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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11 견고한 모래성 
본문 열왕기하 10:1~14(구약578) 
날짜 2019-03-1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11

성경 : 열왕기하 10:1~14(구약 578)

제목 : 견고한 모래성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그의 아들 토요토미 히데요리가 일본의 통치자가 됩니다만 그에게는 도쿠가와 이예야스라는 걸출한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예야스는 일본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영웅으로 대접받는 인물입니다. 도쿠가와 이예야스 군이 토요토미 히데요리가 있는 오사카성을 포위하였습니다. 마지막 일전을 벌이는데, 아무리 해도 오사카성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오사카성 전투 천혜의 요새 이중으로 해자가 있어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점령할 수 없는 철옹성이었습니다. 이때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성 안에 있는 토요토미 히데요리에게 편지를 씁니다. “내가 이제 전쟁을 끝내고 물러가고자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해자 하나 빼앗지 못하고 물러간다고 나를 비웃까 두려우니 내가 물러가는 조건으로 해자 하나를 흙으로 매울 수 있게 해 달라! 군사를 철수시키는 조건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군사를 물린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자 하나를 매우는 조건으로 정전협정에 싸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ㅜ가와 이예야스 군이 바깥해자를 매우는 작업을 하면서 어떤 수를 썼는지 안쪽 해자까지 매워버렸습니다. 해자가 없어지니 오사카성은 더 이상 천혜의 요새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도쿠가와 이예야스는 성을 점령합니다. 토요토미 히데요리는 자결을 해 죽고 그 부하장수가 하나 포로로 잡혔는데, 그 사람이 도쿠가와 이예야스에게 그럽니다. “무사가 되어서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 그러고도 네가 무사라 할 수 있느냐?” 그러자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이런 말로 응수를 합니다. “적장의 말을 듣는 놈은 죽어 마땅하다!” 전쟁하는데 아무리 그럴싸하게 들릴지라도 적장의 말을 들으면 됩니까? 제 무덤 파는 격이지요.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 해도 지혜가 없으면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지혜가 기초입니다. 우리 인생을 올곧게 지킬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말씀이 예수고 예수가 하나님의 참 지혜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바알숭배에 빠지게 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망쳐버린 아합집안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예후라는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예후는 북이스라엘의 장군이었는데, 엘리야선지자가 살아있을 때 했던 예언의 말들을 다 기억할 정도로 그 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9장에 예후가 동료장군들과 나누는 대화가 나오는데, 그것을 읽어보면 예후는 아합과 이세벨이 폭정을 일삼는 것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고 아합집안이 심판을 받게 될 날을 학수고대하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아합정권 하에서 녹을 먹고 살아가는 군인이지만 속으로는 아합이 추구하는 바알정책도 싫고 언젠가는 아합집안이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될 것을 기다리며 살던 양심과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이 예후에게 엘리사 선지자가 제자를 보내서 ‘하나님께서 너를 왕으로 삼으시니 너는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줄 것이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뒤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자 동료 군인들이 일제히 예후를 왕으로 떠받들고 힘을 모아서 아합의 집안을 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쿠데타(coup d’État)라기보다는 혁명(革命)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쿠데타는 반역(反逆)이라는 뜻이지만 혁명은 하늘의 뜻을 떠받들어 악한 자에게서 권력을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혁자가 가죽혁자이고 명자가 목숨 명입니다. 가죽 끈이 너덜너덜해서 떨어지면 새로운 가죽으로 대신해야 하듯 왕이 악하여 하늘의 뜻이 그에게서 이미 떠났으면 그 악한 왕을 끌어내리고 의를 갖춘 새 왕을 세우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반역을 통해 왕조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 그 중에 하나님의 뜻으로 된 반역은 두 번 있습니다. 하나는 여로보암이 나라를 처음 세울 때 아히야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하셨고, 예후가 아합의 집안을 치고 왕이 될 때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쿠데타,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혁명입니다. 그래서 예후가 행한 일을 잔학한 학살로 봐서는 안 되고 죄악에 대한 응징이자, 철저한 과거청산으로 봐야 합니다. 젊은 분들은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성경의 역사도, 우리나라의 역사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역사를 가르칩니다. 2천년동안 나라없이 떠돌아다녔어도 역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고 삽니다. 그래서 강한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의식이 세상사람들보다 더 있어야 하고 더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기회를 주실 때 세상을 선도하면서 세상을 섬겨낼 수 있습니다.




1. 예수가 없으면 다 없는 겁니다




예후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아합집안을 징벌할 때 먼저 무리를 칩니다. 머리는 당시 왕이던 아합의 아들 요담과 사실상 이스라엘 왕노릇을 하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자기가 데리고 있던 내시들이 성밖으로 밀쳐서 떨어져 죽었는데, 그 시신을 굶주린 야생 개들이 먹어치웠습니다. 비참한 말로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의 아들이 죽고 이세벨이 죽어 개에게 뜯어 먹힌 장소는 다름 아닌 나봇을 억울하게 누명 덮어씌워 죽인 바로 그 이스르엘이었습니다. 남을 죽인 그 자리에서 더 비참하게 죽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세를 휘두르던 이세벨과 전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아합집안의 권세입니다만 무너질 때는 한 순간입니다.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시편 73편 19절에 보면 악인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무리 권력으로 견고한 성을 쌓아도 그 기초가 모래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불의한 방법, 야비한 술수, 폭력, 강압적인 방법 같은 것으로 권세를 쌓았지 하나님 말씀에 맞게 쌓은 것 아니고, 의를 좇아 쌓은 것도 아닙니다. 견고하지만 모래성입니다. 때가 되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없는 물질, 성공, 명예, 의가 빠진 물질, 성공, 명예에 마음 뺏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 없이 쌓은 물질과 성공은 결국 내 인생을 더욱 비참하게 무너지게 만드는 시한폭탄임을 알아야 합니다. 건축으로 큰돈을 번 장로님이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과정에서 하청업체에게 돈을 주지 않아 떼어 먹은 돈도 많고 어떤 경우는 고의부도를 내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돈이 있으니까 그 앞에서 다들 어려워하고 자세를 낮춥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이 좋지 않아요. 딸은 가정이 불행하고 아들은 이 사업 저 사업하면서 아버지 벌어놓은 것을 다 말아먹었습니다. 그렇게 힘이 떨어지니까 새로 힘이 생긴 사람들이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이리저리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반면 지난 수요일에 소개한 적이 있는 그 장로님은 청탁과 뒷봉투가 난무하던 시절 인사과에 근무하면서 많은 인사청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평생 봉투 하나 받지 않았던 그 장로님, 늙어서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의로울 의(義)자를 파자하면서 양(羊)을 손(手) 창(戈)을 들고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은 옳은 것, 바른 것, 정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살려면 싸워야 하고 빨리 편하고 빨리 무엇이 되려는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불의한 돈, 거짓된 명예, 불의한 부탁, 이런 것을 거절하기 위해 싸워야 가능합니다.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 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해피엔딩은 더디옵니다. 너무 빨리 해피엔딩을 맛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넘어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천국에 가서야 비로소 해피엔딩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사는 겁니다. 그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예수가 없으면 다 없는 겁니다.




1. 모래성 관계가 아니어야 합니다




예후가 두 번째로 징벌한 것은 아합의 남은 아들들입니다. 예후는 이스르엘에서 요담왕과 이세벨을 처단한 후 군사를 몰아 수도인 사마리아 성으로 진격합니다. 그리고 싸우지 않고 편지 한통을 써서 사마리아성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2,3절을 봅시다.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2,3)


“너희에게는 똑똑한 왕자들이 70명이나 있고 무기도 있고 성도 있으니까 왕자들 중에서 왕을 하나 세워서 나와 한판 붙어보자!” 그러자 아합의 신하들은 벌벌 떨면서 예후에게 무조건 항복할테니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후는 내일까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합니다. 아합의 신하들은 자기들이 가르치는 왕자들을 모조리 목을 쳐서 예후에게 갖다 바치고는 목숨을 부지합니다. 누구 하나 자기가 섬기던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보겠다는 신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뭉친 자들이 아니라 악한 왕에게 빌붙어서 한자리 하면서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에 아합집안의 세력이 커보였습니다. 일단 숫자가 많으면 대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목적으로 모였을 뿐 진실한 관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해관계로 엮인 인간관계는 돌아올 것이 없으면 쉽게 돌아섭니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자기 외가댁 사람들이 주는 돈으로 불한당들을 모아서 사람들을 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권세를 떨쳐보지만 삼 년 지나자 분열이 일어나고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죽이다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직장에서도 보면 주동을 잘 하는 사람이 좀 바른 사람이면 좋은데, 그런 경우는 드물고 좀 못된 사람이 주동을 잘해서 거기에 어울리자니 좀 그렇고 안 어울리자니 돌리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런 모임에 가담할 필요도 없고, 그런 모임에서 소외당해 외톨이가 되었다고 외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것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고 어떤 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인지 모를 때 주님을 보십시오. 예수님도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같은 사람들에게 슬쩍슬쩍 비위맞춰가며 사역하셨으면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눈밖에 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지셨습니다. 그렇게 진 십자가가 많은 죄인을 살리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의를 위해 십자가 지면 손해를 틀림없이 보지만 반드시 누군가를 살립니다. 모래성은 견고하더라도 무너집니다. 우리의 인간관계가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이를 추구해야 오래 갑니다.




3. 여호사밧 왕, 단 한번의 실수로 후손을 망쳤다




예후가 아합집안을 징벌할 때에 덩달아서 징벌을 받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남쪽 유다의 아하시야 왕과 아하시야의 형제들인 왕자들입니다. 아하시야는 북이스라엘의 요담왕이 전쟁에서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 갔다가 요담과 함께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아하시야의 형제들인 유다왕자 40명은 북이스라엘의 왕자들에게 문안하러 가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13~14절을 봅시다.


예후가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하는지라 이르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13,14)


결국 악인과 더불어 짝하여 살다가 악인이 망할 때 함께 망한 격입니다. 이들의 불행은 아하시야의 할아버지였던 여호사밧에게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들 여호람을 결혼시킬 때 며느리를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사돈을 맺어놨으니 손자들 입장에서는 아합집안이 외갓댁이 되는 겁니다. 외사촌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이 꼴이 난 겁니다. 여호사밧은 참 믿음이 좋은 왕이었지만 자식 결혼시킬 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당시에 남유다는 힘없는 나라였고 북이스라엘은 땅덩어리도 몇 배가 크고 국력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습니다. 그러니 부러웠던 것입니다. 저런 집안과 사돈 맺어놓으면 걱정이 없겠다 싶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재앙의 불씨가 될 줄 당시로서는 까맣게 몰랐던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합이 이룬 화려한 성공이 빈껍데기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믿음이 좋아도 속으로는 세상적인 성공을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신앙에 맞게, 성경의 가르침에 맞게 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순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린 결정은 두고두고 화근이 되고 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결정을 내릴 때 이익을 좇지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것을 좇아야 합니다.

제가 섬겼던 목사님이 5년 일찍 조기은퇴를 하신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힘든 교회에 들어가서 28년을 목회하시고 은퇴를 하시는 건데 주변에서 다들 존경을 합니다. 사모님이 또 그렇게 좋으세요. 이 두분의 결혼이야기가 또 감동이 있습니다. 사모님이 대구평리교회 목사님의 따님이셨고, 목사님은 평리교회 사찰집사님 아들이었습니다. 사람이 귀천은 없지만 담임목사님 딸과 사찰집사님 아들이 결혼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도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평리교회 담임목사님은 금지옥엽으로 기른 딸을 자기교회 사찰집사의 아들에게 주기를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조건만 봤다면 큰 교회 목사님네 아들이나, 재력이 있고 든든한 장로님네 아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사람보고 딸을 결혼시켰습니다. 신앙보고 인품을 봤습니다. 결과적으로도 잘 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혼한 목사님은 참 목회를 잘 하셨습니다. 흠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물러날 때도 좋은 모습으로 물러나십니다. 사모님이 고생을 하셨어도 이런 기쁨을 같이 누리게 되었지 않습니까?

믿음의 배짱이 좀 필요합니다. 여호사밧이 그게 부족했습니다. “너희가 경제력이나 모든 능력에서 우리보다 10배는 강하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 없어도 너희가 갖지 못한 신실한 믿음이 있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백성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것만 있으면 우리는 충분히 일어설 수 있다!” 우리가 믿음의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래성이 되지 않습니다. 견고한 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붙들 때 이런 배짱이 생깁니다.




맺는 말




예수가 지혜요 예수가 반석입니다. 예수로 없는 성공에 마음 뺏기지 마시고 예수가 있는 평범함을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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