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home
  • 주일설교

제목 열왕기하강해 14 요아스의 개혁과 실패 
본문 열왕기하 12:1~8,17~21(구약581) 
날짜 2019-04-0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14

성경 : 열왕기하 12:1~8, 17~21(구약 581)

제목 : 요아스의 개혁과 실패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대개는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줍니다.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힘이 세면 잘 넘어지지 않고 제법 앞으로 가게 됩니다만 잡아주는 사람 힘이 약하면 금방 균형을 잃고 쓰러집니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뒤에서 힘센 사람이 잡아준다고 해서 그것이 내 실력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몇 번 넘어지다 보면 아프기도 하고 겁도 납니다만 자전거를 빨리 배우려면 겁을 내지 말고 자기 힘으로 폐달을 힘껏 밟아야 합니다. 뒤에서 힘센 사람이 잡아주든 힘 약한 사람이 잡아주든 간에 상관없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폐달을 밟는 사람이 빨리 배우지 힘센 사람이 잡아준다고 해서 빨리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들어와서는 다윗의 혈통을 모조리 죽여 제거하는 학살극에서 고모 여호세바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남은 요아스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고모부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왕 위에 오릅니다. 한동안은 고모부의 도움으로 개혁을 추진하면서 한동안 삐뚫게 가던 나라의 방향을 바로 잡아놓았습니다. 하지만 고모부 여호야다가 죽고 난 뒤부터는 손을 잡아서는 안 될 사람들의 손을 잡고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시작하다가 결국은 아람의 침략을 받고 그간 모아두었던 나라의 재산을 빼앗기고 또 자신도 신하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신세로 끝을 맺고 맙니다. 요아스는 든든하고 좋은 조력자(멘토)가 있었지만 그를 너무 의지한 나머지 홀로 서지 못하다가 결국 방향을 잃고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믿음의 조력자, 인생의 멘토, 다 중요합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자칫 너무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보면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는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기억하고 그분을 붙드는 신앙으로 홀로서기를 해야합니다.

 

 

 

1. 요아스는 훼손된 성전을 수리합니다

 

 

 

요아스는 아달랴에 의해 형제들이 몰살당할 때 고모인 여호세바와 고모부인 여호야다 제사장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고모부 여호야다 제사장의 노력으로 일곱 살에 왕위에 오릅니다. 일곱 살이 통치철학이라든지 국정능력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야다 제사장이 섭정(攝政)을 하면서 요아스의 통치를 돕습니다. 보통 섭정을 하는 사람은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지만 여호야다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사심 없이 어린 요아스를 도왔습니다.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은 요아스는 지금 가장 급선무는 아달랴와 그 아들들이 퍼트려 놓은 바알종교를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바알 제단을 부수고 바알제사장 맛단을 처단하였습니다(대하23:17). 그런 다음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4,5절을 봅니다.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4,5)

 

요아스 때 성전은 너무나 낡고 쇄락한 상태였습니다. 요아스는 어려서 성전에 숨어서 자랐기 때문에 어디가 비가 새고 어느 문이 낡고 부서졌는지 성전의 형편을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아달랴가 유다 왕실에 시집 온 이후부터 왕실이 주동이 되어 바알을 적극적으로 섬기니까 사람들이 바알 신전으로 몰려가고 성전을 찾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그러자 먹고 살기조차 힘들어진 제사장들 중에도 성전을 등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거기다가 아달랴의 아들들이 바알신전에 쓴다면서 성전기구들을 마구잡이로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성전은 그야말로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신앙을 회복하려면 성전부터 수리해야겠다고 여긴 요아스는 제사장들에게 돈을 거두어서 성전을 수리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요아스가 통치한지 23년이 지나도록 성전수리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돈이 걷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거두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제사장들이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영업을 뛰어 돈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5). 원래 제사장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또 잘 못합니다. 목회자들 중에 돈 모으고 버는 일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직업을 바꾸는 게 좋습니다. 목회자들은 돈과는 거리가 멀어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그 일을 잘 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이 진행이 안 된 것입니다. 그러자 요아스는 방법을 바꿉니다. 9절에 보면 나무로 헌금통을 하나 만들어서 성전 문어귀에 놓아두고는 율법에 모든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드리도록 되어 있는 성전세금을 자발적으로 넣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아는 사람들 위주로 찾아다니면서 내라고 하지 않고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의무라는 것을 가르치고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도록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헌금 바구니를 돌리다가 헌금통에 자발적으로 넣는 식으로 바뀌었는데, 매우 성경적입니다.

23년 동안이나 진전 없이 봉착상태에 빠져있던 성전수리 일이 율법의 가르침을 좇아 그 원리대로 했더니 거짓말같이 풀리고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돈을 거두러 다니고 하면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없고, 돈도 거둬지지 않습니다. 성전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성전세금의 의무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헌금통에 넣고, 제사장들은 본연의 업무인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제사를 집례 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일 때 영육간의 균형이 잡히면서 성전을 수리하는 일 또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고 성도들이 하나되는 길은 누구의 말을 들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말씀의 원리에 모두가 순복하고 따를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 하나하나가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실력이 곧 그 교회의 실력인 것입니다.

 

 

 

2. 요아스가 방백들의 요구로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이렇게 초반에 좋게 가던 요아스에게 갑자기 아람의 하사엘이 쳐들어 왔습니다. 17, 18절을 봅시다.

 

그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하므로 유다의 왕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요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가져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17,18)

 

아람의 하사엘이 쳐들어오자 성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모아다가 하사엘에게 갖다 주고는 전쟁을 모면한 것입니다. 성전을 수리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던 요아스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열왕기서에서는 생략하고 있는 이유가 역대하 24장에는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고 난 뒤 유다의 방백들이 요아스를 찾아옵니다. 찾아와서는 바알과 아세라를 다시 섬기자고 제안을 합니다. 아마 이들은 나라 안에서 힘 꽤나 쓰던 유력인사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이들의 제안을 뿌리치면 요아스는 이들과 갈라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통치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실력자들을 등에 업고 원하는 통치를 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바알과 아세라를 다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요아스는 현실을 걱정하게 됩니다. 당장 이들의 도움이 없으면 나라가 곧 어찌 될 것 같은 것입니다. 거기다가 요아스는 지금까지 여호야다 제사장을 너무 의지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라지자 너무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유다 방백들의 손을 잡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들 스가랴가 성령의 감동에 이끌려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고 하면서 탄식하면서 그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러자 듣기 싫은 요아스와 방백들은 스가랴를 돌로 쳐 죽여 버렸습니다. 자기 생명의 은인의 아들을 바른 소리한다고 쳐죽인 것입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여호와는 감찰하사 신원하여 주옵소서’라고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억울한 자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별명이 ‘신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아람의 하사엘이 쳐들어오게 하십니다. 요아스는 지금까지 선대 왕들이 모아두었던 금을 모두 모아서 하사엘에게 갖다 바쳐야만 했습니다.

요아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람의 하사엘과의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요아스를 그 신복들이 죽여버렸습니다. 스가랴를 죽여 은혜를 원수로 갚는 요아스의 모습을 보고 분을 품은 자들이 죽였다고 역대하 24장 2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아스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실묘지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던지 왕실묘지에 묻지 않은 것입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버리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붙잡고 조금 잃어버리는 것이 더 결국에는 더 많이 얻는 길이 됩니다.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비가 올 때가 있습니다. 그 고비를 넘어갈 믿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3. 결국 자신의 신앙과 자신의 주관이 있어야 합니다

 

 

요아스는 초반과 후반이 극명하게 다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초반에는 비록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바알 신전을 깨부수고 바알의 제사장을 제거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후반에는 방백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바알과 아세라를 받아들이고 생명의 은인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는 배은망덕한 죄를 짓다가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모든 부와 명예를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초반과 후반이 판이하게 달라지기도 쉽지 않은데, 이 차이는 요아스 옆에 여호야다 제사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습니다. 2절을 봅시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2)

 

여호야다 제사장이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4장 15~16절을 보면 여호야다 제사장은 오래 장수하다가 130세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백성들은 다윗왕가의 명맥을 다시 살려내고 나라를 개혁시킨 그 공을 높이 기려서 여호야다를 왕실묘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왕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그만큼 여호야다는 사심없이 요아스를 보필하여 바른 정치를 하였던 사람입니다. 조선의 수양대군은 나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 그와 비교해보면 여호야다는 자기 할 바만 하고 깨끗하게 물러날 줄 알았으니 보통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아스가 여호야다를 너무 의지했다는 점입니다.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는 바알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여호야다가 죽자 방백들의 손을 잡고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는 것은 요아스의 신앙이 자기 신앙도 자기 주관도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너무 의지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되지 못하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존재입니다. 여호야다가 끝까지 요아스 옆에 있어줄 수 없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옆에 있는 동안 여호야다를 죽기 살기로 의지할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는 하나님만 붙드는 신앙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야 합니다. 결국 끝까지 함께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고, 끝까지 안전할 수 있는 곳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태풍이 불면 사람이 날려 다니고 무거운 트럭도 바람에 날려서 쓰러지고 나뒹굽니다. 그런 강력한 태풍이 부는데 내 힘으로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들어봤자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몇 분 못 버티고 바람에 날려갈 것입니다. 그때는 밧줄로 내 자신을 굵은 나무나 전봇대 같은데 붙잡아 매면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죄의 유혹도 다 이길 수 없고 인생의 고난도 다 이길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길은 하나님 말씀에 날마다 나 자신을 붙잡아 매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으로 내 양심을 깨우시고 그 말씀으로 아이디어를 주시고 그 말씀으로 길을 보여주십니다.

아무리 괜찮았던 사람도 더없이 추하고 악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남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그 남편을 죽이는 폐륜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절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할지라도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바뀔지 모를 존재입니다. 사람의 열심히나 노력은 처음 얼마 동안은 참신한 것 같고 무엇인가 새로운 힘을 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차라리 혼자서 방황도 하고 고민도 하면서 잡초처럼 홀로 서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멀리 볼 때에는 더 유익합니다. 그런 과정을 밟은 신앙은 여호야다 같은 든든한 멘토가 곁을 떠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홀로 하나님을 붙드는 훈련이 충분히 되었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하나님을 굳게 붙들면 그것으로 됩니다. 방백을 붙들고 다른 것을 붙들고 하다보면 당장은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지만 나중 되면 하사엘 같은 것이 닥쳐와서 다 빼앗아 가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내 힘만으로 설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의 신앙을 힘입어서도 설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하나님만을 붙드는 신앙을 갖느냐 못 갖느냐입니다. 무식하리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시는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번호 제목 본문 날짜 설교자
258 열왕기하강해7 작은 자의 하나님 열왕기하 6:1~7(구약569)  2019-02-17  전용표 목사 
257 열왕기하강해8 두려움과 담대함 열왕기하 6:8~23(구약569)  2019-02-24  전용표 목사 
256 열왕기하강해9 뜻밖의 하나님 뜻밖의 사람 열왕기하 7:3~20(구약 571)  2019-03-03  전용표 목사 
255 열왕기하강해10 하나님의 막대기 열왕기하 8:7~15(구약 573)  2019-03-10  전용표 목사 
254 열왕기하강해11 견고한 모래성 열왕기하 10:1~14(구약578)  2019-03-17  전용표 목사 
253 열왕기하강해12 예후의 개혁과 한계 열왕기하 10:18~31(구약 579)  2019-03-24  전용표 목사 
252 열왕기하강해13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만회 열왕기하 11:1~21(구약 580)  2019-03-31  전용표 목사 
» 열왕기하강해 14 요아스의 개혁과 실패 열왕기하 12:1~8,17~21(구약581)  2019-04-07  전용표 목사 
250 신앙 교사의 보람 디모데후서 1:1~5(신약343)  2019-05-19  전용표 목사 
249 합력하여 선이 되려면 로마서 8:28(신약250)  2019-05-26  전용표 목사 
248 열왕기하강해 15 엘리사의 죽음 열왕기하 13:14~19(구약584)  2019-06-02  전용표 목사 
247 열왕기하강해 16 유다와 아마샤 : 락불가극 역대하 25:1~24(구약688)  2019-06-09  전용표 목사 
246 열왕기하강해17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금강이 되어라 열왕기하 14장 23-29  2019-06-16  전용표 목사 
245 열왕기하강해18 유다왕 웃시야 : 미끼 역대하 26:1~5, 16~23(구약590)  2019-06-23  전용표 목사 
244 열왕기하강해 19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들 : 급경사길 열왕기하 15:8~31(구약586)  2019-06-30  전용표 목사 
243 열왕기하강해 21 이스라엘왕 호세아 : 패망 열왕기하 17:1~6, 13~18(구약590)  2019-07-21  전용표 목사 
242 열왕기하강해 20 유다왕 아하스 : 독수리를 모으는 자 열왕기하 16:1~20(구약589)  2019-07-14  전용표 목사 
241 상대적 감사, 절대적 감사 누가복음 18:9~14(신약126)  2019-07-07  전용표 목사 
240 열왕기하강해 22 어울리되 어울리지 못하는 열왕기하 17:27~41(구약592)  2019-07-28  전용표 목사 
239 열왕기하강해 23 유다왕 히스기야 : 뒤집기 한판 열왕기하 18:1~8(구약593)  2019-08-04  전용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