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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17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금강이 되어라 
본문 열왕기하 14장 23-29 
날짜 2019-06-16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17

성경 : 열왕기하 14:23~29(구약 586)

제목 :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 금강(金剛)이 되어라

 

 

흔히 쓰는 말은 아니지만 ‘금강’이라는 말이 붙은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큰절 입구에는 사천왕상이란 것이 있습니다. 두 눈을 부라리고 금방이라고 한 방 칠 것처럼 아주 무섭게 쳐다보며 서 있는데, 그것을 금강역사(金剛力士)라고 부릅니다. 금강역사는 부처의 호위무사이입니다. 호위무사라면 힘이 세야겠지요. 금강역사의 힘은 코끼리 백만 마리의 힘과 맞먹는다고 그럽니다. 힘이 센 장수에게 금강역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또 있지요. 지금은 닫혀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산, 금강산(金剛山)입니다. 금강산은 기암괴석과 삐죽삐죽 솟은 바위들이 많아 아침에 해가 비치면 그 반사된 모습이 금강석 같아서 붙인 이름입니다. ‘금강’이라는 이름은 ‘몹시 단단해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장 단단한 암석이자 보석인 다이아몬드가 한자로 금강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금은방 이름 중에 금강당이 많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금강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시대에 영합하지 않은 관계로 고난이 많았습니다. 시대에 영합했다면 당하지 않아도 됐을 고난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풍파도 그들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가끔 실수도 있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나아가야할 푯대를 분명히 하고 또 걸어갔던 인물들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이 극단적으로 식어졌든지, 아니면 극단적으로 열광적이든지, 양분화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극단을 피하고 길고 오래가는 신앙이라야 하는데, 성경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린 신앙이라야 합니다. 그것이 금강신앙입니다.

 

 

1. 이스라엘의 번영 :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 결과

 

 

오늘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을 살펴보겠습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왕이 두 사람 있습니다. 초대 왕이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로보암은 13대 왕인데 초대 여로보암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여로보암2세라고 부릅니다. 아합집안을 처단하고 왕이 된 예후의 증손자입니다. 이 사람은 무려 41년 간이나 왕위에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19명의 왕 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통치했습니다. 변고가 많은 북이스라엘서 이렇게 오랫동안 통치를 했다는 것은 이 사람의 능력이 출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여로보암2세 때 북이스라엘은 땅덩어리가 제일 넓었습니다. 25을 봅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5)

 

북쪽으로는 하맛 어귀까지라고 나오는데, 하맛 어귀는 북쪽으로 엄청나게 아람제국의 수도 다메섹 근처입니다. 다윗시대 빼고는 남북 통털어서 영토가 이렇게 넓었던 적이 없습니다. 남쪽으로는 아라바 바다까지 땅을 넓혔는데, 아라바 바다는 사해바다인데 원래 남쪽 유다땅이던 지역까지 많이 차지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대상들이 지나가던 주요 무역로를 손에 넣었기 때문에 가만 앉아있어도 돈이 굴러들어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보통 능력자가 아니지요. 그런데 이것이 여로보암 한 사람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변 상황이 기가 차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선 그토록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아람제국이 앗수르의 공격에 완전히 쪼그라든 상태였고, 앗수르는 또 우라루트라는 민족의 공격을 받아서 더 이상 이스라엘쪽으로 쳐들어올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몇 백년 동안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런 상황은 한 개인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26,27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26,27)

 

너무 불쌍하게 사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항상 착각합니다. 누가 잘나서요? 내가 잘 나서! 내가 지혜로워서, 내가 열심히 했더니, 내가 충성했더니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습니다. 너무 불쌍해서 하나님이 은혜베풀어주신 것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2. 주신 복을 죄 짓는 도구로 쓰는 이스라엘

 

 

그런데 이스라엘이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합니다. 이리저리 치이고 너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불쌍해서 은혜를 베풀어주셨더니 그걸 자기들이 잘 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가지고 역사상 가장 타락한 시대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얼마나 타락했던지 하나님께서 호세아 아모스 요나 세 명의 선지자를 급파하셔서 이들의 죄악상을 지적하시고 회개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호세아서와 아모스서에 이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타락했었는가가 잘 나옵니다. 몇 군데 찾아봅시다. 열왕기서와 선지서를 연결시켜서 보면 왜 선지자들이 그렇게 외쳤는지, 어째서 열왕기서에서 그 왕을 그런 식으로 평가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먼저 호세아 4장 1,2절(구약1259)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4:1,2)

 

사람들이 진실이 없어요. 인애도 없어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는 지식도 없어요. 물론 저마다 자기가 경험한 것을 가지고 어줍잖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고 저런 분이고 하는 말들은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는 관심이 없어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삽니까?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있으면 쉽게 저주합니다. 감정 따라 해버립니다.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쉽게 속입니다. 정말 필요하면 살인도 서슴지 않습니다. 실제로 죽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험담해서 인격을 깎아내립니다. 인격살인이지요. 그게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한테 유리하면 그렇게 합니다. 감정 따라 합니다.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슬쩍슬쩍 속이고 도둑질에 해당되는 방법도 씁니다. 힘이 생기면 남의 일거리나 일자리, 남의 집, 재산까지도 교묘하게 빼앗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십니다. 밑에 6절을 봅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지식, 곧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 믿는다,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 백성이다라고 하는데 정작 살아가면서 말씀에서 답을 찾으려는 자세가 하나도 없다 이 말입니다. 자기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고 자기 감정대로 다 해 버리는 것이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 그럽니다. 잘 살게 될수록, 힘이 생길수록 더 그러더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 말입니다. 그래서 그 아래 7절에서 뭐라고 하세요?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7)

 

복을 줄수록 죄만 더 많이 지으니 다 거두어 가겠다! 그러십니다. 아모스서도 마찬가지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주신 은혜와 복을 죄짓는 도구로 쓰면 당장 어떻게 안 하시는 것 같지요? 큰일 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값을 치르게 하세요. 다시 건강 주셨으면 그 건강으로 주의 일을 힘쓰려고 하세요. 건강 회복되니까 또 옛습관 슬슬 도저서 어떻게 하다가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에 비해 이제 한숨 돌릴 형편이 되었다면 그때 더 욕심 부리지 마시고, 주님께 어떻게 갚을까를 생각하세요. 나만 위해서 오로지 나만 위해 궁리하다가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마시고 말씀을 들여다보면서 고민을 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이게 맞는지 틀린지, 이미 다 아는 사람처럼 판단하고 결정하지 마세요. 날마다 말씀에 비춰보면서 사십시오. 성경지식 자랑에 붙들리지 마시고, 나 몇 그릇 먹었다 많이 먹는 거 자랑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읽은 것 자랑 하지 마시고 그 말씀에 나를 비춰서 나를 뜯어 고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자랑하십시오. 그래야 진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금강(金剛)이 되세요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고 마칩시다. 호세아 하면 다들 고멜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더러 음란한 여인 고멜에게 장가들어 같이 살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지만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런데 호세아는 순종합니다. 대단한 선지자지요. 그런데 원문을 보면 ‘너는 음란한 여자들에게로 가서 그 중에서 음란한 여자 고멜을 맞이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고멜만 음란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여자들이 다 고멜처럼 음란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여자와 결혼해도 다 음란한 여자입니다. 여자만 음란했을까요? 모든 여자가 음란하면 모든 남자들도 음란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로보암2세 때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살만하니까 이제는 즐기는 겁니다. 남보다 덜 즐기고 죽으면 억울할까봐 경쟁적으로 즐깁니다.

그 시대를 요약하자면 한편으로는 잘 살아보려고, 성공하려고 미쳐 날뛰던 시대입니다. 정당한 방법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재산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뒤쳐질새라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분위기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저 즐기는 겁니다. 풍요로운 시대가 되니까 못 즐기는 사람이 바보가 됩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창녀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몸에는 경건의 습관이라고는 전혀 없이 온통 세상 풍습을 좇는 습관으로 칭칭 둘러싸고 가슴에는 말씀 한 자락 없이 세상 가치관으로 가득 채우고 사는 것이 영적인 간음입니다. 우리 시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모두가 영적인 창녀가 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믿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금강(金剛)이 되어야 합니다. 되는 방법 안 되는 방법 가리지 않고 재산 불리려고 하지 마세요. 머릿속에다가 돈, 재산, 성공, 인생즐거움, 이런 것들로 가득 채우고 다니지 말라 이 말입니다. 거기에 흔들려서도 안 됩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면 말입니다. 안 믿는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마치 자신이 고결한 백로라도 된 것처럼 돈을 저주하면서 살지도 마십시오. 고결한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얼마나 벌어야 합니까? 자신의 신앙을 죽을 때까지 흔들림 없이 지켜낼 수 있을 만큼 버십시오. 입에 풀칠도 못하면서 고매한 신앙이야기만 늘어놓으면 누가 그 말을 들어줍니까? 진실한 신앙은 한편으로는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 형편으로 인해 내 신앙이 초라하게 비춰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삶의 터전을 든든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둘기처럼 순결해야하지만 그 순결함을 지켜내려면 뱀처럼 지혜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정말 잘못된 신앙에 빠지면 자꾸 일상생활, 경제생활은 헛된 것으로, 마지못해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데, 그것이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비성경적인 신앙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는 이원론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된 성령체험을 한 사람은 직장 등한시 하고 사회생활 등한시 하고 교회만 찾고, 뭔 선교만 찾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속으로 부르심을 깨닫고 더 열심히 사회생활하고 더 열심히 일합니다. 세상속에서 빛을 드러냅니다. 너무 약싹 빠른 기독교인도 되지 말고 너무 세상과 등진 기독교인도 되지 마십시오.

이 신앙에서, 이 삶에서 흔들림 없이 가야 합니다.

 

 

 

맺는 말

 

 

이것이 금강의 길입니다. 금강석 같은 신앙인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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