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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왕기하강해7 작은 자의 하나님 
본문 열왕기하 6:1~7(구약569) 
날짜 2019-02-17 
설교자 전용표 목사 

열왕기하강해 7

성경 : 열왕기하 6:1~7(구약 571)

제목 : 작은 자의 하나님

 

 

작은 것이 중요합니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 물었더니 신발에 작은 모래 알갱이가 들어갔는데 그게 두고두고 발을 찔러서 힘들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의외로 작게 보았던 문제가 더 힘들고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거울을 쳐다보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똑같지 않고 다릅니다. 왼쪽 눈이 더 큰 사람도 있고 오른쪽 눈이 더 큰 사람도 있습니다. 코도 입도 귀도 좌우가 완전 대칭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부 비대칭입니다. 같으면 어떻게 될까요? 더 잘 생기고 더 미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좌우가 완전히 대칭이 되도록 만들어 봤더니 완전 기계인간, 괴물처럼 보이더랍니다. 작은 차이가 있을 때 자연스럽고 좋기도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작은 부족함이 때로는 인생의 선물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사에게 일어났던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를 따르는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거처가 너무 비좁으니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나무를 패서 거처를 새로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아마 엘리사를 따르는 제자들이 수도원처럼 공동체생활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다보니 거처가 좁아 불편한 것이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새로 크게 짓자는 의논이 된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는 제자들의 요구를 허락하고는 요단으로 같이 갑니다. 요단에 이르러 제자들이 집을 지으려고 나무를 하게 되는데 한 제자가 그만 쇠도끼를 물에 빠트렸습니다. 쇠도끼는 자기 것이 아니라 빌려온 것이었는데 당시 쇠로 된 도끼는 아주 고가품이어서 가난한 선지생도로서는 물어줄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큰 걱정에 사로잡혀 엘리사선지자에게 빌려온 쇠도끼인데 어떻게 하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더니 도끼가 떠올랐고 선지생도는 떠오른 쇠도끼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1. 타락한 시대일수록 목이 마릅니다

 

 

 

어찌 보면 금도끼은도끼와 비슷한 동화 같은 짧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금도끼은도끼 이야기에서는 볼 수 없는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나옵니다. 1절을 봅시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1)

 

엘리사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거처가 좁아졌다는 말입니다. 그 시대는 바알의 시대, 탐욕의 시대여서 모두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살고, 어느 정도 이룬 사람들은 향락을 위해 사는 시대였는데도 불구하고 선지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타락할수록 목이 더 마른 법입니다. 탐욕의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탐욕에 지치고 피로도가 높아집니다. 향락의 시대일수록 향락에 찌들고 피로도가 높아지고요. 그러다보면 탐욕 부리지 않고 향락에 찌들지 않고 살아가는 맑은 샘물 같은 사람에게 끌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엘리사와 제자들은 부와 명예를 탐하지 않고 어렵지만 자족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뜻대로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깨끗한 믿음과 경건한 삶이 있었습니다. 엘리사공동체는 중세시대가 타락했을 때 한줄기 빛이 되었던 수도원운동처럼 이스라엘의 암흑시대를 버티게 해 준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어떤 직장에 교회는 다니지 않는데 주변사람들이 교회 욕을 하고 기독교 욕을 하면 어김없이 나서서 기독교 욕하지 말라면서 기독교를 변호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의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는 것도 친척이 교회 다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욕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기독교를 변호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지난 번 다니던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집사였는데, 무늬인 사람이 아니라 진짜 집사였습니다. 매사가 바르고 희생적이고 양보하고 주변 사람을 챙기고 함부로 남 험담하지 않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 마음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교회다니는 사람 욕을 하고 기독교 욕을 하면 자기가 나서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야. 괜찮은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싸잡아서 욕하지 마라!’ 이러는 겁니다. 그러다가 바로 그 집사님이 이 사람이 다니는 직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너무 반가워하면서 집사님에게 이러는 겁니다. ‘사실 지난 번 직장에서 당신하고 같이 일하면서 마음속으로 당신이 진짜 신앙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때 사실 당신이 나한테 같이 교회가자고 말해주기를 바랬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말을 안 해줘서 은근히 섭섭했다.’ 그 집사님은 ‘그랬냐면서, 몰라서 미안했다’면서 말하고는 당장 돌아오는 주일부터 데리고 교회를 나갔습니다. 인근의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가장 타락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을 끄는 빛과 같은 사람이 있었고 소금 같은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악하고 타락할수록 빛에 이끌리고 소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생활을 하는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에게 가서 세례를 받지 않고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걸치고 살아가는 야인, 세례요한에게 가서 ‘저는 이러이러한 죄인입니다.’라고 자기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세례요한에게로 이끌었습니까? 샘물같은 그의 신실한 신앙이요 영성이었습니다.

타락한 시대에 사람들은 더 목마른 법입니다. 가장 강력한 복음증거는 빛과 소금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악하다 타락했다 탓하지 말고 내가 샘물이 되면 되고 우리교회가 샘물 같은 교회가 되면 됩니다. 그러면 목마른 사람이 옵니다.

 

 

 

2. 작은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금도끼 은도끼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있네! 이런 반응들입니다. 반면에 이 사건 앞쪽에 나오는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의 나병을 고친 사건이나 이 사건 뒤쪽에 나오는 아람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사건은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 분량이 짧은 것도 있지만 이것이 무슨 나라를 구한 이야기도 아니고 역사적인 큰 의미가 있는 사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름 없는 한 가난한 선지 제자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된 비교적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5절을 봅시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5)

 

한 이름 없는 작은 자의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경기도 용인 양지면에 있는 신대원에 다닐 때 일입니다. 같은 방을 쓰는 전도사님들과 인근에 있는 골프장에 구경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골프장이 많지만 20년 전만 해도 골프장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것입니다. 우리는 티코 한 대에 넷이서 타고 골프장에 갔습니다. 조금 있으니 어떤 사람이 나오더니 차를 치우라고 그럽니다. 골프장 품격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대충 골프장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큰 일, 큰 자리, 큰 집, 큰 차, 큰 일꾼, 큰 사람, 뭐 이런 것을 중요시 여기는 곳이니까 우리가 받았던 대접이 따지고 보면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오래 살아가다보면 은연중에 하나님도 그럴 것이라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큰 일 감당할 사람에게 관심도 사랑도 더 해 주시지 않겠어? 제자들이 꼭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예수님과 삼 년 간이나 같이 살았던 제자들의 마지막 관심이 ‘누가 크냐? 천국에서 누가 크냐?’였었지 않습니까? 삼 년을 훈련받았는데도 여전히 이전에 살던 세상기준 세상방식의 물이 덜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주님의 관심은 언제나 작은 자에게 있었고 주님의 은혜는 작은 자에게 부어졌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저 북쪽 갈릴리지역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는 사마리아지역이 있어서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지역으로 가기 싫어서 옆으로 돌아가는 길로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쁜 일도 없으시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로 가시는 겁니다. 제자들은 적잖이 의아해했겠지요. 그렇게 해서 수가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에 수가성 여인을 만나서 인생 상담 신앙상담을 해서 그 여인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거기 4절에 보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데이’라는 말이고 영어로는 ‘must’입니다. 반드시,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사마리아로 가야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만나시려고요?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외면을 당하던 바로 그 수가성 여인을 만나시려고요.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바로 그 여자에게 예수님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작은 자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오늘 쇠도끼를 잃어버린 선지 제자는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뜻을 같이 하여 일하고자 넉넉한 집에서 쇠도끼 한 자루를 빌려와서 나무를 하다가 그만 도끼가 손에서 미끄러졌는지 요단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당시는 쇠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쇠로 된 것은 뭐든지 귀하고 고가였습니다. 보상해 줄 형편도 못되고 참 난감합니다. 그러나 이게 무슨 나라가 살고 죽는 일도 아니고 공동체가 살고 죽는 일도 아닙니다. 그저 다들 걱정하다가 결국은 이 한 사람의 문제로 끝이 날 일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이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 일을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작은 자가 속으로 애타는 마음으로 속삭이듯 쏟아내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혼자 있을 때는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하는데 여러 사람 있는데 가기만 하면 실수가 많고 움츠러들고 능력발휘를 못하는 사람, 자꾸 작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바로 그 실망스러운 마음을 헤아리시고 싸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잘 살지 못한 것 같아서 항상 죄책감이 드는 마음으로 ‘나 같은 것이 뭐 잘 났다고 하나님께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하겠어?’ 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던데, 하나님은 감히 고개 들지 못하고 간구하는 그 작은 자의 인생을 헤아리시는 분입니다. 남들만큼 충성봉사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스런 마음으로 교회생활 하는 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은 크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3. 작은 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가난한 선지 제자의 딱한 사정을 듣고 엘리사는 같이 가서 제자의 딱한 사정을 해결해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6, 7)

 

찾아보니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한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너무 금도끼 은도끼 분위기가 나서 그런지 무슨 이런 엉터리같은 이야기가 있어라는 반응을 염려해서 그런지 어쨌든 이 본문에 관한 설교는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 우리 중에서도 이 본문을 읽으면서 금도끼 은도끼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좀 웃기지 않습니까? 우리가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들을 때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딨어? 무슨 연못에서 산신령이 나오고 금도끼 은도끼까지 주는 게 어딨어?’ 이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욕심 부리면 있던 도끼까지 잃어버리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착하면 덤으로 얻게 된다는 교훈을 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읽을 때는 ‘좀 엉터리 같은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네! 이거 금도끼 은도끼 뺏긴 거 아니야? 어떤 게 더 원조지?’ 이런 식이면 곤란하단 말입니다. 그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들의 어려운 형편을 하나님께서 돌아보셨다고 읽어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타협하지 않기에 어렵게 가는 사람들,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엘리사가 강물에 빠진 쇠도끼를 되찾아주는 장면이 특이하다는 점입니다. 나무를 던져서 떠오르게 했습니다. 엘리사라면 그냥 명령을 해서 떠오르게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직접 물속에 들어가서 건져올 수도 있었을 것인데 나무를 집어던져서 떠오르게 했습니다. 여러분, 나무 집어 던진다 해서 쇠도끼가 물 위로 떠오릅니까? 원래 쇠도끼는 물에 뜨지 않는 성질인데 물에 뜨는 성질로 바꾸어서 되찾게 했다는 점입니다.

조금 비약일 수 있지만 이 부분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잘 보여주는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하나님은 작은 자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큰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분입니까? 예, 큰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큰 자를 낮추셔서 작은 자 만들어놓고 은혜 베푸시는 분입니다. 큰 자는 하나님 은혜 받아누릴 수 없습니다. 사울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는 그에게도 은혜가 임하고 그도 성령에 취해 예언도 하고 방언도 했습니다만 스스로 크게 여길 때에는 모든 은혜가 거두어지고 악신이 임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신약의 사울을 하나님이 쓰실 때에는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뜨려 놓고 쓰셨습니다. 작은 자 만든 다음 쓰셨단 말입니다. 결국 ‘저는 지극히 작은 자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입니다, 저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게 하신 다음 은혜 주시고 사용하시는 겁니다. 작아져야 합니다. 커지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교회도 작았을 때가 순수하고 은혜가 있고 하나님 행하시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지고 가는 십자가가 무거울 때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때가 은혜 받을 그릇이 준비되는 때입니다. 그때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심금을 울리는 기도입니다. 이리저리 바쁘게 일 하며 시달리던 사람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며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새로운 세상에 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바가지 긁는 아내도, 결재서류를 팽개치는 부장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알아서 척척 해주는 보좌관이 그의 일을 다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앉아서 먹고 놀기만 하면 됩니다. 정말 꿈에 그리던 신나는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니 먹고 노는 것도 싫증이 났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 하고 있는 보좌관에게 말 했습니다. “이봐! 보좌관, 내가 할 일을 자네가 다하니, 이제 내가 좀 도와주겠네!” “안 됩니다. 여기서는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 드리지만 일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대답 했습니다. “아니 무슨 천국이 이래? 답답해서 살 수가 있나, 차라리 지옥이 낫겠어!” 그러자 보좌관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 여기가 지옥입니다.”

내 몫의 십자가 지는 것이 지옥이 아니라 그 십자가 없는 것이 지옥입니다. 내 몫의 태인 십자가가 있는 것이 나를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로 만들어주며 하나님께서 나를 받으시도록 해줍니다.

 

 

 

맺는 말

 

 

작은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작은 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시는 은혜를 받아누리시는 성도들 되시길 바라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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