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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10 하나님의 막대기 
본문 열왕기하 8:7~15(구약 573) 
날짜 2019-03-10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10

성경 : 열왕기하 8:7~15(구약 573)

제목 : 하나님의 막대기

 

어떤 여자분이 인터넷에 올린 글입니다. 이 분의 남편이 애완견 하나를 데려왔는데 그 개가 온 이후로 사고가 나기도 하고 재판사건에 휘말려 고생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등 가정이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또 한 마리를 입양했는데 두 번째 개가 온 후로는 재판사건도 승소로 끝이 나고 새로운 가게를 하나 차렸는데 손님도 많이 온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무래도 첫 번째 개와는 인연이 아니고 악연인 것 같고 두 번째 개는 복을 가져다 주는 인연인 것 같다는 겁니다. 여러분 개 입양할 때 기도 많이 해 보고 입양하십시오. 멋도 모르고 입양해서 나와 악연인 개를 입양했다가는 사고 터질 수 있습니다. 그 여자분 생각이 참 독특하게 어리석습니다. 개와의 인연에 따라 자기와 가족들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집터가 좋다 좋지 않다, 묘자리가 좋다 좋지 않다, 이런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상당히 미신적인 생각이지요.

복을 가져다 주는 인연, 화를 가져다주는 악연, 이런 식의 생각은 상당히 미신적입니다만 세상에 인연과 악연이란 것은 있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힘들게 하는 사람, 인연이라 하기는 그렇지요. 항상 옆에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 인연이지요. 우리는 악연보다는 인연이 많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도 만남의 복을 달라고 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살다보면 인연이라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그렇게 받은 상처가 깊고 오래가기도 합니다. 반면 악연이라 여겼던 사람이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것이 인연인지 악연인지 실은 우리가 모릅니다. 언제 인연이 악연으로 바뀔지 악연이 인연이었다고 깨달아질지 모른단 말입니다. 또 더 나아가보면 과연 인연, 악연, 이렇게 구별 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과연 내 인생과 온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 모든 관계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인연이라든지 악연이라든지 하는 우리 인간의 선긋기가 의미가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저 우리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과는 철천지원수인 아람 나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심심하면 쳐들어 와서 괴롭히는 아람이야말로 악연 중 악연이지요.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이 불편한 이웃이듯 이스라엘도 아람이 불편한 이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아람나라에 바라는 것은 그래도 아람에 좋은 왕이 들어서서 군대장관을 고쳐주고 포로로 잡았던 군사들을 돌려보내 주면 고마운 줄도 알아서 다음 번에는 쳐들어오지 않는 상식과 양심이 있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이 편해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오히려 기존의 왕보다 훨씬 악독한 자가 아람의 왕이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사엘이라는 자가 자기가 모신 왕이 병이 들어 힘이 없을 때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습니다. 충성이고 명예고 의리고 그런 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악한 방법을 써서라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야 마는 야망의 화신입니다. 거기다가 엘리사가 예언한대로 하사엘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는데 민간인들까지 모조리 죽입니다. 심지어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를 정도로 잔인한 짓을 섬슴치 않고 자행했습니다. 극악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람의 왕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로서는 재앙수준입니다. 안 그래도 악연인데 더 심한 악연이 되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 세우신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1. 하나님은 슬픔을 주는 악연도 허락하십니다

 

 

 

이스라엘과 자주 전쟁을 하였던 나라인 아람의 왕 벤하닷이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벤하닷은 사람이름이 아니라 왕의 칭호입니다. 애굽은 왕을 바로라고 하였고 조선은 왕을 임금이라 부른 것처럼 아람은 왕을 벤하닷이라 불렀습니다. 벤하닷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병이 든 왕이 하닷에셀2세가 아닐까 성경학자들은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때마침 그때 엘리사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사는 아람의 군대를 살려 보내기도 하고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고쳐주기도 하는 등 가급적이면 맞서 싸우기보다는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적인 자세로 사역을 해 왔기 때문에 적국인 아람도 어렵잖게 방문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한 병이 들자 아람 왕은 엘리사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이 이 병에서 살아나겠는지를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무려 낙타 사십 마리에 온갖 예물을 실어서 보냈습니다. 이것은 엘리사에게 최고의 예를 갖춘 것이지요. 거기다가 이렇게 많은 예물을 보냈을 때는 병을 고쳐달라는 부탁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낙타 사십 마리에 예물을 싣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물으러 간 신하는 하사엘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뜻이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입니다. 하사엘이 엘리사를 만나서 왕이 보낸 대로 묻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대답을 합니다. 10절을 봅시다.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 반드시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10)

 

‘반드시 나으리라 그러나 반드시 죽으리라’ 낫는다는 말입니까, 낫지 않는단 말입니까? 좀 애매합니다만 이런 뜻입니다. ‘왕이 이 병으로는 죽지 않는다, 병은 반드시 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이유로 왕이 죽을 것이다, 반드시 죽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게 알려주셨다’ 도대체 어떤 일로 죽게 될까요? 이 말을 한 뒤 엘리사가 심부름 온 하사엘을 부끄러울 정도로 쳐다보더니만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하사엘이란 사람이 얼마나 무안했을까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엘리사에게 어찌하여 우시는가를 물어보았더니 엘리사가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12절을 봅시다.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 (12)

 

장차 하사엘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성읍에 불을 지르고 남자들은 칼로 죽이고 어린아이를 메치며 심지어 칼로 아이 밴 여자의 배를 가르는 잔인한 짓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일을 생각하니 슬픈 겁니다. 지금이야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 하면 높이 쳐주지만 생각해보면 선지자, 그것 못할 짓입니다. 집이 있습니까? 가족을 올바로 돌볼 수 있습니까? 저 놈이 내 가족, 내 동족을 갈기갈기 찢어죽일 놈인 줄 뻔히 아는데도 하나님께서 시키시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자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아야 합니다. 정말 타임머신이라는 기계가 있다면 유대인이라면 그거 타고 가서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히틀러 아버지와 어머니가 데이트 할 때 방해라도 해서 히틀러 같은 악마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하사엘같은 자를 왕으로 세우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엘리사의 슬픔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장차 당할 슬픔을 미리 앞당겨 당한 슬픔입니다. 엘리사는 그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기쁨을 주는 인연만 아니라 슬픔을 주는 악연을 주시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집사님이 먼 친척이 교회 장로님인데, 그 연줄로 그 회사에 들어갔는데, 회사가 아주 크고 좋습니다. 그런데 장로인 먼 친척 되는 사장님이 이 분을 술상무자리에 앉혔습니다. 너무 어의가 없고 힘들어 하는데 그래도 먹고 살자니 거절하지 못하고 술상무를 합니다. 처음에는 교회 집사인 내가 이거 뭐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자기를 이런 보직에 앉힌 그 장로님이 밉고 싫었지만 해보니까 자기에게 접대에 타고는 은사가 있는 겁니다. 자기가 접대하면 바이어들이 굉장히 기분 좋게 돌아가서 몇 년은 걱정 없이 거래가 쭉 갑니다. 그러다보니 인정도 받고 보너스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술에 취해 걸어오면서 하늘에 달을 보는데, 학창시절 수련회 가서 마지막날 철야기도회 마치고 은혜받은 마음으로 달을 쳐다본 일이 생각이 나면서 너무 슬픈 겁니다. 사회생활 하느라 어쩔 수 없이 집사 비슷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한 때는 주를 위해 살겠다고 고백했던 주님의 자녀인데, 그런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할수록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그 슬픔이 계기가 되어 돈많이 주던 그 회사 정리하고 작은 가게를 차렸습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먹고 살 정도는 되었습니다. 돈은 줄었지만 그 분이 그 경험 이후로 정말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사람들은 기쁨을 주면 인연, 슬픔을 주면 악연이라 하는데 과연 슬픔을 주는 사람, 환경이 마냥 악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슬픔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깨달음은 기쁨이 주는 것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슬픔을 주세요. 슬픔을 통해 인생을 깨닫게 하시고 슬픔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2. 하나님은 고통을 주는 악연도 허락하십니다

 

 

 

엘리사의 말을 들은 하사엘은 손사래를 치면서 자기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겠냐며 부정을 합니다. 그때 엘리사가 하사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아람의 왕이 될 것이라고 내게 알려주셨소!’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사엘이 자기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왕에게 보고를 합니다. ‘왕이 반드시 살아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고한 다음 이불을 물에 적셔서 왕의 얼굴을 덮어서 질식시켜 죽여 버리고는 자기가 왕이 됩니다. 엘리사의 말이 왕이 병으로 죽지 않지만 반드시 죽는다고 그러지 자기더러 왕이 된다 그러지, 그러니까 스스로 판단하고 결심해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기다린다고 왕이 되겠어? 저렇게 병들어 힘이 없을 때 단번에 처치해버리고 왕이 되지 않으면 언제 왕이 될 기회가 찾아올지 몰라. 이번이 기회야! 이렇게 된 것이지요. 하사엘이라는 사람의 인품이라든지 성정(性情)이 이토록 야비하고 악하고 포학했습니다. 하사엘이 왕이 된 이후 행한 일들이 열왕기하 9장부터 13장까지 이어지는데, 이스라엘과 남유다 연합군과 싸워서도 이기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죽였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남유다까지 쳐들어와서 포위를 하는 바람에 남유다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엘리사가 예언한대로 이스라엘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두 군데를 읽겠습니다. 먼저 13절을 봅니다.

 

하사엘이 이르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더라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더라 (13)

 

어째서 이런 작자를 아람의 왕이 되게 하시는가는 열왕기상 19장에 가서 보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엘리사의 칼을 피하는 자를 하사엘이 죽이고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인다고 하셨습니다. 그토록 회개하라고 바알을 버리고 여호와의 법을 좇아 행하라고 외쳐도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통해서 뿌리깊은 습성을 뽑아내시는데, 그 도구로 사용한 막대기가 세 개 나옵니다. 하나는 엘리사, 하나는 하사엘, 마지막은 예후입니다. 사실 엘리사는 막대기라기보다는 지팡이에 가깝습니다. 목자가 들고 다니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팡이고 하나는 막대기입니다. 지팡이는 양떼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할 때 쓰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막대기는 짐승을 쫓거나 말 안 듣는 양이나 염소를 때려서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할 때 쓰는 것입니다. 하사엘은 바로 막대기입니다. 우리 말로는 회초리입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보면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체벌을 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밀대 걸레 자루로 때리는데 겁이 나지요. 그런데 실은 소리만 요란스럽지 그런대로 맞을만합니다. 그런데 진짜 아픈 건 싸리나무 회초리입니다. 싸리나무 회초리는 얄브리한데 때리면 착 감깁니다. 맞은 부위에 빨갛게 줄이 쫙 생깁니다. 몇 대 맞으면 따갑고 아픈데 시간이 갈수록 벌에 쏘인 것처럼 더 아픕니다. 체벌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초리는 회초리 다울 때 체벌의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징계가 있는 사랑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하사엘 같은 막대기를 붙이셔서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시고 괴로워서 하나님을 찾도록 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마다 징계하시고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하였고 12장 7절을 보면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회초리를 드신다 생각하지만 성경은 모든 자식에게 회초리를 사용하신다고 하십니다.

누구에게나 주변에 하나님이 붙여주신 막대기, 회초리 역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초리가 여럿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그 사람들이 전부 악연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악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사엘 같은 악한 아람의 왕에게 당할 때에 그것이 자기들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인생채찍인 줄 깨닫고 일찌감치 고쳤다면 하사엘은 더없이 고마운 인연이 되는 겁니다. 깨우치지 못하면 악연이지만 깨우치면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바쁘게 일 하며 시달리던 사람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며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새로운 세상에 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바가지 긁는 아내도, 결재서류를 팽개치는 부장도 없고, 괴롭히던 사람, 보기싫은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보좌관이 하나 있는데 내가 해야할 일을 그 사람이 알아서 척척 다 해줍니다. 그는 그저 앉아서 먹고 놀기만 하면 됩니다. 거기다가 무슨 일이라도 조금 하면 박수부대가 있는데 ‘잘 못했다, 일을 왜 그런 식으로 하냐?’ 이런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정말 멋지게 했다’라고 인정을 해주고 칭찬을 해줍니다. 정말 꿈에 그리던 세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 생활이 싫증이 났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 하고 있는 보좌관에게 말 했습니다. “이봐! 보좌관, 내가 할 일을 자네가 다하니, 이제 내가 좀 도와주겠네!” “안 됩니다. 여기서는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 드리지만 일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여기는 좀 못 된 사람 없나? 괴롭히는 사람이 없으니까 편할 줄 알았는데 인생이 이렇게 무료할 수가 없어!” “여기는 절대 괴롭히지 않습니다. 무조건 인정해 주고 박수쳐 주고 칭찬해 줍니다!” 그러자 남자가 대답 했습니다. “아니 무슨 천국이 이래? 답답해서 살 수가 있나, 차라리 지옥이 낫겠어!” 그러자 보좌관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 여기가 지옥입니다.”

인생 채찍, 막대기가 있는 것이 지옥이 아니라 그것 없는 것이 지옥입니다. 있어야 우리가 성화됩니다. 있어야 하나님 뜻을 찾습니다. 지나간 악연으로 인해 후회가 남더라도 그 악연으로 인해 내 판단과 내 생각만 믿고 선택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나를 서럽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는가를 배웠다면 더 이상 악연은 아닌 것입니다.

 

 

 

맺는 말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좋으면 인연, 안 좋으면 안역이라는 그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엘리사만 주시지 않고 하사엘도 주셨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지팡이도 막대기도 감사가 됩니다. 이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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