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제목 열왕기하강해 16 유다와 아마샤 : 락불가극 
본문 역대하 25:1~24(구약688) 
날짜 2019-06-09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16

성경 : 역대하 25:1~24(구약 688)

제목 : 유다왕 아마샤 : 락불가극(樂不可極)

 

제주도에서 이혼한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어 바다에 던져 유기한 여성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얼굴치고는 너무 평범한 얼굴이어서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 여성은 이혼 후 아빠가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접견권이 있음에도 한 번도 아빠가 아이를 만나도록 해주지 않았었고 그로인해 전남편이 법원에 소송을 해서 겨우 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혼 후 첫 번째로 아이를 만났는데, 전부인이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을 죽인 것입니다. 죽인 것뿐 아니라 시신을 잘게 토막을 배를 타고 가면서 바다에 던져서 유기를 하였습니다. 살인과정과 시신유기방법 등이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끔찍하고 잔인해서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굉장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서라도 사형을 언도해야 된다!’는 식의 반응이 가장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죽은 사람도 불쌍하지만 그 여인도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저 마음에 어떤 병이 들었길래 저렇게 잔인하고 끔찍할 수 있을까? 몸의 병도 무섭지만 마음의 병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다 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남의 말을 좀처럼 믿지를 못하는 것도 병이지요. 의심이 유독 많은 것도 병이고요. 이유 없이 불안한 것이나 자랑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것도 병입니다. 뭐든지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남을 비판하는 습관도 병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데 유달리 집착하는 것도 병입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주도권을 놓치면 불편을 느끼는 것도 병입니다. 이렇듯 보이지 않지만 우리 마음에는 갖가지 종류의 병들이 있습니다. 예외가 거의 없어요. 이런 우리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위해 죽으신 구세주임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말씀으로 조명하시어서 마음에 든 이런 갖가지 병을 뽑아내시는 작업을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과 하나님의 지혜에 이르게 하십니다. 오늘도 말씀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지혜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말씀을 좇아 손해도 감수하는 아마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왕 아마샤는 요아스 왕의 아들입니다. 요아스 아합의 딸 아달랴가 유다의 왕자들을 다 죽일 때 고모네부부의 도움으로 살아나서 극적으로 왕이 되었었지요. 자기를 살려준 고모부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된 통치를 하다가 여호야다가 죽은 후로는 빗나갔었습니다. 그러다가 불만이 많이 쌓인 신하들에게 암살을 당하고 말지요.

아마샤는 바로 그 요아스 왕의 아들입니다. 왕이 되자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벌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을 암살한 자들은 집안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입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삼족을 멸하지요. 그런데 아마샤는 당사자들만 죽이고 그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서가 아닙니다. 3,4절에 이유가 나옵니다. 봅시다.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3,4)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책에 아버지 죄로 자녀를 죽이지 말라고 나와 있기에 아마샤는 거기에 순종했다 이 말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좇아 하는 모습은 얼마나 좋은 모습입니까? 아마샤의 신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에돔과 전쟁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선대에 에돔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전쟁이었는데, 에돔에게 전력이 딸렸는지 백 달란트란 거액을 들여 북이스라엘에서 십 만 명의 용병을 사옵니다. 그때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를 찾아와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의지하고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리가 없다며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충고를 합니다. 그러자 아마샤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미 북이스라엘 군대에게 백 달란트나 줬는데, 물릴 수도 없고 곤란해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은 아마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합니다. 9절을 봅시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9)

 

‘그 까짓 백 달란트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데, 뭘 아까워 하십니까?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느라 백 달란트를 손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능히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 따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느라고 손해 보면 하나님은 가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치료차 가는 한의원이 있는데, 한의사 장로님이 돈을 받지 않고 침을 놔주시고 물리치료도 해주세요. 제가 고마워서 갈 때마다 빵이나 과일 같은 것을 사서 갑니다. 얼마 전에도 치료받으러 가면서 시장에 들러서 참외를 한 봉지 사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누가 벨을 눌려요. 어떤 집사님이 성주참외 선물용을 한 박스 가져오셨습니다. 그분이 들고 오신 참외는 제가 사 갔던 참외보다는 훨씬 좋은 참외였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손해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거기에 합당하게 채워주시고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2. 어리석은 몰락의 길을 가는 아마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큰 승리 뒤에 이상하게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14절을 봅시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14)

 

에돔을 무찌르고 돌아오면서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 신으로 삼고는 거기다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세일 자손이 곧 에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에게 패한 사람들이 섬기던 신을 뭣 때문에 가져와서 섬긴단 말입니까? 좀 어처구니없지요. 기껏 은혜를 베풀어줬더니만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단 말입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지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 아마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세요. 그런데 아마샤는 선지자의 말을 끊으며 위협을 가합니다. 16절을 봅시다.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16)

 

‘그 입 다물라! 죽고 싶냐?’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셔도 도리어 협박을 하면서 듣지 않으면 다음 순서는 심판인데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쉽게 알아차리는 방식으로 임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어떻게 임하는가? 에돔을 물리치고 승리를 맛본 아마샤는 한껏 자신감이 생겨서 이번에는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왕에게 기별하여 한 판 붙자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 왕이 가시나무가 백향목더러 사돈맺자고 하니까 지나가던 짐승들이 가시나무를 짓밟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함부로 경고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요. 그래도 이미 교만한 마음에 붙들린 아마샤는 중단하지 못하고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합니다. 결과는 크게 지고 말았습니다. 졌을 뿐 아니라 수도인 예루살렘까지 점령당해서 많은 사람이 볼모로 잡혀가고 왕실 보물을 모조리 빼앗기고 예루살렘 성벽도 400규빗이나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성벽이 허물어진 것은 치욕중의 치욕입니다. 아마샤는 결국 이런 참패를 맛보고 죽을 때도 평안히 죽지 못합니다. 자기 아버지처럼 신하들에게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3. 물극필반(物極必反)이요 락불가극(樂不可極)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던 사람이 갑자기 우상을 가져다 섬기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 잘 되고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요 락불가극(樂不可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은 무엇이든지 극에 다다르면 반드시 뒤집힌다는 말입니다. 해가 하늘꼭대기에 다다르면 반드시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가득차면 찌그러지기 시작하고 꽃도 화려하면 떨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부여해두신 사물의 이치입니다. 권세도, 물질도, 명예도, 잘 나가는 것도 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지금이 정점을 찍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더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 분별을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좋은 상태가 계속 되리라는 막연한 착각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교만에 빠져듭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난리를 치르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 누리지 않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락불가극(樂不可極)’이란 말이 그런 말입니다. 좋은 것을 극도로 누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10을 가질 수 있다해서 10을 다 가지면 그 다음은 미끄러지는 일이 찾아옵니다. 5만 가지고 5는 다른 사람 갖도록 내버려두는 겁니다. 내가 10을 주장할 수 있어도 5만 주장하고 다른 사람도 5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야 넘어짐을 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자랑할 거리가 10가지 있어도 5만 자랑하고 5는 참아야 합니다. 10을 다 자랑하면 주변사람들의 시기질투가 불처럼 일어나서 미움의 대상이 됩니다. 내가 10을 즐길 수 있어도 참고 5만 즐기는 것이 멀리 갈 수 있는 인생의 지혜입니다. 요즘 시대는 거꾸로 됐습니다. 5를 누릴 형편밖에 안 되는데도 억지로 무리를 해서 10을 즐깁니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SNS에 어디 좋은 식당 간 사진, 어디 좋은 여행지 간 사진들을 올려서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어쨌든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하는가’하고 우울해하기도 하면서요. 그런 것은 진짜 내가 아닙니다. 다 가짜 나입니다. 이런 데 휩쓸리면 항상 마음이 널뛰기를 하게 됩니다. 그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다 누리려고 하며 안 됩니다. 그게 뱀의 유혹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다 가져라! 고린도전서 7장 30, 3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고전7:30,31)

 

다 누리지 못할 것처럼 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딤을 다 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영원한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아마샤는 큰 승리를 거두고 한껏 기세가 오르다보니 그만이야 그 승리감과 성취감에 도취되어 이것이 어리석은 것인지 지혜로운 것인지도 분간을 못하고 세일 사람들의 우상을 가져다 섬겼습니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엉뚱한 전쟁을 시작했다가 나라가 풍비박산이 나고 자신도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맺는 말

 

다 누리려고 하지 마시고, 절반만 누리시고, 다 주장하려고 하지 마시고 절반만 주장 하시면서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를 소유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258 열왕기하강해9 뜻밖의 하나님 뜻밖의 사람 열왕기하 7:3~20(구약 571)  2019-03-03  전용표 목사 
257 열왕기하강해10 하나님의 막대기 열왕기하 8:7~15(구약 573)  2019-03-10  전용표 목사 
256 열왕기하강해11 견고한 모래성 열왕기하 10:1~14(구약578)  2019-03-17  전용표 목사 
255 열왕기하강해12 예후의 개혁과 한계 열왕기하 10:18~31(구약 579)  2019-03-24  전용표 목사 
254 열왕기하강해13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만회 열왕기하 11:1~21(구약 580)  2019-03-31  전용표 목사 
253 열왕기하강해 14 요아스의 개혁과 실패 열왕기하 12:1~8,17~21(구약581)  2019-04-07  전용표 목사 
252 거룩한 성찬 누가복음 22:14~20(신약134)  2019-04-14  전용표목사 
251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의미 창세기 47:11~12(구약75)  2019-05-12  전용표목사 
250 신앙 교사의 보람 디모데후서 1:1~5(신약343)  2019-05-19  전용표 목사 
249 합력하여 선이 되려면 로마서 8:28(신약250)  2019-05-26  전용표 목사 
248 열왕기하강해 15 엘리사의 죽음 열왕기하 13:14~19(구약584)  2019-06-02  전용표 목사 
» 열왕기하강해 16 유다와 아마샤 : 락불가극 역대하 25:1~24(구약688)  2019-06-09  전용표 목사 
246 열왕기하강해17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금강이 되어라 열왕기하 14장 23-29  2019-06-16  전용표 목사 
245 열왕기하강해18 유다왕 웃시야 : 미끼 역대하 26:1~5, 16~23(구약590)  2019-06-23  전용표 목사 
244 열왕기하강해 19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들 : 급경사길 열왕기하 15:8~31(구약586)  2019-06-30  전용표 목사 
243 상대적 감사, 절대적 감사 누가복음 18:9~14(신약126)  2019-07-07  전용표 목사 
242 열왕기하강해 20 유다왕 아하스 : 독수리를 모으는 자 열왕기하 16:1~20(구약589)  2019-07-14  전용표 목사 
241 열왕기하강해 21 이스라엘왕 호세아 : 패망 열왕기하 17:1~6, 13~18(구약590)  2019-07-21  전용표 목사 
240 열왕기하강해 22 어울리되 어울리지 못하는 열왕기하 17:27~41(구약592)  2019-07-28  전용표 목사 
239 열왕기하강해 23 유다왕 히스기야 : 뒤집기 한판 열왕기하 18:1~8(구약593)  2019-08-04  전용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