큰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습니까? 돌아보면 아찔한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절로 감사가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바리새인이 하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토색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불의나 간음 하고도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저런 세리 같은 자들과도 다릅니다!’ 이런 뉘앙스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겁니다. 무한 자부심이 있어요. 이런 마음으로 아무리 감사를 남발해도 하나님은 그 감사를 받지 않으신다 이 말입니다. 자기부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남과의 비교 속에서 자기가 낫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저 사람들은 이렇게 이렇게 안 하는데 저는 합니다. 저 사람들은 이러이러한데 적어도 저는 이렇습니다. 이런 것이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지난 5월달에 서울의 모대학의 어떤 대학교수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세월호를 언급하면서 세월호 사고 때 불교인들은 살았고 기독교인들은 다 죽었다라는 말을 해서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고가 났을 때 다른 사람들 다 죽는데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말은 기독교인들도 해 오던 말이거든요. 그걸 불교도한테서 들으니까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런 말이 사실도 아닐 뿐더러 죽은 자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비수 같은 말입니까? 예수님 당시에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덟 명이 깔려죽은 사건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죽은 열여덟 명의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저 사람들은 죄가 더 많아서 저런 일을 다하였고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보았을 때 자기를 더 돌아보고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불행한 사고에서 나만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면 그걸 간증삼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들을 먼저 데려가시고 저는 아직 남겨놓으셨는데, 제가 먼저 간 저들보다 더 살아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저를 통해 무슨 일을 하시려고 저를 남겨놓으셨나요?’

우리는 남들과 자꾸 비교해서 감사하려는 습관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 집에는 저런 문제가 있는데 우리 집에는 없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감사일지 몰라도 저 집에서 들으면 상처입니다. 비교 속에서의 감사? 그거 성숙하지 못한 감사입니다. 그런 감사 백가지보다는 내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짜 감사가 됩니다. 13절을 봅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

 

가슴을 치며 자기는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회개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교만이나 불평만 있을 뿐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많거나 적거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평범한 열매에도 감사하십시오. 온갖 변수와 인생의 딜레마가 난무하는 인생살이에서 평범한 열매를 거두는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입니다. 온전히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으십니다.

 

 

 

2. 겸손이 감사입니다

 

 

 

12절을 봅시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12)

 

보통의 유대인들은 대속죄일과 나라가 망했던 날을 기념해서 금식을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두 번을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에는 십일조를 드리는 농산물 품목이 몇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은 모든 소득에 십일조를 다 드렸습니다. 열심이 특심이어서 원래 해야될 것보다 몇 배를 더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이 전부다 인정해 주지요.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저렇게 못해, 대단한 믿음이야!’ 바리새인이 없는 것 꾸며내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감사가 아니라 자랑입니다. 어딜 봐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고백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전부 자기가 한 일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감사가 되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하나님, 저는 이렇게 부족하고 저렇게 부족한데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렇게 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이러이러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생각할수록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게 돼야 그게 감사지요. 자세히 보면 누가 이런 기도를 드립니까? 죄인인 세리입니다. 일단 바리새인은 장황하게 기도합니다만 세리의 기도는 진짜 별 것 없어요. 13절 봅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

 

저는 죄인입니다. 그저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실은 이것이 최고의 감사입니다.

 

감사란 것은 상대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높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더 올라갈 곳이 없는 분인데 우리가 어떻게 더 높여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높여드린다, 높임 받으소서’ 말은 그렇게 하고 노래도 그렇게 합니다만 실은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을 높여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더 낮추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어요. 세리는 ‘멀리 떨어져’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자기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는 무자격자라는 마음입니다. 믿음없는 모습이 아니라 낮고 낮은 모습입니다. 마음이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이 사람을 통해 높임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감사예요. 우리가 세상을 살 때 이런 마음이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삶을 감사로 받으시는 거예요. 정말 감사는 이런 낮은 마음으로 사는 우리의 겸손한 삶이 곧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의 삶을 감사로 받아주실 뿐 아니라 높여주기까지 하십니다. 14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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