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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8 두려움과 담대함 
본문 열왕기하 6:8~23(구약569) 
날짜 2019-02-24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8

성경 : 열왕기하 6:8~23(구약 569)

제목 : 두려움과 담대함

 

대구근방에서 유명한 기도처가 주암산 기도원이라면 부산쪽에서 유명한 기도처는 금정산 꼭대기에 있는 가나안수양관이나 양산에 있는 감림산 기도원입니다. 청년시절 밤에 혼자 금정산에 있는 가나안수양관에 철야산기도를 간 적이 있습니다. 산성버스 막차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20분 쯤 올라가면 가나안수양관 입구가 나옵니다. 거기에 내려서 어스름한 달빛을 의지해서 산길을 몇 구비 쳐서 들어가면 가나안수양관이 나오는데, 밤에 혼자 가니까 조금 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좁은 산길을 따라 한 구비 돌아섰는데 갑자기 개들이 뛰어오르면서 사납게 짓기를 시작합니다. 커다란 개들이었습니다. 다행히 철망이 있어서 넘어오지는 안았는데, 뛰어오르면서 철망에 철커덩 철커덩 거리는 소리가 공포스러웠습니다. 막차 타고 왔으니까 다시 내려가지도 못하고 무조건 거기를 통과해서 가나안수양관까지 가야 합니다. 철망이 있으니 달려들지는 못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도 커다란 개가 여러 마리 짖으니까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그곳을 겨우 벗어나 가나안수양관에 도착해서 기도를 하고 다음 날 낮에 내려오는데 밤에 워낙 당해놨더니 환한 낮인데도 개 걱정이 조금 됩니다. 그런데 웬 걸요? 그 장소에 가보니까 철장은 있는데 커다란 개는 없고 전부 발바리 종류만 여러 마리 있는 겁니다. 분명 어제 밤에는 크고 사나운 개들이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머리에 있는 것입니까, 마음에 있는 것입니까? 내 속에 있는 것입니까, 내 밖에 있는 것입니까?

 

아람은 이스라엘과 적대국가였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려고 합니다. 나아만 군대장관의 나병을 고쳐서 돌아갔지만 그건 그거고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치거나 아니면 이스라엘 왕을 죽이려고 애를 쓰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쪽으로 쳐들어가려고 하면 거기에 벌써 이스라엘군이 대비하고 있고 저쪽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이스라엘 왕을 잡으려고 하면 어떻게 알고는 그쪽으로 오지 않습니다. 화가 난 아람왕은 틀림없이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부하들에게 ‘틀림없이 누군가 이스라엘과 내통하고 있는데도 내게 보고하지 않는다’며 호통을 칩니다. 그러자 부하 중 하나가 대답하기를 내통하는 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 때문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오라고 도단이라는 성읍으로 말과 병거 많은 군사를 보냅니다. 도단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서 북쪽으로 겨우 40리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입니다. 한 사람을 잡고자 남의 나라 수도 근처까지 와서 포위를 하는 것을 보면 아람의 군대가 얼마나 강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강한 군대를 보고서 엘리사의 사환은 벌벌 떨었지만 엘리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1. 더 큰 두려움이 작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엘리야의 사환이 겹겹이 에워싼 아람의 군대를 보고는 벌벌 떨면서 울다시피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독안에 든 쥐가 되어 영락없이 이제는 죽었다 싶은 겁니다. 그때 엘리사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16,17절을 봅시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6,17)

 

엘리사는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아람군대를 보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없이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럽니다. 그런다음 기도하여 사환의 영안을 열어줍니다. 영안이 열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는데 이글거리며 불타는 불말과 불병거가 온 산을 가득 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비교할 수 없는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인간군대가 주는 두려움은 거기에 갖다 대지도 못하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엘리사는 영안이 열린 사람으로서 언제나 더 공포스런 불말과 불병거를 보고 살기에 아람 군대 정도를 보고 겁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닫힌 사환은 아람 군대가 제일 무서운 줄 알고 그것보고 벌벌벌 떨었던 것입니다.

겁을 내지 말아야지 한다 해서 겁이 안 나는 것 아닙니다. 별 것 아니야, 별 것 아니야, 아무리 마음을 추스르려 해도 신경이 쓰이고 혈압이 상승합니다. 두려움은 그렇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두려운 분이 누군지 확실히 알면 다른 것이 겁이 나지 않게 됩니다. 그게 용기입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워해야할 대상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끔 반대로 살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을 나보다 좀 더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진정 두려워해야할 분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앞에서 꽤 용감하게 행합니다. 거꾸로 사는 겁니다. 몇 년 전 칠곡군기독교총연합회에서 야유회를 부산으로 갔는데 점심식사를 센텀시티 안에 있는 더 파티라는 뷔페식당에서 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뷔페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식사한 것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습니다. 좋은 것은 맛있게 먹은 것이고, 좋지 않은 것은 그 뷔페에서 먹은 뒤로는 웬만한 뷔페는 성에 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운 분을 두려워하게 되면 다른 것은 겁이 나지 않게 됩니다. 용기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정말 두려워할 분을 아는 것, 그게 용기입니다. 올바른 두려움이 곧 용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러면 누구 앞에서도, 어떤 일 앞에서도 두려워 도망치지 않는 용기가 그분께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하셨잖습니까? 우리가 사람 앞에서 두려워하고 물질문제로 두려워합니까? 진짜 두려워해야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 경건한 두려움이 우리를 올바로 세워줄 것이고 알 수 없이 솟아나는 용기로 인해 어떤 문제 앞에서도 두려워 물러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2. 임재 안에 거하면 두려움을 이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가 적들의 목표물이 되었다면 심박수가 뛰고 혈압이 오르고 할텐데 엘리사는 평온한 상태로 사환더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무엇으로 두려움을 이기는가? 16,17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6,17)

 

여기 함께 한 자라고 하였는데 함께 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에트’입니다. ‘가까이, 함께, 안에’ 이런 뜻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을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하셨는데, 그때 함께 하신다는 말이 바로 ‘에트’입니다. 이 말은 ‘임’이라는 말과 같이 쓰이는 말인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하면 ‘임마누엘’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보라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하셨고, 예수님의 별명이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임재의식을 놓치고 살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내가 임재의식이 없어요. 이것이 사환과 엘리사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사환은 선지자를 따라다니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듣고 배웠지만, 그래서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가슴으로 느껴지고 믿어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낍니다. 영혼으로 느낍니다. 분명한 임재의식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강한 사람들 참 많습니다. 나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들, 더 똑똑한 사람들, 성격 강한 사람들, 기질 센 사람들, 경험도 훨씬 많고, 말도 잘 하고, 실력도 만만찮은 사람들이 널렸습니다. 어디 하나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것을 믿어내는 것이 임마누엘입니다. 헛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고 쓴뿌리가 많은 사람은 문제 앞에서 쉽게 허물어져버리고 극단적으로 대처합니다. 쓴뿌리를 제거하고 상처를 치유하면 덜 하겠지만 그것이 쉽게 금방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방법이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록 상처가 있고 쓴뿌리가 있는 마음이라 해도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면 통제되지 않던 상처와 쓴뿌리가 통제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버티고 나아가 결국 상황을 이겨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임재의식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든 저렇게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신뢰가 되거든요. 여러분, 이렇게 해도 되지 않고 저렇게 해도 되지 않고 할 때는 바라는 것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나님 처분만 따르겠습니다.’ 죄를 깊이 고백하면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은 승자의 여유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승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승자이고 예수님이 승자입니다. 그래서 뭘 좀 잃고 빼앗기고 해도 호들갑 떨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임재 안에 거하면 두려움을 이기게 됩니다.

 

 

 

3.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이 다급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엘리사는 어째서 태연할 수 있었을까? 무엇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것일까?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 또 다른 답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람군대의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엘리사가 앞을 보지 못하는 그들을 사마리아 성 안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눈을 열어 보게 합니다. 아람군대가 눈을 떠 보니 사마리아 성 한 가운데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흥분해 가지고 “내 아버지여, 칼로 칠까요?”라고 연신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22절을 봅시다.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2)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라고 하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해서 무사히 고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아람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여 함부로 엿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기를 쓰고 아람군대를 어떻게 이겨보겠다는 생각이 애시 당초 없었습니다. 오히려 잘 먹여서 돌려보내야겠다는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돌려보내면 또 쳐들어올 것인데 그땐 어떻게 하나? 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엘리사는 그런 것도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다음이 걱정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다스리시지만 다음도 주님이 다스리시거든요. 그것을 믿거든요. 그게 여유입니다. 여유가 달리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다스리시고 다음도 다스리신다는 믿음이 여유를 만들어 줍니다.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작은 것 하나도 이기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니 여유도 없습니다.

엘리사를 한 번 보세요. 엘리사는 굉장히 포용적인 사람입니다. 엘리야의 제자이지만 엘리야와는 상당히 달라요. 엘리야는 맞서 싸우는 스타일입니다. 치고 나가는 기질의 사람입니다만 엘리사는 달라요.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도 고쳐줍니다. 상당히 사적인 문제이지만 그런 문제도 외면치 않고 해결해 줍니다. 이번에 아람군대를 포획했는데 죽이지 않고 오히려 물과 음식으로 대접을 해서 돌려보냅니다. 포용의 사람, 아량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딪히며 가기보단 안고 가는 스타일입니다. 이런 마음을 품으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자꾸 경쟁구도로 사람을 만나고 일을 대하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식으로 살 수밖에 없고 이기고 지고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 자체가 고통이고 두려움입니다. 자꾸 경쟁자로 인식을 하는 습성, 자꾸 저 사람을 이겨야한다는 본능,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량이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스승인 당신을 팔아먹는데도 가룟유다를 욕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네 할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십니다. 저주하고 욕하고 도망칠 제자들인데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기도해주십니다. 못 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아량이 두려움을 이기고 사랑이 두려움을 잠재웁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품는 마음이 많아지고 성령충만이 사라지면 대립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결국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품을 수 있고 품는 사람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맺는 말

 

 

 

오늘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잘 난 사람, 강한 사람, 이용해 먹는 사람,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가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 문제 투성이입니다. 두려워할 충분한 조건이 세상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만유보다 크시지만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깊이 붙들 때 주님 뜻대로 하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기고, 이 믿음이 생길 때에 여유가 생기며, 여유가 생긴 곳에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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